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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

친자 입적했던 21명의 장애인 중 남은 사람은 4명 “나머진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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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2명이나 되는 자녀를 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22명 중 실제 친자식은 단 한 명뿐, 나머지 21명은 전부 양자로 호적에 이름이 오른 장애인이다. 세상은 그를 '천사'라고 불렀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생활이 어렵고 오갈 데 없는 장애인들을 자신의 호적에까지 올려가며 보살핀다는 그의 행적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그를 칭찬하고 안타까워했으며, 전국에서 수많은 후원금과 도움의 손길이 그를 향했다.

하지만 그 ‘가짜 천사’의 날개 밑에 감춰진 그늘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현재 그와 살고 있는 장애인은 단 4명뿐이다. 21명 중 2명은 이미 오래전 싸늘한 주검이 되어 10여 년 동안 병원 냉동고에 방치됐고, 나머지 15명은 주민등록마저 말소된 채 그 행방을 알 길이 없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강원도 원주 어느 산기슭에 사는 장아무개 씨에 관한 이야기다.

천사라는 가면 뒤에 감춰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2구의 장애인 시신은 무슨 이유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병원에 방치돼야 했던 것이며, 나머지 15명의 장애인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목’숨 버려 ‘사’랑하라.”

장씨가 스스로 ‘목사’라 칭하며 내세우는 말이다. 그런데 장씨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 그들을 사랑한 게 아니라, 21명이나 되는 장애인의 ‘목숨’을 이용해, 희대의 ‘사기극’을 벌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10여 년 동안 냉동고에 내버려둔 시신

지난 5월 22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 인권센터로 SBS ‘궁금한 이야기 Y’ 제작팀(이하 SBS Y팀)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취재 중인 사건에 장애인이 얽혀있는데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담당 PD가 들려준 이야기는 쉽사리 믿기 어려웠다.

사건의 발단은 충북 충주에 있는 한 병원의 제보에서부터 시작됐다. 병원 관계자의 제보는 다음과 같았다.

2000년 5월 영양실조로 입원한 한 장애인이 수술 도중 사망했는데 보호자는 그 시신을 여태 찾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 병원 측은 보호자에게 지속해서 시신을 찾아가 달라고 요구했지만, 보호자는 도리어 병원 측의 의료과실을 주장하며 자신의 자식임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던 시간이 어느덧 12년이 흘렀고 시신의 보관비용은 2억여 원에 이르게 됐다. 병원은 보호자에게 그동안 들었던 모든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고 장례식을 치르는데 드는 금액까지 치러주겠다고 뜻을 전했지만, 보호자는 그것마저도 거절했다.

강원도 원주의 한 의료원에서도 비슷한 제보가 이어졌다. 이 의료원에서도 10년째 찾아가지 않는 시신이 있었다. 의료원 측에 따르면 이 시신은 2002년 11월 뇌출혈 수술 후 욕창 등으로 사망했지만, 그 보호자도 역시 시신을 찾아가길 거부한 채 의료사고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두 의료기관에 보관된 시신의 보호자는 같은 인물이었다. 그 보호자는 바로 장씨였다. 그는 두 시신의 아버지로 자식이 사망했는데 사망신고는커녕 사망진단서조차 발급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사망 후에도 두 자식에게 나오는 장애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를 꼬박꼬박 받아 챙겼다. 방치된 두 시신은 살아 있었을 때 1급 지적장애인이였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취재결과 장씨의 밑으로는 무려 21명의 장애인이 친자로 등록 돼 있었다.

장씨는 1978년 3월 상만(가명)씨 등 6명을 한꺼번에 자신의 호적에 올리면서 장애인들을 친자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같은 달에 다시 1명을 더 올렸고, 1981년 8월, 1981년 9월, 1983년 1월, 1983년 7월, 1984년 2월, 1985년 5월, 1986년 2월에 각각 2명씩을 더 올렸다. 이렇게 그는 1978년부터 1986년까지 9년 동안 전부 21명의 장애인을 자신의 자녀로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그가 데리고 있는 장애인은 단 4명뿐이다.

