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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앞에 가로막힌 장애인들의 접근권

[화보] 우리도 전직 대통령들 묘소 앞까지 다가가고 싶다!

본문

 

   
▲ ⓒ채지민 객원기자

  국가에서 직접 관리한다는 건 국민 모두에게 동등한 자격과 혜택을 부여한다는 뜻과 같다. 국립(國立)이라는 말 자체가 ‘나라에서 건립함’을 의미하고, 그건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私立)과는 대립되는 반대어로 존재함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국립공원(國立公園)이 국가 차원에서 모든 국민을 위한 휴식처를 제공하듯이, 국립묘지는 국민 모두가 함께 참여하며 참배할 환경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약속과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국립묘지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그 명칭에 붙은 숫자의 상징성만으로도 숙연함이 느껴질 ‘서울 4·19’, ‘광주 5·18’, ‘마산 3·15’ 또한 국립묘지로 지정되어 있다. 죽음으로 떠나간 이들은 그 공간에 영원의 안식처를 마련하고, 죽음 아닌 상처를 간직한 이들은 떠나간 동료나 전우나 선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그 자리를 찾아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엔 커다란 방점이 찍혀야 한다. 죽음 아닌 부상을 당해야 했던 대부분의 동료나 전우나 선후배들이 ‘장애인’의 삶을 살아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그리운 나의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국립묘지를 찾았다면, 그렇다면 ‘국립’인 그 시설은 장애인들을 얼마나 따뜻하게 배려하며 맞이하고 있을까? 가족 형제와 전우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길은 과연 ‘국립(國立)’이라는 격에 맞는 시설들로 갖추어져 있을까?
  전체 국립묘지들의 가치와 그 가중치를 가늠할 필요는 없겠지만 일단 이번에는 ‘최초’의 국립묘지로 상징되는, 더불어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3인이 영면의 안식을 취하고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화보 안에 첨부하는 모든 촬영 이미지들은,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의 시선 높이를 기준으로 촬영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전체적으로 완만한 경사인 산 형태의 지형에 따라 이동이 진행된다. 수동휠체어라면 땀이 솟아날 만한 각도가 될 테고, 전동휠체어라면 이동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만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문제는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아스팔트길이 아닌, 중간마다의 연결통로가 애매해진다는 점이다.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그 ‘바로 앞’ 지점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이동이 가능할 우회로는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필요 이상의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비장애의 눈에선 사소하게 보일 높이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커다란 장벽으로 다가온다. 바닥면을 바위 형태의 돌로 장식해놓은 건 비장애의 발걸음에선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휠체어의 바퀴에겐 극심한 요철 형태의 굴곡이 된다. 계단으로 연결된 길이라면 ‘통행금지’ 간판을 내걸어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과 같은 여러 추모 시설물들이 현충원 곳곳에 건립되어 있지만, 예외가 없을 만큼 계단 형식의 구조물이 가로막고 있다. 이는 장애인들의 접근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증거일 뿐이다. 계단 한쪽에 완만한 경사로를 설치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 정도의 고려와 배려도 없이, ‘국립’의 명칭만 강조하는 게 합당한 일인가?

   
▲ ⓒ채지민 객원기자
   
▲ ⓒ채지민 객원기자
   
▲ ⓒ채지민 객원기자

  ‘위풍당당’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장군묘역을 예로 살펴보자. 입구부터 경사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가는 길이 힘들다 해도 방문할 마음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든 올라가겠는데, 휠체어 바퀴가 감당하기엔 바닥면의 형태가 불편함을 가중시킨다. 게다가 다 오르고 나면 장벽과 같은 계단 구조물이 등장한다. 어떡하라는 건가. 거기까지만 눈으로 보고 가라는 뜻인가?
  묘역 안으로 들어섰다 해도 난관은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바닥면의 형태는 휠체어의 이동을 제한시킨다. 이동을 한다 해도 다시 내려갈 길이 답답한 문제로 남는다. 혼자서는 참배도, 헌화도 불가능한 묘역일 뿐이다. 무명용사들의 공간과 장군의 묘역이 이 정도인데, 전직 대통령들의 묘소는 모든 국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무언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게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 ⓒ채지민 객원기자
   
▲ ⓒ채지민 객원기자
   
▲ ⓒ채지민 객원기자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입구부터 비장애 성인의 걸음속도로 측정한다면, 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가 11분 내외의 거리, 거기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까지는 3분 내외, 다시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까지 또한 3분 정도 소요된다. 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는 입구로 향하는 길부터 숨이 막힌다. 수동휠체어를 혼자 움직이는 건 아예 불가능하고, 전동휠체어도 이만큼의 등판각도가 가능할까 싶은 가파른 언덕길을 우선 올라야 한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건 20여 개의 육중한 계단이다. ‘장애인은 여기까지!’라는 안내판이라도 내걸어놓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든 올라갔다 해도 또 다른 계단들이 앞을 막는다. 보수든 진보든 뭐든 간에, 이념의 가치와 신념이 대입될 필요가 없는 게 전직 대통령 묘소의 참배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만나는 일이 보행 가능한 국민으로 제한된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계단을 오르내리며 떠오르는 생각은 난감함, 그것뿐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 ⓒ채지민 객원기자

