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출발해야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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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인 ‘삶’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던 의사가 비극적인 사건에 희생당했다. ‘의사와 환자’가 아닌 인간으로 만나며 진심 어린 관심을 보였던 분이기에 더욱 비통하다. 우리를 향한 날카로운 사회적 시선을 도리어 걱정했던 유가족께 감사와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의 노력과 유가족의 우려에도 사회적 시선은 매서운 칼날이 돼 우리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우리는 견디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삶’을 공감하고 걱정했던,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살아보자고 했던 선생님의 유지 (遺志)를 지키는 일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정신장애인의 ‘삶’ 이해하기
왜곡된 편견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두려움을 가진다. 이는 사회적으로 격리와 배제 속에 갇혀 있는 정신장애인에게 특히 심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격리와 배제를 제거하고 정신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정신장애인은 과거에 정신적 외상에 노출된 경험이 많다. 예를 들어 빈곤, 왕따, 성폭력, 경쟁 과잉 등이다. 과거의 상처, 그로 인해 느꼈던 감정, 그리고 ‘진단명’을 통해 생겨난 사회적인 낙인과 스스로의 낙인 등 모든 것들이 정신장애인의 삶에 녹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미디어 등이 만들어 낸 정신장애인에 대한 ‘위험’, ‘충동적’, ‘인지적 능력 결여’, ‘잠재적 범죄자’와 같은 사회적 표상은 정신장애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마저 가로 막고 ‘정신질환=위험’이라는 프레임 속에 우리 삶을 가두어 버렸다.
위험한 정신장애인? 실제의 삶은 ‘소외’
사회가 만들어 낸 ‘위험한 정신장애인’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자. 비장애인 및 타 장애유형에 비해 정신장애인 취업률은 약 25%로 상당히 낮고, 운이 좋아 겨우 취업을 하게 되어도 월평균 소득이 50만 원 수준이다. 정신과 외래를 다니는 약 97%의 정신장애인은 추가적인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당연히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패널, 2016; 장애인실태조사, 2014; 한국보건사 회연구원, 2018).
“머리가 아프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몇 년째 약을 먹고 있지만 내 삶은 그대로다. 친구들과는 연락이 안 된지 오래되었고 가족마저 나를 힘들게 한다. 정신장애인이 되니 취업은 더욱 힘들어졌고, 운이 좋아서 들어가게 된 직장 월급으로는 생활비, 주거비, 의료비 등을 해결하기가 어렵다. 삶이 피폐해진다. 좌절감과 실패감 그리고 회의감이 항상 나를 괴롭힌다. 나는 계속 불행한 삶을 살까 무섭다.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한 번쯤이라도 좋으니 이 글을 통해, 잠깐이라도 정신장애인의 삶을 상상해보자. 평범함을 꿈꾸는 소외된 정신장애인이 정말 위험한 사람일까? 아니면 평범함을 꿈꾸는 사람을 소외시키고 편견으로 몰아넣는 우리 사회가 위험한 것일까?
정신장애인의 ‘삶’에서 출발하자
안타깝게도 우리사회는 정신장애인의 삶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존엄함에도 정신장애인을 향하여 치료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과 억압에 대해 사회에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질환=위험’이라는 전제 속에서 해결방안 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정신장애인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격리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 전제가 잘못된 상황에서 해결책은 ‘강제적인 치료’, ‘강압적인 사례 관리’와 같은 것이 제시되고 있다.
최근 발의된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치료하려는 ‘외래치료명령’도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법이 시행되더라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외래치료명령이 있는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제는 잘못된 전제를 고치고 정신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보다 안전하고 모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강압적 치료는 정신장애인을 무기력하고 통제할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든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위험하다고만 말하기 전에 정신장애인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즉,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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