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도, 정신장애인과 가족 위한 필수 안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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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건 건물 한 채 뿐인데 공부시키고 결혼 시킨 아들에게 주고 싶지는 않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딸에게 물려줘서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그런데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가만 두지를 않을 것 같아요. 임대료 받아서 살면 좋겠는데 관리할 능력도 없을 것 같고....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형이 안 꺼내줘서 어쩔 수 없어요. 입원한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형수가 싫어하니 형도 어떻게 못하나봐요”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되고 지역사회 정신보건이 우리나라 정신보건정책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지 15년이 넘었지만 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많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제도적 환경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그렇듯이 정신장애를 가진 자녀를 두신 부모님도 당신들 사후에 혼자 남겨질 장애자녀의 안녕이 가장 큰 걱정이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재산관리 뿐만 아니라 정신병원에의 강제입원 또는 장기입원의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정신장애인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정을 대리 해 줄 수 있는 성년후견제도의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정신장애인을 장기간 입원시켜서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치료하는 것보다, 가능한 한 지역사회에서 거주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부담의 경감이나 개인의 인권보장, 재활 가능성 등 모든 측면에서 효율적․효과적임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거․의료․경제적 지원 등 삶의 기초 토대가 되는 많은 자원이 연결되고 관리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늘 의사결정이라는 중요한 단계가 따른다. 부모 사후 정신장애인의 삶과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은 누가 내리고 있는가?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 정신장애인 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6개월 이상 장기입원 환자(정신장애인)의 보호자는 형제자매가 55.8%, 부모가 23.3%로 형제자매가 보호자인 경우가 부모가 보호자인 사례보다 2배나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부모가 주보호자 역할을 하다가 늙고 죽은 이후에는 장기입원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제입원 후 재산 갈취나 방치 등과 관련된 인권침해 보도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은 왜 이렇게 더디기만 한가?
정신병원 입원 유형 중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전체 입원의 74%를 차지(2008년 기준)하고, 정신장애인 가정의 73.1%는 장기적인 보호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믿고 맡길만한 주체가 없으니 계획이 세워질 수가 없다.
성년후견제도는 정신장애인의 자립 지원 뿐만 아니라 부모 사후 남겨질 자녀에 대한 염려와 형제자매의 보호 의무 부담 모두를 경감시킬 수 있는 필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정신장애인과 부모님들의 간절한 바람을 또 다시 짓밟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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