  서울 한강 이남에서 최고의 명당자리라고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의 묘소 입구에선 말문이 막힌다. 국민 모두를 배려하지 않은 ‘그들만의 명당’이기 때문이다.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들만 염두에 두며 하는 발언이 아니다. 이 곳을 방문하고자 찾아든 국민 가운데는 신체적으로 이동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적지 않고, 유모차의 자녀와 함께 방문한 젊은 부부들 또한 많다. 국민 모두가 편하게 찾고, 어렵지 않게 이동할 만한 방안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지 않은가.
  60여 개의 계단은 하나의 성(城)을 연상시킨다. 계단만 많은 게 아니다. 몇 계단 오른 뒤 직선의 길을 한참 이동해야 하고, 또 계단을 오른 뒤에 마찬가지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집권자의 권위와 위상을 마음껏 과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만의 명당’에는 그들만의 추모와 연대 의식만 존재한다는 거, 확인할 건 그것뿐이다.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들을 만난다는 게 이렇게 어렵고 힘들며 불편해야 할 일인가? 장애인이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대통령은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예외의 모습은 3분 거리에 있는 ‘누군가’를 통해 ‘누구나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다.

   
▲ ⓒ채지민 객원기자
   
▲ ⓒ채지민 객원기자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묘’라 새겨진 커다란 비석 앞에 다가서는 건, 더욱이 분향을 하고 헌화하는 모든 참배의 예는 수동휠체어에 앉은 장애인 혼자의 힘으로도 모두가 가능하다. 입구부터 다르다. 바닥면도 다르고, 평지 형태의 진입로는 모두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인사로 받아들이게 된다.
  꽃 한 송이를 올리는, 향을 피우는, 기도를 하고 절하는 모든 참배의 예식이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진행될 수 있다. 한쪽 리본에 새겨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우리는 행복한 국민입니다’라는 말이 가슴에 확 와 닿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민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전직 대통령이 있다는, 언제든지 찾아와 마주대할 수 있는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인 것이다.
  이런 진입로를 만든 게 대통령 당신의 뜻이든, 유족의 뜻이든, 지인들의 의견이든, 정부의 정책이든, 현충원의 구상이든 뭐든 상관하지 않겠다. 중요한 건 이런 배려가 실제로 현실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들의 접근권을 이만큼 확실하게 보장한 전직 대통령 묘소가 있는데도, 왜 다른 대통령들에겐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것인지… 정부 담당자들에게 그 이유를 묻고 싶다.

   
▲ ⓒ채지민 객원기자
   
▲ ⓒ채지민 객원기자

  지금 당장 대안을 내놓으라는 건 아니다. 설익은 정책을 만들어 수일 내로 공사를 시작하라는 주문도 아니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서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대안을 마련하고 있었는지, 대안이라고 마련한 게 있기는 있었는지 그 여부가 궁금할 따름이다. 국민 모두는 전직 대통령들을 찾아 마주 대하며 대화를 나눌 권리가 있다. 누구든지 그들 앞에 다가서는 행위가 자유롭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누구는 갈 수 있고 누구는 갈 수 없는 시설구조가 되어 있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게 어려운 일인가? 불가능한 일인가? 화려한 전시행정에 몰두하기보다는, 자신의 치적 쌓기에 급급하기보다는, 국민 하나하나가 자신의 권리행사에 제한 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며 시급하다고 판단된다. 비장애 일변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정부의 눈높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실질적인 고려와 배려가 실천으로 완비되기를 이 자리를 통해 요청하고 요구하고자 한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전직 대통령들의 묘소를 찾아 장애인들의 접근권에 대해 살펴보는 동안, 불현듯 떠올랐던 얼굴 하나가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저기 남쪽 어딘가에서 맨바닥에 바짝 눕듯이 돌 하나로 국민 모두의 접근성을 배려한 전직 대통령 누군가가 마음 아리게 떠오른 것이다. 사후(死後)에도 국민과 나누는 ‘소통’은 바로 그런 모습이 올바른 정답 아닐까?

   
▲ ⓒ채지민 객원기자
작성자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jm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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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님의 댓글

김은희 작성일

박정희대통령모지에는 외 장애인훨체어를 맨들지안ㄶ아나요.
조속희 맨들어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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