SBS Y팀에 따르면 “이미 시신으로 변해버린 두 장애인은 지금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장씨는 “복지시설에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15명의 행방을 묻는 말에도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장씨가 데리고 있는 4명의 장애인 상태였다. 이들의 팔다리는 심하게 말라 있었으며, 모두 삭발을 당한 채 색상과 무늬가 비슷한 낡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이 생활하는 곳은 장씨 부부가 거주하고 있는 3층 건물 바로 앞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이곳은 악취가 심했고 위생상태도 매우 불량했으며 남녀가 구분되지 않은 좁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식사시간에는 밥상도 없이 맨바닥에서 밥을 먹었고, 이마저도 끼니마다 챙겨 먹을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이들의 온몸에는 크고 작은 흉터가 무수히 많았으며, 특히 상래(가명)씨의 팔에는 장애유형 등 인적사항과 전화번호 등이 까만색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또 이들은 야외에서 많은 노동을 한 듯 시골 농부의 피부처럼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이 같은 내용 때문에 SBS PD는 장씨의 장애인에 대한 학대와 노동력 착취, 부정 수급, 의도적 시체 유기 등에 대한 의심을 품었고, 연구소 인권센터로 의뢰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에 인권센터와 본지 취재진은 비인가 장애인시설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장애인 인권 침해 사건을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하고 적극 개입 의사를 밝혔다.

 

   
▲ 상래(가명)씨의 팔에는 인적사항과 전화번호 등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출입금지’ 폐쇄된 장씨의 집

지난 5월 24일 연구소 인권센터와 본지 취재진, Y팀은 함께 강원도 원주 장씨의 집을 찾아 장씨를 만났다. 장씨의 집은 마을 어귀 산골짜기에 있었는데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넓은 부지에 걸쳐 사방을 철조망으로 둘러싸 막아 놓았으며, 장씨 집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단단한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현장에서 인권센터와 본지 취재진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직접 면담을 장씨에게 요구했으나 장씨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또 사라진 15명의 행방과 두 구의 시신을 병원에 10여 년 동안 내버려뒀던 이유, 4명의 장애인에 대한 학대 여부 등에 대해 물었으나 장씨는 정확한 대답을 피한 채 고성을 지르며 전혀 관계없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후 장씨의 신고로 관할구역 경찰이 출동했으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본지 취재진과 인권센터는 현장 상황과 장씨의 심리 상태를 짐작해 장씨의 집안 내부로 들어가거나 4명의 장애인을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 장씨 가족의 평소 행동을 알아보기 위해 마을주민을 상대로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마을주민의 장씨에 대한 반응은 비슷했다. 장씨가 마을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나 소통은 전혀 없었고 만나면 서로 인사만 나누는 사이라는 게 마을 사람들의 일관된 진술이었다. 대부분 장씨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내저었으며 자세한 언급을 피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한 마을주민을 통해 장씨와 마을주민들과의 대략적인 관계를 알 수 있었다.

마을주민들이 지켜본 장씨의 행적은 이랬다. 장씨는 자신과 관계없는 조그만 위법사항까지 고소, 고발을 남발하거나 주민신고를 해댔고, 그 통에 몇몇 주민이 금전적 손해를 입었으며 이 소문이 주위로 퍼지면서 모든 사람이 장씨를 꺼리게 됐다는 것. 해당 주민센터 등 관에도 장씨라면 손사래를 칠 정도라고 했다.

4명의 장애인에 대해서는 가끔 밖으로 나와 장씨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자란 풀을 뽑는 것 외에는 본 적이 없고, 장씨의 집이 워낙 폐쇄적인 공간이라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도, 그곳에 들어가 본 이도 없었다고 했다.

장씨를 더 조사하기 위해 원주시청을 찾았으나 사회복지과 담당자는 4명의 장애인은 장씨의 친자, 즉 가정이기 때문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고, 시가 아니라 경찰이 조사해야 한다고 말하며 만나기조차 거부하는 등 장씨와 얽히는 것을 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 장씨의 호적에 올라 있는 21명의 장애인 중 현재 남아 있는 4명

장씨의 곁에 내 아이는 없었다

1차 원주 방문 후 인권센터와 본지 취재진은 장씨와 생활하고 있는 4명의 장애인에 대한 안전을 우려해 우선 분리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사라진 장애인 15명의 소재 파악과 장씨의 드러난 혐의에 대한 고발할 것을 논의했다.

