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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인권을 강도당한 노동자들의 호소

[인권문헌읽기] 1978년 동일방직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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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며칠 전부터 핸드폰 기계가 먹통이 됐다. 꼬박 6년을 쓴 기계다. 전화를 무지 싫어하는 나는 생활필수품이란 핸드폰을 장만하지 않고 버텼는데, 이를 보다 못한 아빠가 ‘사회생활 하는 사람이 그것도 없이 어찌 사냐’면서 억지로 만들어준 물건이었다.

지인들에게 악명 높은 통화습관으로 알려진, ‘응, 알았어, 끊어’외엔 별말 안하고, 번호 노출 안하고 너무 안 써서인지 한 기계로 6년을 버텼다.

기계가 다된 김에 아예 핸드폰을 없앨 것인가, 남들처럼 최신 폰을 장만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주변 사람들은 6년이나 한 기계로 버텼다는 걸 신기하게 여긴다. 뭐 그게 대수로운 일이라고. 그런데 말이다. 조심조심 쓴 기계도 닳아버리는 6년여 세월동안 한 자리에서 같은 소리를 외쳐온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구로디지털 산업단지에 자리 잡고 디지털위성방송기술의 선두주자임을 자랑해온 기륭전자를 상대로 6년여 다윗의 싸움을 펼쳐온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2005년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분노해서 노조를 만들고 처우개선을 요구했다가 200여명이 해고됐다.

그때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이 받던 임금은 그해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만 1850원이었다. 밥벌이도 밥벌이지만 인간대접을 받아봐야겠다고 싸움에 나선 게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요 며칠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행동을 할 때만 잠깐 주목받을 뿐, 사람들의 시야밖에 있을 때가 더 많았다. 94일 씩이나 단식을 하기도 했고 서울광장의 16미터 무대 조명탑, 구로역 광장의 25미터 감시카메라(CCTV) 철탑 등에 오르기도 했다.

굶는 일이라면 진저리가 쳐질 텐데 얼마 전 다시 세 번째 단식을 시작했다. 협상이 또 깨졌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회사와 그걸 방치하는 정부에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포크레인에 올라간 송경동 시인과 김소연 분회장,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출처] 참세상
이들이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굶고 밟히고 협박받고 손해배상 두들겨 맞으며 6년여 한 자리에서 외친 요구는 억울하게 해고됐으니 ‘일자리를 돌려 달라’는 것이고, 파견노동자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로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다.

내가 그 회사 다니면 그 회사 직원인 것으로 아는 일반인의 상식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물러서면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견노동과 무노조, 무권리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에, 강자는 언제나 이기고 챙기며, 약자는 언제나 지고 잃는다는 패배감을 벗어날 수 없기에 계속 가야한다고 말한다.

국제적으로 강조하는 ‘핵심’ 노동 기준이라는 게 있다. 시장에서 강자들의 횡포가 심해질수록 노동규범이 위협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결코 이것만은 건드려서는 안 되고, 이걸 지켜야만 다른 노동기준들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취지로 세계정상들이 합의한 ‘핵심’ 기준이다.

여기에 속하는 항목은 달랑 네 가지다. 이걸 또 압축하여 두 개만 추려 보면, 그중 하나가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또 하나가 고용에서의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다. 세상의 노동인권기준을 압축하고 압축하여 남은 단 두 가지 핵심기준도 못 지킨다면 노동자의 다른 권리상태는 볼 것도 없이 빤한 것이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는 이 ‘핵심’에 해당한다.

많고 많은 노동자들이 이 핵심 노동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1978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절규를 담은 <인권을 강도당한 노동자들의 호소>이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소수의 남성들이 장악해서 기업주에 순응하는 어용노조에 맞서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대표를 뽑아 만든 노조를 지키려 싸웠다. 이에 노조를 파괴하려는 사측은 깡패들을 동원해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세례까지 퍼붓고 공장 밖으로 내쳤다. 여공이라 불리던 그녀들은 부당함에 맞서 끈질기게 싸웠고 동일방직 투쟁은 서슬 퍼런 유신체제의 폭압에 맞선 대표적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 호소문을 읽다보면 기륭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 30여 년 전 선배들이 겪었던 일들과 겹쳐진다. 용역깡패들이 성적인 폭언과 폭력을 가하고 경찰은 폭력을 방관하고 사회불순세력의 사주를 받아 저런다는 회사 측의 선전과 정부의 외면까지 꼭 닮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닮은 게 있다.

