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는 웃고 피해자는 우는 기막힌 현실
[뉴스 뒤 진실찾기] 대전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건 솜방망이 처벌 내려 논란 확산
본문
지적장애 여중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고교생 16명에게 경찰이 불구속입건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세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개했다. 장애인계 관계자들과 성폭력상담 전문가들은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통해 이러한 지적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계속되는 원인을 지적하고, 지적장애 여성의 특성과 상황을 파악해 엄중히 수사한 후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함께걸음이 자세한 내막을 알아봤다.
지적장애 특성 고려하지 않은 비장애·남성 중심적 수사와 재판이 문제
대전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지난 10월 13일 지적장애 여중생 A양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B군(17) 등 대전지역 고등학생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중순 발생한 이 사건은 B군 등 3명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A양을 서구 둔산동 모 건물의 남자화장실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한 것이 발단이 됐다고 한다. 이후 B군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 친구들에게 A양의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B군을 포함한 고등학생 16명은 6월 중순까지 수차례에 걸쳐 건물 옥상, 공중화장실을 돌며 A양을 집단 성폭행한 사실이 가해 학생들의 진술 등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조사 중에 충분히 범죄사실이 성립됐고 가해학생을 통해 2차 피해가 충분히 우려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은 여학생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고 ▲(강간) 도중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 ▲가해학생들이 미성년자라는 점 등을 들어 불구속 처분을 내렸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대전지역 장애인 단체들과 부모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분노했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10월 13일 대전지방검찰청 앞을 시작으로 국회 정론관, 대검찰청 앞 등에서 수차례 기자회견을 갖고 “지적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의 특성을 이용한 악질적인 범행이지만, 그 때마다 지적장애를 가진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명확히 진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의 진술만 인정된 채 구속되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피해 여학생이 호감과 성추행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고 있는데, 지적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합의 하에 관계를 맺은 걸로 본다는 경찰의 태도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부족과 인권침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 대전지부 관계자는 “대전지방검찰청 앞에서의 기자회견 후 검찰청에서의 면담자리에서 모 부장검사는 ‘법에 의해 유죄를 입증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보고 법적으로 죄를 입증할 수 없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비쳤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검찰 측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지적장애 3급이면 장애가 경한 것 아니냐. 가해자들은 장애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없겠느냐.’고 물었다.”며 “검찰은 우리가 그 질문에 대해 인정하길 바라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말뜻은 검찰이 지적장애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사건을 비장애인과 남성의 시각에서 보아 가해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피해 여학생은 지적장애 외에도 의수를 착용한 지체장애 2급 장애인이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장애인인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피해여중생은 전학, 가해자들은 버젓이 학교 다녀
문제는 가해자의 구속 여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연대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피해 학생은 사건 발생 후 두 달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전학을 갔지만, 가해 학생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부모연대 대전지부 관계자는 “가해자의 학교관계자들은 가해자들이 성적이 뛰어나고 지역의 인재가 될 학생들이므로 학업을 중단하게 하면 안 된다며 오히려 가해자들을 감싸고 있으며, 가해자의 부모들은 대체로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어 학교 측과 함께 사건을 쉬쉬하며 덮으려 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심지어 가해자들이 다니고 있는 같은 학교 학생들 중에는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당당히 학교에 다니는 가해자들을 영웅 취급하는 위험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고.
이에 비해 피해 여학생은 법적·사회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 부모연대 관계자 전언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피해 여학생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 이전에 이미 주위 사람들로부터 두 차례 더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무데도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 부모연대 관계자 말이다.
