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권 존중과 권익 옹호가 특징인 영국 장애인 복지
[기고] 영국 탈시설 관련 연수를 다녀와서
본문
현재 우리나라 장애계의 화두는 탈시설에 기반한 자립생활일 것입니다. 자선과 동정의 대상이 아닌 장애인당사자로서 장애인복지에 대한 참여도를 높이고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보장하는 자립생활이념이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보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 같은 복지선진국들은 1950년대에 이미 탈시설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자립생활이념을 장애인복지의 패러다임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금번 영국 연수는 탈시설화를 실천하고 있는 영국을 방문해서 탈시설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과 현 실정을 알아보고 우리나라의 탈시설 정책과의 비교, 평가하여 새로운 모델 방안을 모색함에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만km가 넘는 머나 먼 나라 영국을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전혀 영국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특히나 영국의 장애인 관련 편의시설이나 인식, 물리적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낯설음이 용기를 내는 데 많은 걸림돌이 되었으나, 선진국의 장애인복지의 현장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결국 참여하자는 쪽으로 용기를 내게 했습니다.
10월 3일 전주에서 인천공항, 홍콩을 경유하여 영국 런던 공항까지 무려 21시간을 비행기를 탄 채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영국에 대한 첫 인상은 한마디로 살아있는 박물관 그 자체였습니다.
고대 양식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된 채 도시의 전경을 이루고 있었고 넓은 정원(garden)의 푸르름, 근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성당 건축물, 타워 브릿지, 런던 성 등이 눈을 황홀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숙소는 ‘씨타디네스 아파트 호텔(Citadines Apartment Hotel)’로 취사 가능한 호텔이었는 데 놀라운 것은 호텔 안에 넓고 편의시설이 준비된 장애인 전용 객실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운영하지 않는 개인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듯 했습니다.
또한 시내 모든 버스에는 리프트가 장착되어 있어 장애인·임산부·노인 등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었고, 장애인의 경우 동반자 1인까지 무료 승차를 허용하고 있었으며, 택시의 대다수는 밴이었는데 택시 역시 리프트가 자동 또는 수동 형태로 설치되어 있어 조금 비싼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언제든지 장애인도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상가나 건축물 출입문 앞에 계단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있다고 해도 1개나 2개 정도여서 우리나라처럼 편의시설을 따져가며 상가를 고르던 것과는 차이가 많았습니다.
영국 장애인 단체들 대부분 장애인 당사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영국에서 첫날밤을 지내고 첫 번째 기관 방문은 정신장애인의 권익활동과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마인드(MIND)’라는 단체였습니다.
처음 마인드 정문 앞에서 조금 생소했던 건, 장애인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간판이나 주변 상징물들에 장애인이라는 문구나 이미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단체의 심벌마크가 특이해 보였는데(헝크러진 실타래 모양) 이런 단체의 심벌마크는 ‘모든 사람은 정신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혼돈 속에 살고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듯 했습니다.
이 단체는 직원과 이사회의 50%이상이 정신 병력을 경험한 정신장애인으로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체의 주요 사업 중 특이한 것은 직접적인 서비스 전달보다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과 캠페인 홍보 전략에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단체에서 시행하는 ‘타임 투 체인지(time to change)’라는 프로그램을 간단히 소개하면, 앞으로 10년 동안 진행할 프로그램으로 2천만 파운드의 펀드로 진행되며 주요 내용은 정신장애인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었습니다. 가령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겪은 일을 방송국이나 신문에 기사나 광고형식으로 알리는 일, 또 웹사이트 등을 통해 정신장애인들이 서로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영국에서 정신장애인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 입원 치료였습니다.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정신장애인에 관해서 예외적인 강제 입원 치료를 하고 있으며, 정신장애인의 강제 입원 치료 판단에 있어 인권적 침해 요인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 기관으로 ‘캠프힐(Camphill)’이라는 지적장애인생활시설을 둘러보았습니다.
1940년대 칼콤에 의해 설립된 캠프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취지 아래 설립되어 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전역에 51개의 하우스를 가진 생활시설이었습니다.
