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케어,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로 이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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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보건복지부 |
지난달 3일 경기도 화성시가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 선도 사업 출범식을 개최했다. 커뮤니티케어란, 돌봄(케어)이 필요한 장애인·노인 등이 시설·병원 등에 가지 않고 자기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정책이다. 화성시와 같은 날 출범식을 한 전북 전주시를 포함해, 선도 사업에 선정된 8개 지역 모두 지난 6월 중 출범식을 열며 선도 사업을 시작했다.
커뮤니티케어 선도 사업은 3개 부문으로 나뉘어 2021년 5월까지 2년간 진행된다. 화성시는 정신질환자, 대구 남구와 제주 제주시는 장애인, 그밖에 5개 지자체가 노인 부문에 선정됐다. 노숙인 부문도 있었으나 지원한 지자체가 없어 대신 노인 부문 지역이 하나 늘었다. 선도 사업의 목적은 서비스 대상자의 복합적 욕구와 문제를 파악하고, 지역별 실정에 맞는 서비스를 발굴·검증·보완해 다양한 커뮤니티케어 모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 정부 지침에 따라 동일하게 진행하는 기존 사업과 달리, 각 지자체가 지역과 대상의 특성에 맞게 직접 사업 내용과 방식을 기획·실행한다. 예산 또한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포괄사업비’로 지원된다. 여덟 지역 중 정신질환자 선도 사업을 시작한 화성시의 계획을 살펴본다.
새로운 주거 서비스, ‘자립체험주택’과 ‘케어안심주택’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치료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이 퇴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중복 응답)는 ‘살 곳이 없기 때문 (24.1%)’이다. 이번 선도 사업으로 화성시에는 ‘자립체험주택’과 ‘케어안심주택’이라는 두 가지 주거 서비스가 추가된다. ‘자립체험주택’은 퇴원 후 곧장 지역에 정착하기 어려운 사람이 3~6개월간 머무르며 복귀를 준비하는 곳이다. 기존 지역사회전환시설(중간 집)과 기능은 같지만 공간에서 차이가 있다. 정원이 20여 명인 중간집과 달리, 자립체험 주택은 당사자 두 명이 각자 방을 쓰며 거실을 공유하는 형태로, 여성용과 남성용 하나씩 운영될 예정이다.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전준희 센터장은 “진주 방화 사건 이후 주민들이 정신장애인 주거 시설을 만드는 데 민감해 기회를 보고 있다. 9월 정도에는 시작할 수 있을 거 같다”라며 “모형이 확정된 건 아니다. 복지부는 지역에 사는 정신장애 인이 불안정할 때, 입원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위기 쉼터’ 역할도 자립체험주택에서 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케어안심주택’은 당사자가 2년간 홀로 생활할 수 있는 집이다. 담당 직원이 자립체험주택처럼 상주하지 않아 거의 독립적으로 지낼 수 있다. 지난해 이미 주택 하나가 마련돼 한명이 살고 있고, 올 하반기에 두 곳이 추가된다. 선도 사업을 마칠 때까지 총 10개 주택을 마련하는 게 시의 목표다. 전준희 센터장은 “현재 케어안심주택에 살고 있는 당사자는 과거 가족과 갈등이 심했다. 그럴 때마다 가족의 대안은 입원이었다”라며 “오래 묵은 가족 스트레스는 집요하게 당사자를 아프게 한다. 이런 경우 혼자 살면 갈등과 스트레스가 줄어 증상이 악화될 일도 적어진다. 잠시 입원하더라도 퇴원 후 돌아갈 수 있다. 2년간은 자신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자료 출처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치료 실태조사 |
퇴원적정성 조사로 사회적 입원자 찾는다
화성시에서 추정한 6개월 이상 장기 입원 중인 정신질환자는 768명이다.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앞으로 일 년에 두 차례씩 병원들을 찾아가서, 당사자와 만나 장기 입원 원인을 파악하고 퇴원적정성을 조사한다. 조사에는 거동이 가능한지, 혼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와 같은 일상생활동작(ASL)이 척도로 활용된다. 사회적 원인 등으로 장기 입원 중인, 지역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려는 의도지만,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하,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조사 자체를 문제삼았다. “오래 입원하면 ‘생각’도 잘 못하게 된다. 원하지 않았는데 장기간 수용돼 일상생활 기능을 잃은 건 당사자 잘못이 아니다. 척도로 평가해 가려낼 게 아니라, 원하는 사람은 모두 나올 수 있게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퇴원적정성 조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라도 센터에게는 의사나 가족의 동의 없이 당사자를 퇴원시킬 권한이 없다. 병원 입장에서 장기 입원자는 매달 안정적 수입을 제공해 준다. 당연히 퇴원에 호의적이기 어렵다. 전준희 센터장은 “건강 보험으로 입원한 환자는 퇴원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지만, 의료 급여 정신질환자는 시가 병원비를 낸다. 자립체험주택 등에서 우리가 책임지고 보호하겠다고 하면 환자를 방치하는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다시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으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전준희 센터장 |
