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꿈꾸던 장애인, 복지 사각지대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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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서혜영(장애여성네트워크 기자, 칼럼니스트)님의 기고 및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음을 알립니다.
“뇌병변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음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설마’하며 의아해 하거나 웃기도 합니다. 이것은, 장애인이 당당하게 살아가기에는 지금까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턱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애인도 당당하게 세상과 어울려 똑같이 살아가고 있음을, 음악을 통해 저는 보여주고 싶습니다. 또한 음악이 저의 삶이 되었듯 제가 만든 음악도 사람들의 삶 속에 묻어나길 바라며, 보잘것없는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창욱, 2008년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소감 중에서 -
오페라의 유령에겐 지하 은신처라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어떤 곳도 허락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추리소설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오페라의 유령’. 영국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훗날 만든 동명의 뮤지컬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팬텀(에릭)은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만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크리스틴 앞에 나서지 못하고 지하 은신처에서 생활한다. 그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에게 버림받고, 끝내 자신의 천재성을 세상에 온전히 펼치지 못한 채 종적을 감추고 만다.
지난 5월 13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SH공사 본사 앞에서 휠체어를 탄 한 장애인이 끝을 기약할 수 없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외롭고 힘든 투쟁의 첫걸음을 뗀 주인공은 뇌병변 1급의 장애를 가진 이창욱 씨다. 그가 들고 나온 피켓에는 ‘저는 오페라의 유령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팬텀은 장애 때문에 버려진 유능한 인재였습니다’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이창욱 씨는 지난 2008년 12월, 창의적이고 우수한 소양을 갖춘 국가인재에게 주어지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이 만든 음악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그는, 지금 그 세상이 만들어 놓은 불합리한 턱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오페라의 유령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팬텀의 경우처럼 음지에 숨어 살지 않겠다는 이창욱 씨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국가가 인정하는 인재로서 상까지 받았지만, 그는 현재 자신의 몸을 뉘일 작은 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옳지 못한 편견과 터무니없는 규정이 그를 복지 사각지대로 몰아넣었고, 국가는 그에게 오페라의 유령이 머물렀던 지하 은신처만큼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창욱 씨가 현대판 팬텀이 되어버린 원인은 무엇일까.
공부할 땐 장애인 탓, 상 받으니 시설 탓
이창욱 씨가 받은 대한민국 인재상은 그가 대구의 계명문화대 실용음악과(작곡과)에서 공부하던 때에 수상한 것이었다. 그는 인재상을 받은 이듬해에 대학 총장상까지 받으며 졸업을 했다. 이 시기의 이창욱 씨는 대구광역시에 있는 한 시설에서 지내고 있었다. 시설에는 그가 15세 때 입소했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창욱 씨가 머물렀던 시설이 그의 학업 성취에 큰 도움을 줬을 법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자, 시설에서는 ‘기술을 배워 취업하라’며 그에게 음악가의 길을 포기할 것을 강요했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를 밴드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할 때마다, 복지사는 ‘음악으로는 취업이 안 되고, 자립도 할 수 없다’며 타박했다. 결국 이창욱 씨는 2009년 4월,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에 시설을 탈출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복지 사각지대로 떠밀리다
서울로 올라온 이창욱 씨는 받은 상금으로 숙박시설을 전전하는 생활을 하던 사이 주민등록증이 말소되고 기초생활수급권을 박탈당한다. 그러나 다행히 2009년 8월 서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을 거쳐 10월에는 굿잡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홈에 들어가게 되고, 주민등록증과 기초생활수급권도 회복한다. 그는 체험홈에 입주해 지내며 지인들의 도움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게 되고, LH, SH공사의 영구임대주택 보증금을 모으며 장애인 인권에 관한 일들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2010년 7월, 굿잡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홈 사업이 운영상 어려움으로 폐지되고, 기존 자체사업으로 운영되던 자립홈은 서울시 체험홈 운영사업자로 선정된다. 여기서 이창욱 씨는 서울시복지재단이 선정한 이용 자격(생활시설 이용자 혹은 시설을 퇴소한 지 1년 미만, 시설이 속한 재단의 본부가 서울에 있어야 함)을 갖추지 못해 체험홈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립생활센터는 이창욱 씨의 사정을 설명하고 대안을 모색했지만, 서울시복지대단은 오히려 이씨를 퇴소시키거나 센터 자체에서 지원하라며 압박을 가했다.
