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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등급제의 오류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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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 발달장애인이 공적 지원과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장애 유무의 판정뿐만 아니라 장애의 정도를 판별하는 등급심사를 받은 후 장애인으로 등록되어야 한다.

이러한 등급제도는 장애의 정도를 구분하려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너무 의료상의 관점에만 치중되어 있고, 실제 각 장애인 당사자의 서비스나 지원의 필요성과는 크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시스템하에서는 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서비스 정책은 획일화될 가능성이 많고, 개별화된 지원과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그런 장애 등급증명서를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장애인의 인격을 무시하는 비인도적 처사다. 내가 만약 지적장애 3급이라는 장애인 증명서를 지참하고 있어야 한다면 나의 인간으로서의 그리고 사회적인 가치가 그 정도라고 자타가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러한 제도상의 문제점을 이유로 여러 장애 단체에서 이미 장애 등급제도의 폐지를 주장해 왔다.

여기서 필자는 이러한 한국의 전반적인 장애에 관한 제도상의 문제점을 논하기보다는, 현재 실행되고 있는 지적장애 등급제도 자체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적장애의 등급기준을 보면,

1급: 지능지수와 사회 성숙지수가 34 이하인 사람으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적응이 현저하게 곤란하여 평생 타인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

2급: 지능지수와 사회 성숙지수가 35 이상 49 이하인 사람으로 일상생활의 단순한 행동을 훈련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감독과 도움을 받으면 복잡하지 아니하고 특수기술을 필요로 하지 아니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

3급: 지능지수와 사회 성숙지수가 50 이상 70 이하인 사람으로 교육을 통한 사회적, 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

이처럼 지적장애의 등급을 결정하는 요소는 ⑴지능지수, ⑵사회 성숙지수, 그리고 ⑶판정인의 주관적인 견해다. 이러한 판정 요소에 대해서 논해 보자.

(1) 지능지수

지능지수 1점의 차이로 급수가 달라질 수가 있다. 그러나 지능지수는 그 성질상 통계적인 표준오차가 있다. 예를 들어, 지능지수가 50으로 판정되면 그 사람의 지능지수는 42~58 사이에 있다고 95% 확실성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지능지수는 절대적인 치수가 아니며, 그 측정치는 이와 같은 표준오차를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지적 발달장애 협회(AAIDD)는 지적장애를 진단하기 위해서 지능지수를 사용할 때 반드시 ‘대략(Approximately)’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현행법은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

(2) 사회 성숙지수

사회성숙 지수 판정은 30세 이전의 사람에게 사용되며, 판정 시에는 당사자 본인이 답변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나 장애인을 잘 아는 사람이 대답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당사자가 답변하는 경우 그의 자존심, 자기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감성이 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지수를 계산할 때 총합계 점수를 나이로 나누기 때문에 나이가 많을수록 지수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30세까지에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 외의 여러 가지 요소가 사회성숙지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지수를 사용하기 전에 그 목적에 들어맞는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이 측정에 응할 때, 그는 지수를 낮추어서 자기 자식의 장애 등급을 더 중증으로 하려고 할 것이다.

이처럼 부정확한 요소가 다분히 존재하는 데도, 그 측정지수를 절댓값으로 인정해서 판정 지수 1의 차이로 등급이 바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 판정인의 주관적인 견해

지적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을 사정하고 그가 필요한 지원과 서비스를 결정하려면 그의 약점과 강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한국에서 판정은 정신과나 재활과 의사가 하게 되어있다. 이는 지적장애를 의료상의 면에서만 본다는 기본 개념의 소산일 것이다. 미국에서 1800년대 말에서 1930년대까지 있었던 유전인자 개량 운동(Eugenics Movement)과 일맥상통한다면 무리한 추측일까.