정문 왼쪽에 자리 잡은 전통 유럽식 2층 건물이 눈에 띄었고 넓은 정원과 군데군데 모여 있는 10채 안팎의 집들 속에서 방문자도 한가롭고 평화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시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1대2 비율로 같은 하우스에서 서비스를 지원하며 함께 거주하고 있었으며, 빵가게(자급자족), 상점(동네 사람도 이용), 도자기와 바구니 그리고 자수 등을 할 수 있는 작업장, 문화예술 공연을 할 수 있는 홀 등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시설은 아름다운 경치만큼 평화로워 보였으며 특히 지적장애가 심한 장애인의 경우에는 자원봉사자나 담당 인력이 1대1로 같이 작업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날 점심을 각각의 조로 나누어 각 하우스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제가 갔던 하우스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잔반을 남겼는데 그들에게 대단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캠프힐은 우리나라처럼 일체형으로 된 큰 건물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 들었으나,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이 적극적이지는 못한 것 아닌가라는 아쉬움도 가졌습니다.
연수팀은 세 번째로 ‘레이다(RADAR, 왕립장애인단체협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레이다는 30년 전 영국 정부의 제안으로 설립하게 되었으며 이사의 75%가 장애인당사자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단체 관계자는 영국의 경우 1990년대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욕구와 열망을 반영하여 정책 입안에 많은 노력을 한 결과 ‘직접지불제(Direct payment)’를 도입하게 되어 당사자 욕구에 맞는 매니지먼트(관리)가 가능해졌고·고용·기술·자산관리 등의 정보 전달 사업과 차별금지법 제정(1995년)으로 고용향상, 편의시설 확충·대중교통 등에서 서서히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단체는 장애인 복지 발전을 위해 복지예산 확대, 소규모 시설 확대 등의 내용을 가지고 각 정당의 국회의원을 상대로 활발한 로비를 하고 있다는 게 단체 관계자 설명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영국의 경우 정보 전달에 있어 우리나라처럼 복지 관련 정보만을 다루지 않고 직장 및 구직·자산·컴퓨터 등 다양하고 폭넓은 정보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각각의 장애 영역 주제에 맞게 책자를 만들어 가이드북처럼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특이했습니다.
▲ 콜린 반즈 박사 ⓒ영국 탈시설 연수단 영국도 차별금지법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아 고민
이번 연수에서 저에게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콜린 반즈 박사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콜린 반즈 박사는 장애학의 선두 학자이며 리즈대학에 장애학 센터를 만든 교수이기도 했습니다.
콜린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문제 해결 방식에서 사회적 모델을 강조했습니다. 장애와 차별이 사회의 한부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빈곤·주거와 환경·영양상태·폭력·전쟁·공해·노령화·위생 등 사회 전반적인 요인으로 인해 장애가 발생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의 변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또 콜린 박사는 1990년대 들어서 장애인당사자 학자와 장애인 단체가 연대하여 장애인의 사회적 모델,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자립생활, 평등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정부의 복지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차별금지법·직접지불제 등을 도입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2015년까지 장애인의 동등한 기회 제공과 무장애환경을 만들기로 영국 정부와 약속했으며, 직접지불제를 통해 서비스에서 장애인당사자의 주도적인 참여가 보장될 수 있었다는 성과들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복지예산를 축소하려는 움직임들이 있고 자립생활센터에 대한 지원이 미비해, 한 때 80곳이던 자립생활센터가 현재는 30곳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실질적인 적용이 되지 않는 점 등 영국의 복지 정책에 대한 비판도 했습니다.