게다가 이창욱 씨를 옥죄어 댄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로 상경한 뒤 줄곧 시도해 왔던 LH공사, SH공사 영구임대주택 신청이 현실성 없는 선정기준 배점 때문에 매번 탈락됐고, 앞으로도 입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또한 이창욱 씨를 사지로 몰아내고 있는 큰 문제이다. 이창욱 씨는 “나이와 서울 거주 기간, 가족원 수 등의 여건에 따라 점수가 주어지는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 선정 방법으로는 나이도 젊고 서울 거주 기간도 짧으며 독거인 나 같은 사람들은 길에 나앉는 상황이 되어도 집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의 선정기준에 의하면 100점 만점 중 75점은 되어야 겨우 입주가 가능하나, 이창욱 씨는 앞으로 서울에서 10년을 살아야 겨우 71점 정도가 된다고 한다.
「서울특별시 영구임대주택 운영 및 관리규칙」입주대상자 선정기준 표 (개정 2003.02.15)
구 분 |
배 점 |
배점 기준(대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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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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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구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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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 이상 |
30 |
모집공고일(2011.02.21)현재 동일 주민등록등본상 등재된 세대주를 포함한 총 세대원 수 - 세대주, 배우자, 세대주 및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 동거인, 형제자매, 사위, 며느리 등은 가구원수 에 포함되지 않음 |
4인 |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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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 |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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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이하 |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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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구주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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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이상 |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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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9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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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9 |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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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미만 |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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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 울 시 거주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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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상 |
20 |
세대주가 모집공고일 현재부터 계속하여 서울시 에 거주한 기간(주민등록 말소기간은 제외) - 세대주가 세대원이었던 기간도 포함됨 - 타 시․도로 전출했던 경우에는 서울시에 재전 입한 날부터 산정 |
5~9 |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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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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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구원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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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3 |
20 |
○ 유형3은 아래의 3개항, 유형2는 2개항, 유형1은 1개항에 해당하는 자가 각각 가구원에 포함된 경우를 말함 ○ 수급권자로서 - 65세 이상의 직계존속을 부양하는 자 - 장애인 1 ~3급 - 소년 소녀가장 - 10년이상 장기복무후 전역한 제대군인 |
유형2 |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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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1 |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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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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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 수급권자로서 - 철거지역 이주자 - 재해이재민 - 위험건물철거민 - 장애인(4~6급) ○ 국가유공자, 모 부자 가정 ○ 비수급권자로서 - 장애인 1~3급 - 65세이상 직계존속을 1년이상 부양하는 자로서 소득은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의 소득평가액 이하, 재산은 재산의 소득환산 특례기준인 기초공제액의 2배 이하인 자 |
※ 4번과 5번항목은 중복하여 배점을 산정할 수 없음
표에서 보듯, [60세 이상] 보다 [50세~59세]의 점수가 더 높다. 통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서민정책으로서 생활력이 더 약한 연령층의 배점이 더 높아야 함에도, 기이한 배점 기준을 보이고 있다.
항목 4번과 5번은 비장애인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기준이다. 장애등급 1~3급의 장애인이 65세 이상의 직계존속을 부양하기 어려우며, 10년 이상 장기복무 후 전역한 제대군인일 확률 또한 매우 희박하다. 또한 항목 5번은 4번과 중복해 배점되지 않으므로, 결국 장애인은 이와 같은 괴악한 배점기준에 의해 입주대상 기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작은 희망을 외면하는 세상, 그러나
이창욱씨는 “서민들의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영구임대아파트의 선정 기준이라는 것이, 정말 가진 것 없는 독거 장애인에게는 넘기 힘든 높은 벽일 뿐이다. 또 복지재단의 기준에 맞지 않은 사람이 기거하게 했다는 이유로, ‘자립센터가 복지재단을 속였다’며 비난하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시설을 탈출해 자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부조리와 불합리한 제도들을 알게 됐다. 이런 문제들이 장애인의 의지를 꺾는 게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복지 사각지대로 떠밀린 채 생존을 위협받게 된 이창욱 씨. 그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았을 때, ‘저 같은 사람도 훌륭한 작곡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장애인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얼마 전 그는 생계를 잇기 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 듣던 MP3 플레이어를 팔아야만 했다. 잘 곳도 없이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나가는 지금, 그가 학창시절 노력하며 바랐던 작곡가의 길은 그저 요원한 꿈에 불과할 뿐이다.
이창욱 씨는 “잘 곳이라도 있어야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세웠다.
국가가 인정한 인재를 그 국가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외면하는 요지경 속에서, 이창욱 씨는 쉽사리 끝나지 않을 투쟁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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