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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한마디로 ‘나’를 표현하세요

[연필잡고 글 쓰기] 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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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지민
1.
세상 모든 것에는 하나씩의 이름이 있습니다. 책상, 의자, 문, 책꽂이, 신문, 사전, 컴퓨터 등등, 당장 제 눈에 띄는 것들만 해도 제각각의 명칭을 다 가지고 있네요.

 

우리가 ‘이름 모를 작은 꽃’이라 표현하던 어느 꽃에도 이름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단지 우리가 그 이름을 잘 모르고 있었을 뿐이겠죠. 신체의 각 부분에도 이름이 있고, 사람들마다 자신의 이름이 있으며, 서로가 함께 모이는 집단이나 단체들 역시 하나씩의 이름을 내걸고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동식물한테도 고유한 명칭이 있고, 우주를 포함한 모든 자연 현상도 세세한 분류원칙에 따라 각각의 호칭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름 없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죠.

추상적인 모든 대상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인간의 감정 모두를 거론할 때도, 우리는 그 느낌을 직간접적으로 받아들이며 하나씩의 단어를 떠올리곤 합니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은 우리의 365일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감정들이기도 하죠. 거기에 외로움이나 좌절 같은 단어를 추가할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경건함이나 환희 같은 단어를 포함시키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간의 감정을 딱 몇 가지라고 분류한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겠죠. 어쩌면 지구상에 ‘바글바글’ 살아가는 사람 숫자만큼의 감정들이 어마어마하게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건 그만큼 미묘하고 복잡한 연결고리 안에 뒤엉켜 있기 마련이니까요.

2.
그럼 이제부터 연필을 잡고 뭔가를 적기 시작하겠습니다. 종이 위에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적는 겁니다. 막 떠오른 게 한 가지라면 그 단어 하나를, 여러 가지가 동시에 떠오른다면 그 모두를 다 적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무슨 단어를 적었냐고 질문할 사람도, 손을 들고 발표할 일도 없으니 여러분 마음대로의 단어를 있는 그대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굳이 거창하고 고귀한 언어를 일부러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에 직접 와 닿는 단어라면 충분합니다. 남 보이기 부끄러운 용어나 표현이라 해도, 여러분이 그 단어를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그 자체로 기록하시면 될 일이겠죠. 여기선 일단 그 단어를 ‘A’라고 부르겠습니다.

‘A’라고 적은 이유는 여러분이 가장 잘 알고 계시겠죠? 그걸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필요로 했거나, 아니면 가장 궁금하거나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적으셨을 겁니다. 그럼 A하고 가장 어울릴 만한 단어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런 단어 두 가지 정도를 A 옆에 적어 보세요. ‘B’와 ‘C’라는 단어가 A 옆에 기록됐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현재 어느 쪽에 머물러 있는지, 또한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가 대강 밝혀지는 셈입니다.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일 수도 있겠고, 구체적인 물건이나 제품 이름일 경우도 있을 테며, 현금과 부동산 같은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닿는 단어일 수도 있겠죠. ‘자유’나 ‘해방’ 같은,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그 무엇보다 절대적 가치를 지닌 소망을 담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이번에는 그 단어들을 적었던 종이 아래의 빈 공간을 채우겠습니다. A와 B와 C를 이루기 위해, 그걸 성취하기 위해, 그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전제조건들이 선행되고 해결돼야 하는지를 짧게 정리해 보는 겁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는 가슴 벅찬 기대치보다는, 한숨이 먼저 흘러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글자로, 문장으로 그 내용을 직접 적어보세요. 몇 개의 단어만으로 표현하셔도 되고, 숫자로 정한 차례에 따라 방법론을 나열하셔도 괜찮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내용은 아니니까 다 괜찮습니다. 있는 그대로 적고 난 뒤에 그 종이를 파기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내용에 대한 비밀은 여러분 혼자만의 몫이 될 테니까요.

지난번 글에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지금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 곁에 불쑥 다가와 자신을 소개해 봐라 했다고 해서, ‘몇 년 몇 월에 어디서 태어났고 어느 학교를 다녔고 어느 지역에 살았으며 지금은 어쩌고저쩌고’ 등등의 구구절절 모든 발자취를 다 열거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의 ‘나’ 하나만 드러내면 되니까요.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간단명료한 언어로 언급하면 그만입니다.

