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의 잃어버린 15년,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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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A(44)씨는 맑은 미소를 지닌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데다 수줍음이 많아 그에겐 친구가 없었다. 그래도 직장을 다니며 나름의 삶을 착실히 꾸려나갈 희망도 있었고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꿈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보육원에서 알고 지내던 네 살 터울의 누나가 접근했다. 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보육원에서 지냈던 사람이라 A씨는 누나가 반가웠다. 그러나 누나의 마음은 A씨와 전혀 달랐다.
누나는 A씨를 돌봐주겠다는 등의 이유로 1997년부터 약 15년 동안 A씨의 임금을 빼앗았다. 그것도 모자라 A씨의 퇴직금과 전세금마저 모조리 가져가 돌려주지 않았다. 현재 A씨는 빈털터리다. 10년 동안 서로 아껴주며 살던 아내와도 누나 때문에 이혼 위기까지 내몰렸다. 결국, A씨는 다시 혼자가 됐다.
▲ 경북 구미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적장애우 A씨 |
벼랑 끝에 몰린 A씨
경북 구미에서 한 지적장애우가 같은 보육원에서 지냈던 누나라는 사람에게 15년 동안 임금을 착복 당하고 퇴직금과 전세금마저 빼앗겼다는 제보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로 접수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본지 취재진과 인권팀은 사실 확인을 위해 구미시로 향했다.
먼저 피해자인 지적장애인 A씨를 만나기 위해 그의 일터를 찾았다. A씨를 만나기에 앞서 직장 관계자로부터 그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A씨의 상황을 설명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10여 년 전부터 보육원에서 같이 지냈던 누나라는 사람이 A씨의 임금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A씨의 임금은 입사 초기부터 본인이 원해 현금으로 지급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A씨가 돈 관리가 어려울 것 같아 적금이라도 들어주려고 통장으로 임금 했더니 그 누나가 찾아와 당신들이 이 사람을 돌봐줄 거냐고 따져 물었다. 게다가 A씨 본인까지 원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월급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한번은 A씨의 고등학교 동창 한 분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한 방송국에 제보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도 A씨가 완강히 거부해 무산됐었다. 누나에 관해서는 얘기조차 꺼내기 싫어한다. 거기다 누나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다. A씨는 1997년 입사해서 3번 정도 그만뒀었다. 1년 동안 그만둔 적도 있었고 6개월 정도 그만둔 적도 있었다. 6개월 전에도 퇴사를 했었는데 누나가 다른데서 일하라고 한다고 그만뒀었다. 그때 퇴직금 1천300만 원을 지급했었다. 그것 말고도 퇴직금을 결혼 등을 이유로 중간에 몇 번 정산해 갔었다. 알고 보니 퇴직금을 5만 원권으로 전부 찾아서 누나를 줬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처음에는 A씨를 도와주려 했는데 그의 태도 때문에 도와줄 수가 없었다. 누나와 관련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A씨의 처가에서는 누나가 A씨의 부인을 폭행했었다는 것과 A씨가 처해 있는 상황을 알고 이혼을 준비 중이다.”
이후 A씨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지적장애 2급인 A씨는 위 관계자의 말과는 달리 의사소통이 원활했으며 자기 의사표현도 명확했다. 일단 A씨는 해당 직장 입사 년인 1997년부터 지난 2월까지 누나가 자신의 급여를 빼앗아 온 사실을 수차례 인정했다. 또 누나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누나가 돈을 줄 때까지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에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누나와 연락이 끊긴 상태며 누나는 전화번호까지 바꿨다고 A씨는 설명했다. 그러나 누나에게서 빼앗긴 돈을 되찾겠다는 의지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 다시 찾게 되면 좋지만, 그것을 위해 또 싸워야 할 여정이 너무 힘들지 않겠느냐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동안 누나와의 일, 아내와의 일, 처가와의 일 등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만큼 그 여러 일이 A씨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을 가능성이 크다.
아내와의 이혼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지금 누구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느냐?”는 질문에 아내의 이름을 댄 것, 그리고 몇몇 질문에 답을 하는 것으로 보아 예전처럼 같이 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일로 단정 짓고 이내 잊으려고 노력하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다시 경찰에 출석해 진술하는 것도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그에겐 이미 사건 해결의 기대감도 없었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했다.
