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자유롭게 영화를 볼 권리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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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영화에 장애인은 없다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장 앞, 매일 12시면 피켓을 든 장애인이 있다.
“장애인도 자유롭게 영화를 보고 싶다.”, “한국영화에 자막, 화면해설을 제공하라.”
장애인도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장애인들이 1인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1인 시위는 현재(2012.3) 대구·대전·인천·경기·경북·제주로 번져가고 있다.
각종 통계를 보더라도 영화 관람은 TV 시청 다음으로 국민이 선호하는 여가 생활이다. 그리고 영화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에서 보았듯이 한 편의 영화가 사회의 이슈를 생산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국영화는 1999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해 왔다. 한국영화가 이전보다 못하다는 평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국영화 관람 비율은 68.3%로 외국영화보다 앞서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2010.10)
하지만 시·청각장애인들은 이러한 한국영화 성장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영화를 제대로 관람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정부는 장애인들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자막과 화면해설 제작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글자막과 화면해설 제작지원 편수는 지난해 7편 정도로 미미하다. 이러다 보니 장애인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개봉되었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도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다.
영화 <도가니>도 그렇다. 청각장애인의 인권유린을 소재로 다룬 영화임에도 정작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볼 수 없었다. <도가니>는 전국 509개 스크린에서 상영(2011.10)되었을 때 자막 서비스를 한 곳은 20개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도 자막 서비스를 하는 상영관 대부분이 도시에 있었고, 자막 상영 횟수도 하루 1회 정도라 청각장애인들이 <도가니>를 자유롭게 볼 수 없었다. <도가니> 관람이 어렵기는 시각장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시·청각장애인들이 영화 관람이 쉽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정책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관련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문화체육관광부 앞 기자회견 (※사진제공: 장애인정보문화누리) |
장애인 가로막는 영화관
장애인의 영화 관람은 의사소통의 측면과 정보 접근의 측면, 시설의 접근과 이용의 측면을 놓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7년 당시 시설을 중심으로 규제하면서 의사소통과 정보 접근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제정 당시 영화관 시설의 규제시기를 2015년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것은 법률이 2015년 시행이 되더라도 300석 이상 상영관(단일 스크린)에만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2010년 통계를 보면, 국내 극장의 전체 상영관 수는 2천3개다. 그 가운데 멀티플렉스 상영관은 1천856개로 92.8%나 된다. 영화관 매출의 측면에서 보면,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전체 매출의 97.7%를 점유하고 있다(영화진흥위원회). 즉, 관람석을 기준으로 한다면 90%가 넘는 극장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정한 300석 규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욱이 300석 이상의 극장은 멀티플렉스보다 매출이 적어 법률을 지킬 수 없다고 할 것이다. 2015년이 되어도 장애인들은 8%의 극장에서만 영화를 보아야 하고, 극장주들의 반발이 생기면 이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
영화를 보기 어려운 것은 시·청각장애인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 내 영화관 장애인 좌석 설치는 법정 기준인 1%를 초과(3%에 이른 곳도 있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적으로 보면 영화관 접근과 이용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애인 이용자의 처지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설치된 장애인 좌석 대부분이 고정식이거나 동반자와 같이 앉아 영화를 보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스크린을 기준으로 맨 뒷자리나 앞자리 또는 가장자리에 설치되어 있어 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크다. 그래도 서울지역은 장애인 좌석에 대한 법정 기준을 지키고 있지만 다른 지역은 이런 통계도 없을 정도다. 장애인들이 영화관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 외에도 영화관의 매표소나 매점 가판대가 휠체어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하기에 어려운 것 등이 있다.
