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염전노예사건’ 이후 지적장애인 노동착취 사건 형사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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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장애인 인권과 권익증진에 영향을 끼친 디딤돌 판결과 걸림돌 판결이 선정됨에 따라 <함께걸음> 지난 호에서는 2018년 디딤돌 판결 8건과 걸림돌 판결 3건이 소개 됐다. 지난 호에 이어서 소개되는 테마판결은 2014년 일명 ‘염전노예사건’ 이후 발견된 지적장애인 노동력착취 사건 형사판결 4건이다.
2014년 신안군염전노예사건 이후에도 지적장애인에 대한 노동력착취사건이 이어졌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최근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장애인노동력착취실태’를 보면 총 27건의 사례가 노동력착취사례로 분류됐는데, 충격적인 것은 2014년 신안군염전노예사건 이후에도 가해자는 학대행위를 중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동력착취사건에 대한 가해자 처벌수준이 미약하다는 비판이 계속되는데, 위 실태보고는 비판이 타당함을, 즉 가해자에 대한 지금의 처벌수준으로는 형벌의 일반예방적 기능(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아니하도록 하는 예방적 기능)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디딤돌, 걸림돌 판결선정 작업에서도 노동력착취 관련 사건이 검토대상에 포함됐으며, 1심 판결 총 4건의 노동력 착취 사건, 적용법률, 형량은 다음과 같다.
8년간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농사일을 시키고 폭행한 사례.
피고인은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에 대해 8년간 숙식을 제공하면서 별도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농사일을 시켰다. 또한 피해자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욕설을 하면서 쇠말뚝으로 피해자의 어깨, 팔 등을 수회 때렸다. 법원은 이에 대해 피고인에 대해 최저임금법 위반, 횡령 및 특수폭행의 혐의로 피고인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40년간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농업 근로자로 착취하고 그 밖의 금전을 횡령한 사례.
피고인은 전남 진도군의 농업 종사자로서 지적장애 3급인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임금지급 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약 40년간 농업근로자로 종사하도록 한 후임금 약 1억 원을 지급하지 않고 해당 금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 또한 피해자의 피해보상금 및 기초노령연금, 장애수당, 보상금 등 약 5천만 원을 업무상 보관하던 중 임의로 소비해 횡령 했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준사기, 장애인복지법위반, 횡령의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공장 대표가 지적장애인들을 17년간 착취ㆍ폭행하고, 연금을 횡령한 사례.
피고인은 한과제조공장 대표로서 지적장애 2급인 피해자 A와 B를 고용해 A는 17년, B는 16년간 근로를 하게 했다. 그러나 임금 및 퇴직금을 정당한 사유 없이 지급하지 않았다. 근로과정에서 피해자 B는 피고인에게 일을 빨리 못한다며 폭행당하기도 했다.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 A의 장애인연금 및 국민연금을 보관하던 중 임의로 사용해 횡령했다. 법원은 피고인에 대해 근로기준법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횡령 등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식당업주가 지적장애인을 6년간 착취한 사례.
피고인은 중식당 업주로서 약 6년간 3급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를 주방보조로 고용해 근로 하도록 한 후 같은 일을 하는 비장애인보다 현저하게 낮은 급여를 지급하고 초과근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고도 그에 따른 초과수단을 지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장애인을 이용해 부당한 영리행위를 했다. 법원은 피고인에 대해 장애인복지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위 4가지 사례를 보면 범죄사실이 유사함에도 적용 법률이 일관되지 않다. 노동력착취 관련 법률이 단일법령으로 규정돼 있지 않고 노동관련법령, 일반형법, 장애인복지법 등 장애관련법령에 산재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동일한 노동력착취 범죄사실에 대해 일관성이 없는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다. 아울러 ①사건의 성격이 장애인에 대한 인권 침해사건, 인신매매사건임에도 단순 임금체불사건으로 접근하는 점, ②임금 산정 시 농촌 (도시)일용 노임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점, ③노동력착취로 유입된 것은 인신매매범죄임에도 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점 등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인권단체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음이 확인된다.
아울러 법원의 형량도 너무 미약하다. 이에 대한 양형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법원이 장애인 노동력착취사건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상당히 우려스럽다.
현재 노동력착취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법령에 대한 대법원 양형기준을 살펴보면 강제근로에 대해는 6월~1년(가중요소 있는 경우 10월~2년 6월), 약취ㆍ유인 및 인신매매의 경우 1년 6월~3년 6월(가중요소 있는 경우 3년~6년) 정도인데, 이러한 양형기준이 수십 년간 노동력착취를 당하는 장애인학대의 경우에 적용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관련 양형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거나 기존 양형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세계 노예 지표(Global Slavery Index)상 우리나라는 167개국 중 32번째 위험국가로 평가됐고, 2018년 발표된 지표에서도 추정노예수가 99,000명로 평가돼 아직 하위수준에 머물러 있다. 검토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와 같은 수사기관과 법원의 태도로는 이러한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2019년에는 노동력착취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 및 기소와 더불어 장애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가해행위에 상응하는 엄중한 형량이 선고된 판결이 ‘2019 장애인인권 디딤돌 판결’로 선정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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