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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인권의 가치를 흔드는 자들과 싸워야 할 때

현병철 인권위원장 지지에 숨은 계략

본문

[인권오름]

“장애인들이 몸도 불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폐도 끼칠 텐데 어딜 돌아다녀”
“여자들은 집안일이나 해야지”
“가난한 것은 모두 지들 잘못이지 ”
“무상교육? 무상급식? 꿈도 못 꿀 일”

이런 얘기들을 지금 꺼낸다면 많은 사람들이 비상식적이고 편견에 가득 찬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짧게는 10년 전, 길게는 20년도 안된 상식들이다. 지금은 장애인의 이동권과 남녀차별에 대한 인식 개선, 빈곤이 주는 총체적 인권박탈이나 교육권 등 사회적 권리에 대한 인식이 향상됨에 따라, 속으로는 할지언정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한 사회에서 인권의식의 향상은 느리지만 꾸준히 이어졌고 인권보장 제도 마련, 관행 개선과 함께 이루어졌다. 물론 이를 위해 많은 인권옹호자들과 권리를 빼앗긴 당사자들의 싸움이 있었다. 그래서 인권은 정태적인 개념도 아니며, 활자 속에 갇힌 개념도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또한 인권의 보편성이란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보편이 아닌 예외’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싸움에 의해,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다.

인권의 가치를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현실화하기 위해 여러 제도와 기구도 만들었다. 이러한 제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게 바로 국가인권기구-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이다. 그런데 지금 인권위가 위기에 처했고, 인권의 가치도 위기에 처했다.

   
인권위의 위기를 직시한 사람들

11월 1일 문경란-유남영 상임위원의 사퇴로 흔들리던 인권위에 불꽃이 튀었다. 그 후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긴급회의를 열어 인권위 건물 7층에서 농성을 하며,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모르쇠로 임하며 사퇴의사가 없음을 공식화하였다. 현 인권위원장의 태도는 변함없고, 이 사태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정부도 어떠한 답변도 없었다. 그러자 조국 비상임위원과 전문위원 자문위원 상담위원 등 61명이 사퇴하고 인권위를 떠났다. 인권위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권위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더 이상 이대로 인권위에 머무르는 것은 인권위 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떠났다. 인권위 밖에서도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움직임은 각계각층에서 전국에서 일어났다.

