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태 겉으로는 일단락,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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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법인 폐쇄가 가장 큰 성과
우선 도가니 사태가 가져온 성과를 살펴보면, 우선 비리의 온상이었던 인화학교와 인화원이 폐쇄됐다. 11월 18일 광주시는 인화학교와 인화원을 운영하는 복지법인 우석에 대해 법인 허가를 취소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2005년 광주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 사건이 처음 접수된 후 무려 6년5개월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회복지 역사를 보면 학교와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 어떤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어도 허가가 취소된 예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비록 광주시가 도가니 열풍에 밀려 취한 조치이긴 하지만, 사회복지법인도 잘못을 저지르면 폐쇄조치 될 수 있다는 선례를 이번 도가니 사태가 남긴 것이어서 장애계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매우 귀중한 성과라고 볼 수 있겠다.
또 여론에 떠밀린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경찰이 사건 발생 6년 만에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의 전면 재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여론이 들끓자 부랴부랴 다시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2개월 동안 전면 재수사해 온 광주경찰청은, 11월 18일 성폭행과 법인 비리에 연루된 인화학교 전현직 교사, 교직원 등 40명 중 14명을 형사입건하기로 했다는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경찰 수사결과 발표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지난 2006년 경찰이 인화학교 장애우 학생을 성폭행 했지만 증거불충분이라며 풀어줬던 교사 A씨와 B씨를 성폭행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일반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라고 하는데, 이 트라우마를 근거로 사법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직접적인 증거 대신 신경전문의의 의학적 소견과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을 토대로 한 심리분석 및 지능검사 결과로 가해자들을 형사 처벌하는 사례는 국내 처음이어서 주목되는 조치라고 한다.
이런 경찰 수사결과는 경찰이 도가니 사태로 조성된 여론을 얼마나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여서, 여론의 힘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밖에도 경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운동 소홀을 이유로 인화학교 장애우 원생을 상습 폭행한 퇴직교사 C아무개 씨와 성폭행 은폐 및 법인의 각종 비리를 주도한 우석법인 임원 2명 등도 업무상 횡령과 폭력 등 혐의로 각각 입건했다고 밝혔다.
도가니 사태로 해결 실마리 잡힌 성폭력 문제
도가니 사태가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과가 바로 장애우 성폭력 대책이다. 도가니 사태가 파문을 일으키자 국회는 10월 28일 본회의에서 일명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장애우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형량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면, 장애우 성폭력 가해자의 경우 공소 시효 없이 끝까지 붙잡히면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장애우를 성폭행하면 일반 성폭행 범죄에 비해 가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법안 내용은 법 체계에서 이례적인 매우 강력한 법안이라는 게 법률 전문가들 얘기다.
실제로 최근 도가니 사태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법원은 3급 지적장애를 가진 A아무개양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한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에 5년간 신상정보 공개라는 무거운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지방법원 판결에 따르면, 처음 법원은 판결에서 피해자의 지적장애를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가해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2심 법원은 ‘피해자가 지능지수가 낮을 경우 기억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는데,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신빙성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며 가해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런 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은 솔직히 도가니 사태로 조성된 여론을 의식하지 않았나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하고 있다.
어쨌든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도가니 사태 파문으로 사회복지법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장애우 성폭력 근절 대책도 마련되는 등 성과가 여럿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도가니 사태에 대한 정부와 국회 대책이 장애우 보호를 전제로만 하고 있다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모처럼 우리 사회에 장애우 인권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운 도가니 열풍이 제대로 된 장애우 인권과 복지 대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탈시설과 지역사회 위주의 복지 대책이 함께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 점에 대해서 정부와 사회는 일언반구도 없다.
또 웃자고 하는 소리이긴 하지만 도가니 사태로 쏟아진 대책들로 인해 우리 사회에 장애우들을 건드리면 큰 일 난다. 그래서 장애우를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질까봐 우려하는 시각도 장애계에 일부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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