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지 말라고요? 그건 저희 권리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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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다. 자녀를 낳고 기른다. 죽는다. 인류는 그렇게 이어져 왔다. 전쟁 중에도 사람은 아이를 낳았다. 한국전쟁 기간 매년 60~70만 명이 태어났다. 의심할 여지없던 삶의 한 과정이 장애인에겐 합법적으로 금지된 적도 있다. 나치 독일 시기 장애인 약 40만 명이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았다. 독일보다 수만 적을 뿐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에서도, 일본과 한국에서도 강제 불임 수술은 행해졌다.
자녀는 이제 어느 정도 선택의 문제가 됐다. 그래도 결혼한 사람이 자녀를 낳는 것은 여전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면 이유를 묻지만, 임신하고 출산한 사람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묻지 않는다. 그저 축하한다.
낳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축하를 장애인은 받기 어렵다. 대신 ‘왜 가졌어?’, ‘왜 낳았어?’ 라는 질문을 직·간접적으로 받는다. ‘부모 자격이 있냐’라고 묻는 셈이다.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 자체로 비난받기도 한다. 비난엔 장애인이 부모 역할을 제대로 못 할 거라는, 그래서 그들의 자녀가 피해 볼 거라는 가정이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아동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아동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7개국 중 가장 낮다. 아동이 느끼는 결핍 수준은 OECD와 EU 국가 29개국 중 헝가리 다음으로 높다. 물질적 결핍은 적었으나 관계에서 결핍을 크게 느꼈다. 지난해 아동이 부모와 함께 보낸 시간은 하루 평균 48분에 불과했다(OECD 평균 2 시간 30분). 아동의 우울감·불행감·공격성은 5년 전보다 증가했다.
조치가 필요할 만큼 한국의 아동은 불행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책이 ‘한국에선 아이를 낳지 말자’로 귀결하진 않는다. 아이들의 삶 만족도가 높은 나라라도 ‘한국인은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라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편견이 만드는 편견
장애 부모가 자녀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들이 있다. 미국 국가장애위원회(NCD)는 “전문가들이 부모의 장애가 자녀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라고 반박했다. 강한 편견이 있다면 반대되는 증거가 있어도 잘 보이지 않아, 편견에 부합하는 연구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대중매체가 자신들의 편견과 일치하는 장애인의 모습을 골라 보여주는 방식과 닮았다. 몇 차례 방송에 출연한 장애 부모의 자녀 박찬미 씨는 “즐겁게 지내는 모습은 다 편집되고 안타까운 모습만 방송에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찬미 씨는 그것이 싫다고 했다. 이제 그는 직접 자기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공개한 ‘장애인 모·부성권 증진을 위한 실태조사’에서 “많은 연구가 부모의 장애가 자녀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초점을 두고 있어 모·부성 능력에 대한 부정적 측면이 부각됐다”라며 “보호자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과 부정적 인식이 사회적으로 존재해, 장애인 자신도 결혼·임신·출산 과정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것을 포기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한편 논문 ‘장애 부모 아동과 일반 아동의 자아존중감에 따른 부모 관련 스트레스, 사회적 지원 및 학교 적응’에 따르면, 부모가 장애인인 아동보다 비장애인인 아동이 오히려 부모에게 스트레스를 조금 더 받았다. 연구는 부모에게 느끼는 스트레스가 부모의 장애 유무가 아니라 아동의 자아존중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말한다.
▲ 장애여성권리쟁취연대가 ‘장애 특수성을 반영한 양육 서비스 제공’, ‘아이돌보미 서비스 자부담 폐지’ 등을 요구하며 서명을 받고 있다. |
질문 자체가 차별, 사회에게 물어야 한다
인권위가 실태 조사를 하며 비장애인 605명에게 물은 결과, 69.9%는 ‘직접 양육이 어려운 장애인 부부는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라고 응답했다. 부모의 장애가 아이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장애가 있는데 직접 양육하는 게 가능하냐는 의구심이 답변엔 내포한다. 세 아이를 키운 장애인 당사자 박지주 장애여성 권리쟁취연대 대표는 “그건 경험과 적응, 기술의 문제다. 첫애를 키우며 절절맸지만 쌍둥이를 키울 때는 달랐다. 비장애인 부모도 경험이 없으면 마찬가지다. 다만 비장애인 부모는 교육받을 환경이 마련돼 있는데, 장애인 부모는 장애 특성에 맞는 육아법을 배울 곳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박 대표는 “‘몸이 불편하니 키우기 어렵지 않겠냐’라고 말하는 자체가 차별이다”라며, “권리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출산·양육은 엄연히 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권리 행사에 어려움이 있다면 개인에게 자격을 따져 물을 게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장애인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나?’라고 개인에게 묻는다면, 거꾸로 ‘장애인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인가?’라고 사회에게 되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찬성과 반대가 아닌 존중과 응원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017년, 대통령 후보였던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TV 토론회에서 동성애 찬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동성애는 찬성,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성 정체성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정체성을 두고 찬반을 논할 순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인간의 권리다. 권리는 장애 유무에 따라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고, 편견과 추정만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말 장애인 부부를 위한 임신·출산 매뉴얼 <40주의 우주>를 발간했다. 책 앞날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아이를 갖거나 갖지 않기로 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신중한 결정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상황과 결정을 존중하며 응원합니다.”
부모의 자격, 부모 될 권리 ② 장애 부모 인터뷰 “왜 장애를 미안해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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