11월 4일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촉구 인권시민대책회의'의 발족과 사퇴 성명이후, 장애인권단체의 선언(11/5),김창국 초대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전직 인권위원의 기자회견(11/8), 야5당과 인권시민단체의 ‘인권위원장 사퇴촉구 공동결의 대회’(11/9), 전직 직원들의 입장표명(11/10), 법학자 및 변호사 등 법조계 334명의 현병철 사퇴촉구 선언(11/10), 36개 여성 단체의 사퇴 촉구 기자회견(11/10), 전북, 광주, 대구 울산, 부산, 경기지역 등 전국의 인권사회단체의 사퇴촉구 기자회견이 줄을 이었으며,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촉구 성명에 660개단체가 연명하는(11/11) 등 사퇴하라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꿋꿋했으며, 심지어 11월 9일 인권위 국정감사에서 “인권위는 가장 잘 운영되고 있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설명] 국가인권위 농성 중에 매일 저녁 7시 국가인권위 앞에서 진행된 촛불집회 인권위 파행을 좌우 갈등에 의한 내분으로 모는 이유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자신감은 그가 사태파악 능력이 모자라서만이 아니라, 현병철 인권위원장 체제를 지지하는 세력들, 정부와 보수 언론, 기득권층의 계략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현 인권위원장이 국정감사를 하던 11월 9일, 대표적인 보수일간지인 조선일보는 인권위 사태를 내분으로 파악하고, 그 배경은 그동안 인권위가 정파적으로 운영되고 전 정권에서 임명한 자들의 정파적 행태 때문인 것으로 규정하는 사설을 실었다. 사퇴한 문경란 전 상임위원은 한나라당이 추천했던 사실은 망각했는지, 전 정권과 현 정권의 정파갈등으로 몰았다. 국정감사에 임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의는 이러한 기조로 일관되게 이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 중 여러 명이 “인권위가 한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이라크 파병 반대 입장 표명, 공무원·교사의 정치활동보장 요구는 정파적인 활동”이라며 비판했다. 심지어는 한나라당 의원 한 명은 국가인권위에서 최근 ‘군형법 조항이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한 것을 철회하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인권위를 기득권층과 정부여당의 권력에 맞게 길들이기 하려는 것이 분명한 태도와 입장이다. 그동안 인권위가 해왔던 긍정적 성과들을 한꺼번에 허물기 위해서 ‘정파적’이라고 몰고, 인권위 후퇴와 독립성 파행은 ‘좌우갈등’이라고 모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정파적이었다는 말인가? 사실 노무현 정부시절 인권위는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하려고 하자, 이는 헌법가치에 위배되고 평화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파병결정에 반대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당시 인권위는 권력의 잘못된 정책에 꾸짖는 역할을 했다. 오히려 현 위원장 시절 이명박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결정을 정부가 했지만, 인권위는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고 있지 않다. 정부여당의 입맛을 고려하는 정파적인 인권위는 현병철 체제의 인권위다. 물론 인권위의 이라크 파병 반대 의견 제출 당시에도 조선일보는 인권위가 정치에 너무 관여한다면서 “인권위 해체할 때”라는 사설을 냈다. 이번 사설에서도 인권위가 너무 정치적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데 정치적이라고 비판?

한 사회의 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인권을 보편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특히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국가인권위는 인권의 정치를 통해 그들이 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렇듯 국가인권위의 활동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데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뭘까?

여당을 비롯한 보수 언론이 말한 정치적이지 않은 인권의 실체란 무엇인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현 기득권층이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에 부당하게 많은 이득을 취해고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늘어나도 이를 개선하지 않으려는 인권이 가능한가. 지배규범이 자의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지배규범을 건드리지 않고 ‘인권 보장’을 말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이 인권을 요구하고 인권의 영역과 범위를 확대하고 사회구조와 정책을 바꾸는 역사의 진보를 이끌었듯이, 인권은 매우 역동적이고 정치적인 가치이며, 약자의 언어이다.

정치적인 중립을 가장하여 현 지배권력, 지배 정치세력의 정책을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특권세력을 옹호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국제사회에서 비판하고 있는 ‘인권의 정치수단화’이며, ‘인권의 왜곡’이다.

인권위 싸움은 인권의 가치를 둘러싼 싸움

이미 국제인권기구에서 IMF 구제금융의 노동유연화 정책과 그로 인한 비정규직 양산은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일제고사와 같은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은 학생인권과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며 우려하고 있으며, 파업권을 비롯한 업무방해 등 한국 노동자들의 쟁의행위,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고 처벌하는 것을 인권침해라고 수차례 권고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이 좌파적이고 정파적인 것이라고 정부여당이 일축하는 것은 결국 인권침해정책을 바꾸지 않겠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를 비롯한 기득권층과 보수단체는 인권위의 그동안 역할을 비판하면서 ‘북한인권’과 ‘동성애’의제를 끼워 넣는다. 바로 인권의 가치를 흐리고, 인권위를 둘러싼 권력의 휘두름을 가리기 위해서다. 농성 13일차인 11월 16일, 자유연합이라는 단체는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게 한 현병철 위원장을 지지한다.”라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들이 든 피켓에는 ‘종북좌파척결’과 “군 동성애 허용하는 인권위 규탄”이라고 쓰여 있다. 한 달 넘게 인권위 앞에서 동성애에 대한 노골적 차별을 내걸고 동성애반대시위를 하던 분들도 이 집회에 참여하였다.

