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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글도 첫인상이 중요합니다

연필잡고 글 쓰기 네 번째 대화

본문

   
▲ ⓒ채지민
1.
문학상 심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 심사의 기억들이 다양하게 남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늘 먼저 떠오르는 건 5,6년 전 어느 문학상 예심을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집행부의 행정착오가 있었는지, 단 사흘의 심사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심사기간이야 이틀이든 일주일이든 별 상관이 없습니다만, 문제는 제가 맡았던 단편소설 부문의 심사위원이 세 명뿐이었다는 겁니다.

각 심사위원마다 이삿짐 박스 한 상자 분량의 응모원고가 배당됐습니다. 이삿짐 포장에 쓰는 푸른색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 아시겠죠? 지금 인터넷으로 그 크기를 확인해 보니까 가로 70cm에 너비 50cm, 높이는 45cm나 되네요. 어른 하나가 웅크려 들어갈 크기의 커다란 상자 가득한 응모 원고를 단 사흘 동안, 그것도 각각 한 상자 분량씩 심사해야 한다는 양해 비슷한 설명이었습니다. A4지로 출력된 원고들을 꺼내 쌓아보니 저의 키보다 훨씬 높았는데, 이걸 사흘 동안 끝내라니… 처음부터 숨이 탁 막혔죠.

맡은 책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성격 탓에, 나이 들어 처음으로 사흘을 꼬박 새며 심사를 마치기는 했습니다. ‘이걸 과연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배된 상태였지만, 심사 자체는 무난히 마무리했다고 자평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심사해서 본심에 올렸던 응모작품들 중에서 대상과 은상 수상작이 나왔으니까요. 시 수필 소설 동화 동시 등의 각 분야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작품들이 금은동의 상을 각각 받는데, 제가 추천했던 작품이 전체 응모작 중 최고의 영예인 대상을 받았다는 건 나름 보람 있는 심사결과였다고 기억되곤 합니다.

2.
그런데 그 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단 사흘 만에 심사할 수 있다는 걸까요? 이 대목에서 등장해야 하는 게 바로 이번 글의 제목입니다. ‘글도 첫인상이 중요합니다’ - 네, 첫인상이 사람 간의 관계에서만 중요한 건 절대 아니죠. 사람 사이의 첫인상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을 통해서 어느 정도 수정되는 게 가능하지만, 응모된 원고의 첫인상은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Yes’ 아니면 ‘No’, 그렇게 두 가지만 존재하니까요.

심사방법은 원고의 분량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동일합니다. 단편소설의 경우 응모작 분량이 A4지 10장이든 15장이든 간에, 첫 장과 두 번째 장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대강의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첫 장에서 받았던 ‘첫인상’을 기준으로 두 번째 장을 절반 정도 읽고 나면, 그 응모작이 본심에 올릴 작품인지 아닌지가 확인됩니다. 탈락으로 결정된 응모작들은 따로 분류하고, 내용이 괜찮다 싶은 작품들은 세 번째 장까지 읽습니다. 더 괜찮다 싶으면 네 번째, 다섯 번째 장이 계속 넘어가게 되죠. 마지막 장까지 다 읽지 않아도, 예심통과 여부는 그 시점에서 이미 결정됩니다.

응모자가 긴 시간 동안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완성한 작품을 다 읽지도 않고, 어떻게 몇 장만 읽고서 통과와 탈락을 예단하느냐 반문하실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오랜 기간 동안 심사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처음 읽게 된 글이라도 그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시작부분이 깔끔하고 탄탄한 문장력을 갖춘 작품이라면, 중간 이후에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추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반대의 예로, 시작 부분이 서툴고 엉망이었던 작품이 중간 이후부터 갑자기 완벽해질 리 또한 없습니다. 거기엔 몇 가지 전제조건으로 검토하는 사항들이 있죠. 맞춤법이 틀리는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잘못 쓴 오탈자가 몇 군데 보이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안 됩니다. 표준어 아닌 사투리나 구어체 어투가 갑자기 등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신 문학 자체의 차원에서 용납이 안 되는 건, 문학상에 응모한 작품인 만큼 ‘문학’을 기준으로 모든 걸 평가내리는 게 당연하다는 점입니다.

가장 쉽게 지적되는 건 인터넷 용어가 난데없이 등장하고, 심지어 이모티콘이라는 상징까지 묘사될 경우입니다. 문학의 영역에서 포용 가능한 수준을 벗어났다면, 그 응모작은 1차적으로 탈락할 수밖에 없는 일이겠죠. 첫 장과 두 번째 장에서 그런 용어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응모작일 경우에는, 십중팔구 마지막 장까지도 비슷한 표현들이 반복되곤 합니다.

