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안 그곳에 장애인 인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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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애인이 비인간적인 생활환경에 방치된 채 사실상 학대 상태에 놓여 있다가 구출됐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벌어진 일인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사건을 의뢰한 용인시 무한돌봄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관내에 계모에 의해 비인간적인 생활환경에 방치된 채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 놓여 있는 한 뇌병변 장애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후 단체와 외부 기관의 개입으로 장애인은 구출됐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여 있어 학대라는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가난한 집의 장애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함께걸음이 용인시 사건의 내막을 취재했다.
<용인시, 어머니의 반발 우려해 장애인 분리 못 시켜>
▲ 컨테이너 내부. |
지난 6월 초 장애우권익문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 경기도 용인시 무한돌봄센터 관계자로부터 사건 의뢰가 들어 왔다. 참고로 용인시에 무한돌봄센터가 생긴 건 올해 1월이다. 용인시 무한돌봄센터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개인이나 가정이 혼자 힘으로 위기 극복이 어려운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된 센터이다.사건을 의뢰한 용인시 무한돌봄센터 한 관계자에 따르면,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외진 곳에 컨테이너 한 채가 놓여 있고 그곳에 김아무개 라는 이름을 가진 장애우가 계모인 62세 어머니와 살고 있는데, 올해 43세이고 여성장애인이며, 뇌병변 장애가 심해 하루 종일 누워서만 지내는 1급 와상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센터에서 올해 1월부터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 가정을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장애우의 어머니는 컨테이너 안에서 유기견 30여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고 하며, 확인된 사실은 장애인이 애완견들의 오물로 뒤덮인 컨테이너 안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누워 있는 채 생활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외출할 때에는 밖에서 자물쇠로 문을 잠그기 때문에 사실상 장애우가 혼자 감금된 채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 밖에서 자물쇠가 채워지고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는 컨테이너 안에서 여성 장애우는 10년의 세월을 혼자 누워있어야 했다. |
장애우가 사실상 학대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돌봄센터 관계자는 이후 용인시와 구청 사회복지 담당공무원들과 함께 컨테이너를 방문해서 어머니를 상대로 장애인을 데리고 있지 말고 병원이나 복지시설에 보낼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어머니가 그때마다 “내 딸 내가 돌보는데 상관하지 마라.”“딸이 뇌를 다쳤기 때문에 병원이 아닌 꼭 내가 수발을 들어 줘야 한다.”면서 완강하게 거부를 하고 있어서 분리조치를 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있다는 게 무한돌봄센터 관계자 하소연이었다.
심지어는 주민등록을 확인해 보니, 장애인에게 남동생이 있는 게 확인돼서, 돌봄센터에서 남동생에게 연락해 누나가 힘든 상황에 놓여 있으니까 분리 조치를 취하라고 설득했는데, 남동생마저 새엄마를 설득해 보겠다고 무성의하게 대답한 후 전화를 끊고 그 후 연락이 없다는 게 돌봄센터 관계자 얘기였다.
연구소 인권센터 김진희 간사는 사건 의뢰를 받고,‘여성장애인의 어머니가 왜 장애우를 놔주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하나는 어쨌든 자식이니까 자기가 끝까지 돌보겠다는 생각으로 장애우를 데리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또 하나의 결론은 이 여성장애우가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생계비와 장애수당을 지원받고 있는데 이게 이 장애우의 어머니가 장애우를 놔주지 않는 이유는 아닌지 솔직히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해당 지자체인 용인시의 경우는 왜 학대 사실을 확인하고도 장애인을 어머니에게서 떼어 내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용인시 사회복지과 관계자에 따르면, 지역 복지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이 건으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는데, 문제는 시의 개입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용인시가 개입하면, 왜 공무원이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느냐며 어머니가 강하게 반발할 까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는 게 용인시 관계자 얘기다.
그리고 또 현 제도에 따르면 장애인을 복지시설에 보낼 때 기본적으로는 신청주의, 즉 장애우와 가족이 시설에 들어가겠다고 신청해야 시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구타 사실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없으면 공무원들이 강제로 장애우를 가족에게서 분리 조치 한 후 시설에 보낼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의 끝에 외부 기관, 즉연구소 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게 용인시 관계자 얘기였다.
