나는 홀로 빈 교실만 지켜야 했습니다
경기고 “학교 너무 오래돼… 장애인 편의시설 구축할 예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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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수 십 시간이 넘도록 이동수업을 듣지 못했어요. 어떤 날은 3교시부터 5교시까지 3시간 동안 연이어 이동수업 시간이었는데, 혼자서는 자세도 못 바꾸는 우리 아이만 빈 교실에 남겨뒀어요. 덩그러니 혼자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지난 3월말, 이아무개(42) 씨는 중증장애를 가진 아들 J군이 학교에서 이동수업 때마다 홀로 빈 교실에 방치되고 있는데다가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며,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로 하소연 해왔다.
▲ 경기고 외부 모습. ㄷ자 형태로 건물과 건물이 이어져 있었다. |
백년 된 명문고에 장애학생 배려한 시설 전무해
J군(17·남)은 척추측만증, 선천성다발관절만곡증, 선천성소변역류 등 중복 장애를 가진 1급 중증지체장애인이며, J군이 재학 중인 고등학교는 개교한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서울 강남의 경기고등학교다.
사실 고등학교 입학 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J군은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교를 다니지 않고 혼자서 인터넷을 통해 검정고시를 준비할까 고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J군의 어머니이씨는 아들이 방학 내내 혼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되어 지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 힘들더라도 학교에 다니는 것이 좋겠다고 J군에게 권했고, 집에서 가장 가까워 통학하기 쉬운 경기고로 입학하게 됐다고 한다.
J군은 비록 목 아래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몸도 자주 아팠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끝까지 잘 다녔다. 이렇게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의 배려가 있었고, 학교 역시 J군에게 필요한 편의시설을 설치해 주는 등 J군이 다른 학급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정상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는 게 이씨의 말이었다. 그래서 이씨는 J군이 고등학교에 입학해도 지금까지처럼 무난히 잘 다닐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고 한다.
▲ J군의 어머니 이씨는 J군이 입학한 날부터 J군의 수업 및 활동일지를 기록해왔다. 이씨가 기자에게 수업을 받지 못한 시간들을 기록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
지난 4월, 본지는 경기고를 방문해 교감과 특수교사를 직접 만나 왜 J군이 이동수업을 듣지 못했고, 교실에 홀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물었다. 교감은 “척추측만증까지 있는 중증장애를 가진 J를 의료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서 옮겼다가 생명을 잃을 수 있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동수업 때마다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J군은 입학할 때부터 특수학급에 배치됐고, 이동수업이 어려울 경우 원래 배치된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학교측의 입장이었다.
학교에 설치된 편의시설이 엘리베이터 하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교감은 “학생 배정을 늦게 받아서 J군 같은 지체장애를 가진 학생을 위해 시설보수를 하려고 해도 이미 예산신청 기간이 작년에 끝난 상태여서 불가능했다”라며, “교육청에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한 보조인력 배치도 요청했지만 그 역시 예산이 없다고 했다”고 답했다.
김아무개 특수교사도 “학교에 시설이 미비해서 이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J에게 수업을 녹화해 보여주고 다른 학생이 필기한 것을 복사해서 개인적으로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J는 특수학급에 오기를 거부했고, 옆에 있는 교실에 혼자 남아 있겠다고 했다”며 방치가 아닌 학생 스스로가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리해보면, 학교 측에서는 편의시설 미비는 인정하지만 당장 예산을 받아 시설을 보수·설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특수교육 보조인력 보충 또한 같은 이유로 어려운데다가, 교사들이나 학생들이 자칫 잘못 옮겼다가는 J군이 위험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특수반에서 수업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됐건 간에, 이동수업 때마다 빈 교실에 몸을 혼자서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인 J군만 홀로 남겨졌고 특수교사나 공익요원, 그 어떤 누구도 함께 있어주지 않았다. 이는 명백한 ‘방치’라고 볼 수 있다.
이씨는 J가 “3시간 내내 혼자 빈 교실을 지켰던 날 집에 와서 자기도 이동수업 가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데, 특수반에 내려가 수업 받으라고 해서 그냥 빈 교실에 남겠다고 했다면서 속상해 했다”며 J군은 완전통합반에서 동일하게 수업 받을 수 있는 지체장애인임에도 같은 학급 친구들과 동일한 수업을 받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속상한 마음에 수업을 거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 아이가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똑같이 반 친구들과 함께 정규수업을 받지 못하고 음악, 기술 등과 같은 전문분야의 과목을 특수교사를 통해 들어야 하는지, 필기를 보고 공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 특수교사가 필기해서 주거나 개인지도를 해주지도 않았다”고 이씨는 토로했다.
교육청·학교, “부모가 미비한 시설 알면서도 입학 고집했다”
母이씨, “정확한 사전 고지 없었다…방치 사실 회피하려는 매도일 뿐”
이씨는 J군이 경기고로 학교를 배정 받은 이후 학교에 전화해 시설상황을 물어봤고, 학교측으로부터 엘리베이터도 있으며 특수교사와 공익, 보조교사도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씨는 최근에 많은 학교들이 어느 정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구축해놨기 때문에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입학 후 찾아간 학교 내부에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전혀 없었다.
