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장애인이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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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년 전 실종된 한 발달장애인이 집 근처 정신병원에서 질식사한 채 발견됐다. 도대체 실종된 발달장애인이 왜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다가 사망했을까?
경기도 오산시에 살고 있던 김 아무개(발달장애 2급, 당시 21세) 씨가 집 근처서 행방불명된 것은 2001년 8월 29일이었다. 실종 직후 김 씨의 부모는 관할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했으나 이틀 뒤 경기도 분당 율동공원에서 경찰에 발견된 김 씨는 가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할 구청인 분당구청으로 김 씨를 인계했고, 구청 직원 역시 정확한 신원 파악을 하지 않고 김 씨를 오산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나중에 보니 집과 불과 20여 분 남짓 떨어진 곳에서 6년간 수용돼 있었던 김 씨는, 2007년 5월 16일 격리실 관찰구에 목이 껴 질식사하면서 그때서야 신원이 밝혀졌고, 결국 차가운 시신이 돼서 집으로 돌아갔다.
기가 막힌 것은 구청과 경찰이 김 씨의 지문 조회를 두 번이나 했어도 찾지 못했던 보호자를, 김 씨가 사망한 후에는 바로 찾아 연락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분당구청은 “2005년도에 관할구역 내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행려환자 32명의 지문을 찍어 분당경찰서에 의뢰했다. 경찰은 4개월 뒤에야 일괄해서 다시 지문을 찍으라고 되돌려 보냈다. 그래서 다시 지문 조회를 의뢰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김 씨가 보호자를 못 찾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분당경찰서 측은 “구청에 지문 조회를 재의뢰했지만 서류가 다시 오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사건이 드러난 후 김 씨 부모가 제시한 김 씨의 진료기록부에는 이름이 정확히 적혀 있고, 간호기록부에도 기록돼 있었다. 그리고 차트에는 ‘행려’라는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김 씨의 부모는 “우리 아이는 이름과 집, 연락처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집에서 특수학교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말했다. 행려환자나 노숙인으로 거리를 떠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시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김 씨는 경찰이 김 씨를 구청으로 데려가고 구청이 병원으로 넘기는 과정에서 본인 정보를 밝혔다고 한다. 6년이나 갇혀 있던 정신병원에서도 이름과 집, 전화번호를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정신질환이 있는 행려인으로 낙인찍힌 김 씨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적장애가 있는 김 씨가 왜 정신병원에 수용된 걸까?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이 실종된 후 발견되면 복지시설에 보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런데 실상은 행려인으로 분류돼 정신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정신병원에 인계된 행려인들은 실종 관련 전산망에 등록되지도 않는다. 이들은 행려인임을 나타내는 새 일련번호를 받아 ‘무명남(無名男)1’, ‘무명남2’ 등의 새로운 이름을 가진 의료보호 환자로 등록된다. 그리고 건강보험공단은 의료보호 환자 1인당 매달 90~100만 원 가량의 의료 수가를 정신병원에 지급한다.
의료보호 환자는 서비스 질이나 양과는 상관없이 정액으로 수가를 주기 때문에, 월급 들어오듯 꼬박꼬박 들어오는 이 돈을 정신병원이 구태여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신병원은 실종자들을 의료보호 환자로 만들어 수용만 하면 정부에서 의료비를 받고, 정부는 처치 곤란한 행려인들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으니까 실종 장애인이 정신병원에 보내지는 것이다.
김 씨는 정신병원 1인 격리실에 수용돼 있다가 출입문 관찰구에 머리가 끼어 질식사했다고 한다. 김 씨 부모는 “아들이 사망했다는 격리실은 맨 장판에 대소변용으로 쓴다는 대야만 하나 덜렁 있었다. 그 병동은 행려인들만 있는 병동이라던데, 얼마나 불결한지 냄새가 지독해 코를 쥐고 들어갔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결론은 김 씨는 집 근처 정신병원에서 죽었고, 부모는 아들을 지척에 두고도 전국을 헤맸다. 관계자들이 김 씨의 지문조회에 더 노력했다면, 차트에 적힌 이름으로 한 번만이라도 경찰의 가출이나 실종 관련 전산망을 뒤져봤다면, 어쩌면 김 씨는 살아서 부모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김 씨를 가족 품에 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지역에 사는 발달장애인이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만약 본인 정보를 밝히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이 길을 헤맨다면, 어디서든 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후일담이지만, 이 사건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국가와 지자체인 성남시, 그리고 해당 정신병원의 책임을 묻는 공익소송을 제기했다. 국가와 성남시, 정신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2009년 5월 “경찰관과 해당 시 공무원의 신원 확인 의무 부주의로 인해 발달장애가 있는 김 씨가 부모에게 인계되지 못했다”라며 국가와 성남시는 500만 원, 정신병원은 1천355만 원의 위자료를 각각 부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 내렸다.
이 사건의 쟁점은 ‘국가와 지자체가 실종 장애인의 신원을 확인할 의무를 다했느냐’였는데, 법원이 처음으로 국가와 지자체 등이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기본의무를 다하지 않고 정해진 시스템에만 의지한 점이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판결이었다. 법원 판결로 손해배상은 받았지만, 이미 숨진 김 씨는 가족 곁으로 돌아올 수 없다. 김 씨 부모는 “경찰이나 병원이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무시한 것 같다”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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