관계자는 현재 피해자의 부모는 이혼을 한 상태로 아버지도 여학생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상황이며, 학교나 지자체 차원에서도 이어지는 성폭력 등 기타 다른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부모연대 대전지부 관계자의 이어진 말에 따르면, 검찰 측은 면담 과정에서 피해 여학생을 보호시설에 격리시켜야 한다며 대전 지역에 보호시설이 없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관계자는 이 사실을 전하며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사건 후 전문기관에서 보호받아 2차 피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와 원인을 해결하고 지적장애여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전체적인 사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먼저 아닌가. 검찰 측의 말대로라면 성폭력 가해자는 멀쩡히 학교에 다니는데 피해자는 학교도 못가고 격리되어 살아야 하고, 보호시설에 있지 않으면 전부 성폭력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 기자는 검찰 측의 정확한 입장을 듣고자 면담에 참석한 대전지검 김모 부장검사실에 전화했으나, 김 부장검사실 관계자는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으며, 면담 내용은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에게 이야기한 그대로다.”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항거불능’조항, 성폭력특례법에서 사라져야 해
대전 성폭력 사건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와중에 여성가족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이 여성장애인 성폭력 실태를 발표했다.
이 의원이 최근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성폭력 피해 건수가 2006년 816건에서 2009년 2천379건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고, 피해유형 대부분이 강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이하 성폭력특례법) 위반(장애인에대한준강간등)에 대한 검찰 접수 현황을 확인해본 결과, 2006년 179건 중 71건만이 기소 처분 됐으며, 2009년에는 239건 중 93건, 2010년 1월부터 8월까지 186건 중 69건 등 기소율이 40%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전에서 벌어진 사건과 유사한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의 경우 법원 기소율이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주영 의원은 “법원이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장애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육하원칙에 의한 증거위주 식 증인심문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주영 의원은 “이로 인해 성폭력 피해사건이 ‘화간’으로 판결되거나, 심지어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무고죄로 벌금형에 처해지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의 인식뿐 아니라 법 조항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지난 10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장애인 성폭력사건 쟁점 토론회’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됐다. 재판부가 성폭력특례법 제6조 ‘항거불능’ 조항을 너무 엄격히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간음 등’을 규정하는 성폭력특례법 제6조를 보면 ‘신체 또는 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을 강간이나 강제추행의 죄로 처벌’하도록 명시돼 있으나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엄격히 해석하고 있어,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행 과정에서의 ‘항거불능’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를 놓고 논란을 빚어왔다.
이 자리에서 민병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은 “지난 수 년 간의 판례를 살펴본 결과 재판부의 판결문 어느 부분에도 지적장애의 특성이 고려되거나 지적장애로 인해 성폭력 피해 상황에서 대처 능력과 방법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은 없으며, 항거불능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해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아니라면 성폭력이 아니라는 모순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다.”며 “장애 자체로 항거불능 상태인 경우뿐만 아니라 장애가 원인이 돼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어려운 경우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지난 5월 항거불능 요건을 삭제하는 내용의 성폭력 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곽정숙 의원에 이어 민주당 최영희 의원 역시 지난 10월 20일 성폭력특례법 상 ‘항거불능’ 요건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항거불능’ 조항이 삭제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최영희 의원은 “현행 법 규정과 불합리한 법적용 때문에 지적장애인 성폭행은 처벌을 두려워 할 필요 없이 마음 놓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여러 사람에 의해 이뤄져 왔다.”며 “이제는 지적장애인이 겁을 먹거나 인지능력이 떨어져 명시적으로 성폭행을 거부하지 못하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을 명확하게 하고자 이번 개정안을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진술 대변해 줄 수 있는 공적기관 필요
전문가들은 이외에도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을 없애기 위한 방안으로 장애인에 대한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의 현경 활동가는 “영국의 경우 장애를 이유로 한 범죄의 경우 더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혐오범죄(hate crime)’로 분류하고 있다.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범죄를 저지를 경우 그 죄를 더욱 악질적인 것으로 판단, 가중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피해자가 정신·발달장애, 신체장애 때문에 법률상 동의를 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가해자가 알고 있거나,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가중처벌 하도록 돼있으며, 일리노이 주의 경우에도 지체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을 가중처벌하도록록 하고 있다.
