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지원법, 절망 속 빛이 될 수 있을까 >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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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지원법, 절망 속 빛이 될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지원법을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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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지난 5월 국회에서 발의된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정부가 발달장애인지원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기대에 찼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법안은 당사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급하게 발의됐다는 목소리가 높고, 정부의 지원계획은 모두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 무엇이 진정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길인가?

 

“당사자 의견 왜 묻지 않나?”

지난 5월 30일 김정록 의원(새누리당) 등 13명의 국회의원이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발의한 제정안은 ①발달장애인의 자유권과 사회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했고 ②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고려한 개인별 맞춤별 지원시스템 근거 규정을 마련했으며 ③인권침해 예방 및 권리구제를 위한 권익옹호 체계를 마련하도록 했다. 또 ④발달장애서비스 업무를 통합관리, 지원하는 원스톱 지원체계를 마련했고 ⑤발달장애인의 낙후된 고용 및 재활환경을 개선하고 ⑥생활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는 거주환경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지역통합에 이바지하도록 했다.

발의된 법률안은 관련 단체와 당사자 부모들의 의견을 오랜 기간 충분히 수렴해 마련된 것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법률안이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는 법안이 제출된 30일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발달장애인법은 의원들의 법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법인데 발달장애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법안을 만드는 것을 불쾌하다”며 “법을 만들기 전에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생각과 의견을 물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발달장애인을 만나서 얘기하거나 토론해보고 만들어도 늦지 않다. 발달장애인의 생각이 들어야 한다”며 “당사자를 무시하는 쪽으로 법이 만들어지면 발달장애인들은 분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효성 있는 지원계획 수립하라”

정부는 지난 7월 6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개최해 ‘발달장애인 지원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정부는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회 실현’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권리보호와 진단·치료, 복지서비스, 교육·훈련, 자립지원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13개의 주요 정책 과제 추진을 밝혔다.

지원계획의 세부계획을 살펴보면 첫째, 성인 발달장애인의 신상보호 등을 담당할 성년후견제의 조기 정착, 인신매매 등 근절을 위한 도서지역·염전·선박 등에 대한 정기적 수색·점검 등 권리보호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둘째, 발달장애의 조기개입과 적절한 치료를 위해 진단 및 치료체계를 구축하고, 바우처 지원확대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셋째, 발달장애인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등을 확대하고, 부모에 대한 상담과 정보제공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밖에 계획으로는 발달장애인이 치아우식증 치료 시 전신마취 비용 건강보험 수가적용, 보호고용 확대, 보충적인 소득보장을 위한 연금 및 신탁상품 출시 유인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같은 정부 계획은 관련 장애인 단체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추련)는 7월 11일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의 지원계획에 대해 “실망을 넘어 허탈감마저 느낀다”며 발달장애인지원계획의 전면 수정과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권리에 기초한 실효성 있는 지원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발추련은 “이번에 발표된 지원계획의 절반 이상이 이전에 이미 발표된 내용이거나 추진 중이었던 사업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원 사업들도 대부분 시행 시기나 구체적인 시행계획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며 “근본적으로 이번 지원계획은 발달장애인을 시혜와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기존의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정부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장애등급과 가족의 부양의무에 기초한 기존의 장애인복지체계를 정부가 여전히 개선할 의지도 전망도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발추련은 “정부가 진정으로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와 자연스러운 통합을 실현해내고자 한다면 이번에 발표한 발달장애인지원계획을 전면 수정해서 새로운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법안인가?

지난 7월 1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수렴의 장’이 열렸다.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부모회,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등 장추련 4개 단체와 김정록 국회의원이 참여한 이날 토론회는 발의된 발달장애인지원법에 대해 함께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발달장애인지원 법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범주에 ‘발달장애인을 사실상 보호자는 자’가 있어 발달장애인을 노예 부리듯 한 사람, 시설 원장 등도 이에 포함돼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발달장애인법 전반에 걸쳐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선택권과 의사소통권을 보장하면서도 보호자에게 발달장애인 서비스 결정권한을 사실상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자칫 당사자의 선택을 근거로 해 사실상 보호자가 결정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이경아 교육자문위원은 발의된 법안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자문위원은 “유감스럽게도 발의된 법안은 법안으로서의 기본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초법적이고 역차별적인 파격성을 담고 있다”며 “법안 내용 하나하나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오류가 생길 것이고, 그 피해는 바로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또 법안에서 제안하고 있는 개인별 현금지급에 관해서도 문제 삼았다. 현재 법안은 소득이 없으면 매월 1인당 95만 4천 원, 소득이 있으면 본인 소득에 책정된 소득보장금액(현재 수입의 절반)을 소득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매달 현금이 생긴다는 일은 솔깃할 수도 있으나 그 솔깃함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라며 “시설 거주 발달장애인들이 돈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고, 지급된 돈이 당사자를 위해 쓰일 수 있을지 의문인데다, 직접 받을 시 금전관리가 문제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득보전은 간접 바우처로 서비스 제공기관에 지급되거나 연금형태여야 할 것”이라며 “간접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 성인기 프로그램과 활동보조 지원을 다양하게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조용선 부산사상구지부장은 “늦게라도 정부가 발달장애인의 열악한 현실을 인정하고 발달장애인의 권익을 논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안도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곳에 가서 우리 아이에게 맞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판정을 더 까다롭게 해서 등급에서 탈락하지는 않을까, 현재 진행 중인 정책들과 중복되지는 않을까, 약 13조 2천억 원이라는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정부부처 간 협의를 통해 잘 정착시킬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일률적인 서비스가 발달장애인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장애인을 돈벌이 정도로 생각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발달장애인지원법

당사자 의견의 충분한 반영, 현실성 있는 법안 마련, 장애특성에 맞는 서비스 등 발달장애인지원법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대로 법안이 법안심사소위원회부터 전체 회의,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까지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일뿐더러 통과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많은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높다. 발달장애인법안 마련에 참여한 관계자도 “오랫동안 이 법안을 만들기 위해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는 말만 강조할 뿐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이 힘찬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그 출발은 위태롭기만 하다. 더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현실성 있는 법안 마련을 위한 시간은 아직 있다.

조용선 지부장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들이 잠깐의 이슈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및 관련 단체의 여러 의견을 듣고 법안을 완성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국 모든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바람이다.

작성자이승현 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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