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의 구조적인 문제가 인권침해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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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0일 인천도가니공대위는 인천시청 앞에서 ‘시설비리, 인권유린 해결을 위한 인천시청 노숙농성 해산 보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인천시 소재 장애인 생활시설인 명심원과 예원에서 일어난 장애인 인권침해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인천 내 장애인단체, 시민단체 등이 노숙농성 등을 통해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인천시를 압박, 인천시로부터 공익이사 파견 등을 담은 종합계획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이제야 방향은 잡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았다. 장애인 인권유린의 근본인 시설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에 명심원과 예원에서 일어난 장애인 인권침해와 이를 둘러싼 갈등과 내막을 짚어봤다.
인권유린의 뿌리, 임원진 해임하라
‘인천판 도가니! 시설인권유린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인천도가니공대위)는 지난 7월 23일 인천시청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 돌입을 선포하고 명심원과 예원의 임원진 해임을 인천시에 요구했다.
인천도가니공대위는 명심원·예원에서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장애인 인권유린에 대해 인천시가 개선명령만으로 일관하는 등 솜방망이 조치만 내리고 있다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법인 이사진 해임 등 강력한 조치의 필요성을 인천시에 강조한 것이다.
이에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인장연)는 명심원·예원에 대한 ▲인권지킴이단 상시운영 ▲검증된 공익이사 파견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24시간 신고 가능한 장애인 인권신고 센터 운영 ▲연 2회 인권실태조사 정례화 ▲탈시설 자립생활 계획과 예산 수립 ▲예원 및 명심원에 대한 법인, 이사장 등 임원진 해임을 인천시에 제안했다.
이에 인천시 장애인복지과는 요구 대부분을 받아들이고 해결 의지를 보였지만, 임원진 해임 조치 요구에 대해서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률 전문가 자문결과 예원·명심원의 임원진 해임은 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한 법률 전문가는 “장애인생활시설의 시설장이 그 지도감독을 소홀히 해 시설 종사자의 생활거주인에 대한 폭행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지도감독 소홀이 현저한 불법행위에 따른다고 보기 어려워 임원 해임을 명하기는 어렵다”고 시청에 전달했었다.
이 같은 이유로 인천도가니공대위는 지난 8월 3일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명심원·예원 인권침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그동안의 투쟁 경과를 설명하고 해당 시설 임원진 해임 등 인천시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장종인 인장연 사무국장은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는 광역자치단체장이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법인의 임원을 해임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인천시장이 적극 나서서 명심원과 예원의 임원진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후 인천도가니공대위 대표단, 송영길 인천시장, 한길자 장애인복지과장 등 관련 공무원들이 참석한 면담이 이어졌다. 그러나 송 시장은 사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었으며 담당 공무원은 “해당 구청이 조사했고 조치도 내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하고 있으니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 “시설에 대한 처벌은 해당 구청이 내려야 한다”는 등 책임 떠넘기기와 같은 일관된 입장을 고수했다.
송 시장은 이날 면담에서 추후 시청 장애인복지과 담당자, 계양·연수구청 담당자, 명심원·예원 관계자가 한 자리에 참석한 2차 면담을 진행하자고 약속했지만, 그동안의 진행 상황으로 보아 2차 면담에서도 확실한 대안이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오랫동안 자행된 인권침해
명심원·예원에서는 오랫동안, 수차례나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났지만, 인천시와 해당 구청의 처벌과 대책은 미약했다. 인천도가니공대위에 따르면 명심원·예원에서 그동안 일어난 생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은 다음과 같다.