부모연대 윤경 활동가는 “부모연대와 연대 단체들은 지적·발달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진술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려면 피해 여성들의 진술을 대변해줄 수 있는 공적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최근 진술 평가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공적 기관이 아닐 경우 재판부가 잘못된 판결을 내려도 이를 제재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기관에서 이를 수행해야 하며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과 성폭력상담 전문가들로 하여금 감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적장애 특성 고려하지 않은 비장애·남성 중심적 수사와 재판이 문제
대전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지난 10월 13일 지적장애 여중생 A양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B군(17) 등 대전지역 고등학생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중순 발생한 이 사건은 B군 등 3명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A양을 서구 둔산동 모 건물의 남자화장실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한 것이 발단이 됐다고 한다. 이후 B군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 친구들에게 A양의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B군을 포함한 고등학생 16명은 6월 중순까지 수차례에 걸쳐 건물 옥상, 공중화장실을 돌며 A양을 집단 성폭행한 사실이 가해 학생들의 진술 등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조사 중에 충분히 범죄사실이 성립됐고 가해학생을 통해 2차 피해가 충분히 우려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은 여학생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고 ▲(강간) 도중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 ▲가해학생들이 미성년자라는 점 등을 들어 불구속 처분을 내렸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대전지역 장애인 단체들과 부모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분노했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10월 13일 대전지방검찰청 앞을 시작으로 국회 정론관, 대검찰청 앞 등에서 수차례 기자회견을 갖고 “지적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의 특성을 이용한 악질적인 범행이지만, 그 때마다 지적장애를 가진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명확히 진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의 진술만 인정된 채 구속되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피해 여학생이 호감과 성추행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고 있는데, 지적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합의 하에 관계를 맺은 걸로 본다는 경찰의 태도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부족과 인권침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 대전지부 관계자는 “대전지방검찰청 앞에서의 기자회견 후 검찰청에서의 면담자리에서 모 부장검사는 ‘법에 의해 유죄를 입증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보고 법적으로 죄를 입증할 수 없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비쳤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검찰 측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지적장애 3급이면 장애가 경한 것 아니냐. 가해자들은 장애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없겠느냐.’고 물었다.”며 “검찰은 우리가 그 질문에 대해 인정하길 바라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말뜻은 검찰이 지적장애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사건을 비장애인과 남성의 시각에서 보아 가해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피해 여학생은 지적장애 외에도 의수를 착용한 지체장애 2급 장애인이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장애인인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피해여중생은 전학, 가해자들은 버젓이 학교 다녀
문제는 가해자의 구속 여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연대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피해 학생은 사건 발생 후 두 달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전학을 갔지만, 가해 학생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부모연대 대전지부 관계자는 “가해자의 학교관계자들은 가해자들이 성적이 뛰어나고 지역의 인재가 될 학생들이므로 학업을 중단하게 하면 안 된다며 오히려 가해자들을 감싸고 있으며, 가해자의 부모들은 대체로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어 학교 측과 함께 사건을 쉬쉬하며 덮으려 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심지어 가해자들이 다니고 있는 같은 학교 학생들 중에는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당당히 학교에 다니는 가해자들을 영웅 취급하는 위험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고.
이에 비해 피해 여학생은 법적·사회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 부모연대 관계자 전언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피해 여학생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 이전에 이미 주위 사람들로부터 두 차례 더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무데도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 부모연대 관계자 말이다.
관계자는 현재 피해자의 부모는 이혼을 한 상태로 아버지도 여학생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상황이며, 학교나 지자체 차원에서도 이어지는 성폭력 등 기타 다른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부모연대 대전지부 관계자의 이어진 말에 따르면, 검찰 측은 면담 과정에서 피해 여학생을 보호시설에 격리시켜야 한다며 대전 지역에 보호시설이 없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관계자는 이 사실을 전하며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사건 후 전문기관에서 보호받아 2차 피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와 원인을 해결하고 지적장애여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전체적인 사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먼저 아닌가. 검찰 측의 말대로라면 성폭력 가해자는 멀쩡히 학교에 다니는데 피해자는 학교도 못가고 격리되어 살아야 하고, 보호시설에 있지 않으면 전부 성폭력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 기자는 검찰 측의 정확한 입장을 듣고자 면담에 참석한 대전지검 김모 부장검사실에 전화했으나, 김 부장검사실 관계자는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으며, 면담 내용은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에게 이야기한 그대로다.”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항거불능’조항, 성폭력특례법에서 사라져야 해
대전 성폭력 사건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와중에 여성가족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이 여성장애인 성폭력 실태를 발표했다.
