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에게 짓밟힌 장애인 가족,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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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가을 어느 날, 전남 보성에서 오순도순 잘 살고 있던 지적장애 가족에게 한 중년의 남성이 찾아왔다. 자신을 사냥꾼이라 소개한 강씨(47)는 모 수렵협회 회장으로 방송에 출연한 경력도 있는 수렵가였다. 그는 가장인 지적장애인 유씨와 친분을 맺은 다음, 유씨의 딸과 아내에게도 살갑게 접근했다. 이후 강씨는 유씨를 내쫓은 뒤, 유씨의 아내와 당시 17세였던 딸 유향미(가명)양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향미양의 말에 따르면, 강씨는 처음 얼마간은 모녀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기 때문에 모녀는 강씨의 호의가 싫지 않았고 그와 잘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씨는 곧 본색을 드러냈고, 모녀를 폭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과 30살이나 차이 나는 향미양을 성폭행하며 사실혼 관계까지 맺었다. 또한, 자신의 행동을 입막음하기 위해 향미양의 엄마까지 성폭행했고, 향미양은 그 현장을 목격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었다. 강씨는 모녀에게 심부름을 시켜 유씨의 통장에서 돈을 빼오게 해 금전을 갈취하기까지 했다.
일명 ‘사냥꾼과 두 여인’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방송을 본 수많은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방송촬영 당시,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와 SBS의 도움으로 구출된 향미양과 어머니는 그 이후 복지시설에서 지내고 있으며, 피의자 강씨는 형사 고소되어 성폭행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폭행죄로만 징역 3년을 판결받았다. 이에 피해자인 유양은 강씨의 악행에 반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며, 현재(2012.12) 항소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12월, 연구소 인권센터와 본지 취재진은 향미양과 그의 어머니를 한 법률사무소에서 만났다. 한결 밝은 표정으로 나타난 모녀, 어머니 최씨는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고, 향미양은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그리고 강씨의 보복이 두려워 방송 전, 그 누구에게도 사실 그대로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는 유양은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어려웠었는데 방송국 사람들과 연구소 사람들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난 후로 다 얘기할 수 있어요”라며 사건의 전말을 담담하게 전했다.
향미양 가족은 아버지 유씨와 어머니 최씨, 그리고 16살된 남동생까지 네 가족으로, 향미양의 부모는 지적장애인이고, 향미양은 등록된 장애인은 아니지만, 향미양을 검사한 전문가들의 소견에 따르면 지적장애로 의심된다고 한다.
사건의 발단을 이렇다. 가을철 사냥에 나선 피의자 강씨는 전남 보성을 찾았다. 강씨는 그곳에서 향미양 아버지인 유씨를 알게 됐고, 얼마 후 강씨는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인의 집을 100만 원을 주고 빌렸다. 그리고 향미양 가족은 농사를 짓기 위해 원래 살던 집을 두고 강씨가 빌린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후 가장인 유씨는 강씨에게 쫓겨났고, 모녀만 남게 된 것. 다행히 향미양의 남동생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어서 피해 현장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이(강씨) 저희한테 온 건, 2011년 추석 때쯤이에요. 아빠가 강씨랑 알게 돼서 집으로 데려왔는데, 강씨는 아빠보다 나이가 어려서 아빠한테 형님이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아빠는 강씨를 계속 어려워하면서 존댓말을 했고 강씨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아빠를 우습게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날 아빠를 쫓아내고 저희만 남겨뒀어요. 그리고는 그 사람이 처음에는 엄마와 저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나니까 저를 막 때리기 시작했고 성폭행까지 했어요.”
향미양의 증언에 따르면, 강씨는 향미양이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항상 옆에서 감시했다. 몸이 좋지 않은 향미양은 병원도 자주 가야했지만 강씨는 향미양을 집안에서만 있게 했고, 어디 간다고 하면 보고하는 것은 물론, 나가면 수시로 전화를 해댔다고 한다.
“제가 도망가면 엄마한테 보복할까봐 도망가지도 못했어요. 엄마도 마찬가지로 강씨가 저나 식구들한테 해코지 할까봐 못했고요. 또 여기는 산골이라 폐쇄적인 구조고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곳이라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어요. 이런 곳에서 누구 하나 죽어도 잘 모르거든요. 그때 쫓겨난 아빠가 원망스러웠어요. 쫓겨났으면 신고라도 해주든지, 누군가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도 안 했던 건 아니에요. 한 번은 신고했을 때 제가 맞아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나이 어린 여자애가 피를 흘리고 있으니까 경찰이 의심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경찰이 아빠와 엄마, 강씨를 데리고 가서 (저와 강씨가) 어떤 사이냐고 물었는데, 강씨가 저를 자기 아내라고 한 거예요. 경찰이 아빠한테 강씨 말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아빠도 허락한 게 맞다고 대답해버려서 제가 14세 이상이고 부모의 동의가 있는 상태니까 그냥 가라고 했대요. 그 후로는 경찰이 더 이상 조사를 안 하더라고요. 아빠는 판단능력이 떨어지니까 그게 나쁜 건지도 모르고 대답해줘야 하는구나 하고 대답한 건데. 그래서 그 이후로 강씨랑 저랑 사실상 혼인관계가 된 거예요. 강씨가 제 휴대폰을 같이 썼는데 휴대폰 채팅프로그램에도 결혼한 것처럼 사진을 올려놓게 했어요.”
