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외면한 기초생활보장제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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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은 상대빈곤선 도입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중심 요구로 하여 현재 20여 개의 시민사회노동단체가 함께 구성한 연대체이다. |
얼마 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채무를 해결하고 싶다며 파산신청을 하기 위해 빈곤사회연대를 찾아오신 노인이 있었다. 자신감을 잃은 말투에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지 못하는 것은 인생에서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하고 이제는 몸뚱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난한 이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분에게는 채무보다 더 심각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생계비였다. 하시는 일이 있냐는 질문에 오후 4~9시 정도까지 지하철에서 구걸을 한다고 했다. 폐지라도 주우시지 왜 구걸을 하냐는 질문에 자기 다리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젊었을 때 사고로 한쪽 다리의 무릎 밑이 의족이어서 걸어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잠시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나라가, 이 나라의 사회복지를 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수급신청을 하지 않느냐고 하자 2009년 중순경에 10년 넘게 연락을 안 하던 자녀들과 만나고 있다는 이유로 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었다. 노동하고 싶어도 노동할 수 없는 사회,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최저생계비 이하의 삶을 살아도 국가의 최소한의 지원조차 받을 수 없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의 부양의무제 기준 때문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부양의무자(자녀와 배우자)의 금융 및 재산조회조차 사회복지 담당자가 담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자녀들과 부인이 살고 있는 상황 또한 절대적 빈곤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기초법에 보장돼 있는 부양의무제 기준조차도 현실에선 지켜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분은 수급에서 탈락한 그때부터 연금 20여 만원과 하루 5시간 구걸해서 번 돈으로 매월 쪽방의 20여 만원 월세를 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1년 반 넘게 매일같이 이렇게 살아온 이 분은 끝내 부인과 이혼을 결심하고 있었다.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 동안 지칠 대로 지친 삶을 살아온 이 분은 어차피 서류상의 부부이니 수급 신청을 하는데 복잡할 뿐이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문제는 비단 이 분만의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조차 국가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103만 명의 비수급 빈곤층의 이야기이다. 그동안 빈곤사회연대가 쪽방, 임대아파트 등 빈민 밀집지역에서 만난 이들 중 비수급 빈곤층의 대부분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것이었다. IMF 이후 일자리를 잃거나 사업부도를 맞은 이들은 가족들을 더 이상 대면하기 어려워 집을 나왔고, 10년 넘게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지내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서류상의 이유로 최저생계비 이하의 죽음을 강요하는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혹은 10년 넘게 시설에서 생활해 오다 이제는 자립생활의 의지로 힘겹게 시설에서 나온 장애우들 역시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그나마 가족들과의 관계도 깨어지고 갈 곳도, 살아갈 길도 막막한 상태에 있다.
작년 장애아 아버지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억한다. 아들의 수급을 위해 자신이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아버지… 그 죽음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수급 노부부의 죽음이 있었다. 2010년 12월 31일, 모두가 새해를 맞는 설렘에 들떠 있을 그때, 60대 노부부는 죽음을 결심하고 있었다. 노부부는 서류상 이혼한 상태로 부인에게 나오는 43만 원 수급비로 월세 30만 원을 내며 살아오다 더 이상 수급비만으로 살 수가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의 선택을 해야 했다.
이 뉴스를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들의 불효와 도덕성의 파탄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부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서 100만 명이 넘는다면, 과연 그 부양의무를 지키지 않는 부모와 자녀들이 모두 기본적인 예의와 도덕성이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들이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도덕성을 갖춘다면 한국사회의 빈곤은 해결되는 것일까? 구걸을 해서라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빈곤은 사라지는 것일까?
기초법 시행 11년, 강산은 변해도 기초법은 변하지 않았다
여러 독소조항으로 인한 기초법의 좁은 문을 뚫고 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상황도 지독하게 빈곤하기는 마찬가지 이다. 1인 가구에게 지급되는 수급비는 최저생계비가 역대 두 번째의 인상률이라는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44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사회의 빈곤 문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노동력 유연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이 감소한 이들은 더욱 빈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국가가 지원하기 위해 2000년부터 시행된 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다. 하지만 부양의무제 기준은 이런 기초법의 취지에 어긋나 시행 내내 여러 시민단체에서 폐지를 주장해왔으나 1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7,000여 가구를 표본가구로 매년 실시하는 <한국복지패널>의 2009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수급신청자 본인의 소득과 재산은 기준에 부합하나 부양의무자로 인한 수급신청 탈락비율이 58.3%에 달하고 있다. 최근 빈곤에 대한 부양의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빈곤한 사람은 ‘정부’에서 일차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74%가 넘고, 선지원 후 보장비용을 청구하는 구상권의 행사에 대해서도 찬성의 비율이 반대하는 비율보다 높게 나타났다.(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방안 정책토론회, 2009.4.14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현행법은 부양의무자의 실제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인 경우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와 연동돼 있는 부양능력 판별기준은 그 기준 자체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빈곤(층)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빈곤으로 인해 가족 관계가 취약해져 있는 조건에서 부양 의무자 기준은 가족관계의 파탄까지 야기하는 요소로 빈곤층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이 되고 있다.