이 의원이 최근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성폭력 피해 건수가 2006년 816건에서 2009년 2천379건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고, 피해유형 대부분이 강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이하 성폭력특례법) 위반(장애인에대한준강간등)에 대한 검찰 접수 현황을 확인해본 결과, 2006년 179건 중 71건만이 기소 처분 됐으며, 2009년에는 239건 중 93건, 2010년 1월부터 8월까지 186건 중 69건 등 기소율이 40%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전에서 벌어진 사건과 유사한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의 경우 법원 기소율이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주영 의원은 “법원이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장애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육하원칙에 의한 증거위주 식 증인심문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주영 의원은 “이로 인해 성폭력 피해사건이 ‘화간’으로 판결되거나, 심지어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무고죄로 벌금형에 처해지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의 인식뿐 아니라 법 조항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지난 10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장애인 성폭력사건 쟁점 토론회’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됐다. 재판부가 성폭력특례법 제6조 ‘항거불능’ 조항을 너무 엄격히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간음 등’을 규정하는 성폭력특례법 제6조를 보면 ‘신체 또는 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을 강간이나 강제추행의 죄로 처벌’하도록 명시돼 있으나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엄격히 해석하고 있어,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행 과정에서의 ‘항거불능’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를 놓고 논란을 빚어왔다.
이 자리에서 민병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은 “지난 수 년 간의 판례를 살펴본 결과 재판부의 판결문 어느 부분에도 지적장애의 특성이 고려되거나 지적장애로 인해 성폭력 피해 상황에서 대처 능력과 방법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은 없으며, 항거불능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해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아니라면 성폭력이 아니라는 모순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다.”며 “장애 자체로 항거불능 상태인 경우뿐만 아니라 장애가 원인이 돼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어려운 경우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지난 5월 항거불능 요건을 삭제하는 내용의 성폭력 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곽정숙 의원에 이어 민주당 최영희 의원 역시 지난 10월 20일 성폭력특례법 상 ‘항거불능’ 요건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항거불능’ 조항이 삭제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최영희 의원은 “현행 법 규정과 불합리한 법적용 때문에 지적장애인 성폭행은 처벌을 두려워 할 필요 없이 마음 놓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여러 사람에 의해 이뤄져 왔다.”며 “이제는 지적장애인이 겁을 먹거나 인지능력이 떨어져 명시적으로 성폭행을 거부하지 못하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을 명확하게 하고자 이번 개정안을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진술 대변해 줄 수 있는 공적기관 필요
전문가들은 이외에도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을 없애기 위한 방안으로 장애인에 대한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의 현경 활동가는 “영국의 경우 장애를 이유로 한 범죄의 경우 더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혐오범죄(hate crime)’로 분류하고 있다.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범죄를 저지를 경우 그 죄를 더욱 악질적인 것으로 판단, 가중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피해자가 정신·발달장애, 신체장애 때문에 법률상 동의를 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가해자가 알고 있거나,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가중처벌 하도록 돼있으며, 일리노이 주의 경우에도 지체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을 가중처벌하도록록 하고 있다.
부모연대 윤경 활동가는 “부모연대와 연대 단체들은 지적·발달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진술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려면 피해 여성들의 진술을 대변해줄 수 있는 공적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최근 진술 평가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공적 기관이 아닐 경우 재판부가 잘못된 판결을 내려도 이를 제재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기관에서 이를 수행해야 하며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과 성폭력상담 전문가들로 하여금 감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성자김라현 기자 husisara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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