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가난한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로 거듭나길 촉구하며... >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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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가난한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로 거듭나길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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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10년이 지나도 여전한 문제투성이 제도

2002년 12월 3일, 명동성당에서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홀로 결의했던 최옥란 열사가 있었다. 생산적 복지라는 화려한 휘장 뒤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장애인 1급 수급권자 최옥란 열사에게 생계수단인 노점을 걷게 하였고, 한 달 약값과 생활비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26만 5천원을 지급하여 삶의 의욕마저 빼앗아버렸다. 관청 어디를 가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명동성당에서 기본생활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였지만 국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와중에 아들 양육권이 박탈되고 수급권마저 박탈될 지경에 처하여 스스로 삶을 떠나고만 최옥란 열사의 죽음은 바로 제도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8년이 지난 지금 또 하나의 제도에 의한 살인을 목격하였다.

지난 10월 6일 일용직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한 명의 아버지가 자살하였다. "일자리를 못 구해 힘들다"며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 내가 죽으면 동사무소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긴 한 장애인의 아버지의 죽음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친서민” 정책의 현주소를 역설한다.

   
죽음을 선택하면서도 아들의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걱정해야했던 부모를 추모하는 위령제
이 땅의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수많은 진입장벽과 낮은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빈곤고착제도’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10년 동안 부분적인 제도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빈곤이 심각해지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이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을 구성하고, 지난 11월 15일부터 서울 조계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수급자보다 더 많은 사각지대 ??

시행 10년을 맞이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은 높은 진입장벽과 낮은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날이 갈수록 더욱 빈곤과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민 여섯 명 중 한 명은 가난의 늪에 허덕이고 있고 이들 중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최저생활을 지원받고 있는 이들은 157만 명 수준으로 전체 인구의 3% 수준이다. 허울 좋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빈곤의 책임을 수급권자와 별반 차이가 없는 가족에게 전가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은 더 깊은 절망에 빠지고 있다.

최저생계비는 십 년이 지난 지금 평균소득의 30% 수준으로 떨어질 만큼 점점 낮아졌다. 전문가들이 장바구니에 기초생활수급자의 삶을 가두는 것이 현재 최저생계비 계측방식의 문제다.

빈곤층임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지 못해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은 410만 명으로 전인구의 약 8.4%나 된다. 이는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인구의 2.5배가 넘는다. 지난 달 장애인 자녀를 둔 50대 아버지의 자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빈곤 사각지대로 인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비현실적 규제로 인하여 수급자 수는 10년째 3% 수준에서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특히, 소득과 재산이 모두 현행 기초생활보장 수급기준에 해당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규제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7,000여 가구를 표본가구로 매년 실시하는 <한국복지패널>의 2009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수급자격이 있으나 부양의무자로 인한 수급신청 탈락비율이 58.3%에 달하고 있다.

또한, 최저생계비는 법에 규정된 국민의 소득‧지출수준과 그 격차가 점점 벌어져 1999년 계측된 최저생계비는 같은 해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40.7%였다가 2008년에는 30.9%까지 떨어졌다. 물가 폭등으로 인해 생활고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생활지원의 효과가 점점 떨어지는 형편이다. 법 시행 10년을 맞는 올해, 기초생활 사각지대 해소와 현실화를 위해 다음의 사항은 반드시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최저생계비 현실화!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기초법은 국가와 사회가 빈곤한 국민을 책임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지, 각자 형편에 따라 따로 살고 있는 부모나 자녀에게 생계지원할 것을 법으로 강제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더구나, 다른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소득 기준선을 법으로 정해놓는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오히려 더욱 큰 짐을 지워주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부양의무자 기준 조항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비참한 현실에 놓여있다.

하루 종일 모아도 만원도 되지 않는 폐지 수집으로 끼니를 연명하며 도시의 쪽방, 고시원의 한 켠에서 몸을 구부리고 잠을 청하는 노인들... 감옥과 같은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의 꿈을 꿀 수조차 없는 장애인들...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내맡겨둔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이들을 더욱 절망으로 밀어넣는다. 수급자이면서 다른 가족이 소득이 있는 경우에는, 실제로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는 것도 아니더라도 간주부양비가 책정되어 수급비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해, 빈곤층의 안정적인 자활지원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시급히 폐지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인 최저생계비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오히려 수준이 낮아져 “바닥생존”만을 강요한다고 비판받아왔다.

지속적인 상대적 수준의 하락을 막고 가난한 이들에 대항 실질적인 지원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평균소득’ 등을 기준으로 하는 상대빈곤선 도입이 필요하다. 지금의 계측방식인 전물량방식(소위, 장바구니 방식)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며,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재화조차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해왔다. 또한 지역별, 연령대별, 장애유무 및 유형별 등 가구 특성에 맞는 생계비 계측과 적용이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문제들이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지표가 될 만한 상대빈곤선 기준선(예를 들어 평균소득 대비 절반 등)을 도입하여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고, 수급권자의 가구유형, 생활실태, 개인 특성을 고려한 최저생계비 결정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친서민’ 한다더니 ‘기초법’도 제대로 못(안) 하는?

최근 국회에서는 예산과 법안 논의가 한창이다.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혹은 대폭 개선 안을 제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 개정을 실질화하기 위한 노력은 대단히 미진하다. 여야가 정쟁구도만을 내세우며 시급히 처리해야 할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긴급한 복지제도 개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추운 겨울이 다가올수록 절망의 빈곤에 신음하며 고통 받는 이들이 늘어갈 수밖에 없는데, 영향력 있는 단체나 세력과 연관된 법안 뒤로 힘이 미약한 빈민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법안은 밀려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각 의원들이 앞다투어 법 개정안을 발의하였지만 정작 이에 힘을 싣지 않는 모습은, 겉으로만 친서민을 주장하는 현 정부의 이중적인 모습이 국회에서도 똑같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그 어떤 정치 논리에 앞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긴급한 복지지원의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며 빈곤과 장애에 지친 몸을 이끌고 천막농성에 나선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국회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의 천막농성 현장
최옥란 열사의 말처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하며 우리는 농성에 돌입하였다.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낳는 독소조항을 그대로 안고 지나온 10년의 세월을 이제는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제도 개선으로 바꿔나가야 할 때다. 정부와 국회는 가장 기초적인 복지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보다 많은 가난한 국민들이 그러한 논의과정을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숨통을 트일 수 있도록, 상대빈곤선 도입을 통한 최저생계비의 현실화, 대표적인 독소조항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이루어질 때까지, 이 자리에 모인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 소속 단체들은 힘차게 투쟁해 나갈 것이다.

작성자최예륜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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