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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살기

위기거주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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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었지만, 제목이 참 유치하다. 제목이 잘 먹고 잘살기라니. 사람들은 흔히 다시는 안 볼 사람과 싸운 후 악에 받쳐 이렇게 외치지 않는가. “잘 먹고 잘살아라!” 이게 상대에게 주는 모욕인지, 축복인지는 모르겠지만 학대피해장애인들의 바람직한 미래와 삶을 그린다면 잘 먹고 잘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 학대사건의 가해자를 괴롭게 하는 n가지의 방법

가해자를 괴롭게 만들어 주려면 가서 그냥 때려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인 방법은 아니다.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은 가해자들이 죄의 대가를 치르는 형사소송이 있다. 그들이 부당하게 얻고 그 동안 누렸던 것들의 대부분을 회수할 수 있다면 민사소송 등이 좀 더 세련되게 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를 괴롭게 하는 방법이 오직 그것 뿐은 아닐 터. 장애인을 괴롭힌 사람은 과연 장애인을 본인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으로 보았을까? 본인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여기지 않았던 사람이 잘사는 모습, 즐겁게 살며 생활하는 모습을 보거나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탈무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잘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 이분들이 나가서 잘 살게 된다면 그것 나름의 복수가 아닐까. 잘 산다는 건 어쩌면 사람마다 다른 기준일지 모른다. 어떤 이는 경제적인 풍요를 꼽을 테고, 어떤 이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꼽을지도 모르겠다. 위기거주홈에 계셨던 분들은 유독 TV를 좋아하셨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본인의 삶을 설계하고 계셨을까? 그분만이 아실 일이다.

 

내가 바라는 것들

그저 내가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일을 하시든, 여러 사정으로 일을 하실 수 없다면 장애인복지관이나 지역 내 모임에 참여하시는 등, 본인 나름의 정기적인 일과와 활동이 있으면 참 좋겠다.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 분은 더욱이. 자주 가진 못하더라도 가끔 여행도 갔으면 참 좋겠다. 맨날 일만 하고, 맨날 다니던 데만 다니면 사는 게재미가 없으니까.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가는 소풍은 잠이 오지 않을 만큼 늘 설렜다. 나름 다 컸다고 자부하던 중학생 때 가던 수학여행이 그때도 설렜고, 고등학교 졸업 전 가던 졸업여행이 1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위기거주홈이 제주도에 여행 가던 날, 다들 좀처럼 잠을 주무시지 못했다. 잔뜩 긴장해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하시는 분도 있고, 한껏 여행 기분 낸다고 개인적으로 옷을 사신 분도 있었다. 이 분들 역시 소년 시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뭔가 하고 싶은데 몸이 받쳐주지 못하거나 아파서 하지 못하는 것만큼 서러운 것이 없더라. 건강 유지 잘하셔서 예전보다 좋아진 것들, 많이 누리셨으면 좋겠다.

세상에 자랑할 거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얼마 전 장애인복지관 다니시는 두 분이 내게 민속촌에 구경 가셔서 재밌고 웃기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자랑하셨다. 여태껏 이분들의 삶에서 누군가에게 자랑할 거리가 있었는가. 스스로 가진 것을 자랑하고, 뽐내고 남들이 부러워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자랑거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잘 드셨으면 좋겠다. 매 끼니 잘해 드시지는 못하더라도, 삼시 세끼 따뜻한 밥 챙겨 드시고, 상한 거 안 드시고, 이가 없으시면 소화 잘되도록 틀니를 쓰셔서라도 꼭꼭 씹어서 드셨으면 좋겠다. 가끔씩 싱싱한 생선회도 드시고, 그 좋아하는 치킨도 드시고, 술은 자주 많이 드시면 건강에 좋지 않으니, 슬기롭게 드시고 가끔 기분 좋게 취해 주무셨으면 좋겠다.

옆에 가면 좋은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처음 만났을 때의 향기를 나는 기억한다. 다시 기억하기에 좋은 향기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풍기는 독한 체취. 나쁜 과거와 함께 나쁜 향기도 씻겨 사라졌다.

다시 나쁜 향기는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곳에 가셔서도 이분들이 향기로 기억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나쁜 기억이 아닌 좋은 기억으로.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다. 이분들 인간관계가 참 좁더라. 같이 노는 분 많아야 한두 분이 친한 사람의 전부더라. 그나마도 서로 한번 다투면 다시 안 볼 사람이 되고 다시는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기거주홈은 좁다. 외부인도 허가받은 사람이 아니면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위기거주홈은 결국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아닌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사셨으면 좋겠다. 떠나보낸 사람의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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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잘 먹고 잘살아요

나도 그렇지만 잘 먹고 잘사는 게 참 쉬운 게 아니다. 그래도 잘 먹고 잘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이분들의 삶이 이렇게 끝나기에는 아직 세상에 좋고 재밌는 것들이 아직 지천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최근 위기거주홈에서 나가서 생활하시는 분들의 근황이다.

얼마 전 나가서 생활하시는 분의 요청으로 함께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내역을 살피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무슨 초밥을 끼니때마다 그렇게 많이 드셨는지 초밥집을 자주 드나드신 듯했다. 예전에 다함께 초밥을 먹으러 왔다가 나한테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시며 본인께서 예전에 초밥 같은 거 많이 먹어봤다고 질린다고 앞으로는 안 드신다고 말씀하시던 분이(사실은 드시는 법도 잘 모르셨다) 초밥의 맛에 흠뻑 빠져 초밥을 종류별로 바꿔가며 드신 듯 했다. 매운 거 싫어하시니 속에 고추냉이도 빼달라고 초밥 쥐어내는 분께 요구했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분은 위기거주홈을 떠나기 전 본인께서도 남들처럼 좋은 옷을 한번 입어보고 싶으시다 하여, 작정하고 아웃도어 매장에 가셔서 26만 원짜리 외투를 본인 돈으로 사 입으셨다. 세상에 점퍼라고는 오리털이 제일 따뜻한 줄 알았는데 그거보다 더 좋은 거위털이라는 게 있었고 가볍고 더 따뜻하다고 좋아하신다. 26만 원 외투의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옷을 아무 데나 던져놓으시던 분이 본인 옷을 조심조심 옷걸이에 걸어놓으시더라.

위기거주홈을 떠나 본인의 집을 계약하시고 살게 된 분이 있다. 너무나도 신이 나셔서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다가, 집들이를 하신다고 한다. 메뉴는 치킨과 피자라고 하신다. 그래도 물어는 봐야겠다 싶어 여쭈었다. “집들이 언제 하실 거예요?” “토요일” “평일 날 하면 안 돼요?” “안 돼요. 토요일” 토요일 날 해야 사람이 많이 온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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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2016년 말에 시작된 위기거주홈 시범사업은 2018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종료됐다. 처음 위기거주홈의 시작은 학대피해장애인의 현장 분리 후 임시 거처 해결과, 지역 사회 내의 안전한 자립이 목표였다.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채로 시작하다 보니 생각보다 열악하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다만 이런 환경에서 묵묵히 본인의 일을 수행한 위기거주홈 근무자들과 우리와 함께 뜻을 같이한 학대피해장애인 당사자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나가셔서 잘 먹고 잘사세요.

작성자글과 사진. 장명훈/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간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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