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장애계, 주인됨의 각성과 사회통합 공동체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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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장애계는 오랜 숙원이던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성견후견인제도, 활동보조지원제도 등을 성취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2011년 장애계 10대 과제로 추진했던 사업들도 상당 수준 달성되었다.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장애인복지공동대책위원회’의 활동으로 1990년에 결실을 거둔 장애인복지법 개정,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등으로부터 시작된 장애인 권리 찾기 자주적 운동이 더욱 양적, 질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한편, 2011년 우리 사회는 특수학교에서 여성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성폭행당한 것을 고발한 ‘도가니’ 영화로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여성장애인들이 시설은 물론 가정과 동네마을에서까지 성폭행당하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애인들은 이런 반인륜적 문제를 계속 고발하고 시정을 촉구했지만, 정부와 사회는 냉담했다. 그런데 영화라는 매체의 파괴력이 이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이런 계기에 장애계는 이 도가니영화로 촉발된 여성장애인 성폭행문제를 근절시키는 대책을 연대책임의식을 가지고 연구해야 한다. 또한, 이것을 결코 여성장애인들만의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 되고, 모든 장애인에 대한 물리적 폭행과 감금 및 강제노역 등의 인권유린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는 일시적인 사회적 충격으로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내년인 2012년은 한국장애계에 매우 중요한 4가지 국제 행사가 열린다. 우선 제2차 아태장애인 10년을 평가하는 2012년 유엔 에스캅(ESCAP) 정부 간 회의, 그리고 재활협회(RI)국제대회, 아시아태평양장애인포럼 총회, DPI 아태회의 등이다. 이런 국제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은 한국장애계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장애계는 이런 국제적 행사를 단지 행사만이 아니라 한국장애계의 질적·양적 발전의 새로운 계기로 만들 뿐 아니라 세게 장애계에도 이바지하는 국제대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1년 한국장애계의 성과와 21012년 한국장애계 국제대회 등을 생각할 때, 이제 한국장애계는 양적 성장과 함께 더욱 질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장애인지도자들은 더욱 성숙한 자기됨의 자각과 장애계 내부 문제만이 아니라 국내외적 시대변화와 상황인식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장애인의 삶 자체가 국내외적 변화와 유리되어 있지 않고, 시대적 변화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국내외적으로 2012년은 대격변의 시기가 될 것이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총선(4월)과 대선(12월)이 있다. 이번 총선과 대선은 과거와 달리 국민이 정치권에 대해 혁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고, 트위터, 휴대전화, SNS 등을 통한 젊은 층의 직접적 참여로 정치권이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격변의 핵심은 진정한 국민주권의 회복이다. 국민주권 회복의 일차적 요구는 복지국가 실현이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 기본권적 요구가 각 분야와 영역에서 분출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물결에서 장애인들도 자주적 국민주권 회복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분단된 나라이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북한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선포하고, 대내외적인 체제 위협 및 불안에 대해 강력한 선군정치 체제를 구축하고 경제발전의 새로운 기틀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왔고,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김정은에게 3대 세습의 권력 이양준비도 해왔기 때문에 큰 소용돌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북한체제의 성격상 돌연 변수도 많고, 국제관계, 특히 미국과 중국 관계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북한 문제는 계속 주시해야 할 과제이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전쟁과 분쟁을 예방하고 북한과의 신뢰와 평화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북한 정세의 불안과 갈등은 곧 우리 사회의 불안과 갈등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2012년을 세계적 차원에서 전망할 때 무엇보다도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문명의 대전환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문명의 대전환은 세계화, 정보화, 문화화로 나타났다. 세계화는 우리로 하여금 서구에 대한 절대적 인식이나, 우리만의 우물 안 개구리 의식을 떨쳐버리고 전 세계적인 다양한 지평에서 새로운 인식을 토대로 협력과 경쟁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정보화 시대는 물질적 소유보다 창의적 능력이 더 중요시되고, 지식과 정보가 혁명적으로 폭발하고 홍수처럼 밀려와서 과거의 지식, 특히 전문지식은 관점도 틀렸고, 시대도 변했기 때문에 쓸모가 없게 되었다. 인터넷 혁명으로 언제 어디서나 동시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생산하고 활용하는 유비쿼터스 시스템이 생활화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보화 국가이다.
그리고 문화화의 시대는 인간 감성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 결과 문화가 경제를 이끄는 문화경제시대를 열었다. 물질보다 문화가 모든 힘의 근원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5000년의 창의적 문화·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의 시대는 대한민국의 시대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지금 전 세계에 부는 한류 바람이 이것을 입증한다.
2012년은 이런 세계화, 정보화, 문화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세계화, 정보화, 문화화가 가장 빨리 확산·심화하고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이런 시대의 변화를 바로 인식하고, 새로운 문명의 주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는 무엇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 특히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의 경제위기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이 탓에 85% 이상 외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도 침체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경제위기에서 가장 희생되는 사람들은 빈민과 사회적 약자들이고 이 중에서도 장애인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경제문제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반면에 이런 경제 위기로 지금까지 탐욕적인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서 함께 인간답게 사는 자본주의 4.0을 모색하는 희망의 씨앗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도 재벌과 대기업들이 사회적 기업, 사회적 자본에 투자하지 않으면 더는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자본주의 변화에도 장애인들이 깊은 관심을 둬야 한다.