이후 지난 6월 8일 SBS Y팀은 장씨를 둘러싼 갖가지 의문에 대해 방송했고, 방송이 나간 뒤 SBS Y팀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32년 전, 천사 목사라고 알려졌던 장씨에게 13살의 장애인 아들을 맡겼다는 어머니였다. 당시 어머니와 아들의 삶은 수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매우 가난했다. 아들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 받고 구타를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장애인을 거두어 친자식처럼 보살핀다는 장씨를 찾아가 아들을 맡겼다. 그게 아들의 행복을 위하는 길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수 년이 지난 후 그리운 마음에 아들을 찾았지만, 아들과 장씨는 이미 종적을 감춰버린 지 오래였다. 사진 한 장으로 그리운 아들을 찾아 헤맨 지 32년, 방송으로 다시 장씨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보여준 사진의 아들 얼굴과 병원에 방치된 시신의 살아있을 적 얼굴이 닮아 있었다. 서둘러 Y팀은 어머니와 시신의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고, 결과는 일치했다. 32년간 찾아 헤맨 아들이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 장씨에게 아이를 맡겼다던 부모들의 제보는 계속됐다. 모두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장씨를 믿고 아이들을 맡겼었다. 그러나 현재 장씨 곁에 아이들은 없었다.

 

천사의 탈을 써 온 장씨

그간 내막을 추적해 보면 장씨는 1964년부터 갈 곳 없는 장애인을 돌보기 시작했고, 유력 언론에 미담으로 소개되면서 ‘천사 목사’로 전국에 알려졌다. 그 후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 각지에서 장씨에게 후원금과 물품들이 전달됐다. 정확한 액수는 추정할 수 없으나 꽤 큰 금액일 것으로 예상된다. 장씨의 선행 아닌 선행이 세상이 알려지자 생활형편이 어려워 장애인을 돌볼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하나둘 장씨에게 자식을 맡겼다.

장씨는 이 장애인들을 친권자의 동의 없이 1978년부터 친자로 올리기 시작했으며 1986년 총 21명의 장애인 자식을 둔 아버지로 둔갑했다. 장씨는 장애인의 친권자가 아님에도 장애인들에게 지급되는 수급비, 수당 등을 오랫동안 횡령했으며, 겉으로 선행을 베풀고 있는 목사처럼 꾸며 장애인을 후원금 모금에 이용했다.

그런데 장씨는 장애인들에 대한 관리 소홀로 두 명의 장애인을 영양실조 상태까지 몰아넣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사망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식을 시신으로 병원 냉동고에 버려뒀다.

특히 같이 사는 4명과 시신 2구 외의 15명의 장애인은 생사조차 불분명하다. 또 장씨에게 자녀를 맡긴 친권자가 다시 찾아와 돌려달라고 요구해도 장씨는 법적 효력이 없는 각서를 들먹이며 거부했고, 만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씨는 현재 데리고 있는 장애인 4명에 대해서도 노동 착취, 감금, 학대를 저지르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가족은 오열했고 장씨는 이를 덤덤히 지켜봤다

시와 경찰의 미온적 태도

지난 6월 20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인 단체와 SBS Y팀, 장씨에게 자식을 맡겼던 가족들은 다시 장씨의 집을 방문했다. 장씨의 집 대문은 여전히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이에 연구소 등은 장씨의 수급비 횡령, 장애인 감금·학대 등을 이유로 즉각 현장 조사 실시를 원주시청에 요구했다.

그러나 현장에 나타난 시청 관계자 4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다. 이들은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장씨의 대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거나 그늘에서 잡담을 나누는 등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가정이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지금 대책을 논의 중이다”라는 변명만 할 뿐 장씨 문제와 장애인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출동한 경찰 역시 “시설이 아닌 가정”이라는 이유로, “지금 현장에서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지금은 그래도 살아 있지 않으냐”라는 어이없는 변명만 늘어놓으며 적극적 개입을 꺼렸다.

