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역국이 싫습니다"
본문
"나는 시설에서 12년 동안 살았습니다. 시설에 있는 동안 미역국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역국이 싫습니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장애인 한 분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한 말씀이다. 영화 ‘도가니’로 인해 최근에 이슈화된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는 지금에 와서 느닷없이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언론은 ‘도가니’ 문제가 마치 예전에는 없었던 것처럼, 지금 처음 나온 얘기인 듯이 말하고 있지만, ‘도가니’는 예전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광주 인화학교만의 문제도 아니다.
‘도가니’로 불거진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방향은 크게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과 투명성 강화,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의 권리보장, ‘탈시설-자립생활’ 권리에 대한 내용이다. 우선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 및 투명성 강화이다. 그간 정부의 사회복지사업은 사회복지시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사회복지사업은 헌법 34조와 사회복지사업법 4조에서 보듯이 국가와 지자치단체의 공적 책임 영역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복지사업을 민간이 주도하여 이루어져 왔다. 민간 공익법인인 사회복지법인이 사회복지사업을 주로 담당하도록 하더라도 사회복지사업의 성격 자체가 변화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에 대해 국가 및 지자체가 인건비·운영비·시설보강비 등 사회복지법인에 필요한 비용 대부분을 보조금으로 직접 지원하는 형태를 취하여 왔다.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 강화에 관한 논의가 제기되는 것은 이처럼 사회복지사업의 성격과 정부의 보조금 지급에 근거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사회복지법인은 사적 재산과 민간의 자율성을 운운하며 공공성 강화 논의 자체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 강화는 더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부에서 벌어지는 시설생활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횡령·배임 등의 비리로 말미암아 대다수 선량한 사회복지법인 운영자와 종사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이처럼 일부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인권침해와 비리를 근절하고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아니하면 사회복지법인은 비리와 인권침해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씻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로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의 권리보장 문제이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우리나라 인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인권국가라고 자부해온 이 땅에서 이렇게 처참한 인권유린이 벌어지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은 실로 충격적이다. 이런 끔찍하고 시대착오적인 장애인 인권침해사건은 장애인의 특성상 스스로 인권옹호나 권리구제를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 이는 장애인 인권보호 및 옹호시스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웅변한다. 차제에 현 장애인 인권옹호시스템의 한계를 직시하고 새로운 장애인 인권옹호 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또한, 사회복지서비스가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 욕구에 들어맞는 사회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하고 자신에게 제공된 복지서비스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공식적인 이의절차를 법에서 보장하여야 한다.
셋째로 탈시설-자립생활의 문제이다. 영화 ‘도가니’에서 드러난 인화학교 문제의 본질은 인화원이란 장애인생활시설, 인화학교란 기숙학교에서의 폐쇄적 수용을 내버려두고 있는 법과 정책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자기 방어가 취약한 사회적 약자를 폐쇄적인 공간에 대규모로 수용하는 한 인권침해와 비리 근절은 불가능하다. 장애인 당사자가 원하지 않고 장애인 당사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가족, 복지시설 등이 부당하게 시설에 수용시키는 것은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를 제한하고 배제하는 것으로,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정한 직접차별, 즉 “장애를 이유로 정당한 이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미국의 옴스테드 판결에서 본 바와 같이 불필요한 시설 격리수용은 장애인에 대한 본질적 차별이며, 재정부족을 이유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즉, 복지시설의 인권침해를 해결하는 일도 시급한 문제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복지시설에서 온종일 예배만 보거나 단순히 먹고 자는 일만 해결하며 의지도 욕구도 상실하게 되는 이른바 ‘시설병’을 해결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사회복지정책의 방향을 기존의 시설서비스 중심에서 탈시설-자립생활로 근본적인 전환을 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욕구를 최대한 반영한 사회복지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고, 장애인도 원하면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살면서 친구를 사귀고 교육을 받고 취업도 하는 등 비장애인과 같은 보편화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더는 그들을 시설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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