<외부 기관 개입으로 10년여의 감금 생활 벗어나>
결국 용인시와 연구소 인권센터 실무자들은 장애인 입장에 서서, 장애우가 학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고, 또 장애우가 위급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하루 속히 어머니에게서 장애우를 분리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결론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6월 17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사무소에 용인시 공무원과 무한돌봄센터 직원, 연구소 인권센터 실무진, 파출소 경찰, 용인시 양지병원 관계자, 그리고 한 방송국 관계자가 속속 모여 들었다.
▲ 병원 관계자들이 여성장애인을 들것에 실어 구출해 내고 있다. |
이들은 곧바로 외진 산 밑에 있는 컨테이너로 가 어머니에게 “딸이 치료가 필요하니까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동의해 달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장애인의 어머니는 “다 나가라.”고 소리치며 반발했는데, 파출소 경찰이 어머니를 붙잡고 있는 사이 병원 직원이 여성장애우를 들것에 실어 데리고 나왔고, 이 장애 여성은 비로소 10년이 넘는 사실상의 감금 생활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병원에 실려 온 여성장애인의 모습은 한 눈에 보기에도 처참했다. 온 몸에 번져 있는 피부병 외에도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고, 이빨은 마모돼 단 두 개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 병원에서 여성장애인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다. 얼굴 전체에 시퍼런 멍자국이 있었다. |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아픈 사실은 애초 이 여성장애인이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서, 사지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와상 장애우로 알려졌는데, 병원에 데리고 와서 밥을 주자 혼자 앉아서 수저로 밥을 허겁지겁 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성장애인은 말도 했다. 연구소 인권센터 김진희 간사에 따르면 병원에서 장애우에게 세 마디를 물어봤는데, “여기 오니까 좋아요?”라고 물어보자 장애우는 “네.”라고 대답했고, “다시 살던 컨테이너로 돌아가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보니까 “아니요.”라고 분명하게 대답했고, “어머니와 같이 살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보니까 “아니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인권이라는 말이 부끄러운 학대받는 장애인 현실>
역시 김진희 간사에 따르면, 이 모녀 가정을 지켜봐 온 용인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과 무한돌봄센터 직원들의 소견서에는 ‘계모인 어머니가 딸인 장애우의 기초생활수급비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원삼면사무소 공무원 말에 따르면, 예를 들어 수급비가 나오는 날이 매월 20일이라고 하는데, 이 날만 되면 장애인의 어머니가 면사무소에 와서 공무원에게 수급비가 나오는 시간을 물어보고 통장에 입금됐는지 안됐는지를 꼭 확인하곤 했다는 것이다.
무한돌봄센터 관계자는 “어머니는 이 여성장애인에게 나오는 월 60여만원으로 개 사료값으로 20만원을 쓰고 나머지 40만원으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어진 돌봄센터 관계자 말에 따르면, 병원으로 옮겨진 이 여성장애인은 작년까지는 지체 4급의 경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올해 1월 어머니가 우겨서 지적장애와 뇌병변 장애 중복장애로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까닭은 1급과 2급 장애인에게만 지급되는 장애 연금을 받기 위해 어머니가 딸을 중증장애우로 둔갑시킨 것 같다는 게 센터 관계자 말이었다.
장애인은 결국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중증장애우가 되기 위해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루 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서만 지내야 했다는 게 용인시 등의 관계자들 지적이었다.
일단 장애인을 어머니에게서 분리돼 병원으로 옮겨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떼어놓는 게 대책의 전부는 될 수 없는데, 앞으로 이 가정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분리 과정에서 확인된 건 어머니도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분리 과정에 동행한 정신과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어머니도 과대망상 등의 정신 병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래서 현재 용인시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결국 드러난 사실은 장애인 뿐만 아니라 그동안 어머니도 소외된 채 방치되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 다 장애를 가졌고, 그래서 도움의 손길과 문제 해결이 시급했던 한 가정의 절박했던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말인즉슨 이 시점에서 장애인의 어머니를 가해자라고 싸잡아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말이다.
▲ 용인시 관계자들이 솔루션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사태 해결 후 용인시에서는 복지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솔루션 회의를 열어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했다. 다행인 것은 용인시가 향후 모녀를 각각 독립시켜서, 가능하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차후 협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장애인을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이런 비슷한 형편에 놓여 있는 가정이 얼마나 더 많을 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장애인이 이 대명천지에 감옥도 아닌 집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갇혀 지낸 채 누워있었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믿을까, 인권이라는 말이 있는 게 부끄럽다고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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