판단능력이 부족한 지적장애 부모로 인해 향미양은 반 강제적으로 강씨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당시 강씨는 이혼도 하지 않은 유부남이었다.
“그 이후로 몇 번 큰 사고가 날 뻔해서 신고를 하니까 나중에 파출소에서 강씨가 술을 먹었는지부터 물어보더라고요. 5번 정도 신고했더니 상습적으로 전화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술 취한 사람이 주정부린다고 쉽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정말 저희에게는 위험한 상황이었거든요. 전화한 것은 무조건 죽을 수도 있을만한 심각한 상황이라 한 거고, 신고하다가 강씨한테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경찰이 바로 출동하지 않아서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향미양에 따르면 강씨는 알콜 중독 수준이었다. 밤낮, 새벽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향미양이 자고 있어도 깨워서 술상을 차리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강씨는 폭행을 일삼았다.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니까 술 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 칼이고 젓가락이고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 던졌어요. 비가 오면 때렸고, 아빠가 찾아오면 무조건 때렸어요. 일주일에 2~3번은 맞은 것 같아요. 목도 여러 번 졸랐는데, 한 번은 숨이 끊어지겠다 싶을 정도까지 졸랐어요. 죽을 뻔했죠. 그러다 어느 날은 세탁기에 저를 집어넣고 돌리려고까지 했어요. 가까스로 몸부림치며 벗어났고 너무 무서워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그 사람이 자고 있었고, 그래서 경찰은 또 대수롭지 않게 술주정이라고 생각하고 가버리더라고요. 요즘도 날씨가 안 좋으면 졸렸던 목이 아파오곤 해요. 그때 악몽도 떠오르고요. 물론 그뿐만 아니에요. 그 집에서 도망칠 때 강씨가 엄마와 저에게 칼을 던져서 엄마머리에 상처가 나기도 했어요.”
미용을 배우고 싶었던 향미양은 현재 야간학교와 미용학원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어머니 최씨도 쿠키와 커피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하지만 모녀는 아직도 그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 받고 있고, 향미양의 부모는 이혼한 상태다.
“야간학교가 깊숙한 골목길에 있는데 학교를 왔다 갔다 할 때 너무 무서워요.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사람이 길에 있으면 강씨가 생각나서요.”
향미양의 어머니 최씨는 “방송국 측에서 우리들의 잘 살고 있는 모습을 촬영할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향미도 방송촬영을 한 번 더 하고 싶어 하는데 저는 너무 시기가 빠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아직 우리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거든요. 강씨가 보복할까봐 무섭고요. 그리고 향미랑 저랑은 피해 다니면 되지만 강씨가 다른 식구들을 다치게 할까봐 너무 걱정돼요.”
방송 재촬영을 방송국 측에 요청했다는 향미양은 “제가 방송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건 우리처럼 피해 입는 사람들이 없으면 좋겠어서예요. 제2의 범죄가 발생하면 안 되잖아요. ‘장애인한테 범죄했더니 3년밖에 안 사네. 3년 살면 돼지’ 하고 범죄를 또 저지르면 어떡해요. 방송에 나가서 그런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얘기할 거예요. 우리는 아직도 고통 속에 지내고 있다고 얘기할 거고요.”
2012년 한 해 동안 지적장애 여성 성폭행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도서산간이나 지방 중에서도 외진 곳에 살고 있는 지적장애 여성들에게 성폭행 사건은 더 많이 일어났다.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지적장애인을 위한 성폭력예방 프로그램이 거의 없고, 주민들의 지적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교육도 부족하다. 또 성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이런 사건들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피의자들이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한 뒤 협박하거나 동네에서 지적장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마치 지적장애 여성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몰아가기도 한다. 또 지적장애 여성들의 진술능력이 부족함에도 진술조력인을 대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진술을 받는 바람에 피해사실을 입증하지 못하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발생한 지적장애 여성 성폭행 사건에서도 많은 피의자들이 증거불충분이나 피해여성의 진술부족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무혐의가 되기도 했다.
올 한 해는 국가적 차원으로 지적장애 여성 성폭행 근절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방에는 대대적으로 지적장애 여성들과 비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고, 외진 곳에 사는 장애인들을 위해 복지사나 경찰 및 지자체 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내방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성폭행 피의자들에 대한 처벌이 더욱 강력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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