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태’, 어떤 정치가 필요한지를 질문해야 할 때 >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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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사태’, 어떤 정치가 필요한지를 질문해야 할 때

장애인 성폭력 대책을 바라보는 장애 여성 시각

본문

 

   
 

     쏟아지는 장애인 성폭력 ‘대책’

  최근 영화 <도가니>의 파장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법과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건국 이래 최초로 장애인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 나왔고, 국회에서도 소위 ‘도가니 방지법’ 입법을 서둘러 통과시키고 있다.

  장애인 성폭력사건 현장지원 활동을 하는 필자조차 언제 어떻게 제도가 바뀌었는지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인 반성폭력운동이 시작된 10년 이래 일찍이 이와 같은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적이 또 있었을까. 

  한편으로,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관심과 대책 마련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성폭력 경험 장애여성들은 성폭력을 발생케 하는 고립적 상황에 더해, 자신의 피해를 신고하고 사회적 소통을 시도한 이후에 또다시 고립되는 상황에 놓이기에 십상이다.

  이는 장애여성을 포함하여 성폭력 피해 경험을 한 여성의 많은 수가 폭력피해를 경험하고도 사법적 구제 절차를 신뢰하지 못해 신고나 고소를 꺼리게 하는 원인이 되어왔다.

  이 때문에 최근의 경향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무엇보다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회가 공감했고, 그들이 놓인 고립적 상황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까란 기대를 하게 한다는 점이다.

    

     처벌과 보호 담론, 그 양날의 칼

  하지만 ‘끔찍한’ 성폭력 사건이 여론의 관심을 끌 때마다 여론 무마성의 정부대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이런 풍경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것이다.

  급하게 만들어진 실효성 없는 대책이 진정한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번 장애인 성폭력 대책과 법률은 어떤 것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역시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정부 종합대책과 국회 성폭력 관련법 개정안 등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핵심 내용은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가해자 처벌 강화이다.

  성폭력사건이 이슈화될 때마다 성폭력 가해자 처벌에 집중하는 바람에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강력한 처벌 위주의 성폭력 대책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듯 가해자의 ‘극악무도함’과 그 처벌에만 집중하는 경향은 아직 성폭력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고 있는 우리 사회 시각을 반영한다. 누누이 이야기됐지만, ‘극악무도한’ 가해자와 ‘운이 없는’ 피해자라는, 성폭력범죄에 대입되는 전형적 구도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성폭력범죄 현실과 거리가 멀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성차별·성별권력 구도와 왜곡된 성문화는 누구라도 성범죄자가 될 수 있는 근원적 토대가 된다.

  성폭력 가해자의 대부분이 피해자와 잘 알고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 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결국, 무엇을 ‘문제’로 보고 있느냐는 그 해답을 결정지을 수밖에 없는데, 성폭력문제에서도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범죄행위자 형량만 높이는 근시안적 대책이 또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우려할 지점이다.

  또한, 이번에 정부와 국회가 내놓은 각종 성폭력 대책이 그 대상을 ‘장애인’만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문제를 들 수 있다. 모든 성폭력범죄의 친고죄 및 공소시효 폐지, 형법을 비롯한 성폭력 관련법의 체계적 정비 등은 십 수 년 동안 반성폭력운동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아동 성폭력 사건들이 대거 사회 이슈화 되자 오로지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책을 급조해 내놓고 관련 법률을 개정한 것처럼, 이번 ‘도가니 사태’는 그 대상을 장애인으로 옮겨놓았다.

  성폭력 관련 법·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아동’과 ‘장애인’만을 성폭력범죄에서 특별히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과잉 소환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법적 실효성과 타 정책과의 충돌 등 면에서 심히 우려되는 지점이다.            

  한편, 성폭력 관련 법률과 정책에서 ‘아동’과 ‘장애인’ 집단을 병렬적으로 나열해 특별히 보호를 해야 하는 집단으로 묶는 일은 일종의 관행이다.

  여기서 ‘장애인’이 어떤 유형의 장애인인가에 대한 논쟁이 별도로 필요하겠으나, 무엇보다 국가와 제도가 장애유형이나 경중, 나이, 처한 삶의 조건 등에 상관없이 장애인을 ‘아동’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의 정치적 효과는 상당하다.

