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남매가 암매장당한 후 9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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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남매가 암매장당한 후 9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건으로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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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경기도 수원에서 42세 자폐성장애 아들을 키우다 벼랑 끝에 몰린 어머니가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 이 사건으로 발달장애 아들은 사망했고 어머니는 살아남았다. 부모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다가 한계 상황에 이르러 존속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2006년 초에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발달장애인 오누이가 살해돼서 암매장당한 후 9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시작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합천군 농촌 마을에서 5남 2녀를 키우며 살던 정 아무개 씨 부부에게 막내아들(발달장애 1급, 사망 당시 32세)과 바로 윗누이(발달장애 1급, 사망 당시 34세)의 존재는 여러모로 고민거리였다. 어머니인 양 모 씨(당시 70세)가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면서 부부는 이들 남매가 나머지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부부는 때마침 동네로 이사 온 윤 모 목사 부부에게 남매로 인한 고민을 털어놨고, 목사 부부는 남매를 살기 좋고 낙원 같은 시설로 보내줄 테니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제안했다.

부부는 윤 목사 부부를 믿고 남매를 맡겼다. 그렇게 해서 1992년 남매는 영문도 모른 채 고향 땅을 떠나 경기도 광주군에 있는 한 장애인 미인가 시설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막내아들 정 씨가 1997년 시설 근처 산에서 추락하면서 몸에 상처를 입었고, 치료비 부담 문제가 생겨 오누이는 더 이상 시설에서 생활하기 어렵게 됐다. 윤 목사 부부는 오누이를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대신 경북 고령군에 있는 한 저수지 근처에 움막을 지어 생활하게 했고, 이로 인해 막내아들이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무더운 여름철, 먹을 게 없자 막내아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물이라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움막 밑에 있는 작은 웅덩이를 찾아가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상태로 웅덩이에 빠져 죽은 것이다. 숨진 막내아들은 목사 부부에 의해 근처 야산에 암매장됐다. 동생이 죽자 누나는 시신 옆에서 하염없이 울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지나가던 낚시꾼에게 발견됐다.

사건을 수사한 합천경찰서 강력범죄팀에 따르면, 당시 막내아들의 사인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서의 익사였다. 동생이 사망한 후 누나는 목사 부부 손에 이끌려 합천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가족들 눈에 띄면 안 된다는 이유로 집으로는 가지 못하고 교회 뒤편에 있는 한 폐가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은둔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고향에 돌아온 지 열흘 만에 사망한 것이다. 이게 지난 1997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당시 목사 부부는 “먹을 것을 갖다줘도 우리 모르게 숨기고, 버리고 해서 안 먹더니만, 열흘 만에 굶어서 죽었다”고 주장했다. 누나는 죽어서도 부모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목사 부부에 의해 교회 뒤 텃밭에 암매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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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전인 2003년, 오누이의 죽음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으나 목사 부탁에 의해 숨겨왔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자식들에게 털어놨고, 그때부터 남은 가족들은 목사 부부를 찾아가 집요하게 오누이의 행방을 물었다. 심적 부담이 커진 목사 부부는 경찰에 자수해서 사실을 털어놨다. <함께걸음>은 2006년 당시 합천에 가서 직접 오누이 부모와 목사 부부를 만났다.

결국 드러난 진실은 돈이었다. 처음에 윤 목사 부부는 “정 씨 부부에게 받은 돈은 500만 원밖에 없고, 이 돈 전부를 오누이 시설 입소비로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말을 바꿔 “그동안 현금 3750만 원과 매년 쌀 14가마를 남매가 죽은 후까지 계속 받았다”고 털어놨다. 나아가 "부모가 우리에게 아이들을 맡아주는 곳에 5천만 원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그 돈 중 500만 원 정도는 십일조 형식으로 우리가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암매장당한 후 10여 년 동안 오누이를 찾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를 묻자 남매의 아버지는 “목사 부부가 아이들을 못 보게 막았다”고, 목사 부부는 “정씨 가족이 남매를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윤 목사 부부는 “막내아들에게 처음 문제가 생겼을 때 남매를 가족에게 보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정 씨 어머니가 ‘애 아빠가 싫어한다’는 이유를 들며 남매가 집에 오는 걸 원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남매 아버지는 “아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할 때마다 목사한테 이야기하면 ‘미국 갔다’, ‘강원도에 있는 시설로 옮겼다’ 등의 핑계를 대며 데리고 가지 않았다”라고 상반된 주장을 했다.

오누이가 사망했기 때문에 누구 말이 진실인지 확인해 볼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족과 윤 목사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사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던 오누이는 돌보는 사람 없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고 시신마저 암매장당하는 비극을 당해야 했다는 것이다. 2006년 당시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막을 내렸다.

돌아보면 당시 사건이 벌어진 데는 목사 부부의 탐욕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 지원 서비스가 전무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특히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나 지원 서비스가 부족한 농촌의 경우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일차적으로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동등한 가족 대우를 해주지 않은 정 씨 가족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 그들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는 부모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버렸는데 공적 시스템 속에서는 아무런 지원도 기대할 수 없기에 사적 시스템 내에서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했던 거고, 이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결국 발달장애인 문제의 공적 책임을 외면한 우리나라 사회복지 시스템이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정부가 발달장애인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공언했으니,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작성자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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