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본문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이후 조현증이 있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공포가 가시질 않는다. 올해 초 진주의 한 아파트에 살던 남성이 불을 지르고 계획적으로 주민들을 살해한 사건, 흔히 ‘진주아파트방화참사’가 있은 후 조현증 정신장애인에 대한 뉴스는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정말 조현증이 있는 정신장애인은 언제 폭력을 쓸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일까. 조현증이 있는 당사자 이정하 씨를 만났다. 그녀는 현재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이라는 장애인권단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폭력적인 사회가 민감한 그녀에게 끼친 증상
그녀가 이상증상, 즉 조현증이라는 병명을 부여받은 것은 99년도쯤이었다. 당시에는 3D애니메이션 디렉터와 아트디렉터(미술감독)로 일하고 있었다. 노동 강도가 셌고, 어렸을 때 겪은 성폭력, 가정폭력의 경험이 더해졌다. 원래 그녀에게 있는 사물과 교감하는 독특한 감각이 이상증세로 부각됐다. 잠을 거의 못자고 일하며 증상이 심해졌다.
어렸을 때 그녀는 엄마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친구도 없이 시골동네에 살았다. 아버지는 술을 먹으면 종종 폭력이 심해졌다. 게다가 그녀는 남들보다 성장이 더뎠다.
“원래 말이 늦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자폐성장애인. 말도 잘 못하고 열 살 때까지도 대소변을 못 가렸어요. 어렸을 때 충격을 많이 받은 데다 자연과 교감하는 독특함이 사람들보다 훨씬 좋았거든요, 나무랑 소통하는 거죠, 일체화된다고 할까. 고도의 몰입이 있어야 가능해요. 옛날엔 나뭇잎도 흔들고 바람도 만들 수 있었어요. 기운이라고 하잖아요. 자연을 느끼는 거죠. 지금은 살면서 많이 없어졌죠.”
가상현실이 보이고 그래서 거리를 배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보기엔 거리에 맨발로 다니는 그녀가 불안하고 위험해보일 수 있었으나 그녀가 누군가를 해친 적은 없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그녀의 동의 없이 가뒀다. 폐쇄병동은 끔찍한 인권유린의 장이었다. 그 후에도 가족으로부터 여덟 번이나 강제입원을 당했다.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퇴원하고 1년이 지난 후 친구가 낸 사무실에 복귀했다. 동료들은 그녀가 낫기를 기다렸다. 그녀 말로는 ‘창작 쪽에 있는 사람들이어서’여서 가능했다. “미친 짓을 해도 용서되는 게 있어요. 가령 회사를 맨발로 걸어 다니는 걸 창작판에서는 자기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 방식으로 봐요.”
2008년 촛불집회 시기 즈음 다시 발병했다. 대통령이 표현의 자유를 탄압했고 4대강 사업으로 자연을 훼손하면서 증상이 심해졌다. ‘진보적인 문화콘텐츠판’에 있는 사람들이 감시당하고 억압당했다. 게다가 자연과 교감하는 그녀에게 4대강 사업은 직접적인 고통을 가져다줬다. “감각이 예민한 상태에서는 통증으로 다가와요. 심각할 경우, 강을 팔 때는 내 팔을 파는 거 같아요.”
국가폭력이 그녀의 증상을 심화시켰다. 조현증이 심해지는 사회적 원인, 폭력적인 사회구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폭력의 사회가 개인의 증상을 심화시켰어도 국가는 폭력의 사회구조는 그대로 둔 채, 조현병 환자만을 탓한다.
여성정신장애인에 대한 폭력
여성정신장애인은 발달장애인처럼 쉽게 성폭력 대상이 된다.
“조현병 환자이고 여자면 함부로 하는 거예요. 어리숙해 보이잖아요. 상태가 안 좋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말이 느리거나 순발력이 없거든요. 방어 능력이 떨어지죠. 그런 순간을 남성은 귀신같이 알아채나 봐요. 지적장애인 여성과 정신장애인 조현병 여성들은 피해 수준이 거의 비슷해요. 그런데 말도 못해요. 정신장애인이니까 진술에 의심을 받거든요.”
직장을 다닐 때는 덜 했다고 했다. 성폭력이든 폭력이든 폭력은 권력이 기반임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직장을 다닐 때는 제가 사회적 지위가 있었거든요. 실장이었던 데다 회사 제일 권력자여서 남자들도 함부로 하지 않고 깍듯했어요.”
여성억압적인 사회에서 여성정신장애인들이 겪는 폭력은 일상적이고,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클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강남역 여성 살해는 ‘여성혐오범죄’라고 단호히 말했다. “강남역 여성 살해는 여성혐오범죄죠. 조현병 증상 자체가 사회적이에요. 조현병 증상이 세상과 상호반응을 하거든요. 여성혐오가 보편화되잖아요, 그러면 여성(대상) 범죄가 늘어나요.”
누군가 살인을 저질렀으면 범죄자인데, 그 사람의 병명을 강조하는 게 정당한지 그녀는 반문했다. “어떤 남자 살인자가 고혈압이 있으면 고혈압 범죄가 되겠네요.” 그녀는 그러한 낙인이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진주아파트방화참사사건의 안인득이 보여준 주도면밀함은 조현병의 특징이 아니라고 했다.
성폭력을 겪은 여성으로서 그녀는 정신장애에 대한 젠더적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마음의 병을 앓아도 여성 의사를 만나기가 어렵다고 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삶의 심각한 폭력 중에 간과할 수 없는 게 성폭력이기에, 그걸 공감하면서 나눌 여성 의사가 중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계나 정신분석학계도 남성이 대부분이다.
▲ 이정하 씨가 병원에서 그린 그림 |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파도손’은 정신장애인들이 증상이 심해지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안내를 하거나 쉼터를 제공해주는 일도 한다. 인터뷰를 하던 날에도 쉼터에서 누군가 쉬고 있었다.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은 당사자에게 평온을 주고 증상을 완화시켜주기도 한다. 이정하 씨가 쉼터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녀는 바란다. 질병이나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를. 사회는 그녀처럼 사물의 소리를 듣고 교감하는 감각이나 다른 사고를 용인하지 않았다. 차별하고 격리하고 괴롭혔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무서운 존재로 보며 혐오했다. 다른 감각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정신장애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며 그녀는 속상해했다. 이런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생존하려면 강제적인 치료환경이 아니라 쉼터 같은 곳이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부분이 취약해지면 다른 부분들은 강점이 되기도 해요. 정신증이 대표적이에요. 저는 정신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그건 그냥 다른 정신의 현상, 증상이거든요. 환청이나 관계 사고나 이런 것들은 신경적으로 일반사람들과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한 감각을 억제하거나 치료의 대상으로 만들어서 주체로부터 빼앗아가요. 주체는 상실이 되는 거죠. 삶의 심각한 문제에 대한 반응이 정신증인데 그걸 뺏고 가두는 게 맞는 걸까요?”
예민한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 마음이 아플 수 있고 환청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과 조금만 행동과 사고가 다르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녀를 쫓아내려 한다. 동일성을 추구하는 사회가 가지는 끔찍한 폭력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이종찬님의 댓글
이종찬 작성일일반개념으로 여성에 엄격한 잣대로 인간다운 삶이 어렵고 여성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가장 처절한 소외가 현장에 목격되니 여성장애의 척박한 측면에 깊은 슬픔을 유추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