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활동지원제도, 누구를 위한 복지정책인가
본문
들어가며 :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입법예고 되고, 새로운 제도의 탄생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기쁨보다는 분노가, 기대보다는 참담함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지금의 장애인활동지원법(가칭)과 제도에 관한 논의는 1년전 장애인연금법과 제도가 만들어지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장애인을 위하는 정책을 보인다는 정략적 목적’이 복지정책 추진의 원동력인 모양새가 그렇고, 대통령 한마디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졸속적 행정이 그렇고, 뒤통수 때리기 직전에 가서야 몇 단체 불러서 간담회 알리바이나 만드는 ‘장애계와의 소통’ 방식도 그렇고, 선전만 요란했지 알맹이는 다른 데서 끌어다 그저 새 바구니에 담기만 한 과대 허위광고도 그렇고, 정작 중요한 제도설계는 빠져있고 별 할 말 없는 법안을 놓고 반대를 해야 할지 일단 도입하는데 의의를 두고 메아리도 없는 문제제기를 해야 할지를 판단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사실 전후좌우 상황을 빼고 이 법안만을 놓고 보면, 할 말을 찾아내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칭)는 이렇게 졸속적으로 만들어지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제도이다. 수십만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생존과 생존방식이 달린 문제이며,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핵심적 제도인 것이다.
이에 법률안과 지금의 추진과정에서 애써 감추고 있는 중대한 문제들을 분명히하고, 그 대안을 찾아가 보자.
절차상의 문제 - 정략적 전시행정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장애인장기요양’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던 본 제도에 관한 논의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공식적으로만 3년, 실제는 그 두 배 이상의 세월에 걸쳐 본 제도 도입을 논의해왔고, 그 논의의 주체는 행정당국이나 정부여당만이 아니었다.
장애계와 전문가 등이 포함된 ‘추진단’ 회의도 있었고, 공청회와 토론회 등도 있었다. 많은 쟁점들을 뽑아서 논의를 하였고, 시범사업을 둘러싸고는 커다란 이견과 반대가 있었다. 그 쟁점 논의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건복지부는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당장의 법제도 논의는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고 2012년 제도도입이 공공연히 이야기 되어졌다.
그러다 대통령의 친서민정책이 아직 내부장치도 완성되지 않은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갑자기 법률안이 입법예고 되고 2011년 10월 제도도입이 발표되는 급발진 사태에 이른 것이다.
장애계가 대원칙으로 제시했던 방식과 명칭의 문제, 즉 활동보조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제도도입을 할 것과 장애인이 주체임을 표현하는 서비스의 명칭의 문제 이외에는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합의되고 정리되었는지 확인조차 하기 어렵다.
쟁점 하나, 서비스 대상자 추계의 문제
대상자를 5만 2천명으로 산정한 것은 타당한가?
이미 여러차례 인용된 바와 같이 전체 장애인의 14.5%가 일상생활의 대부분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2008년 장애인실태조사). 거의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5.4%이다. 이 수치가 어쩌다 갑자기 2% 남짓한 수치로 바뀌었을까?
어림잡아도 35만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서 복지부는 또다시 일상생활동작(ADL)에서 완전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수라는 기준으로 대상자를 9만2천명 정도로 줄이고, 그 중에서도 현재 활동보조서비스 인정조사표 상 220점(활동보조서비스 제공기준) 이상인 사람을 추산하여 5만 2천명이라는 수치를 얻은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가 처음 시행이 될 때에도 정부의 대상추계는 엄밀히 말하자면 대상추계라기 보다 예산에 따른 사업실적 목표에 불과했다. 그 결과 대상자는 폭증하는데 예산논리에 가로막혀 장애인의 권리가 짓밟히고, 도중에 신규 신청이 금지되는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하여 ‘선착순 복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복지부는 신규신청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신청해도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대기상태’라고 하지만, 말장난에 불과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토록 거대한 제도를 설계하면서 전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서비스 제공계획이 연차계획으로라도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다못해 9만 2천명 정도로는 시작하고, 수년내 그 배에 육박해야 본 제도가 그동안 몇 년을 논의해왔던 바로 그 제도라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제2의 장애인연금 꼴이 나지 않으려면 말이다.