▲ 대종상영화제 1인 시위 (※사진제공: 장애인정보문화누리) |
“장애인도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장애인들이 영화 관람권을 요구했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아시스> <마라톤> <글러브>……. 장애인 관련 소재의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장애인들은 영화를 볼 권리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다른 목소리에 묻혀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일기 시작한 영화 관람권 문제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도가니>를 장애인 관객의 측면에서 공론화시킨 단체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다. 이 단체는 영화가 개봉되고, 청각장애인 관람 서비스가 부족한 것을 파악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Daum)’ 아고라 청원 서명과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의 문제를 공론화해 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막이 없어 <도가니>를 볼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청각장애인들을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또한, 이 단체는 장애계와 시민단체에 연대체 구성을 제안했다. 이런 과정에서 대종상영화제 개막식장 피케팅으로 언론에, 국민에게 장애인 영화 관람의 문제를 알려나갔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 장애인 영화관람 연대체인 ‘장애인 영화 관람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지난해 10월 말 꾸려졌다. 공대위는 현재 25개 전국 규모의 단체와 대구·대전 지역 공대위가 참여하고 있다. 공대위는 지난해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영화 관람권을 보장하라는 1인 시위를 벌이는 한편,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면담을 했다. 이 면담과정에서 장애인의 영화관람 환경 개선의 약속을 받아냈다.
공대위는 지난 3월 5일부터 100일을 목표로 1인 시위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1인 시위로 영화 관람권 문제를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이외에도 공대위는 각 정당에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을 비롯한 장애인 문화권을 정당의 정책으로 제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총선에 출마하는 각 후보에게도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 공약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공대위 활동과 맞물려 3월 중순 개봉한 영화 <달팽이의 별>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 덕분에 영화계에서 배리어프리 바람도 불고 있다. 또한, 정부가 공대위와 약속했던 영화관 실태조사도 조만간 시작된다. 시·청각장애인들이 영화를 볼 기회도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영화계에서의 배리어프리 바람이나 정부의 움직임이 낙관적이라 공대위의 활동을 이쯤 해서 접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공대위를 구성한 목적은 ‘장애인이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권리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현재의 배리어프리 운동은 한계가 있다. 자칫하다가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이 동정적인 측면에서 접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 실태를 조사하려는 정부의 움직임 또한 그렇다. 그 계획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결과물을 어떤 형태로 사용할지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다. 여기에 시·청각장애인 영화 확대에 대한 현재 정부의 움직임도 한계가 있다. 현재 정부는 법률에서 정한 사항을 정책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예산 지원으로 영화사를 움직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대위 활동은 여기서 접을 수 없다. 공대위는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언제 어디서나, 보고 싶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법률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대위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을 반드시 이루어내려 하고 있다. 법률이 규정한 영화사업자에 대한 임의조항을 개정하여 장애인의 정당한 편의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영화사업자의 정당한 편의 제공 시기인 2015년을 2013년으로 앞당기고, 300석 이상으로 규정한 좌석 수를 폐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를 마친 다음에 법률의 원활한 시행을 위하여 영화 관련 법률인 「영화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영화사업자가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위하여 제공해야 정당한 편의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영화관 접근과 이용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그렇다. 공대위는 올해 시행될 실태조사에서 장애인 관람자를 위한 개선안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영화관 편의시설 운영지침을 만드는 것이다. 이 운영지침에는 장애인의 물리적인 접근과 이용만이 아니라,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적서비스가 포함하도록 할 계획이다.
▲ 국가인권위원회 앞 기자회견 (※사진제공: 장애인정보문화누리) |
‘강물’ 이루기 위한 작은 움직임
치열한 투쟁이 아닌 1인 시위를 택한 공대위의 운동이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공대위 일원들은 1인 시위라는 작은 외침들로 법률이 개정되고, 영화사업자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큰물은 한순간 세상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힘이 있다. 이에 비해 작은 물은 보잘것없지만 모이고 모여 강물을 이루어 모든 것을 삼키는 힘이 있다.
이처럼 공대위는 지금의 1인 시위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1인 시위라는 물줄기를 전국으로 대는 작업을 공대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 영화 관람권이 확보되는 그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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