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정신요양원을 가다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90년대 정신요양원을 가다

사건으로 돌아보다

본문

  16458_16303_1722.JPEG  
 

90년대 초반 정부는 악법인 정신보건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었다. 당시 이 법 제정에 총대를 맨 부처는 법무부였다. 배경에는 정신장애인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라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92년 초 당시 법무부 장관은 국무 회의에서 "현재 전체 인구 2%인 90만 명가량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이 가운데 10만여 명은 당장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면서 "정신질환자들 가운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적지 않은 상태여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을 거쳐 1995년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졌다. 정신보건법 24조는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명문화하고 있었다. 보호의무자 2명, 정신과 의사 1명이 허락하면 정신병원 입원이 가능했다. 총 37조항 중 정신요양원에 대한 조항이 9개고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과 관련된 조항은 20여 개다. 그래서 당시 정신병원과 요양원에 대한 법적 지위를 보장해주고 환자의 격리수용을 위주로 한 정신보건법은 악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배경에는 환자의 입원 및 수용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집단의 로비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정신병원과 요양원에 갇혔다. 그렇다면 당시 정신병원과 요양원에 갇힌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지기 전인 90년대 인권침해로 문제가 됐던 대전의 한 정신병원과 요양원에 직접 들어가 봤다.

시설은 병원과 요양원이 붙어 있는 구조였다. 병원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수십 개의 침상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한 청년이 침대에 손발이 묶인 채 버둥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외관상으로는 환자인지 아닌지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병원에 가득했다. 동행 관계자는 병원은 더 이상 볼 데가 없으니 요양원으로 가자고 원장을 재촉했다. 일행 또한 요양원으로 갈 것을 주장해서 별 수 없이 해당 병원장은 일행을 요양원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 뒤편으로 정신요양원이 있었다. 십자가가 그려진 왼쪽 3층 건물, 오른쪽 2층 건물이 가운데 굳게 닫힌 철문을 품고 길게 누워 있었다. 인기척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일행들 눈앞으로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나의 원형 돔 안 손바닥만 한 운동장에 검은 얼굴 일색들인 원생 수십 명이 서성대고 있었고, 쇠창살문으로 된 수십 개의 숙소 안에서 숫자를 추정할 수 없는 수많은 원생들이 갇힌 채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남성 숙소를 나와 여성 숙소로 가기 위해 이동했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도중 중앙에 연못 위에 지은 번듯한 정자처럼 생긴 이층집이 있었다. "저 집은 누구 집입니까?"라고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원장 사택"이라고 대답했다가 얼른 말을 고쳐 "법인 사무국"이라고 둘러댔다.

  16458_16304_1722.JPEG  
 

여성 숙소 입구인 철문이 열리자 난데없는 찬송가 합창이 쏟아졌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 직원들의 지휘로 여자 원생들이 부르는 합창 소리였다. 마당 오른편으로 일률적으로 커트 머리를 하고 검은 얼굴들 일색인 수백여 명 가량의 여자 원생들이 늘어서 앉아 손뼉을 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원생들 뒤와 옆으로 수십 개의 쪽방이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두 평이나 될까 싶은 좁은 공간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직원에게 "저 방에서 몇 명이 잡니까?" 물어봤다. "3명에서 5명가량 잔다"는 게 직원 대답이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니, 쪽방 뒤편으로 또 다른 여자 숙소가 있었다. 7평에서 8평 사이의 방이 대여섯 개 늘어서 있었는데 “한 방에서 열대여섯 명이 생활 한다”고 직원은 대답했다.

방에 있는 원생들에게 다가가 "어디서 왔냐?"고 묻자 "부산, 서울, 대구, 인천"이라는 대답이 쏟아졌다. 이후 직원 채근에 요양원을 나왔다. 뒤로 쇠창살로 만들어진 문이 닫히자 요란했던 찬송가 합창은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악법인 정신보건법은 폐기됐다. 하지만 정신병원과 요양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쇠창살로 상징되는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니 관심도 없는 게 훗날 3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다.

작성자글. 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