연구소 등 단체 관계자와 가족들의 계속된 항의에 시청 공무원과 경찰은 마지못해 대문을 넘어 장씨 집으로 접근을 시도했지만, 장씨와는 만나지도 못한 채 장씨의 부인과 언쟁만 벌이다 물러났다.

이에 연구소 등 관계단체와 가족들은 지자체와 경찰의 미온적 태도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 다음날인 21일 장씨와의 면담을 직접 시도했다. 결국, 장씨와 장씨에게 자식을 맡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면했으나, 다시 장씨는 관계없는 말들만 반복적으로 늘어놓거나 부인과 함께 물건을 집어던지고 가족의 멱살을 잡는 등의 폭력을 행사하며 대화를 피했다.

이때 인권센터와 장애인인권 상담 전문가들이 4명의 장애인의 상태를 파악하고 즉각 분리 조치하려 했으나 장씨 부부의 난동에 겁을 먹은 나머지 장애인들은 집에서 나가길 거부했다.

결국, 경찰 출동 전까지 상황을 마무리 짓지 못했고, 대부분 장씨 집에서 철수했다. 이후 계속 장씨와의 대화를 시도했으나 장씨는 몇 차례에 걸쳐 요구를 바꿔가며 대응했고, 연구소 등 단체는 이에 응하며 장애인 4명의 분리조치를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도 경찰의 태도는 장씨의 신변 안전만을 확보하는 듯한 인상을 보였으며 위험에 빠진 4명의 장애인과 가족들의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지금까지 장씨가 저질러 온 부정수급, 무단입양, 시체유기, 장애인 감금 및 학대 등이 몇십 년 동안 자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관리감독의 의무가 있는 지자체와 경찰이 업무를 소홀히 한 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시 공무원과 경찰은 장씨가 그동안 받아 온 혐의와 가정 내 학대 사실을 알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긴 시간 동안 장씨를 설득한 끝에 4명의 장애인과 함께 장씨를 가정폭력 조사 관계로 원주경찰서에 대동할 수 있었다. 경찰 조사 중 원주시청은 거듭된 장애인 단체들의 압력과 요청에 의해 4명과 장씨를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 행정명령을 내렸으며 이에 4명을 장씨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분리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동안 시 공무원과 경찰이 보인 태도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원주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한국장애인부모회원주시지부 등 14개 원주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6월 29일 원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이번 장씨 사건에 대한 정부와 원주시의 적극 개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단체연합은 성명을 통해 “심각한 장애인 인권 침해 상황에서도 원주시는 장애인들이 A씨의 친자로 등록되어 있어 가정문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시가 개입할 수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시의 책임회피를 규탄했다.

이어 "현재 검찰과 경찰은 더욱 철저한 수사 및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와 원주시도 이 사안에 적극 개입해 4명의 장애인들이 가족관계라는 이유로 A씨에게 다시 인계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속히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지난 6월 20일 장씨를 주민등록법 위반, 허위신고, 영리목적 약취유인죄, 학대, 감금, 사기, 횡령, 국민기초생활법 위반, 유기치사, 시체유기 등으로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에 고발했다. 연구소는 앞으로 장씨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장씨와 21명 장애인의 친자관계 무효소송, 방치된 시신의 장례 문제, 분리된 장애인 4명의 안전과 생활에 대해 지속해서 노력해 나갈 방침이다.
 

작성자이승현 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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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독불장군님의 댓글

독불장군 작성일

사회적 약자 편을 들어주지 않고 강자에 굴복하니까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장애인을 막무가내로 취급한 악덕 인물은 처벌받아도 싸다!

행인님의 댓글

행인 작성일

저게 사람에게 할 짓인가요..

정지민님의 댓글

정지민 작성일

지자식이였음 몸에 문신시키고 했겠냐
방송보는 내내 너무 화가났다
저런놈들은 어떻게 처벌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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