지적 발달장애는 그 사람의 평생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는 의료상의 면보다는 그의 전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가 필요한 지원을 생각해야 한다. 의사가 발달장애인을 잠깐 면접하고는 그의 의료상의 전문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전반적 지원과 서비스 분야를 판정할 권한을 의사에게 부여한다는 것은 한국의 발달장애 지원체제의 오류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인 판정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당사자, 부모, 복지사, 심리학자, 의사가 한 팀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현재 지적장애 등급체제는 장애를 등급으로 나눈다는 체제상의 불합리성을 제쳐 놓고라도, 그 등급을 결정하는 방법도 대부분에서 잘못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복지정책 실천에서, 그리고 이론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현 발달장애 등급제도는 분명히 폐지되어야 한다. 과거 25년여 동안 이러한 등급제도에 익숙한 한국사회가 그 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대안의 예로 지금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사용하고 있는 PUNS 시스템과 위스콘신 주의 IRIS 체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PUNS

이 시스템은 일리노이주의 부족한 복지예산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그 명칭은 서비스 욕구의 긴박성에 의한 우선순위(Prioritization of Urgency of Need for Services)의 약자인데, 일리노이 주내의 발달장애가 있는 영아로부터 성인까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장애 서비스와 지원의 욕구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하는 시스템이다. 이로써 신청인의 서비스 필요성의 긴박함을 판정하고, 주 정부는 그에 따른 지원계획을 마련하게 된다. 장애 당사자와 부모, 혹은 후견인은 주 정부의 서비스 판정 에이전시를 방문해서 당사자의 의료 건강상태, 현재 어디서 누구와 살고 있는지, 가까운 장래에 변화가 예상되는지, 새로운 혹은 부수적인 서비스가 필요한가 등에 관한 설문에 대답한다.

이러한 정보에 의해서 에이전시는 당사자의 서비스 욕구가 충족되고 있는가를 판정하고, 그렇지 않다면, 발달장애 서비스의 욕구를 정리해서 주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게 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이 베이스를 분석해서 각 장애 당사자의 서비스 필요성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주 전역의 서비스 욕구를 앞으로 5년간 연도별로 예측해서 복지예산 책정 시에 참고하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미국의 경제사정이 악화하여 재원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주 정부는 서비스가 최대한 공평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분배 되도록 노력하고, 보조가 필요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방도를 항상 모색한다.

IRIS

위스콘신 주는 미네소타 주와 더불어 미국 내에서 장애 복지체제가 가장 발전한 주로 인식되고 있다. IRIS(Include, Respect, I Self-Direct)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은 2008년에 시작한 위스콘신주의 새로운 장기 케어 옵션이다. IRIS의 중요한 골자는 가입자나 당사자의 장기 케어를 맡은 가족, 혹은 그를 돌보는 사람이 그를 위한 서비스, 지원, 물자와 생에 대해서 완전한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것이다.

IRIS 가입자는 자기의 장기 케어 보조와 서비스 플랜을 개별적으로 정해진 월간 예산 한도 내에서 스스로 작성한다. 당사자가 자기를 서비스할 사람을 직접 고용할 수도 있고,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이전시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IRIS를 사용함으로써 자기들의 지역사회에 계속 살 수 있게 되고 요양원이나 시설에 옮겨가지 않아도 되었다.

IRIS에 가입하면 당사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고 배정된 월정금액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자신이 결정한다. 당사자에게 배당된 월간 예산액은 자기만의 독특한 상황에 맞추어 조정될 수도 있다.

IRIS 상담 에이전시의 도움으로 자기만의 상담원을 선택할 수 있다. IRIS 회계서비스는 당사자의 IRIS 플랜에 따른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지급해 준다. 이 두 에이전시 기관에서 받는 도움은 당사자의 월간 예산에 영향을 주지 않고 무료로 제공된다.

이러한 옵션을 주 정부에서 제공한 결과,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아짐은 물론, 주 정부의 실제 복지비용이 15% 정도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에이전시를 통해서만 제공되던 서비스를 장애인이 직접 에이전시 이외에 친구, 이웃으로부터도 구매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전에 통상 있던 서비스 대기 리스트가 없어졌다고 한다.

결론

한국에서 1989년에 장애 등급제도, 등록제도가 생긴 이유 중의 하나가 정부의 부족한 복지예산을 효과적으로 분배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체제는 위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체제 자체에 커다란 오류가 있고, 그 체제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루속히 한국의 지적 발달장애인을 위한 제도적인 체제가 개선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작성자전현일 (국제 발달장애우 협회 대표)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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