다섯 번째 방문기관은 지적장애인의 권익을 대변하는 ‘체인지(Change)’였습니다. 장애인당사자가 직접 운영하는 전국 연대의 단체이며, 지적장애인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일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중요한 사업으로 정보 전달 사업 얘기를 들었는데, 정보 접근에 어려움이 많은 지적장애인을 위해 쉬운 언어와 이미지(그림, 사진)를 활용하여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주력하고 있었으며, 암에 대한 정보, 성교육, 육아정보 등을 책자로 만들어 많은 지적장애인이 쉽게 일상생활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 전달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모든 직원들은 다양한 장애 유형의 장애인과 함께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수화를 했으며, 모든 문서의 글씨 크기를 18포인트로 작성, 파일의 제목이나 일정표 등에 지적장애인이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미지 등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1대1로 고용되어 동등한 업무와 급여를 받고 있었으며 지적장애인의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모집, 작업장 환경, 일하는 방법, 기술, 성공적인 사례 등 안내서를 만들어 각 기업체에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여섯 번째 방문 기관은 ‘멘캡(Mencap)’이라는 지적장애인 단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부모회와 유사한 단체로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권익 및 주거서비스를 주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단체였습니다. 이곳은 사람중심, 인간존중, 편견개선을 중요한 설립 목적으로 정하고 증오범죄(헤이트크라임, hate crime)에 대한 구제 상담 활동과 의료서비스 개선 캠페인, 주거서비스 등을 중요한 서비스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편견으로 인한 범죄 3대 요소로 종교·성·장애를 들었을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증오범죄는 영국에서는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습니다. 증오범죄란 소수 인종이나 소수민족, 동성애자, 특정종교인 등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 층에게 이유 없는 증오심을 갖고 불특정한 상대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 말로 대개 잔혹성과 집단성을 띄고 있습니다.
영국 사회에서 증오범죄에 논란은 어느 한 장애인 모녀에 대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모녀가 10년 동안 주변인으로부터 학대, 왕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으며, 이를 보호받고자 경찰에 33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무시되는 상황 속에서 끝내 차안에서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범죄로 생각하지 않고 반사회적 행동으로 생각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영국사회에서 지적장애인의 9%가 폭력을 경험했다는 통계가 있으며, 많은 지적장애인들이 학대와 멸시 속에서 증오범죄의 대상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게 단체 관계자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단체는 증오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인식 개선 및 구제 활동 등을 전개하고, 피해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사회와 경찰관들에 대한 홍보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또 의료서비스 개선에 대한 캠페인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는데, 지적장애인이 무관심과 이해의 부족, 정확한 진료 요청의 부재 등으로 받고 있는 의료적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권리바로찾기(Getting it right)운동’을 벌여 지적장애인 개개인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한 다음 병원관계자 및 전문가에게 숙지 및 홍보하는 등 지속적으로 지적장애인의 안정적인 의료보장을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단체는 ‘골든랜하우징(Golden Lane Housing)’이라는 사업을 통해 지적장애인의 주택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었습니다. 가정과 병원에서 주로 살아가던 지적장애인에게 자기 선택권을 주는 데 역점을 두고 시작한 주택지원 사업은 크게 두 가지 사업으로 나누어져, 당사자의 선택을 보장한 집 찾아주는 일과 집 구입 후 대여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서비스로 1천여 명의 지적장애인에게 주택서비스를 지원했다는 게 단체 관계자 설명이었습니다.
골든랜하우징 서비스는 우리나라의 공동생활가정과 유사함이 많았는데, 관리자 1명과 가사담당 1명, 그리고 지적장애인 4~5명 정도가 함께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하우스에는 장애인 개인을 위한 파일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장애인의 일상의 계획·운동 방식·습관·진료기록·활동일지 등 아주 세밀하고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방문 기관은 ‘NCIL(영국자립생활협회)’였습니다. 제가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터라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였으나 일정상의 문제로 비교적 짧은 만남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NCIL(영국자립생활협회)’는 이사회 전원이 장애인당사자로 구성되었으며 탈시설화, 지역사회 거주,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권리 찾기 등의 활동 등을 하고 있는 단체였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다녀온 연수라서 영국 사회의 전반적인 장애인복지정책을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정리해 보면, 우선 영국은 장애인 복지예산 축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각 기관 또는 단체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상대로 다양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탈시설 문제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논리에 의해 다시 대형시설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립생활의 선택권 강화와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에 대한 선택권 존중과 권익 옹호에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또한 장애인 운동이 우리나라처럼 투쟁 방식이 아닌 인식 개선과 캠페인, 홍보 등에 역점을 두고 진행되고 있었으며 장애인이라는 논리보다는 인간중심의 복지 실현 곧 보편적 복지에 많은 투자와 예산이 반영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증오범죄, 공동제 중심의 시설 정책 및 주거 정책, 정보의 다양화와 모든 장애인에 대한 정보 접근성 향상, 대중교통의 편의성 확보, 직접 지불형식을 통한 장애인 당사자의 결정권 및 권리성 인정 등 앞으로 우리 장애인복지 현실에서 깊이 논의되어야 할 의제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연수였습니다.
