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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지적장애 여성,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험난한 여정

지적장애인에 대한 강간죄의 판단

본문

[인권오름]

성폭력 사건의 특징은 피해자가 의심받는 범죄라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나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가 쟁점화 되면 전 사회가 분노에 휩싸이지만, 어떤 ‘성교’ 행위가 정말로 성폭력이었는가를 판단하여야 할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강간신화’ 때문이다. 강간신화의 정점에는 ‘성폭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형법상 강간죄의 해석은 강간신화로부터 시작된다. 피해자의 저항을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을 사용한 간음이라야 강간죄로 처벌한다는 ‘최협의 폭행협박설’은, 폭행이나 협박이 약하여 피해자가 저항을 할 여지가 있었다면 강간으로 볼 수 없음의 다른 표현이다.

저항할 여지가 없었음에도 처벌하는 예외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장애인준강간이다. 강간죄가 가해자의 폭행, 협박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는 경우의 간음을 처벌한다면 장애인준강간죄는 가해자가 폭행이나 협박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도 장애로 인하여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었다면 성립된다. 그래서 법원은 피해자에게 저항가능성이 있었는지 여부를 더 엄밀하게 살피고자 한다.

    ▲ [설명] 2010년 10월 21일 개최된 <장애인 성폭력 사건 쟁점 토론회> ‘거부는 항거가능성의 표현’

최근에는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3년 전만 해도 판결문을 한두 번 읽어서는 오타나 오독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의 판단들이 종종 있었다. 13살에 불과하고 지적장애가 있어 정신연령은 그 절반밖에 되지 않았던 한 피해자는 평소에 엄마가 피고인에게 맞는 것을 자주 봐온 터라 피고인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피고인의 성관계 시도에도 무력하게 ‘하지 마세요.’ 하면서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그 ‘하지 마세요.’를 두고 ‘거부의사를 표현하였으므로 항거불능이 아니다’라고 하는 식이다.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임신, 피임, 낙태 등의 의미를 안다, 성경험이 있다,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결혼했다, 혼자서 버스를 탈 수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설거지를 할 수 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닌다, 성관계에 대해 싫다고 말했다, 옷을 벗으라고 하자 거부했다 등등 성경험, 성지식, 일상생활능력, 학력, 거부의사의 표현과 같은 요소들은 모두 항거불능이 아닌 이유로 이해되었다. 법원은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위력을 이용한 간음을 처벌하는 심신미약자간음죄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므로 장애인준강간죄의 인정은 엄격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상생활조차 어렵고 성관계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중증 장애만을 ‘항거불능’으로 보고자 하였다.

2007년 7월 대법원 판결 이후 이와 같은 판결의 흐름에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다. 대법원은 장애 자체로 인하여 저항하지 못하는 경우 뿐 아니라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저항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포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특히 정신적 장애에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주변 환경, 가해자와 피해자의 행위, 반응 등도 고려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중증 장애가 아니어도 정황상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웠고 장애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을 경우, 장애인준강간으로 처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 판결 이후에도 그 이전과 유사한 판결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정황요소들을 검토하되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판결들은 장애인준강간을 적용하는 데 ‘고도의 정신적 장애’를 요구한다.

강간죄는 폭행, 협박을, 심신미약자간음죄는 위계, 위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폭행이나 협박, 위계나 위력이 불필요한 장애인준강간죄가 중증장애에만 적용된다면, 처벌의 공백이 생긴다. 성관계의 의미를 전혀 모르거나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도의 중증장애는 아니지만 가해자가 두려워서 저항하지 못했고, 그래서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강제력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수월하게 성폭행할 수 있었던 사례는 적용할 조항이 없게 된다. 저항 없음을 동의로 간주하기 이전에 저항의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장애인이 피해자일 때 반드시 장애인준강간죄만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조항의 적용이 가능한데도 장애인준강간죄의 적용만을 고집할 경우, ‘장애로 항거불능일 것’이라는 요건 때문에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피해자의 장애를 강조해야 하는 딜레마를 놓치게 된다.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강간죄가 적용되든 ‘고도의 장애’로 장애인준강강죄가 적용되든 간에, 성폭력 재판에서 종국적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가해자의 성적 폭력이지 항거불능이라는 피해자의 상태가 아니다.