▲ 인천도가니공대위 대표단(오른쪽 3명)과 송영길 인천시장(가운데), 한길자 장애인복지과장 등 인천시 공무원들(왼쪽 4명)은 지난 8월 3일 인천시청에서 면담을 갖고 명심원·예원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 |
명심원에서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간 지적장애인이 이사장 집 가정부로 임금 없이 강제적으로 일했던 사실이 드러났으며, 2002년부터 2010년까지는 이사장 개인소유 포도밭에서 생활교사를 강제로 동원해 일하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0년 12월에는 지적장애 여성이 손을 입에 문다는 이유로 그의 옷을 생활인들이 보는 앞에서 벗겨 그 옷으로 손과 목을 결박한 후 내버려둔 일이 일어났고, 이에 시는 가해교사를 해임 조치하고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시 즉시 폐쇄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2011년 8월 옷을 뜯어먹는다는 이유로 지적장애여성의 상의를 벗겨 가슴을 드러낸 채 생활하도록 내버려둔 사건이 일어났지만, 폐쇄조치 하겠다던 경고와 달리 시는 개선명령만 내린 채 사태를 수습해 버렸다. 또 올해에는 16년간 근무한 생활교사가 생활인을 상습적 폭행한 사실이 밝혀졌으며, 시설 비리와 인권유린을 제보한 생활교사 2명이 부당해고 당했다. 특히 생활인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했으면서도 이사장은 법적 기준 85㎡의 3배가 넘는 252㎡ 규모의 공간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원에서는 생활인이 허가 없이 외출 했다는 이유로 생활교사가 9세 장애아동의 다리를 찢어 넓적다리를 부러뜨린 일이 있었으며, 같은 이유로 54세의 지적장애여행을 폭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자위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11세 장애아동의 성기를 자로 때리는 성희롱을 일삼았으며, 시설장은 위와 같은 인권유린을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방관했다는 것이 인천도가니공대위의 설명이다. 계양구청 담당공무원도 인권유린 사실을 2차례 적발했지만,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채 행정조치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인권위가 가해교사를 검찰에 고발한 상태며, 계양구청은 가해교사와 시설장에 대한 해임 조치를 내렸다. 이에 예원은 가해교사는 해임했으나 시설장 해임에 대해서는 거부해 현재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인천도가니공대위 측은 “시설장이 해임되더라도 이사장은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관리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 법인운영을 좌우하는 이사장직을 계속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익이사제 도입 합의
인천시는 결국 지난 8월 14일 명심원·예원 사태에 대한 조치로 공익이사제 도입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약속했다. 인천도가니공대위의 시청 앞 노숙농성 23일 만에 이끌어낸 결과다.
이에 인천도가니공대위는 지난 8월 20일 오후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시가 약속한 명심원·예원에 대한 조치계획과 그동안의 경과보고, 앞으로의 활동계획 등을 발표했다.
인천도가니공대위에 따르면 인천시 장애인복지과는 8월 14일 명심원·예원에 공익이사를 2명씩 파견하고 운영위원회를 외부인사 중심으로 재편하는 등의 내용을 담을 ‘장애인 생활시설에 대한 인천시 조치계획(안)’에 합의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장종인 사무국장은 “장애인 시설의 인권침해와 비리 문제가 단순히 우발적인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립되고 폐쇄적인 시설, 시설장과 이사장 일가에 의한 독점 운영 등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따라서 사건을 일으킨 시설 운영 임원진 해임을 주장해왔으나 인권위의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임원해임과 같은 행정조치는 힘들다는 것이 인천시의 입장”이라며 “이번 인천시의 조치계획은 공대위와 인천시가 조금씩 양보해서 만들어진 안이므로 원래 목적이었던 임원진 해임은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천시와 인천도가니공대위가 합의한 장애인 생활시설(예원·명심원)에 대한 인천시 조치계획(안)은 ▲장애인시설 인권유린 방지를 위한 대책(6가지) 마련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시행 이전에 예원·명심원에 대한 공익이사제 도입 ▲운영위원회 구성은 시설 3명, 지자체 5명, 시 2명을 추천해 구성(단, 구성 시기는 가급적 9월 중으로) ▲예원 시설장은 행정소송이 완료될 때까지 공석으로 하고 명심원의 시설장 교체는 인권위 결과에 따라 처리 ▲명심원·예원의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해서는 시에서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직접 조사 후 조치(치료, 보상, 전원 등) ▲내부 고발로 말미암은 명심원 해고자 복직을 위한 시의 권고 조치 ▲탈시설-자립생활과 관련한 내년 예산의 조속한 협의 진행, 탈시설 용역 완료 후 탈시설 계획에 대한 협의 진행이다.
인천도가니공대위는 “우리가 요구해왔던 임원진 해임을 통한 근본적인 장애인 인권유린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공익이사 파견과 운영위원회 개편을 통해 이사장 일가에 의해 전횡돼온 시설운영을 바로잡을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고 견해를 밝혔다. 또 “인권위 조사결과에 발맞춰 지속해서 시설인권유린 해결을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며 “시설 내 인권유린과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적극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장종인 사무국장은 “두 시설의 임원진 해임 여부는 인권위 조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조사결과 인권유린이 명확히 밝혀지면 임원진 해임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인천시가 약속했으니 일단은 인권위 조사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인천시의 합의로 명심원과 예원 사태는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가족과 친인척들로 구성된 운영진의 근본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생활인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뿌리 뽑을 수 없을 것으로 인천도가니공대위는 보고 있다. 명심원·예원 사태는 이제 산 하나를 넘었다. 그러나 아직도 시설 장애인의 인권 문제와 시설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번 명심원·예원 사태의 진행상황과 지자체의 조치·대책 마련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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