이아무개 장학사의 주장에 따르면, J군이 경기고로 입학하기 앞서 경기고는 시설이 안 좋으니 시설이 갖춰진 다른 고등학교로 갈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J군의 어머니 이씨가 경기고가 명문고이고, 시설이 나빠도 괜찮으며 학교를 중도 휴학할 예정이니 그냥 경기고로 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 옆 건물로 연결된 통로로 지나가기 위해서는 사진과 같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만 한다. |
이씨는 이어 “그런데 계속 학교는 장학사의 말만 듣고선 내가 시설이 미비한 것을 알았지만 경기고가 명문고라서 욕심을 부려 아들을 입학시킨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며, “이는 빈 교실에 중증 장애학생을 홀로 방치한 사실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나”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학교와 J군의 부모가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이씨는 답답한 마음에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장학사가 이미 경기고에는 시설이 미비하다고 사전 고지했기 때문에 더 이상 관여하기 어렵다”라며 장학사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교육청을 통해 해결이 안 되자 이씨는 또 답답한 마음에 청와대 신문고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민원에 대한 해결은 결국 서울시 교육청의 또 다른 장학사에게 맡겨졌고 답변은 동일했다고 한다. 이씨는 “이곳저곳에 도움을 요청해도 우리 입장에서 헤아려 주는 곳이 없다”. “누구한테 도움을 받아야 하나”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후 이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상태이며, 인권위는 현재 조사 중에 있다.
학교 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는 ‘의무’ 경기고 ‘장차법’ 전혀 준수하지 않아
경기고를 찾아가 건물을 직접 둘러보니 고등학교 치고는 여느 대학 캠퍼스처럼 보일 정도로 컸고, 4개의 동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래서 음악, 기술, 진로 등의 과목은 이동하여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학교가 워낙 넓어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할 때 이동통로를 이용하려고 하더라도 반드시 계단을 지나야 했고, 언덕에 위치한 구조 때문에 건물 바깥에도 계단이 많아 장애학생의 경우 이동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누군가 들어서 이동시켜주지 않는 이상,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었다. 또 건물 자체가 오래되고 낡아서 이곳저곳 보수공사가 필요한 상태였다.
▲ <그림1, 교실 배치도 = 경기고 내 비치된 배치도를 참조하여 재구성함> |
J군의 학급 교실은 위 그림1과 같이 화동관 2층에 위치해 있다. 이동수업은 보통 학생동과 과학동에서 실시하지만, 엘리베이터는 J군의 반이 있는 화동관 한 곳에만 설치돼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동수업을 위해 J군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연결된 계단을 건너가거나 건물을 빠져나와 밖에 설치된 계단으로 이동해야 한다. 또한, 편의시설만 잘 갖춰져 있다면 이동수업 외에도 J군이 타 재학생과 같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많지만, J군은 바로 옆 건물로 이동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얼마전, 이씨가 편의시설을 일부라도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자 학교측은 이씨에게 “예산상의 문제로 당장은 어렵다”라며 “J군이 이동하다가 다쳤을 경우 부모가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고 각서를 쓰면 J군을 매 이동수업 때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들어 옮겨서라도 이동수업을 듣도록 해줄 것”이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자 “학생이 정규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인데, 왜 법적 절차를 거쳐야 되느냐”라며 반발했다고 이씨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제정 이전에는 교육시설 내 충분한 기반시설이 갖춰지지 않아장애학생이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이 어려웠고, 학업을 중도 포기했던 장애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장차법에 따라 특수학급이 있는 모든 학교는 2009년 4월부터,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는 2011년 4월부터 교내에 점자블록, 경사로 등의 장애인 편의시설을 반드시 설치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완전통합학반을 지향하는 장애학생 당사자들과 부모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여전히 경기고를 비롯한 수많은 학교 및 공공시설들이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다. 특히 경기고와 같이 역사가 깊고 큰 규모의 학교가 편의시설이 고작 엘리베이터 한 대뿐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장차법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학교측은 “경기고에는 그 동안 장애학생이 거의 없었고, 최근에 증가하는 상황에서 J군 같은 이동시설이 필요한 중증 지체장애학생이 없었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꼈다”며, “올해는 반드시 경사로 및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보수 예산을 교육청에 신청해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 경기고 외부 모습. ㄷ자 형태로 건물과 건물이 이어져 있었다. |
지난 3월말 J군의 문제로 학교 내 개별위원회회의가 열렸고, 학교측과 부모가 모여 논의를 벌인 바 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 달이 지났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씨는 “교사라는 분들이 학교에 몸이 불편한 학생이 왔으면 도와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라며 “담임선생님, 특수교사, 학교측 모두 우리가 고집을 부려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책임을 몰고 있기만 해 속상하다”라고 쓰린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가운데 누구보다 답답하고 힘든 사람은 J군일 것이다. 1학기 중간고사도 다가오지만 J군은 벌써 두 달째 일부 수업을 못 듣고 있고, 일주일에 몇 번씩은 홀로 빈 교실만 지켜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엄마, 어차피 한 번쯤은 겪을 일이야 …”
얼마 전 이씨에게 J군이 한 말이다. 이 말 한 마디가 빈 교실에 홀로 남아 고독하게 있을 J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조속한 시일 내에 J군이 반 친구들과 함께 정규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이상 홀로 방치되지 않도록, 학교측이 적극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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