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장애인 학대 사건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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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장명훈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간사 |
2014년 신안 염전에서 벌어진 장애인 학대 사건이 밝혀진 이후, ‘현대판 노예’ 사건은 지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접수돼 장애인을 경제적 착취로 학대했다고 판정한 사례는 2018년 상반기에만 218건이다. 그중 27건은 노동력 착취로 분류됐다.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된 뒤 학대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체계가 세워졌고, 장애인 학대 사건을 처벌하는 규정도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장애인 학대 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 범죄 예방 효과가 적다는 점이 원인 하나로 꼽힌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달 22일 열린 ‘장애인 학대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방안 토론회’에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동 착취가 아니라 임금 체불?
지난달, 서울의 한 사찰에서 지적장애인이 30년 이상 노동력을 착취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찰에서 탈출한 피해자는 가해자를 고발하고 ‘노동 착취’ 사실을 경찰과 검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수사 기관은 가해자 주지 스님을 ‘단순 폭행죄’로 약식 기소했다.
2017년 6월에서 2018년 5월 사이 법원 선고가 확정된 4개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을 보면 거의 같은 유형의 범죄임에도, 적용된 법률이 △최저임금법 △장애인복지법 △근로기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으로 각기 다르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최정규 소장은 “기본적인 수사 매뉴얼이 있다면 절대 적용 법률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며 “노동력 착취 사건을 장애인 학대가 아닌 단순 임금 체불 사건으로 보고 접근하는 일이 굉장히 많다. 인권 침해 사건, 인신매매 사건이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학대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2015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며 장애인 학대 사건에 대해 형사 처벌이 가능해졌다. “장애인의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행위,” “장애인을 폭행·협박·감금, 그 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장애인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한 가해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입증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 조사는 문답식으로 진행된다. 피해자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 많고, 답변은 맥락이 구분되지 않고 조서에 남는다. 많은 경우 조서는 왜곡돼서 해석된다.”
장애인 피해자의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진술조력인제도가 있지만 아동 학대나 성폭력 피해자로 한정하고 있고, 장애인복지법에 ‘학대받은 장애인의 법정대리인, 직계친족 등은 사건 심리에 있어서 보조인이 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김 변호사에 따르면 법원도 보조인의 역할을 잘 모를 만큼 사문화된 조문이다.
또 김예원 변호사는 수사 기관이 장애인복지법을 잘 적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아동복지법도 그것만 있을 때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생기고, 미처 특례법에 들어가지 못한 구성 요건을 아동복지법이 메우는 형태로 그제야 작동했다”라며 장애인 학대 범죄에도 특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애인학대범죄처벌특례법 제정, 찬성과 반대
‘장애인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은 제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학대 행위자에 대한 가중 처벌, 장애인 관련 업무 종사자에게 학대 범죄 신고 의무 부과, 피해자에 대한 합의 강요 시 형사 처벌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현장에선 특례법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라고 하면서도 “제20대 국회 회기가 9개월 남았다. 발의도 안 된 특례법보다는 발의된 장애인 복지법 개정안들이 우선 처리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박광민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례법만 만들면 다 해결될 거라는 사고방식을 우려하며, 성폭력특례법 제정으로 처벌이 강화됐지만 성폭력 범죄가 줄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박 교수는 “특례법에 의존하면 형법의 기본 체계를 해치게 되고, 법 특성상 지나친 중형주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라며 “이미 200여 개의 특별법이 형법의 기능을 축소·사문화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용석 정책실장은 “폭력을 동반해 장기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게 장애인 학대 사건의 특징이지만 가해자는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라며 “지나친 중형주의를 우려하기에 현재 장애인 학대 사건 양형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다”라고 반론을 폈다. 김예원 변호사도 “특별법으로 인해 일반법이 사문화됐다고 보지 않는다. 특별법은 일반법을 타고 넘어간다. 또 두 법이 같이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반박하며 “스스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 기준으로 장애인 인권 침해 사건을 바라보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특별법 제정은 범죄 예방을 위한 것도 있지만, 현재 기득권 중심의 장애인 학대 피해 구제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해자는 또 면죄부를 받았다
토론회에서 최정규 소장은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률도 중요하지만 수사 기관의 기본적 인식,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렵게 찾아가서 진술했음에도 수사 단계에서 묻히고 가해자는 면죄부를 받는 일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라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검찰이 일명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의 가해자를 불기소 처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검찰은 지적장애인 피해자의 친형인 가해자가 동생의 노후를 대비해 그의 급여와 장애 수당 등을 보관하고 있었고, 지속해서 동생을 보살펴 왔다고 판단했다. 60세가 넘은 피해자는 구출되기 전까지 쓰레기가 가득한 컨테이너에 살았다. 옷이 없어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었고, 관중이 남긴 음식을 먹을 만큼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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