  모든 사람에게 다른 삶의 조건들이 그러하듯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근본적 ‘권리’가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아동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단지 성폭력에 한정돼 보호 집단으로 상정되는 것은 또다시 장애인을, 그리고 그들의 성을 ‘보호가 필요한=무력한’ 것으로 만드는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법의 한계

  법은, 그리고 사회제도는 특정 집단에 배타적으로 합법적 지위를 부여한다. 그러한 법의 테두리에서 여성과 다른 많은 소수자가 예외적 존재로 등장하며, 애초에 동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란 존재하지 않았다.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동성애혐오, 계급차별, 장애차별 등, ‘정상성’에서 벗어난 많은 집단이 법과 제도의 예외적 존재로 갖가지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그리고 법과 제도는 합법적 지위를 부여받는 특정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경험과 인식을 ‘객관성’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구성된다. 이러한 법의 태생적 한계는 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이 소수자를 예외적 존재로 만드는 범주 구분 자체에서 비롯됐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장애’, ‘성별’ 등 차이를 부각하고, 보호해야 할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마음대로 나누는 것이다. 한 예로, 우리나라에서 강간죄는 여성의 ‘정조’를 침해한 죄라는 잘못된 인식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동과 미혼여성, 혹은 성 경험이 없어야 한다고 상정되는 여성은 강간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이 된다. 반면, 기혼여성이나 성경험이 많은 여성은 강간을 당할 수 없다는 신화가 법 적용과 해석에 깊이 뿌리박혀 있음으로써 강간범죄의 고소와 처벌 모두 어렵게 되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장애인 성폭력 문제를 법과 제도를 통해 해결하고자 할 때의 한계가 명확해진다. 법과 제도가 기반을 두고 있는 이 사회에서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지고 ‘예외적’ 존재로 구성되는 이들이 자신의 경험으로 기존의 ‘정상성’을 폭로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급진적 장애/성 정치 필요

  상담소에서 만나는 지적장애여성들(본 상담소 내담자의 약 90%가 지적장애여성이다)의 많은 경우가 비장애 남성과 관계 맺기를 욕망한다.

  비장애 중심의 사회가 구획한 ‘정상성’에서 배제돼 자기 자원을 가질 수 없고, 교육이나 노동 등의 기본적 권리를 박탈당한 장애여성들일수록 비장애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기 원한다.

  이때 장애여성에게 ‘몸/성’은 비장애 남성과 관계를 맺는데 ‘유일한’ 자원이 된다. 따라서 많은 경우 비장애 남성은 굳이 폭력의 가해자로 호명되지 않고도 장애여성과의 관계에서 맺는 우월적 지위 자체를 바탕으로 그녀들의 성과 감정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독점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장애여성이 행하는 성적실천과 욕망 자체가 주변인들에 의해 금지되고 ‘병리화’ 되기까지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다양한 방식과 수단을 통해 남성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으려고 하는 장애여성들의 많은 수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로 구성된다.

  ‘성적 도착’이나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편견으로 정신병원이나 시설에 감금되기도 한다. 장애인 시설이나 병원에 입원한 장애여성들에게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녀들의 몸과 성 모두 부정당하고 통제당하는 것이 순서다. 일부 장애인 시설은 지금도 장애여성들에게 강제적으로 불임이나 단종 시술을 시행한다. 

  지금껏 ‘상식’의 기준을 의심하지 않는 많은 사람은 이와 같은 현실을 사실상 암묵적으로 용인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상/비정상’의 구분을 더욱 공고하게 하며 ‘정상’ 사회의 안전함을 지켜왔다. 

  장애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와 같다. 최근의 경향에서 보듯, 법이 온정주의적으로 장애인을 ‘포함’하고자 하는 논리에는 사실상 장애인의 정치적 주체성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논리가 포함돼 있음을 성찰하고 더욱 날카롭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장애/비장애의 범주를 구획하고 폭력을 가하는 현실, 장애인을 포함한 특정한 집단의 성이 병리화되고 ‘배제’되는 현실을 드러내고 그러한 잘못된 범주구분을 해체하기 위해 근본적이고도 급진적인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작성자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소장 황지성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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