쟁점 둘, 서비스 대상제한의 문제
법률안에는 등급제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본 제도 역시 대상자를 엄밀히 말하자면 신청자격을 1급으로 제한하고 의료적 기준만을 절대시 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장애계가 그토록 문제제기를 했건만 아직 아무런 개선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대안을 기대하기 어려움은 자명한 것이다.
장애등급제의 문제점은 이미 2010년 등급재심사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면서 드러났고, 의학적 형평성의 문제가 아닌 장애에 대한 정의와 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 등 전반의 문제점들이 지적되었음에도 그야말로 복지부동인 것이다.
등급제한 폐지는 단순히 문을 넓히는 정도가 아니라, 개인의 환경과 욕구가 고려된 선진적 복지전달체계와도 이어지는 중대한 문제제기 인데,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시도할 것인가?
쟁점 셋, 서비스 급여내용의 문제
법안에서는 본 제도의 급여 종류를 활동보조, 방문목욕, 방문간호, 주간보호, 기타 재가급여 등으로 정하고 있다. 방문간호와 방문목욕은 1차 시범사업을 거친 바 있지만 주간보호는 전혀 검증된 바가 없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장애인활동지원이라고 하면서 하나씩 시설급여도 은근슬쩍 집어넣고, 나중에는 노인요양과 같은 방식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이념적으로도 문제가 있을뿐더러, 내용에 있어서도 구분이 필요하다. 주간보호는 활동지원제도의 다른 급여와 성격도 다르고, 기존에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라, 무조건 한바구니에 담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쟁점 넷, 서비스 급여량 제한의 문제
서비스 급여량은 기존 활동보조서비스에 새로운 급여가 추가지원되는 형태인데, 문제는 이미 시범사업에서도 월100시간 이상을 받는 사람은 서비스신청 자체가 안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서비스의 상한제한을 만든 것인데, 그것도 고작 월180시간인 현행을 그대로 유지하는 꼴이다.
아래 표는 2006년 4월 현재 일본의 홈헬프서비스 결정량 자료이다. 부끄럽게도 본 자료를 일본에서 작성한 목적은 서비스양의 부족을 나타내기 위함인데, 우리는 이것을 부러운 시선으로 봐야 한다.
쟁점 다섯, 급여량 단위의 문제
복지부는 시범사업에서부터 노인요양보험과 같은 방식으로 급여량 단위를 화폐량으로 환산하더니, 2010년 활동보조서비스는 아예 은근히 단위를 화폐량으로 바꾸어놓았다. 하루 고작 서너시간, 한달 고작 100시간 정도의 서비스를 받던 장애인이 이제는 한달 80만원의 급여를 받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었다.
신체수발 서비스는 그 성격이 장애인의 소득보장과는 전혀 무관함에도, 이것을 화폐량으로 환산하여 마치 장애인에게 대단한 현금급여라도 제공되는 것처럼 환상을 일으키고 있다. 의도된 환상임에 분명하다.
활동지원과 같은 서비스는 장애인의 마이너스(-)의 삶을 남들과 평등한 제로(0)상태로 만들기 위한 서비스이다. 마땅히 서비스를 통해 생활할 수 있는 생활단위, 즉 시간으로 환산하여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쟁점 여섯, 이용자 자부담의 문제
본 법안과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자부담 인상이다.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은 무료 또는 상한액을 두어 부담을 경감할 계획이 있지만, 일반의 경우에는 최대 월15%라는 엄청난 자부담을 규정하려 하고 있다.