금번 영국 연수는 탈시설화를 실천하고 있는 영국을 방문해서 탈시설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과 현 실정을 알아보고 우리나라의 탈시설 정책과의 비교, 평가하여 새로운 모델 방안을 모색함에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영국 탈시설 연수단 |
10월 3일 전주에서 인천공항, 홍콩을 경유하여 영국 런던 공항까지 무려 21시간을 비행기를 탄 채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영국에 대한 첫 인상은 한마디로 살아있는 박물관 그 자체였습니다.
고대 양식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된 채 도시의 전경을 이루고 있었고 넓은 정원(garden)의 푸르름, 근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성당 건축물, 타워 브릿지, 런던 성 등이 눈을 황홀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숙소는 ‘씨타디네스 아파트 호텔(Citadines Apartment Hotel)’로 취사 가능한 호텔이었는 데 놀라운 것은 호텔 안에 넓고 편의시설이 준비된 장애인 전용 객실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운영하지 않는 개인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듯 했습니다.
▲ 택시를 타고 있는 모습 ⓒ영국 탈시설 연수단 |
▲ 버스 리프트 ⓒ영국 탈시설 연수단 |
특히나 상가나 건축물 출입문 앞에 계단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있다고 해도 1개나 2개 정도여서 우리나라처럼 편의시설을 따져가며 상가를 고르던 것과는 차이가 많았습니다.
영국 장애인 단체들 대부분 장애인 당사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영국에서 첫날밤을 지내고 첫 번째 기관 방문은 정신장애인의 권익활동과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마인드(MIND)’라는 단체였습니다.
▲ 정신장애인 인권단체 마인드 심볼마크 ⓒ영국 탈시설 연수단 |
이 단체는 직원과 이사회의 50%이상이 정신 병력을 경험한 정신장애인으로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체의 주요 사업 중 특이한 것은 직접적인 서비스 전달보다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과 캠페인 홍보 전략에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단체에서 시행하는 ‘타임 투 체인지(time to change)’라는 프로그램을 간단히 소개하면, 앞으로 10년 동안 진행할 프로그램으로 2천만 파운드의 펀드로 진행되며 주요 내용은 정신장애인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었습니다. 가령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겪은 일을 방송국이나 신문에 기사나 광고형식으로 알리는 일, 또 웹사이트 등을 통해 정신장애인들이 서로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영국에서 정신장애인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 입원 치료였습니다.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정신장애인에 관해서 예외적인 강제 입원 치료를 하고 있으며, 정신장애인의 강제 입원 치료 판단에 있어 인권적 침해 요인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캠프힐에 거주하고 있는 지적장애인들이 만든 도자기 ⓒ영국 탈시설 연수단 |
1940년대 칼콤에 의해 설립된 캠프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취지 아래 설립되어 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전역에 51개의 하우스를 가진 생활시설이었습니다.
정문 왼쪽에 자리 잡은 전통 유럽식 2층 건물이 눈에 띄었고 넓은 정원과 군데군데 모여 있는 10채 안팎의 집들 속에서 방문자도 한가롭고 평화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시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1대2 비율로 같은 하우스에서 서비스를 지원하며 함께 거주하고 있었으며, 빵가게(자급자족), 상점(동네 사람도 이용), 도자기와 바구니 그리고 자수 등을 할 수 있는 작업장, 문화예술 공연을 할 수 있는 홀 등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시설은 아름다운 경치만큼 평화로워 보였으며 특히 지적장애가 심한 장애인의 경우에는 자원봉사자나 담당 인력이 1대1로 같이 작업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날 점심을 각각의 조로 나누어 각 하우스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제가 갔던 하우스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잔반을 남겼는데 그들에게 대단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캠프힐은 우리나라처럼 일체형으로 된 큰 건물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 들었으나,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이 적극적이지는 못한 것 아닌가라는 아쉬움도 가졌습니다.
