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간 지적장애인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준 ‘비둘기재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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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은 ‘학습이 어렵다’, ‘사회생활이 어렵다’, ‘자립생활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생각이다. 그런데 그것은 일부 편견이기도 하다. 지적장애인도 장애정도와 환경에 따라 자립이 가능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지적장애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기관 및 단체들이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올해로 개원 31주년을 맞이한 ‘비둘기재활센터’다.
본지 기자가 센터를 탐방하기 위해 방문했을 당시, 센터 문턱에서부터 바로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시설로는 드물게 도시 중심가, 그것도 서울에서 문화중심지인 동숭동 고급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해있었고, 여러 명이 뛰어놀 수 있을 만한 큰 정원이 있는 별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씩 지적장애인들이 소리를 지르고 하면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고 여전히 센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동네 주민들이 이웃으로서 센터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챙겨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일궈낸 ‘평화의 집’
‘비둘기’라는 명칭은 많은 장애인들이 ’평화를 이루는 집’이 되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고, 비둘기재활센터의 모토는 ‘당신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라고 한다. 비둘기재활센터에서 20년간 근속한 최금난 원장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1대 후원회장 안현정 씨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기도했고, ‘가진 것을 약한 이들과 나누는 것’이야말로 신앙인 생활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기도의 단초였다”며, “그래서 세워진 곳이 바로 지금의 비둘기재활센터다”라고 설명했다.
세계 장애인의 해로 재정된 1981년. 설립 초기 후원회로 활동했던 5대 후원회 천혜영 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구)남광토건의 회장 부부가 건넨 후원금 6백만 원과 후원회에서 마련한 2백만 원을 합한 전세금을 기반으로 안현정 씨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힘을 합해 ‘비둘기교실(구 센터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서울시 성북구 삼선교에 7평 규모의 사무실을 얻은 것이 센터 설립의 시초가 됐다고 한다.
▲ 센터 장애인들이 만든 점토 모형들이 센터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세워져있다. |
1980년대 당시에는 특수학교, 장애인주·단기보호시설이나 그룹홈 등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들이 많지 않았고, 도시 변두리나 시골 등에 위치한 대형 수용시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천 회장은 “그때 센터는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고 도시 안에 자리잡은 소규모 시설로 장애인, 장애인가족, 후원자, 봉사자가 가족처럼 드나들 수 있는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지금의 우리 센터는 가톨릭복지회 소속이지만, 기관의 힘으로 일궈냈다기보다 많은 후원자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세워졌다”며, “지금은 국가지원도 있지만 설립 초반에는 장애인 복지지원이 전무했는데, 장애인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몇몇 후원자들이 장애인 당사자도 아니고, 장애아를 가진 부모도 아닌데도 시간을 들이고 사비를 털어 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센터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비둘기 교실이었을 당시는 한 달 간의 운영 계획을 세우면 후원회가 달마다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비둘기교실의 현안에 대한 후원회의 직·간접적 책임 영역이 컸다고 한다. 최 원장은 “첫 공간이었던 삼선교의 교육장이 너무 비좁고 주변 환경이 열악해 비둘기교실은 입주 후 1년 뒤, 후원회가 마련한 돈으로 돈암동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1983년에 이르러서는 기존에 비해 교육생들의 수가 월등히 많아져 또다시 시설 확장이 불가피해 목돈의 전세금을 마련해 묵정동 새집으로 이전했고, 이후에도 후원회는 바자회, 무용발표회 등 끊임없는 모금활동으로 비둘기교실의 공간을 점차 키워나갔으며, 1991년 11월에는 지금의 대학로 동숭동에 위치한 전 정주영 회장의 별장이었던 280평의 넒은 멋진 저택을 구입해줬다”며 센터가 지금의 규모까지 확장된 배경을 설명했다.
천 회장은 “처음에는 초대회장이었던 안현정 씨가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도와주기 위해 몇 번 왔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30년을 후원회에서 봉사하게 됐다”며, “일도 살림도 다 내팽개치고 길거리에서 옷과 물건을 팔아서 한 푼도 빠짐없이 센터가 자리 잡는데 보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열정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설립 초반부터 30년간 센터를 운영하고 확장하기 위해 애썼던 세월을 회상했다.
▲ 대문을 열고 한 층 위로 올라가면, 넓은 정원에 이층 구조로 된 지적장애인들의 작업장 및 주간 보호시설이 보인다. |
당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지만 후원에 대한 인식 역시 미흡했다고 한다. 하지만 후원회는 소외된 채 살아온 장애인들이 불편한 신체 조건을 감수하며 재활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에 비해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에 큰 저택을 마련한 것이라고 이 회장은 덧붙여 설명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별장 같이 으리으리한 집을 보고 “우리 집보다 잘 사는데 무슨 후원이 더 필요하냐”며 반감을 드러내고 있고, 그래서 예전보다 후원도 줄어든 상태라고 한다.
이에 대해 천 회장은 “후원 받을 정도의 사람들의 환경은 무조건 열악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큰 저택이니까 장애인들을 더 받으라고 하지만, 이곳은 수용시설이 아닌 재활하고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소규모가 적당하다”고 밝혔다.
이 회장도 “공간이 넉넉하다고 해서 많은 장애인을 받는 것보다 지금처럼 소규모 공동체로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또, 넓은 부지에 높은 건물을 세워서 다양한 용도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적장애인도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비둘기재활센터는 지적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를 더욱 확대하기 시작했다. 2001년 2월,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장애인들의 지역 사회 내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비둘기 부모회가 주축이 되어, 강북구 수유 3동의 한 빌라건물을 매입해 여성 지적장애인을 위한 그룹홈 ‘다사랑이네집’을 개원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센터 내에는 장애 정도에 따른 전문적 재활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2002년 3월에 경증 지적장애인 직업재활을 위한 ‘비둘기작업활동시설’과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중증 지적장애인을 위한 ‘비둘기 주간보호시설’을 설치, 신고하여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비둘기교실은 ‘비둘기재활센터’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장애인 각각의 처지에 맞는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최 원장의 설명이었다. 즉, 센터는 지적장애인들에 있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훈련 및 신변자립훈련, 공원·박물관·극장 등 지역사회 기관을 이용해 보는 등의 사회적응훈련, 직업재활의 기회를 제공해 일정 수입이 주어지도록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 사회복지사와 지적장애인이 함께 낮시간에 스티커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
최 원장은 “활동보조인이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한도 내에서 장애인들끼리 대중교통도 이용하게 하고, 남자 그룹홈에 사는 장애인들은 센터로 오는 거리가 짧기 때문에 보조인 없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물론 자립훈련을 시키는데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쉽지 않지만, 이분들도 언제까지나 부모 밑에서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제대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비둘기재활센터의 비전은 ‘인간중심의 직무개발로 지적장애인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여 경제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이라고 한다. 최 원장은 “센터는 앞으로도 장애인들의 자립생활 지원을 위해 그룹홈을 더 늘릴 예정이고, 장애인들의 소득 향상을 위해 대학로라는 입지조건을 살려 소그룹 모임이 가능한 까페를 운영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스낵으로 오곡과자(뻥과자) 생산판매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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