활동지원제도의 목적이 무엇인가? 장애로 인해 불편한 활동을 지원하자는 것 아닌가? 장애로 인해 활동이 불편한 사람은 사회제도의 지원이 없다면 어떠한 권리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활동지원서비스는 권리이다.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하고, 문화를 즐기고, 정보에 접근하고, 행복을 추구하고, 자립생활을 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권리라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로서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구소득에 의한 자부담은 또한 장애인의 박탈감을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가 저소득층에 대한 경감조치를 마련한다고 하지만, 그 역시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정부는 ‘부잣집 장애인도 공짜로 서비스를 주란 말이냐’라며 가구소득기준이 타당한 듯이 주장하지만, 장애인의 삶을 철저하게 가족의 부양대상으로 보는 태도 자체가 장애인의 자립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자부담 인상은 장애인의 자립의지까지 꺾어버릴 것이다. 사회활동을 하고 자립생활을 꿈꿀수록 더 많은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더 많은 권리를 누리고자 할텐데, 자립을 꿈꿀수록 늘어나는 자부담은 자립의 꿈을 스스로 통제하게 될 것이다.
“막말로 장애인연금 얼마 늘었다고 자부담 인상인가” 장애인의 현실은 솔직히 이렇다.
쟁점 일곱, 포괄성과 경계의 문제
활동보조서비스는 장애아동에게, 그리고 정신적장애인에게 매우 불리했다.
서비스 신청자격을 1급으로 제한함으로 인해 등급간 격차가 크지 않거나 2, 3급의 경우에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정신적장애인은 서비스가 필요함에도 접근조차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장애아동의 경우는 서비스 제공시간이 성인의 절반만 인정되었다.
서비스판정체계 역시 신체적 장애인, 성인장애인 중심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비스의 제공방식은 정신적장애인과 장애아동의 현실과 욕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일었다.
활동지원제도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우려된다. 오히려 주간보호서비스가 그냥 형식적으로만 포괄되어 있을 뿐인데, 정작 서비스의 포괄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저것 담는다고 그릇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65세 이상 노인의 문제도 심각하다. 노인요양보험과의 형평성 운운하면서 65세 생일이 지나면 활동보조대상에서 자동으로 탈락되어 서비스가 중단되는 활동보조서비스의 문제는 수없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현행 활동보조서비스가 노인요양서비스보다 급여량이나 자부담 면에서 훨씬 유리한 상황인데, 65세가 넘으면 하루아침에 서비스가 끊기고 운이 좋으면 노인요양에서 약간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생존의 위협에 처하는 것이 지금의 구조이다.
행정구조상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복지부와, 자신의 삶이 하루아침에 벼랑에 내몰린 장애인의 모습이 지금의 현실을 상징하는 단면인 것이다.
쟁점 여덟, 전달체계의 문제
본 법안과 제도에서 전달체계의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복지부가 밝힌대로 활동보조서비스를 확대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활동보조서비스가 보여준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활동보조를 확대만 했지 개선은 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논의 중인 바우처관리법이나 이전에 발표된 정부의 사회서비스혁신방안, 그리고 유사서비스라 불리는 노인요양서비스의 예 등을 통해 향후 정부의 구상을 추론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우처방식을 기본으로 사업기관을 확대하고 영리기관의 참여를 도모하는 것 등, 노인요양서비스와 유사하게 가자는 것이다.
바우처제도의 문제점과 노인요양서비스의 사업기관 난립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위 그림과 같이 바우처수수료를 중심으로 작동되는 활동보조서비스는 정부의 공적 역할과 책임이 보이지 않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사업기관들이 비영리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시장경쟁의 메커니즘 속에서 더 많은 바우처수수료를 획득하기 위한 자기파괴적인 밑바닥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해 서비스를 이용 못하는 장애인이 발생해도 문제는 드러나지 않는다. 성추행 등의 사고들이 발생해도 은폐되기 일쑤다. 제한된 서비스 양과 열악한 활동보조인의 환경은 ‘서비스의 선택권’이란 결국 환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복지를 위해 협력해야 할 기관들이 과당경쟁을 하는 사이, 장애인의 권리와 정부의 책임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마치며 : 또 다시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
이 법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활동지원급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경감함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활동보조의 대상을 추가하고 급여를 확대하는 것은 새로운 법 제도의 출범 없이도 가능한 일이다. 위 목적이 진짜 목적이라면 산적한 문제를 권력의 힘으로 덮어두고 강행할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법과 제도가 진정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재논의를 해야 한다. 앞서 제기한 한 가지 한 가지의 쟁점들 모두 장애인의 삶을 둘러싼 중대한 문제들이며 충분히 논의되고 소통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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