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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나오니 꿈이 생겼다

그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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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기억도 못할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한 번이라도 누리고 싶은 평생 소망이 되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고 외출해 자유롭게 친구를 만나는 일상. 그런 평범한 일상이 장애인에게는, 특히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에게는 꿈도 못 꾸는 일이 된다. 지정된 옷만 입거나, 원하는 옷을 입으려면 일일이 시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생활. 밖을 나가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감옥이 아닌데 감옥에서의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 장애인 시설이다.


김보은 씨(가명)는 지체장애인으로 장애인 시설, 정확히 말하면 그룹홈에서 나와 자립했다.


그녀가 있던 그룹홈은 규모만 작을 뿐 시설처럼 운영됐다. “자고 일어나는 것도 마음대로 못 했어요. 밤 10시나 11시면 자야 해요. 일어나는 것도 똑같이 일어나야 했어요. 직장에 안 가는 날에는 늦게 일어날 수 있잖아요. 밥도 정해진 시간에 먹지 않으면 못 먹었어요. 제가 아침을 잘 안 먹어요. 일어나자마자 먹는 게 잘 안 넘어가잖아요. 어떤 선생님은 윗분들이 먹으라고 했으니 먹어야 한다는 거예요. 안 먹고 출근하는 날에는 ‘네가 안 먹었으니 아프다고 하지 마’, 그래요. 그런데 아픈 게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먹고도 아플 수 있잖아요. 티브이도 제 마음대로 늦게까지 볼 수 있잖아요. 그것도 못해요.”


김보은 씨는 인천에 있는 큰 장애인 시설에 다섯 살에 입소해서 열두 살에 서울에 있는 그룹홈으로 옮겼다.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으니 그룹홈에 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반신반의했지만 선생님들이 권해서 그룹홈으로 거처를 옮겼다. 스물여덟 살까지 그룹홈에서 15년을 생활했다. 그룹홈이지만 외박은 꿈도 못 꾸고, 외출해도 선생님은 그녀의 귀가 시간을 정했다. 친구들과 제대로 놀지도 못한 채 후다닥 시간에 쫓겨 급히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조금 늦으면 시간을 못 지켰다고 혼나기도 했다. 3~4시간 추궁을 받다가 폭력을 당해 큰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초창기 서울에 있는 그룹홈에 갔을 때 핸드폰이 없었어요. 핸드폰 없이 복지관을 다녔어요. 복지관에서 아는 분을 만나서 떠들다보니까 6시가 넘은 거예요. 그분이랑 지하철을 같이 타고 집에 왔는데 6시 반 정도 됐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늦었다고 뭐라고 해요. 수업 끝나는 시간을 고려해 5시에는 귀가해야 한다고 계산했나 봐요. 제가 저녁 6시 넘어서 왔다고 왜 늦었냐고 하시는 거예요. 아는 분 만나서 얘기하다보니까 늦었다고 했더니 거짓말하지 말래요. 자기는 다 안다고. 제가 그때 나이가 스물두 살이었어요. 있는 그대로 다 얘기했는데, 뭘 더 얘기 하냐고 말했는데도, 계속 솔직하게 얘기하라면서 믿지 않아요. 선생님이 나중에 지하철을 같이 타고 온 분에게 전화해서 내가 말한 게 사실이란 걸 확인했나 봐요. 그런데도 사과를 안 하셨어요.”

 

사생활을 통제하는 그룹홈


사생활 존중은 인간이 개별자로서 고유하게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다. 사생활 존중, 즉 프라이버시에는 사적인 영역에 머무를 권리, 자신의 일을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할 권리, 익명으로 남을 권리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시설에 사는 장애인에게 사생활은 없다. 모든 것이 시설 관리자들에게 감시되고 보고되고 통제된다. 사생활이 없으니 개별인간관계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연애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성적 권리도 꿈꾸기 어렵다. 그녀의 일상은 하나하나 검열과 허락 없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번 돈이나 수급비로 옷을 사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다. 자기 돈이지만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다.


“뭘 사려고 해도 허락이 있어야 해요. 옷 몇 가지를 사려고 해도 원장님이나 선생님의 허락이 있어야 했어요. 허락을 받았다가 취소된 경우도 많고요. ‘이거 있는데 왜 사?’ 그렇게 말하면서 못 사게 해요. 그런데 옷 모양이나 스타일이 다 다르잖아요. 입고 싶은 옷이 달라질 때도 있는 건데 있는 옷을 입으래요. 그룹홈에 있을 때는 원피스를 못 입었어요. 제가 원피스를 무지 좋아하는데도 원피스를 못 입게 해요. 제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생활해야 하니까 바지만 입으래요. 움직이다가 속옷이 보일 수 있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건 제가 조심하면 되는데 무조건 바지 입으래요. 몸이 불편하니까 어쩔 수 없이 바지만 입어야 한대요. 여름에는 짧은 바지를 많이 입잖아요. 요즘 사람들은 무릎 위로 올라간 바지를 많이 입잖아요. 저는 젊은데 너무 짧다고 안 된대요. 저도 제 친구들을 따라하고 싶은데…. 못하게 해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룹홈 선생님들은 김보은 씨의 옷을 통제하면서 그 이유를 그녀의 신체장애로 돌렸다. 그녀가 다른 지체장애인들도 원피스를 입지 않느냐고 대꾸하면 선생님은 “그 친구들은 그 친구들이고 너는 너”라며 이유 불문하고 안 된다고 했다.