열악했던 A씨의 주거환경
A씨가 놓여있는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A씨가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교회를 찾아 A씨를 잘 알고 있는 한 교인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그 교인은 “A씨의 누나가 A씨를 잘 돌봐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A씨의 집을 방문하면서 일의 심각성을 알았다”며 “겨울에도 전기 매트만 켠 채 생활하고 있었으며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집안의 몇 안 되는 가구들도 죄다 어디서 주워온 것처럼 매우 낡았었다”고 덧붙였다.
A씨와 가까운 또 다른 교인은 “A씨에게 누나한테 돈을 주지 말라고 계속 타이르는데도 그때만 대답할 뿐 뒤돌아서면 말을 바꾼다”고 안타까워했다.
교회 측은 그동안 A씨에 대해 지속해서 관심을 보여 왔고, 취재진 방문 후에도 앞으로도 적극 논의해 A씨를 지원할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왜 적극 도와주지 않았나
A씨의 진술과 직장 동료, 교회 신도들 그리고 처가 식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몇 가지 일치되는 사실들을 도출할 수 있다.
일단 A씨와 보육원에서부터 같이 자랐다는 누나라는 사람과는 보육원에서 나온 후 인연이 끊겼다. 그러나 1991년 A씨와 누나는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으며, 그 후 서로 알고 지내다 1997년 A씨가 현재의 회사에 입사한 뒤 누나는 A씨의 임금 대부분을 관리해주겠다, 또는 보살펴주겠다는 핑계로 빼앗았다. 그런 과정이 지난 2월까지 15년간 반복됐다.
그러던 와중에 A씨는 누나의 지시였던지 현재의 회사를 3번에 걸쳐 장기간 그만뒀고, 그동안 A씨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할 때의 급여도 역시 모두 누나가 가져갔다. 결혼하면서 현재의 회사에서 받았던 퇴직금 500만 원과 6개월 전 회사를 그만두면서 받았던 퇴직금 1천300만 원도 행방이 불분명하지만, 누나가 가져갔다고 A씨는 말했다. 문제가 크게 불거진 전세 보증금 1천500만 원도 최초 전세 계약 시, 누나 본인 명의로 했던 터라 결국 누나가 보증금 모두를 가져가 버렸다.
그래서 A씨는 수중에 남은 돈도, 집도 없어 회사에 마련된 좁은 직원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정리는 모두 A씨와 A씨 주변 인물들의 진술에만 근거한 것이지 실질적인 증거는 사실상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15년이란 긴 시간 동안 A씨가 누나에게 임금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회사 측은 알면서도 왜 적극 개입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교회 측도 마찬가지였다. A씨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은 보여 왔지만, 임금 착취 문제에 대해서는 결국 손을 쓰지 못했다. 그들에게 A씨는 결국 남이었던 것일까?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누구 보다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장애인을 그렇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이 같은 문제는 일단 제쳐놓고서라도 A씨의 잃어 버린 15년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A씨의 새로운 삶을 위해
결국 A씨의 돈을 가져간 누나와 그 배우자는 만나거나 연락이 닿지 못했다. 가장 연락을 자주 했던 A씨와도 최근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전세 보증금 문제로 A씨의 처가와 크게 다툰 후 연락처를 바꾸고 잠적한 것으로 짐작된다. A씨도 다시는 누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시는 누나에게 돈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했지만, 그의 성향으로 보아 또 언제 말을 바꿀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본지 취재진과 인권센터는 누나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A씨가 누나에게 돈을 주지 못하도록 회사 동료 등 주위 사람들에게 인지시켰다.
구미지역 장애인복지관에도 개입을 요청해 A씨에 대한 교육과 지원, 직업 알선을 요청해 A씨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찾아주도록 할 계획이다.
피해자 주변인들의 증언만으로도 형사고소가 가능하지만, 누나에 대한 형사고소나 보증금반환청구는 결국 A씨의 의지에 달려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A씨는 모든 것을 잊고 싶어 했다. 따라서 A씨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아내와의 이혼문제는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처가 측에서도 더는 논의를 원치 않았으며 A씨도 결국 단념했다.
“모든 것을 다 잊고 이제 새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A씨와 나눈 대화 끝에 A씨가 던진 한 마디다.
아내마저 떠나고 이제 그는 가족도 없다. 친척도 없다. 친구도 없다. 결국, 그는 다시 혼자 남겨졌다.
15년 동안 빼앗긴 노력의 대가와 사랑했던 아내와의 이혼은 이제 그에게 지나간 먼 과거의 일이 돼 버렸다. A씨의 해맑은 웃음 속에 감춰진 체념의 눈빛은 지나간 긴 세월 지적장애인인 그가 느꼈을 외로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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