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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삶이 그들을 죽였다

성남시 동거 장애인 사망사건의 내막 “사후 10여 일 지나 시신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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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거 장애인 박씨와 김씨가 살았던 태평동 반지하

지난 3월 30일 3시경,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의 한 주택 반지하에서 동거 중이던 장애인 남녀가 숨져 있는 채로 발견됐다. 숨진 박아무개 씨(남·47)와 김아무개 씨(여·42)는 모두 정신장애 3급으로, 이번 사망사건을 다룬 언론보도에서는 부부라고 언급됐으나, 취재 결과 동거인으로 확인됐다.

시신 발견 당일, 이들의 집 앞에 배달된 쌀부대가 며칠째 문밖에 있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집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 숨져 있는 남녀를 발견하게 됐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경찰이 도착해 살펴본 결과,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으며, 정확한 사망일자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후 10여 일이 지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사건을 수사한 성남시 수정경찰서 형사1팀 김원근 경위는 “조사 결과, 사망자에게서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타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사망자 주변에 수면제 등 사망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는 약물이 없었고 부검 결과가 나오지 않아 자살인지, 타살인지 정확한 사인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 경위는 “친인척의 확인 통화가 사망 12일 전이었고, 마지막 문자로 ‘사랑한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남겼으나, 이러한 정황만으로 자살이라는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다. 유서도 없고, 죽음을 계획했다는 증거도 없다”며 타살가능성은 부인하면서도 자살가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 경위에 따르면 현재 박씨와 김씨의 주검은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로, 부검결과는 한 달 후에나 확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망한 남녀는 동거인이었으나, 평상 시 동네주민들에게는 ‘잉꼬부부’로 통했다. 이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지켜보면서 사정을 잘 알게 됐다는 동네의 한 가게 주인 최아무개 씨에 의하면, “둘이 늘 함께 붙어 다녔으며 정신장애가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장애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문제없이 조용히 다녔고, 둘의 사이가 매우 돈독했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은 “여자는 항상 말끔한 차림으로 남자보다는 건강해 보인 반면, 남자는 거동이 불편하고 평소 지병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아파보였다”고 이들 동거장애인들의 생전 모습을 설명한 뒤, “여자는 남자를 만나기 전, 전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면서 정신장애를 얻게 된 후 이혼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리고 가게주인에 따르면, 김씨가 박씨와 같은 정신장애 3급임에도 김씨의 가족들은 장애를 가진 박씨를 못 마땅하게 여겨, 동거하던 집의 살림살이를 다 가져가고 못 만나게 할 정도로 둘 사이를 반대했었다고 한다.

 

 

서로 책임 전가하는 지자체, “그 많은 장애인, 기초수급자 어떻게 다 관리하나”

본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더 자세한 정황을 알아보고,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성남시 태평동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주민센터를 통해 이들 동거 장애인들은 박씨가 받는 기초수급비 43만원과 장애연금 3만원, 총 46만원으로 생활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민센터에 따르면 여자 쪽인 김씨의 경우 장애연금 외에는 정부보조를 받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김씨가 같은 동에 살고 있는 부모의 자녀로 등록되어 있어서 기초수급비 대상자 자격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당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자는 “언론사들이 정확하지 않은 내용으로 이번 사건을 기사화 했다”고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언론 기사내용을 보니 지자체가 왜 방치했냐고 하는데 우리가 상담하고 방문은 했었지만, 형·동생 등 가족들이 주변에 살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태평동만 해도 관리해야 할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들이 1천5백 명일 정도로 많기 때문에 사무행정을 다 접고 돌아다니기만 하더라도 일일이 다 관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 동거 장애인이 살았던 태평동. 성남시 내에서도 아주 높은 고개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남시 수정구청에 문의한 결과, 주민센터는 분기별로 사회복지공무원 1인 기준 평균 50~60가구를 방문, 상담·관리하게 되어 있었다.

수정구청 사회복지과 수급관리담당 최아무개 주무관은 “공무원이 방문 시 장애인의 건강상태, 복지욕구 등을 파악하고, 사회복지관과 연계하여 사회복지 부가서비스, 반찬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도배, 장판, 누수파악 등의 생활환경 개선 및 알콜상담센터 의뢰 등 건강질환의 문제에 있어 도움을 주는 것이 주민센터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 주무관은 “장애인 및 기초수급대상자 관리는 읍·면·동의 사회담당의 역할이지, 구청 담당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대부분 동에 있는 기초수급대상자가 300~400가구다. 한 가구를 방문하고 곧장 다른 가구를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아, 제대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방문자체는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고 답변했다.


취재 결과, 동거 장애인들은 박씨가 지원받은 46만원만으로 둘이서 생활해야 했다. 그리고 몸은 불편하지만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지체장애도 아닌,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운 정신장애인인데도, 지자체의 지속적인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자체 복지체계 및 지원 상황에 대해 주민센터, 구청 모두는 “현실적으로 관리 불가능”이라는 답변으로만 일축했다. 실제 지자체가 여력이 안됐더라도 조금만 신경 써서 정신건강센터 등의 타 기관에 전화 한 통이라도 걸어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지금쯤 박씨와 김씨 모두 살아서 조금이나마 편안해진 삶을 누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이들 동거 장애인들은 지역 내 정신장애인에 대한 관리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사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상 방치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이영문 박사는 “지자체가 인원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만약 성남시 정신건강센터에 의뢰했다면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와 더불어 “만약 사망한 장애인이 입원치료 했던 병원이 있을 경우 담당 주치의를 비롯해, 보건행정을 담당하는 보건소, 사회복지관, 정신보건센터, 주민센터 등이 주기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신장애인을 관리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참고로 정신건강센터는 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센터로서, 주치의가 있는 정신장애를 가진 본인이나 가족이 등록한 경우 회원으로 분류, 관리 받을 수 있다. 보건센터 회원가입은 본인, 가족, 주변인, 지자체 등 어느 통로를 통해서든 등록을 원하는 정신장애인이 거부하지 않는 이상 등록이 가능하며, 등록된 후에는 지속적인 방문 상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렇듯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보호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씨와 김씨는 그 누구도 신경써주지 않아 성남시 정신보건센터에 등록되지 못해 보호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성남시 정신건강센터 수정구 정신보건실 주아무개 간호사는 “회원 외에는 관리 대상이 아니어서 사망한 박씨와 김씨의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밝히면서 “만약 사망한 남녀가 정신보건센터 회원이었다면 상태를 미리 파악해 병원으로 안내하고, 약도 잘 복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박씨와 김씨가 살았던 반지하 내부, 시신처리 후 집내부는 이미 말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취재내용을 종합해 보면, 정신장애인은 다른 장애와는 달리 특별히 국가와 지자체의 지속적인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들 동거 장애인들은 지역 내에서 혜택은커녕 보호조차 받지 못했고, 질병과 생활고로 인해 어려운 삶을 이어가야 했다. 즉, 생활고와 방치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볼 수 있으며, 결국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월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정신장애인이 있는 형제가 극심한 빈곤상황을 비관하며 자살한 적이 있었다. 이들 형제 중 동생 혼자만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서 월 40만원의 생계비와 15만원의 장애연금을 받아 생활했고, 동생을 돌보기 위해 제대로 된 일조차 할 수 없었던 형이 고단한 현실을 이겨내지 못해 동생을 데리고 동반 자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불과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역시 두 명의 정신장애인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현장에 갔을 때 박씨와 김씨가 생활했던 좁은 지하방은 텅 빈 채로, 쓸쓸하게 방치됐던 그들의 지난 삶을 보여주는 듯했다.

작성자이애리 기자  bonbon727@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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