북한인권의 제기는 현재의 인권위가 ‘해야 할 일을 못하게 하는 기제’로 작동하게 하려는 의도일 뿐 아니라, 미국이 가장 잘 악용했던 ‘인권의 정치수단화’로 기능한다. 한국정부의 인권침해에 눈감고 북한 인권침해에 집중하자는 구도, 또는 그 반대의 구도로 논쟁을 양분하여 인권의 가치를 흔든다. 북한에 인권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인권운동가는 없다. 다만 한국의 인권운동진영과 한국의 인권위가 할 수 있는 방식과 원칙으로 북한 인권에 접근하여 활동하자고 했고 그렇게 활동해왔다. 더구나 인권위는 이전 정부부터 북한 인권을 다루어왔지만 이는 부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적인 활동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안했다고 비난한다. 더구나 한국 인권위의 역할이 북한 인권을 하는가 안하는가가 인권위 평가의 유일한 잣대가 될 수 없다.

정부여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이 인권위를 흔들면서 ‘동성애 반대세력-차별세력’의 지지를 모으는 일은 인권위를 둘러싼 쟁점을 흐리기 위해서이다. 특히 이러한 일이 심각한 이유는 차별과 혐오를 공공연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한국 사회 전체의 인권의식이 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타인의 권리를, 타인의 지향을,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공연한 혐오발언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인간존엄성’이 배제되는 집단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생성된 '차별받는 집단'은 집권세력, 기득권층이 만든 ‘정치의 위기’를 전가할 곳이자, ‘화살 돌리기 대상’이 되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는 데 이용된다. 결국 차별을 조장하여 이익을 얻는 곳은 바로 기득권 세력일 뿐이기에 이를 부추긴다. 그들의 이해와 이익 앞에서는 '무엇이 인권이냐'는 중요치 않다.

    [설명] 국가인권위 7층에서 농성하는 모습 우리는 어디를 보아야 하는가!

정부는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요구에 대해 한마디 사과발언조차 없이 친정부적인 인사인 김영혜 변호사를 상임위원 사퇴 9일 만에 내정하고 임명하였다. 김영혜 씨는 고대출신의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정부의 측근이다. 인권위 흔들기와 인권의 가치 왜곡을 지속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기에 인권위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 싸움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인권의 가치를 왜곡하며 인권위를 흔드는 세력들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논리가 아니라 현실이며, 법 문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움켜쥐는 게 아닐까. 그저 인권침해의 사건명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들었던 당사자들의 고통에, 일상의 숨이 들고나는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인권의 가치를 왜곡하고 말장난, 논리싸움으로 형해화 시키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싸움의 방향을 제대로 가늠하기 위해, 최근 인권위가 결정하거나 하지 않으려했던 인권침해사건에서 드러나지 않거나 잊혀졌던 빼앗긴 사람들의 목소리와 삶을 다시 재인용한다.

“어느 유가족도 똑같을 거예요. 마음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게 아니고 항상 마음이 불안해가지고. 작년엔 정신이 없어가지고 어디가 아팠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가만히 있으면 몸이 너무너무 아픈 거 있지. 잠을 못 자서 병원에서 수면제를 타다 먹거든요.”
- 용산 철거민 유족 전재숙 님

“ 군인 수첩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황당하고 답답했다. 오히려 왜 내 이름이 군인수첩에 있는지, 왜 내가 몸조심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기무사 민간인 사찰대상이었던 어린이작가 김향수 님

“인정하면 살 것이고 부인하면 죽는다고 협박을 받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갑자기 경찰들은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A씨를 그 위에 눕힌 뒤 수갑을 찬 팔을 위로 꺾고 폭력을 행사했다. 너무 아파 소리를 지르자 이번엔 수건으로 입을 막고 투명 테이프로 돌돌 말아 감고 구타를 시작했다.”
- 양천서에서 고문받은 A씨의 진술
작성자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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