‘다른 언어’와 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불신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에서 또 하나 문제되는 것은 진술의 일관성에 대한 판단이다. 범행이 인정되려면 피해자의 증언은 초동수사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번복되지 않아야 하고, 다른 증거와도 맞아떨어져야 한다. 법언어는 범행 날짜와 시각, 피고인과 피해자의 행동, 주변 상황에 대한 진술이 명확하고 사리에 맞을 것을 요구한다. 제3자 증인이나 다른 증거가 부족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성폭력 피해를 겪은 비장애인에게도 이는 쉽지 않은 일인데 장애특성상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지적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숫자개념이나 사건의 선후관계, 인과관계 개념이 약하거나 추상적인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은 수사기관이나 법정의 요구에 맞게 피해를 설명할 수도 없고, 가뜩이나 추상화된 표현의 질문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과 불리한 진술을 구분하지 못하고 묻는 것에만 답하는 특성은 진술번복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증언이 반복되면서 지적장애인의 진술이 ‘달라지는’ 데 대한 법원의 태도는 다양하다. 어떤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을 하나하나 뜯어 살펴보면서 날짜가 특정되지 않거나 사건의 순서가 뒤바뀌면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반면 어떤 법원은 이와 같은 진술 ‘번복’이 있어도 숫자개념이나 인과관계 인식이 미약한 지적장애의 특성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범행 부분에 대해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으면 피해자의 증언이 믿을 만하다고 인정한다. 수사기관도 마찬가지이다. 범행 날짜에 대한 진술을 얻어낼 때까지 반복해서 질문하거나 불기소하는 예가 있는가 하면, 지적장애의 특성상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으로 진술할 수 없는 부분은 대략적으로만 특정하고 기소하는 사례도 있다.

지적장애에 대한 수사기관이나 법정의 이해 정도는 범행의 성립을 좌우한다. 비장애인인 질문자와 장애인 피해자는 때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질문자가 가해자를 지칭하여 ‘아저씨가 무섭게 했나요?’라고 질문한다고 하자. 피해자는 ‘무섭게 하다’라는 추상적 표현을 단지 ‘소리를 지르다’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가 자신을 끌고 갈 때 말리던 친구를 때린 것, 엄마에게 말하면 죽여 버린다고 나지막하게 협박한 것은 말하지 않고 ‘아니오’라고만 한다. 이러한 피해자의 특성을 질문자가 알지 못한다면, 질문자는 피고인이 폭행하거나 협박하거나 위력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고, 성폭행이 아니라고 결론내리거나 진술이 자꾸 번복된다고 하면서 피해자를 의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폭행 횟수에 대한 질문에 장애인이 ‘한번’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답변일 수 있다. 가해자가 여러 차례의 범행을 자백하였지만, 장애인인 피해자가 ‘한번’이라고 진술하여 단 한 차례의 범행만이 인정된 예도 있다. 어떤 지적장애인에게 ‘한번’은 때로는 ‘아주 많이’를 의미하거나 단지 ‘그때’를 뜻하기도 한다. 뇌물을 준 사람이 경찰조사에서 ‘밥 한번 먹은 걸 가지고 뭘 그래요’라고 말할 때, 피의자들이 ‘1회’ 식사를 함께 하였다고 조서를 작성한다면 이는 일종의 코미디가 되겠지만 지적장애인의 조사에서는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장애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보조할 필요성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에 대한 협소한 해석과 지적장애인의 진술에 대한 몰이해는, 성폭력에 대한 비장애인 남성 중심적 관점으로는 해소되기 어렵다. 장애인 성폭력 범죄의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하게 전제되어야 하는 점은 당연하게도 ‘장애인’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이다. 이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음의 보완이 요구된다.

첫째, 장애인 피해자를 위한 절차보조인이 필요하다. 현행법은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기 위하여 피해자 증언시 신뢰관계자가 동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신뢰관계자가 피해자의 옆에 있어서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안정되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에 따른, 다분히 비장애인 중심적인 제도라고 생각된다. 지적장애인의 의사소통은 비장애인과는 다른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이라는 측면과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장애인이 비장애인 피해자와 동일한 수준의 절차 참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성폭력과 장애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피해자 개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절차보조인이 사건의 발생에서 최종심급의 재판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피해자를 보조할 필요가 대두된다. 절차보조인은 한편으로는 피해자 조사와 증언시 진술을 보조하는 진술보조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3자인 전문가로서 피해자의 주변에 있는 사건이해관계인이 ‘신뢰관계자’나 ‘보호자’라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사실상 대리하여 사건을 이용하는 폐해를 차단하고,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피해자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장애 때문에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절차참여보조인으로서의 역할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 진술녹화영상의 중요성

둘째, 진술녹화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피해자가 장애인인 경우 진술녹화는 의무이고, 다른 사건과 달리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을 녹화한 영상은 문자조서 없이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실무에서는 문자조서만을 활용한다. 진술녹화는 장애인인 피해자의 진술을 진술 전체의 맥락에 따라 이해하도록 해 준다. 조서는 진술의 정황까지 기록한 속기록이 아니라 범죄의 성립에 맞게 수사관이 잘 정리한 문서이기 때문에 영상에는 드러나는 장애특성이 충실히 반영되기 어렵고, 수사관은 조서를 작성하느라 피해자의 표정이나 말투, 몸짓에서 드러나는 신체언어를 놓치기 쉽다. 이를 보완하는 영상물의 장점을 수사기관과 법원이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작성자김정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객원연구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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