‘OO를 공부하는 김OO이고, 앞으로 OOO 일을 할 계획이다.’, ‘OO를 준비하고 있는 이OO라고 한다. OOO 분야로 취업(창업)을 준비 중이다.’, ‘OO 일을 하는 박OO이다. OO에 관심이 많아 얼마 전부터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등등, 자신의 소개는 짧고도 분명한 내용만 들어 있으면 모든 게 ‘오케이!’입니다.

그런데 ‘짧고도 분명한 내용’이라는 건 어떻게 준비되는 걸까요? 그렇게 ‘나’를 소개할 수 있다는 건, ‘내가 누구인가?’의 답을 이미 얻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모를 때는, 스스로를 표현하려는 언어가 정리되지 못하고 길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죠.

우스운 경우 한 가지를 말씀드릴까요? 어떤 행사, 예를 들어 결혼식이라고 한정짓겠습니다. 사회자가 주례선생님을 소개하는데, 그 소개의 내용이 1분 이상 길어질 만큼 별의별 약력과 직함을 다 가지고 있는 인물을 접할 때가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정말 저런 내용까지 다 소개해야 할까 싶을 정도의 ‘OO대표’, ‘OO이사’, ‘OO위원장’, ‘OO회장’ 등등, 별다른 무게감도 없는 수십 가지를 일일이 나열하더군요.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항상 그런 간판까지 다 끄집어내며 자신을 표현하는 걸까요? 제대로 내세울 만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물량공세처럼 모든 걸 드러내기에 급급하게 되고, 결국엔 ‘동네 골목대장’ 같은 초라한 이력까지 모두 끌어들이는 것이죠.

3.
나는 누구일까? 정말 어떤 인물일까? 남들 앞에서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뭐라고 말해야 하지? - 그건 위에서 언급했던 ‘좋아하는 단어’가 연결고리이자 해답이 됩니다. 좋아하는 단어가 많아지고 좋아하는 단어들과 늘 가까이하며 살아간다면, 결과적으로 여러분의 삶이 그 단어와 비슷한 나날로 변화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뜻이 됩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불행’만 떠올리며 살아갈 리는 없겠죠. ‘성취’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기며 생활하는데, ‘좌절’과 ‘낙담’에 젖어 허우적댈 까닭은 없다는 겁니다.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확실한 답을 내리는 인생이라면, 오늘 이 시간을 쓸데없이 멈칫거리며 허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인생인지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명심하고 있을 테니까요. 항상 좋아하는 단어를 적어보세요. 좋아하는 단어를 더 많이, 더 다양한 표현으로 가까이하려는 삶의 습관이 필요합니다. 싫어하는 표현이나 기분 나쁜 단어들은 어차피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쓰고 싶지 않아도 쓰게 되는 용어들이라면, 굳이 자신의 연필로 그런 단어를 적을 필요까진 없다는 것이죠.

저는 ‘소설을 쓰자, 시를 쓰자.’ 같은 대목은 아직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여러분의 머릿속을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게 더욱 빠른 지름길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있답니다. 무조건 연필부터 잡아라? 그건 아닙니다. 연필만 잡고 종이 앞에 막연히 앉아 있기보다는, ‘연필을 잡아야겠다!’는 욕구가 가슴 가득 차오를 때를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평소엔 떠오르지도 않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나’를 표현해야겠다는 의욕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할 때, 여러분의 글쓰기는 그때부터 긴 여행길을 떠나게 될 테니까요.

불필요했던 많은 것들을 털어내고 더 많은 걸 얻기 위한, 더 길고 더 머나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선, 먼저 배낭 안의 내용물을 알차게 채워야 할 일이겠죠. 여행이라는 건 ‘꼭 필요한 것’만 배낭 안에 넣는 걸 허용합니다.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고 그걸 얻기 위해 떠나는 긴 여행을 앞두고,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배낭 안에 인생의 준비물을 하나씩 둘씩 담고 계십니다. 그 준비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모든 걸 다 놓아두고 떠나더라도 반드시 챙기며 함께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그건 바로 ‘나 자신’입니다.

작성자채지민 (작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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