▲ 레이다 대표와의 간담회 모습 ⓒ영국 탈시설 연수단 |
레이다는 30년 전 영국 정부의 제안으로 설립하게 되었으며 이사의 75%가 장애인당사자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단체 관계자는 영국의 경우 1990년대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욕구와 열망을 반영하여 정책 입안에 많은 노력을 한 결과 ‘직접지불제(Direct payment)’를 도입하게 되어 당사자 욕구에 맞는 매니지먼트(관리)가 가능해졌고·고용·기술·자산관리 등의 정보 전달 사업과 차별금지법 제정(1995년)으로 고용향상, 편의시설 확충·대중교통 등에서 서서히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단체는 장애인 복지 발전을 위해 복지예산 확대, 소규모 시설 확대 등의 내용을 가지고 각 정당의 국회의원을 상대로 활발한 로비를 하고 있다는 게 단체 관계자 설명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영국의 경우 정보 전달에 있어 우리나라처럼 복지 관련 정보만을 다루지 않고 직장 및 구직·자산·컴퓨터 등 다양하고 폭넓은 정보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각각의 장애 영역 주제에 맞게 책자를 만들어 가이드북처럼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특이했습니다.
▲ 콜린 반즈 박사 ⓒ영국 탈시설 연수단 영국도 차별금지법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아 고민
이번 연수에서 저에게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콜린 반즈 박사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콜린 반즈 박사는 장애학의 선두 학자이며 리즈대학에 장애학 센터를 만든 교수이기도 했습니다.
콜린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문제 해결 방식에서 사회적 모델을 강조했습니다. 장애와 차별이 사회의 한부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빈곤·주거와 환경·영양상태·폭력·전쟁·공해·노령화·위생 등 사회 전반적인 요인으로 인해 장애가 발생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의 변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또 콜린 박사는 1990년대 들어서 장애인당사자 학자와 장애인 단체가 연대하여 장애인의 사회적 모델,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자립생활, 평등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정부의 복지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차별금지법·직접지불제 등을 도입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2015년까지 장애인의 동등한 기회 제공과 무장애환경을 만들기로 영국 정부와 약속했으며, 직접지불제를 통해 서비스에서 장애인당사자의 주도적인 참여가 보장될 수 있었다는 성과들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복지예산를 축소하려는 움직임들이 있고 자립생활센터에 대한 지원이 미비해, 한 때 80곳이던 자립생활센터가 현재는 30곳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실질적인 적용이 되지 않는 점 등 영국의 복지 정책에 대한 비판도 했습니다.
▲ 체인지의 일정표 ⓒ영국 탈시설 연수단 |
특히나 중요한 사업으로 정보 전달 사업 얘기를 들었는데, 정보 접근에 어려움이 많은 지적장애인을 위해 쉬운 언어와 이미지(그림, 사진)를 활용하여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주력하고 있었으며, 암에 대한 정보, 성교육, 육아정보 등을 책자로 만들어 많은 지적장애인이 쉽게 일상생활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 전달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모든 직원들은 다양한 장애 유형의 장애인과 함께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수화를 했으며, 모든 문서의 글씨 크기를 18포인트로 작성, 파일의 제목이나 일정표 등에 지적장애인이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미지 등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1대1로 고용되어 동등한 업무와 급여를 받고 있었으며 지적장애인의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모집, 작업장 환경, 일하는 방법, 기술, 성공적인 사례 등 안내서를 만들어 각 기업체에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 멘캡 담당자와의 간담회 모습 ⓒ영국 탈시설 연수단 |
우리나라의 장애인부모회와 유사한 단체로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권익 및 주거서비스를 주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단체였습니다. 이곳은 사람중심, 인간존중, 편견개선을 중요한 설립 목적으로 정하고 증오범죄(헤이트크라임, hate crime)에 대한 구제 상담 활동과 의료서비스 개선 캠페인, 주거서비스 등을 중요한 서비스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편견으로 인한 범죄 3대 요소로 종교·성·장애를 들었을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증오범죄는 영국에서는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습니다. 증오범죄란 소수 인종이나 소수민족, 동성애자, 특정종교인 등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 층에게 이유 없는 증오심을 갖고 불특정한 상대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 말로 대개 잔혹성과 집단성을 띄고 있습니다.