   
송현숙 작가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똥물사건>(1979, 종이에 유채)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이렇게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기륭노동자의 말이 “아무리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도 인간이다”는 동일방직 노동자의 선언과 만난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고 냉장고가 커지고, 티브이가 평평해져 화려해질수록 우리 일하는 사람들은 일회용 휴지보다 못한 처지로, 김치마저 먹지 못하는 서러운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는 지적은 “100억불 수출의 도구로 사용된 저희들은 1,000불 소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는 고발을 이어간다.

진짜 닮은 것은 이것이다. “비정규노동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기 위해 싸운다.”며 “탄압 때문에 포기했다면 지금의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륭 노동자들의 의지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와 같이 고통당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권리를 포기하게 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는 동일방직 여공들의 다짐을 빼닮았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핸드폰이 존재의 근거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디지털 세상이다. 인간과 세상의 소통을 돕는다는 디지털 세상을 만드는 디지털산업단지 노동자들의 태반이 비정규직이란다. 무소통과 무권리위에서 소통의 기쁨과 권리를 말하는 것이 참 이상해 보인다. 핸드폰 없이 살아볼까 생각하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대신 이런 걸 이상하게 봐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과 함께 자기 몸을 불사른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기륭여성노동자들에게는 새로운 장이 열리는 해가 됐으면 정말 좋겠다.

인권을 강도당한 노동자들의 호소(1978년 동일방직 노조)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왔어도 똥을 먹고 살지는 않겠다.”
이 울부짖음은 지난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에서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깡패들에게 당한 우리 근로자들이 똥물을 뱉으며 통곡하던 말입니다.

가죽장갑을 끼고 조종을 받아 움직이는 이 몇몇 깡패근로자들은 똥을 바께스로 들고 와 머리부터 뒤집어씌우고 손으로 찍어 투표하러 오는 저희들의 입속에 쑤셔 넣고 걸레에 묻혀 얼굴에 문대고 가슴에 집어넣었으며 똥으로 뒤범벅이 되어 눈도 못 뜨는 우리들 머리채를 나꾸어채 끌고 다녔으며 이빨로 입술을 물어뜯기도 했습니다. 이 기막힌 만행은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처하는 경찰들과 근로자의 고통을 대변한다는 섬유노조 본조 그리고 회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공공연하게 자행된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저희 동일방직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1972년에 어용노조를 우리의 손으로 선거를 통해 정상을 회복한 후 탄압, 감시, 징계 그리고 채찍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1976년 2월 대의원 선거 때부터 관의 노동조합 말살계획은 표면화되었으나 우리는 위협, 매수, 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이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30도가 넘는 땡볕아래서 물조차 마시지 못하며 밤낮없이 만 3일을 단식농성을 했고 경찰과 회사 측 깡패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질에 우리는 벌거벗은 몸으로 저항을 했고 노조를 지키기 위해 수치심도 버렸으며 회사 밖에서 농성하던 우리의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채 72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50여명은 기절하고 14명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한 동료는 난폭한 경찰의 만행에 쇼크로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6개월을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저희들은 인권을 위해 구둣발에 짓밟혔고 경찰차 바퀴 밑에 드러누웠으며 휘두르는 몽둥이에 쓰러졌습니다. 경찰은 회사와 결탁하여 지부장을 공금횡령으로 뒤집어씌우는 공작을 하다가 실패를 하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우리들을 취조하고 빨갱이 년들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21일 아침 투표장인 조합사무실은 몇몇 술 먹은 회사 측 남자조합원들이 몽둥이로 다 때려 부숴놨고 투표하러 온 우리들을 구타하고 탈의장에 벗어놓은 옷도 모두 똥을 부어 놓았으며 회사 측 지부장 입후부자 박복례는 깡패들에게 둘러싸여 저년에게 똥을 먹이라고 지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눈도 못 뜨고 귀와 입으로 온통 똥을 먹은 우리는 영하의 새벽공기를 잊고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아무리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는 똥을 먹을 수는 없다.”라고 가슴을 쥐어뜯었습니다. 치안유지를 위해 동원된 경찰들은 도와달라고 외치는 우리들에게 “야! 이 썅년들아 입 닥쳐 있다가 말릴 꺼야”하며 욕설만 퍼붓고 구경만 하였습니다. 이래도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일까요?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100억불 수출의 도구로 사용된 저희들은 1,000불 소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똥을 먹어야 하는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신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의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는 설움이며 고통입니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통해서 민주주의도 배웠으며
적어도 우리의 지도자는 우리의 손으로 뽑아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회사 측의 꼭두각시에게 우리 노동조합을 넘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끝까지 싸워 승리할 것입니다.
정의는 쓰러지지 않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와 같이 고통당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권리를 포기하게 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힘찬 격려와 협조를 바랍니다.

전국 섬유노조 동일방직 지부. 1978.3.

작성자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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