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철문 속 외침 “아빠, 나가고 싶어요”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굳게 닫힌 철문 속 외침 “아빠, 나가고 싶어요”

방치된 채 집안에 갇혀 지내는 지적장애인 수현씨 이야기

본문

   
▲ 수현씨의 외출을 막기 위해 안에서 문을 열 수 없도록 문고리를 떼어놓았다

지난 5월, 수원시 한 주민센터로 해당 동 내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최수현(가명·30) 씨가 친부에 의해 감금·방치되고 성폭행을 당한 의혹이 든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이에 주민센터 측은 가정방문하여 제보내용을 확인한 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로 사례개입을 요청해왔다. 왜 수현씨가 집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지 그 내막을 알아봤다.

 

수현씨 집을 가정방문한 주민센터 관계자 말에 의하면, 수현씨는 등록된 장애인은 아니지만 몇 번 보고 대화를 나눈 결과 지적장애인으로 판단됐고, 친부와 주택가의 지하 방에서 단 둘이 지내고 있으며, 아버지가 일을 나갈 때 하루 종일 수현씨를 감금해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현씨의 집은 전화, 가스 등이 끊긴지 오래됐고 월세도 3년 동안 한번 냈을 정도로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특히, 집안에 갇혀 있는 수현씨에게 위험한 상황도 있었는데, 지난 해 11월 봄에 화재가 발생해 혼자 있던 수현씨가 목숨을 잃을 뻔 했다는 것. 다행히 수현씨는 구사일생으로 주변 주민의 도움을 받아 구출됐으며, 주민센터는 화재발생 이후 수현씨 집에 긴급구호품, 긴급생계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6월 13일. 주민센터의 요청으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내 인권활동가와 본지 취재진이 수현씨의 집을  방문했다. 수현씨는 밖에서 노크를 하자 문을 열어주려고 했지만, 현관문 안쪽 문고리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열 수가 없었고, 창문 너머로 상담을 진행해야 했다. 수현씨는 몸이 매우 비대했고 입고 있는 옷이 매우 지저분했으며, 외관상으로 봤을 때 며칠을 씻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얼핏 보인 집안 내부도 곰팡이가 벽면 구석구석에 피어 있고 바닥에는 먼지가 수북할 정도로 위생상태도 좋지 않았다.

수현씨와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눠본 결과 지적장애인이 분명해 보였다. 이전에도 주민센터가 방문했을 때 지적장애인으로 판단했고, 수현씨 아버지에게 장애인등록을 권유했지만, 아버지는 계속 거부해왔다고 한다. 장애인등록을 거부한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수현씨가 장애인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두 번째는 그 어떤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1차 방문 이후, 연구소 내 인권센터는 수현씨 사건을 중심으로 사례회의를 열었고, 재차 방문했을 때 감금 및 방치, 폭행 정황이 드러날 경우 곧바로 분리 조치를 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성폭력상담전문가 상담진행을 통해 성폭력피해 사실 여부에 따라 수현씨를 경기 원 스탑 지원센터로 연계하여 일시보호와 치료, 장애등급 판정 등 종합적인 지원에 나서기로 했으며, 그렇게 세대 분리 후 별도의 가구구성 및 기초생활보장 등 상담을 진행키로 했다.

   
▲ 수현씨와 아버지가 함께 지내는 단칸방. 벽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었고, 잠자는 공간도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경원사회복지회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 피해 상담 전문가 유순옥 부장을 비롯한 인권활동가들은 함께 지난 6월 22일 수현씨의 집을 다시 방문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인지, 수현씨의 아버지는 집에 있었고 관계자들의 상담요청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주민센터 직원이 문을 열어 달라고 하자 수현씨의 아버지는 “내 딸은 장애인도 아니고, 도움도 필요없다”며 엄포를 놓고 문을 굳게 닫았다. 임의 동행한 경찰이 재차 요청하자 그제야 문을 열어줬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수현씨와 아버지가 분리된 상태로 상담자리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 수현씨 집은 오래 전 가스공급이 끊겨 부탄가스 버너를 사용하고 있다.
수현씨의 아버지는 인권활동가와 주민센터 직원이 상담을 진행했고, 수현씨는 여성 인권활동가 및 성폭행전문 상담가와 상담했다. 상담하기 직전에 고함이 오고 가고 실랑이를 벌여서인지 수현씨는 다소 불안해했지만, 곧 안정을 찾고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다. 대화 가운데 수현씨는 인지능력은 매우 부족해보였으나, 한글도 읽고 영어단어도 알고 있을 정도로 기억력은 높았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정규교육을 받았고 공부도 곧잘 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현씨는 후천적 사고로 인해 지적장애를 갖게 됐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던 수현씨는 복지관에서 지내다가 사고로 복지관 건물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고 뇌수술을 받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수현씨의 아버지는 상담 중에도 연거푸 지자체나 외부 기관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성폭력 및 폭행에 관련해 질문을 하자, 수현씨는 성폭력이나 폭행 부분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상담시간이 짧았고, 아버지가 밖에 있는데다가 약간은 긴장된 상태에서 상담을 진행했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성폭행이나 폭행 등의 증언이나 증거는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현 씨는 아버지를 무서워했고, 눈치를 많이 살폈다. 그리고 감금돼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밖에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다.