영국 사회에서 증오범죄에 논란은 어느 한 장애인 모녀에 대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모녀가 10년 동안 주변인으로부터 학대, 왕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으며, 이를 보호받고자 경찰에 33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무시되는 상황 속에서 끝내 차안에서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범죄로 생각하지 않고 반사회적 행동으로 생각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영국사회에서 지적장애인의 9%가 폭력을 경험했다는 통계가 있으며, 많은 지적장애인들이 학대와 멸시 속에서 증오범죄의 대상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게 단체 관계자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단체는 증오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인식 개선 및 구제 활동 등을 전개하고, 피해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사회와 경찰관들에 대한 홍보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또 의료서비스 개선에 대한 캠페인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는데, 지적장애인이 무관심과 이해의 부족, 정확한 진료 요청의 부재 등으로 받고 있는 의료적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권리바로찾기(Getting it right)운동’을 벌여 지적장애인 개개인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한 다음 병원관계자 및 전문가에게 숙지 및 홍보하는 등 지속적으로 지적장애인의 안정적인 의료보장을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단체는 ‘골든랜하우징(Golden Lane Housing)’이라는 사업을 통해 지적장애인의 주택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었습니다. 가정과 병원에서 주로 살아가던 지적장애인에게 자기 선택권을 주는 데 역점을 두고 시작한 주택지원 사업은 크게 두 가지 사업으로 나누어져, 당사자의 선택을 보장한 집 찾아주는 일과 집 구입 후 대여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서비스로 1천여 명의 지적장애인에게 주택서비스를 지원했다는 게 단체 관계자 설명이었습니다.
골든랜하우징 서비스는 우리나라의 공동생활가정과 유사함이 많았는데, 관리자 1명과 가사담당 1명, 그리고 지적장애인 4~5명 정도가 함께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하우스에는 장애인 개인을 위한 파일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장애인의 일상의 계획·운동 방식·습관·진료기록·활동일지 등 아주 세밀하고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방문 기관은 ‘NCIL(영국자립생활협회)’였습니다. 제가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터라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였으나 일정상의 문제로 비교적 짧은 만남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NCIL(영국자립생활협회)’는 이사회 전원이 장애인당사자로 구성되었으며 탈시설화, 지역사회 거주,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권리 찾기 등의 활동 등을 하고 있는 단체였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다녀온 연수라서 영국 사회의 전반적인 장애인복지정책을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정리해 보면, 우선 영국은 장애인 복지예산 축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각 기관 또는 단체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상대로 다양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탈시설 문제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논리에 의해 다시 대형시설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립생활의 선택권 강화와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에 대한 선택권 존중과 권익 옹호에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또한 장애인 운동이 우리나라처럼 투쟁 방식이 아닌 인식 개선과 캠페인, 홍보 등에 역점을 두고 진행되고 있었으며 장애인이라는 논리보다는 인간중심의 복지 실현 곧 보편적 복지에 많은 투자와 예산이 반영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증오범죄, 공동제 중심의 시설 정책 및 주거 정책, 정보의 다양화와 모든 장애인에 대한 정보 접근성 향상, 대중교통의 편의성 확보, 직접 지불형식을 통한 장애인 당사자의 결정권 및 권리성 인정 등 앞으로 우리 장애인복지 현실에서 깊이 논의되어야 할 의제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연수였습니다.
작성자강현석 전북시설생활인인권연대 대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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