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모여서 슬퍼하면 안 되고 진실을 밝히자고 외치면 안 되는 걸까요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왜 우리는 모여서 슬퍼하면 안 되고 진실을 밝히자고 외치면 안 되는 걸까요

본문

[인권오름] 

용산범대위 집행위원장을 맡아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래군 씨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12월 28일 있습니다. 박래군 씨는 1년여 간 순천향병원과 명동성당에서 수배생활을 하며, 용산참사의 해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박래군 씨는 1월 9일 용산참사 철거민열사 장례식과 1월 11일 삼우제까지 마친 후, 경찰에 자진 출두하여 구속되었다가, 구속 100여일 만인 지난 4월 30일 보석으로 석방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1심 선고를 앞두고 정종숙 씨가 쓴 탄원서를 싣습니다.[편집자주]

소중한 재판을 맡아 주신 이숙연 재판장님께

저는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해 애쓰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아내입니다.

직장 일로 남편의 재판에 가보지 못해 재판장님을 뵙지 못하고 이렇게 탄원서로 인사드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 싸움은 수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워하고 몸으로 마음으로 지지하며 함께 했던 일이고 정당한 요구였으므로 재판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진실은 승리하리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재판을 받고 있는 저희 남편에게 지난 11월 25일 검찰은 징역 5년 4개월을 구형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고 억울하고 비통하여 재판장님께 탄원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신 구속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자식, 아내, 부모님, 친지, 친구와 선후배, 동료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주고 그가 해오던 가치 있는 일도 강제로 중단되게 하는 중대한 일입니다. 선고를 앞두고 이 사건에 대해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 주시고 정당한 판결을 내려 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검찰의 구형 소식을 듣고 두 딸의 엄마인 저는 아이들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두 딸은 아빠의 수배와 감옥살이로 1년을 넘게 아빠 없이 살았고 아빠의 면회를 다니며 힘들게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고2, 고3 시절 학업만으로도 벅찰 시기에 가슴 한 켠에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엄마와 아빠를 위로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늘 고단한 삶을 살아온 아빠를 지지하고 힘이 되어 주었던 착한 딸들이 그동안 감내하며 살았던 나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이는데 혹시라도 잘못된 판결이 내려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아빠의 구형 소식을 듣고 아이들은 몹시 슬퍼하였고 분노하였습니다.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한 일이 무슨 죽을죄라도 되는 듯, 징역 5년 4개월을 구형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감정을 가지고 악의적으로 편파적인 구형을 했다며 정말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큰 딸의 고 3 담임선생님은 학기 초에 가정환경조사서를 보시고 딸아이를 불러 아빠는 아직도 수배 중이냐고 물었습니다. 구치소에 계시다고 하니까 구치소에 계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아빠라서 다행이라며 자랑스럽겠다고 하셨습니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다 마음으로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는 일을 한 아빠에게 검찰이 내린 이런 가혹한 형벌을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진실을 외치는 일을 하면 몇 년씩 감옥에 가두는 세상을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참으로 막막했는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방에서 아이는 엄마를 꼭 안아 주고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83세의 고령에 심장병을 앓고 있는 부모님 생각도 떠나지 않습니다.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머슴살이로 시작해 등골이 휘도록 고생하며 한평생 사신 분들입니다. 자식들 대학 보내려고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과일이며 채소를 장에 내다 팔고 그것도 모자라 살을 에는 추운 겨울에는 뻥튀기 수레를 끌고 다니며 장바닥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한평생 고생만 하신 두 분에게 이제는 병만 남았고 언제 돌아가실지 걱정되는 위급한 날들을 힘겹게 보내고 계십니다.

시골에서 두 분만 사시는데 얼마 전부터 아버님께서 자주 심장에 통증을 느끼시고 진지를 잘 드시지 못하십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먼저 떠난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고 시커멓게 타버린 속을 삭히고 사시며 아들에게 안 좋은 일 있을까 봐 걱정하며 사시는 부모님을 또 가슴 아프게 해 드리면 어쩌나 걱정이 앞섭니다.

아버님도 여느 부모님처럼 자식이 친구들처럼 국회의원도 되고 좀 편하게 살기를 바라시곤 했지만 그의 신념과 실천이 옳다는 걸아시고 말없이 지켜봐 주시고 잘되길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옳은 일을 하고서도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감옥살이나 하는 현실을 마주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그도 사랑하는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아내가 있습니다.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아빠이고 누구의 남편입니다. 그도 한 인간인데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약해지고 험난한 길을 비켜가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가족들에게 많은 걸 못 해 주었다고 늘 미안해하며 살았습니다. 지난 겨울, 보석으로 나오기 전에 감옥에서 끼적인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 가는 길 옳은 길
내 걸어가는 길의 어딘가에 감옥이 있다.
우회로를 찾다보면 처신이 치사해진다.
감옥, 두렵지 않으나
가족들은 마음 아파한 관계 맺은 인연들은
또 무슨 죄냐.