아버지와 수현씨를 각각 개별 상담을 하고 난 뒤, 함께 동석시켜 상담을 이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수현씨의 친모는 수현씨가 태어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가출했고, 현재 연락 두절된 상태로 아버지와는 사실상 이혼관계라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번 사건을 알아보던 중 수현씨의 친모의 거주지를 알게 됐고, 알아보니 친모도 얼마 전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는 것이다. 또 더욱 놀라운 것은 친모가 수십억 원이 넘는 재산을 소유한 재력가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전에도 수현씨 아버지가 기초생활보장 신청을 했지만 부양의무자기준 초과 등으로 책정에서 제외되기도 했다고 한다.

감금사실에 대해 묻자, 수현씨의 아버지는 ‘감금이 아닌 보호’라면서 자신이 일일근로자이기 때문에 새벽에 일을 나가고 밤늦게 12시 경에 들어오는데, 그 사이 수현씨가 혼자 밖에 나가서 길을 잃어버릴까봐 문을 잠그고 나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번은 수현씨가 밖에 나가서 길을 헤맨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동네 주민의 신고로 귀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 있었던 활동가들은 수현씨를 혼자 가둬만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입을 모아 아버지를 설득했다. 현재 수현씨 집은 가스공급이 중단된 상태로, 집안에 혼자 있는 수현씨가 부탄가스를 사용하다가 화재가 날 위험이 있고, 사고가 나서 다치거나 아파서 쓰러질 수도 있는 상황도 올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속적으로 살펴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 또 아버지의 자존심과 폐쇄적 성향때문에 자유이동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장애등급, 기초수급도 받지 못해서 수현씨가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혼자 지내야 하고,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권리, 혜택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권침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현씨의 아버지는 상담 중에도 계속해서 수현씨의 장애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고, 외부 도움도 받지 않겠다는 등 폐쇄적이고 고집스런 태도를 보였다. 또 생활고에 대한 염려도 많았다. 장애인등록을 하더라도 등록 절차에서 소요되는 비용이 꽤 많기 때문에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수현씨 아버지에게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담전문가의 설득과 긴 대화 끝에 일주일 안에 주민센터로 찾아가 기초수급과 장애인등록을 하는 것에 대해 상담받기로 약속했다.

   
▲ 수현씨는 상담사와 손을 잡거나 손을 마주치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하지만 앞으로 수현씨와 아버지의 환경이 바뀌는 데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지적장애의 경우 장애인등급을 받기 위해선 수차례 상담 및 진료를 받아야 하는 등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 재산이 많은 친모가 사실이혼 관계라도 서류상에 부양의무자로 되어 있어 기초수급 신청이 거부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폐쇄적이고 고집스런 수현씨의 아버지가 언제 마음이 변할지 모르는 일이고, 일주일의 시간을 줬지만 그새 마음 문을 닫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담 내내 수현씨는 아버지의 우려와는 달리, 유독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고 여건만 주어지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상담 말미에 수현씨는 상담 선생님을 따라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밖에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소리 내어 웃었다.
 

자신의 집에 찾아 온 손님들을 배웅하겠다고 나온 수현씨는 오랜만에 바깥에 나와 좋았는지, 더운 날씨에도 한참을 대문 밖에서 서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버지의 세상을 향해 닫힌 마음 때문에 더는 수현씨가 철문 속에서 외롭게 지내지 않게 되기를 바랄뿐이었다.

   
▲ 상담 후 활동가들과 전문상담가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고 있는 수현씨.
작성자이애리 기자  bonbon727@paran.com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