‘문학과 문학 아닌 문법’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습작에 불과하다는 뜻이 되는 것이죠. 휴대전화 같은 손쉬운 문자메시지 주고받기와 인터넷 동호회의 게시판 글쓰기에 익숙했던 습성에 젖어 있다면, 그 응모자의 작품 또한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또한 열심히 쓴 흔적은 분명히 보이는데, 소재와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작품 또한 탈락으로 결정됩니다. 그 응모작을 완성하기 위해 몇 개월이 걸렸는지, 1년이나 2년 이상 필요했는지 여부 같은 건 심사위원 관점에선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닙니다. 소설 분야에 응모했으면 소설작품다워야 하고, 시 분야에 응모했다면 시다운 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얻어야 하는 건 당연하겠죠.

가끔씩 탈락한 분들 중에서 항의전화 같은 게 빗발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문학상을 진행하는 담당자들이 아주 곤혹스러운 입장이 된다고 전해 들었는데, 심사위원들은 응모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글을 적었는지, 그런 상황판단까지는 모르고 알 길 또한 없습니다. 오로지 응모된 원고 하나만 마주대하며, ‘문학의 기준’에 따라 모든 걸 평가내리니까요.

3.
이 대목에서 ‘연필 잡고 글쓰기’를 준비하는 모든 분들에게, 꼭 필요한 사항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네요. 글을 적겠다고 첫 부분을 기록하고 있거나, 이미 중간 부분 아니면 마무리 가깝게 진행하신 분들이 가장 쉽게 간과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적겠다고 긴장하다가, 원고의 시작 부분부터 내용 자체를 꽉 막히게 만든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너무 무겁거나,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일부러 꾸민 티가 확연히 드러나거나, 시작부터 자기 의견을 필요 이상 강조하는 경우가 그런 예에 해당이 되죠.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첫 장의 내용만 봐도 전체의 흐름을 대략 예측할 수 있다는 건 맞지만, 그건 기성작가의 작품이거나 문학상 수상작 수준일 때의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 준비하는 분들은 기성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반복하며 자신의 문장력과 문체, 자신만의 주제와 소재를 가다듬는 연습을 지속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면, 그래서 외견상으로는 화려한 듯 보이는 문학의 세상으로 뛰어들 수 있다면 그 누가 글쓰기를 마다하겠습니까.

허나 글쓰기에는 단번에 이뤄지는 성취와 행운이라는 게 절대로 없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당연히 똑같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니까요. 공부든 취직이든 직업생활이든 연애든 결혼생활이든 육아문제든 뭐든 간에, 처음부터 무조건 잘 풀리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력한 만큼 이뤄지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에 하다 보면, 직접 부딪치다 보면, 방법을 찾고 문의하다 보면 하나씩의 해결책이 눈에 보이기 마련이죠. 그렇다면 글쓰기에 있어서 첫인상을 좋게 만드는 비법 같은 게 있을까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고민하며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건 물론 당연한 전제조건이겠습니다만, 보다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방법과 지름길이 있다면 이것 - 바로 ‘내게 자연스러운 것이 남에게도 자연스럽다’는 단순법칙을 잊어선 안 될 일입니다.

내게 부자연스러운 건 남에게도 부자연스럽게 전해집니다. 억지로 만들며 적은 글은 남들 또한 불편해 하며 읽게 됩니다. 적당히 베낀 글은 곧바로 들통이 나고, 이것저것 끌어와서 짜깁기 한 글 또한 금방 티가 나며 밝혀지게 됩니다.

온갖 어려운 용어를 다 동원해 사용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대포장하려는 지식인이나 관료들의 언론 기고문 같은 건 저 역시 읽기가 힘듭니다. 대신 아이를 키우는 마음과 실제생활을 소박하게 적은 엄마들의 글은 가슴에 확 와 닿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스럽기 때문이죠. 풋풋한 비누향기 풍기는 맨얼굴이 정겨운 법입니다. 화려하게 꾸민다고 점점 더 짙은 화장을 하고 온갖 액세서리로 치장을 하며 요란한 옷을 걸칠수록, 어색해지고 부자연스러워지는 건 본인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제3자들 또한 마찬가지 심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화장품과 짙은 향수 냄새도 얼마간은 향기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그 이상이 되면 역겨움으로 변해가기 마련이니까요.

스스로가 자연스러울 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도 자연스러움을 느낍니다. 자연스러운 미소는 긴 시간이 지나도 포근하지만, 억지로 짓는 미소는 1분도 채 지나기 전에 안쓰러운 마음만 떠올리게 되죠. 마찬가지로 글에 있어서 자연스러움이 전해지려면, 남 얘기만 하지 말고 내 안에 담겨 있는 얘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 나의 고백, 나의 생활이 녹아들어야 진솔함이 전해집니다.

무조건 모든 걸 다 드러내라는 의미는 물론 아니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모든 건, ‘자연스러움’이라는 열쇠를 통해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법입니다. 좋은 글의 첫인상이라는 것, 그건 ‘나의 자연스러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작성자채지민 (작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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