이렇게 2012년에 불어 닥치는 국내외적 시대의 변화를 예견할 때, 장애계에 요구되는 것은 첫째로, 주인됨의 각성이고, 둘째로는 이런 세계적 시대의 변화를 바로 인식하고 이에 따른 실사구시적인 정책과 실천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무엇을 각성할 것인가
첫째로, 장애인들의 무의식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차별주의, 격리주의, 체념주의, 의존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장애인들은 누구보다도 사회적 차별을 가장 심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당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차별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 그러나 차별주의는 인간의 오랜 역사에서 합리적 명분을 가지고 아주 교묘하게 자행되어 왔기 때문에 그 뿌리에 대해 철저한 인식을 하지 않으면 극복하기가 불가능하다.
차별주의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가부장제에 의한 여성차별, 신분제에 의한 차별, 종교적 편견에 의한 신체차별 등이 깊이 뿌리박혀 있지만, 특히 우리가 지난 100년 동안 절대적 진리로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인 서양 근대주의는 그 본질 자체가 차별주의이다.
서양근대주의는 이성의 자유를 주창하며 중세기 종교의 횡포로부터 인간의 찬가를 불렀다. 그러나 서양근대주의가 말하는 이성의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해당한 것이 아니었다. 서양근대주의는 남자, 백인, 어른, 지식인은 이성의 존재이고 여자, 유색인, 아동, 무학자는 비이성의 존재라고 규정했다. 이런 규정에 따라 전자는 이성을 가졌기 때문에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후자는 이성이 없으므로 자유를 주면 ‘광기의 존재’가 된다고 했다. 또한, 전자는 이성이 있기 때문에 자주적으로 살아갈 능력이 있지만, 후자는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전자는 후자를 지배하고 다스려야 하고 후자는 전자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전자가 후자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은 불의가 아니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했다. 서양근대주의는 이런 차별주의를 사상, 종교, 학문 등으로 합리적 체계를 만들고 이에 근거한 법과 제도도 만들었다. 그리고 근대학교제도를 통해 전 세계에 진리로 전파했다. 그 결과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서양근대주의는 이성을 빙자한 차별주의라는 것을 분명하게 각성해야 한다. 지금까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이런 서양근대주의의 차별주의에 따라 차별이 아니라 정당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또한, 서양근대주의는 객관주의를 사물과 진리를 인식하는 절대적 방법으로 체계화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주관적 전제 없는 순수객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객관적 인식이라는 것은 주관적 인식을 보편화시킨 지배 논리이다. 결국, 객관적 인식이란 인식하는 주체가 대상을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객관화해서 지배하고 정복하는 수단이다. 이것은 주체가 객체를 분리·격리하는 불의한 차별주의이다. 이런 객관주의에서도 남자, 백인, 지식인, 성인은 주체가 될 수 있지만, 여자, 유색인, 무학자, 아동은 객관적 대상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객관적 대상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남자, 백인, 성인, 지식인과 분리·격리된 존재가 되는 것을 뜻한다. 흑인은 백인과 같이 학교에도, 식당에도, 심지어 교회에도 갈 수 없고, 버스와 기차도 따로 타야 하고, 길에서도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이런 논리가 장애인을 분리·격리시킨 것이다. 이런 객관주의의 대상에 대한 지배와 정복의 논리가 세계적 차원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낳았다. 서양근대주의의 객관주의가 이렇게 불의한 인식 방법임에도 지금까지도 학문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 진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객관주의에 따라 주체적 존재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예속당한 후자들이 주체적인 주인이 되려면 객관주의, 분리·격리주의의 거짓을 폭로하고 그 체계를 깨뜨려야 한다.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이 불의가 아니라 그것이 도리어 장애인을 위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잘못된 생각이 이런 서양근대주의의 객관·격리·분리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양근대주의가 자행한 또 다른 차별적 불의는 열등처우의 근대 노동윤리이다. 서양근대주의 노동윤리는 두 가지 전제를 하고 있는데,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 소유에 만족하지 말고 더 많은 소유와 생산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의 기준을 정하는 사람은 시대의 권력자들, 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지식, 법, 경제, 문화예술, 학교 교육 등 모든 사회적 영역에서 지배적 수단을 가진 권력자들이 정한다. 따라서 이런 지배 권력에 속한 노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열등한 처우를 받아야 한다. 이들이 지배 권력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 불의한 것이다. 그리고 무한정한 생산과 소유의 노동은 선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무한 소유의 노동력에 따른 불평등은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 평등한 것이다. 이런 서양근대주의의 열등처우 노동윤리가 임금 차별과 더 나아가 인간 차별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기 때문에 후자들이 차별에 대해 정당한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은 사회적 가치가 있는 노동을 못하기 때문에 열등한 인간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불의한 인식은 바로 서양근대주의의 열등처우 노동윤리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이런 서양근대주의의 세 가지 차원의 차별주의 문제를 철저히 인식하고 각성해서 극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자기 주인됨을 회복할 수 없다.
한편, 몇 년 전부터 장애계에서 당사자주의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복지대상에서 복지주체로의 당사자주의 주장은 장애인 복지 패러다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그러나 당사자주의가 장애인복지영역의 이해관계에서만 주창되어서는 안 되고, 주인됨과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 도피’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를 원하지만,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재가 유지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장애인들이 당사자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주장만이 아니라 장애 문제를 함께 극복하려는 책임의식을 갖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이런 책임 의식은 동시에 근본적으로 우리 안에 자명한 진리처럼 도사리고 있는 서양근대주의의 차별주의, 분리·격리주의, 열등처우의 원칙을 극복하는 주인됨의 각성을 뜻한다. 특히 주인됨의 각성은 차별주의만이 아니라 체념주의와 의존주의 의식을 깨뜨리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장애인들이 서양근대주의 차별주의를 내재화해서 다른 장애인들을 차별하는 차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장애인의 주인됨이란 나만이 아니라 장애인 모두의 주인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장애계 안에서 평등한 사회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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