작년은 최저생계비 실계측 해였다. 실제 2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생계비 조사를 하는 것이다. 이에 작년 여름,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중생활보장위원회를 구성해 수급가구 17가구에 대한 가계부 조사 등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가구들은 수급비로 모자라 빚에 의존해 살고 있었고, 자녀를 3명 둔 한 엄마는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구걸을 해서 부족한 생계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최저생계비는 특정소득집단의 생계비품목을 조사해 조사자가 자의적으로 합산해 화폐가치로 환산하는 전물량 방식으로 계측되고 있다. 이는 절대적 빈곤선 계측 방식의 일환인데, 이런 방식으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전혀 드러낼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조사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한 것으로, 다시 말하자면 예산에 맞추기가 용이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실제로 최저생계비는 법에 규정된 국민의 소득‧지출수준과 그 격차가 점점 벌어져 1999년 계측된 최저생계비는 같은 해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40.7%였다가 2008년에는 30.9%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3년에 한 번 돌아오는 계측 해였던 작년, 최저생계비 인상률은 5.6%. 복지부는 이를 두고 역대 두 번째로 많이 오른 금액이며, 작년에 비해 두 배도 넘게 인상됐다고 발표했다. 해서 2011년 최저생계비는 143만9,413원(4인 가구 기준)으로 실제 지급되는 현금 급여는 4인 가구 기준 최대 117만7,000원 수준이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 532,583원, 현금 급여 최대 436,044원) 이렇게 해서 2011년 최저생계비에는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최초로 휴대전화 요금 25,000원, 아동 문제집 학기당 2권 등을 인정하고 있다. 1~3인 가구는 이마저도 쪼개어야 한다.
이 외에도 비현실적인 재산소득기준과 추정 소득 등 기초법의 독소조항들은 10년 넘게 제자리를 지키며 410만 명의 사각지대를 양산, 확대하고 있다.
MB정부의 맞춤형 복지가 의문의 가는 이유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지급되던 에너지 지원도 903억 원 전액 삭감, 기초생활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빈곤층에 대해 지원하던 한시 생계구호 예산 4181억 원도 전액 삭감됐다. 차상위 계층 대학생 장학금 예산은 2010년 805억 원에서 287억 원으로 대폭 삭감됐고, 2학기부터는 폐지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복지 지출이 사상최대’이며 이쯤 되면 ‘복지국가에 거의 가깝다’고 말했다. 작년 대비 올해 복지예산 증가율은 6.3%로, 금액으로 따지면 5조1,000억 원이 늘어나서, 복지예산의 총규모는 86조3,000억 원이다. 하지만 늘어난 복지예산 중 공적연금 대상자 확대에 따른 자연증가분이 2조2,000억 원, 법적 의무지출 증가분이 6,848억 원, 보금자리 주택 등 주택관련 예산이 1조3,000억 원 이다.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늘어난 복지예산은 8,049억 원밖에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하는 맞춤형 복지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의문이 가는 건 지나친 걸까?
최저생계비는 기초법의 급여수준인 동시에 선정기준은 물론 보육료지원, 의료급여, 장애수당, 한부모자녀, 소년소녀가장 등의 선정 기준이 되고 있다. 즉, 한국 사회복지서비스의 기준선으로서의 위상을 함께 가지고 있다. 때문에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의 턱없이 낮은 기준은 여타 사회복지의 기준을 낮추기도 해, 많은 이들을 사회보장의 무권리상태로 내몰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저생계비 결정방식을 상대적 방식과 기준으로 전환해야 한다. 즉 ‘평균소득’ 등을 기준으로 하는 상대빈곤선 도입이 절실하다. 현실적인 사회지표가 될 만한 상대빈곤선 기준선을 도입해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고, 수급권자의 가구유형, 생활실태, 개인 특성을 고려한 최저생계비 결정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여야당 8명의 의원들이 개정안을 내놓고 있는 부양의무제 기준도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기초법의 시행 취지에 따라 빈곤을 가족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기 위해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생계를 비관해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죽음의 행렬을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끝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군다나 너도나도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추운 이번 겨울, 410만 명의 기초법 사각지대에 있는 비수급 빈곤층과 수급을 받고 있어도 지독한 가난 속에 매일매일 살아가야 할 157만 명 수급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극한의 빈곤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을 배제한 복지정책이라면 그것은 소리만 요란한 깡통복지이다.
이를 위해 작년 조계사 앞 천막 농성을 시작으로 결성한 기초법개정 공동행동은 (비)수급 당사자들과 함께 기초법 개정을 위한 실천을 2011년, 2월 임시국회를 시작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그 실천에 (비)수급당사자들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려는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셨으면 한다. 가난한 이들이 수혜가 아닌 권리로 자신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당당히 사회에 요구하고, 10%의 사람들이 90% 이상을 독식하는 사회가 아닌 모두가 평등하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함께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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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디딤돌님의 댓글
디딤돌 작성일이런 폐단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치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정말 개새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