난 늘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
내 가는 길마다 설움
눈물 꾹꾹 눌러 참으며 함께 하는 사람들

그가 흘린 눈물과 고뇌와 무거운 짐을 헤아려 보면 마음이 아파서 차라리 심장이 딱딱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는 많은 걸 못해 주어 미안하다고 하지만 실은 가족들에게 많은 것을 줍니다. 바쁜 시간 쪼개어 아이들과 놀아주고 이야기 나누고 마중 나가 줍니다. 저에게 아침에 푹 자라고 하고 일찍 일어나 아이들에게 아침 밥상을 차려 주고 학교 보내 주고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가 나누어 준 정신적인 것들은 부족한 물질을 채우고도 남기에 가족들은 만족하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정신적인 지주라고 여기고 존경합니다. 평상시 살아오면서 보여 준 그의 마음 씀과 정성스러운 행동과 사랑, 그의 삶이 그를 믿고 지지하게 한 것입니다. 수배 중에 생긴 어깨 통증과 고관절탈구가 쉬이 낫지 않아 고생했는데 감옥에서는 기본적인 치료도 못 받아 무척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다 낫지 않은 몸으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데 이런 소식을 듣고 가족들 모두 망연자실했지만 힘을 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기 위해, 약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선하게 살기 위해,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와 진실이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개인적인 희생을 감내하면서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그를, 너무도 소중한 그를 가족들은 지켜 주고 싶습니다.

 

   
그림: 만화활동가 이동수
똑같은 일이라도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고 나와 다른 삶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님의 가치관과 같지 않은 생각일지라도 마음을 열고 가슴에 담아 들어주시는 따뜻한 분이시리라 믿고 조금 더 말씀 올립니다.

용산참사는 벼랑 끝에 내몰린 철거민을 무리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행한 일입니다. 불에 타 죽은 사람은 고귀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고 자식들과 살아 보려고 애쓰던 아버지들이고 직무에 충실했던 한 경찰관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였고 안타까워하였고 무리한 진압에 분노하였고 그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싶어 했습니다. 죽음을 가슴 아파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대책위가 꾸려졌고 추모대회를 열려 했습니다. 그런데 추모대회는 허가해 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잣대로 그 추모대회는 허가받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집회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허가해 주지 않았으니 모이지 않았어야 했을까요? 비통하고 울분에 가득 찬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원통한 죽음을 추모하고 진실을 밝히려고 모여들었습니다. 누가 나오래서 나온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8차에 걸쳐 범국민 추모대회가 열린 것입니다.

왜 우리는 모여서 슬퍼하면 안 되고 진실을 밝히자고 외치면 안 되는 걸까요. 왜 집회 시위는 보장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가두는 걸까요. 추모하는 일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고 도리이고 공공선임에도 불구하고 왜 가로막혀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원통한 죽음을 추모하고 진실을 밝히자는 당연한 외침이 왜 죄가 되는지, 집회 후에 폭력시위를 주도하지도 않았는데 주도했다고 누명을 씌우는지 억울한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비폭력 불복종을 신념으로 삼고 활동하는 인권운동가에게 근거도 없이 폭력 시위를 주도했다고 죄를 덮어씌우는 억지 주장이 개탄스럽습니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 4개월을 살라는 검찰의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구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허름한 판자촌에 연탄을 배달해 주는 일은 아름다운 일로 칭송하고 권장하면서 허름한 판자촌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잘못을 시정하라고 하면 억압받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집회만 해도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형벌을 가해도 되는지, 이것이 진정 민주 국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의 아픔을 함께 가슴 아파하면서 희생을 감수하고 용기 있는 실천을 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검찰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봅니다.

지금 국제앰네스티에서는 인권운동가 박래군을 양심수로 선정해 석방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편지와 엽서 수십 통이 저희 집에 쌓여 있습니다. 소외된 자들의 인간다운 삶,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 권리가 존중되는 존엄한 삶을 위한 고귀한 실천을 국제 사회는 존중해 줍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인권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일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아이들도 키우고 편찮으신 부모님도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한 사람의 소중한 삶이 걸린 판결이고 진실을 가리는 판결입니다. 그가 이 세상 그늘진 곳에 햇살을 드리우는 소중한 일을 할 수 있게, 아이들 곁을 지켜 주는 아빠로 살아갈 수 있게 신중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려 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어려운 재판 맡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종숙 님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박래군 씨의 아내 입니다

작성자정종숙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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