한번은 보은 씨가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혼잣말로 죽고 싶다고 했는데 어쩌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그래, 그럼 죽어” 라고, “여기 사는 사람들도 너 때문에 힘드니까 죽고 싶으면 죽어”라고 말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돌보는 것이 힘들더라도 당사자에게 직접 내뱉을 말이 아녔다. 그녀는 끙끙 앓는 마음으로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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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나와 꿈을 꾸다


결국 김보은 씨는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싶어 그룹홈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자립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한 지 5년 만에 그룹홈을 나왔다. 재작년에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개최한 탈시설캠프에 다녀오면서 확신을 얻었다. 더 중증인 장애인들도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눈으로 봐서다. 그룹홈에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가서 살라고 하던 선생님들이 나간다고 하니까 반대가 심했다. “네가 어떻게 나갈 건데?” “누구 도움 없이 못사는 네가 어떻게 살 건데?” “여기 있을 때보다 돈이 더 드는데 그걸 어떻게 감당할 거냐?”


선생님들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싸워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보호작업장에서 일한 돈과 수급비를 아낀 덕에 모아놓은 돈 천 만 원으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있는 인천으로 내려왔다.


자립생활은 자유롭고 행복했다. 허락 없이 사고 싶은 걸 살 수가 있었다. 좋아하는 원피스도 입을 수 있었다. “혼자 사니까 마음대로 살고 너무 좋아요. 먹는 것도 마음대로 먹고. 원하는 옷과 신발도 샀어요. 옷을 사가지고 행거에 걸어 놓고 보면서 웃었어요.” 혼자 살려니 활동지원 서비스가 꼭 필요했다. 한 달 동안은 활동지원을 못 받아 밥도 굶은 적이 많았다.


“활동지원 서비스는 3월부터 받게 됐는데 월 70~80시간밖에 안 됐어요. 저녁 한 끼밖에 못 먹었지요. 한 달에 시간을 나누다보니까 하루에 2~3시간밖에 못 쓰는 거예요. 더 이상 이렇게 살다가 죽겠다 싶어서 공단에 이의신청을 했어요. 이의신청 두 번 받아들여졌나? 공단에서 조사 나오고 그랬어요. 이의신청을 해서 등급이 변경되기는 했는데 2등급밖에 안 되는 거예요. 100시간이 좀 넘는 거라서 생활이 힘들죠. 공단에서는 저한테 서비스 시간을 더 못준다고, 장애 등급이 그것밖에 안돼서 서비스 등급이 적은 거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먹는 것도 혼자 못 먹는데 이것보다 더 큰 증거가 어디 있냐’고, ‘장애 등급이랑 서비스 등급이란 무슨 상관이라고 묶냐’고 말했어요. 이게 정말 말이 안 되잖아요. 억울하기도 해서 그 자리에서 울기도 했어요.”


그녀는 민들레회원 20여 명과 공단을 다시 찾아갔다. 해결이 되지 않아 하룻밤을 자며 항의했다. 다음날 기자들이 찾아오고 세상에 알려지니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비스 등급이 높아져 현재는 278시간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시간이다. 평일은 2시간, 토요일은 없이 일요일만 8시간 활동지원을 사용하고 있다.


그녀는 활동지원시간 확보를 위해 나서주던 센터장과 다른 장애인 동료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받은 감동으로 서비스를 못 받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싸워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도 센터장님처럼 장애인들을 위해서 앞장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희 대표님은 그걸 워낙 잘하시잖아요. 그런 걸 많이 닮고 싶어요. 자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고 남들도 생각하고. 앞장선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되잖아요.”


요즘 그녀는 민들레센터에서 연극도 배우고 여성장애인 자조모임도 나간다. 재밌는 일들도 많기도 하고 지금은 연애에 별로 관심이 없다. 애인이 생기면 생기는 거라는 마음으로 지낸다. 현재 그녀의 목표는 장애인동료상담가가 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시설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꿈이고 욕망의 변화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직도 장애인 거주시설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립생활을 결심하는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말을 마쳤다.

작성자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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