시설도 괜찮다? 턱없이 부족한 주거 서비스
화성시는 커뮤니티케어 선도 사업으로 퇴원할 수 있는 사람이 400명 이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립체험주택에 있을 수 있는 정원은 남녀 각 2명씩이다. 3개월마다 바뀐다고 해도 일 년에 12명이다. 케어안심주택을 당장 10곳 확보해도 추가되는 인원은 10명이다. 그밖에 기존에 이용할 수 있는 사랑밭(입소시설), 우리마을(지역사회전환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이 있지만 실제 병원에서 많은 인원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비단 화성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6 국가정신건강현황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증 정신질환자 거주 서비스는 총 174개소, 정원 2,466명인데 반해,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16,592명으로 최대 14.9%만 주거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게 입소시설은 벗어나야 할 곳이지만, 정신장애인에게 입소시설은 아직 서비스 영역으로 남아있다.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시설보다 자립이 낫지만 병원보다는 시설이 낫다. 병원은 감옥과 다를 바 없다. 그곳에 사는 건 ‘삶’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준희 센터장 또한 “정신질환 쪽은 병원이 너무 거대해 시설만 가도 탈원화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여럿이 방을 써야 하고 시설도 낡아져서 당사자 욕구가 채워지진 않는다. 트렌트를 반영해 변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의료 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당사자와 함께
“한국에서 정신건강전문요원 1명이 맡는 당사자는 70명이다. 외국은 그 비율이 대략 1대 10이다. 우리 시는 1대 30까지 낮추려고 한다. 전보다 훨씬 자주 찾아가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전준희 센터장이 말했다.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기존 직원 수는 30명이다. 선도 사업으로 15명이 충원되며 늘어난 직원은 모두 정신질환자 사업을 담당한다.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신석철 소장과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서비스 제공자의 의료 중심적 태도를 경계했다. 신석철 소장은 “인력 보충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전에 다수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병원에서 위탁 운영하는 구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의료 중심적 운영 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인력이 많아도 소용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정하 대표도 “커뮤니티케어라는 모델 자체는 너무 괜찮다. 제대로 이뤄지려면 충분한 지원과 전문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전문 인력 중에는 의료 중심적으로 교육 받은 사람이 많다. 의료 중심적 생각으로는 아무리 좋은 시스템 안에서도 결국 약물 관리 이야기만 나올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또 두 사람은 커뮤니티케어에 당사자 단체를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소장은 “한 사람당 사례 관리하는 수가 많다면 당사자들이 동료지원가로서 부담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센터들은 ‘네가 당사자면서 무슨 서비스를 제공해?’라는 의구심과 경계심을 갖고 우리를 대한다”라고 불만을 표했고, 이 대표도 “커뮤니티케어 준비 과정에서 복지부에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철저히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길을 잘못 든 건 아니다. 정신장애 당사자 단체도 커뮤니티케어가 추구하는 목적에 동의한다. 2년은 큰 변화를 이뤄내기에 짧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긴 시간이다. 화성시가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로 이끌 수 있을까? 응원과 경계가 동시에 필요하다.
화성시 커뮤니티케어 선도 사업 운영 모델 ⊙자료 출처 화성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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