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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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이 여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일분일초가 급박한 출근길과 지친 몸을 서로 부대낀 퇴근길,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대중교통에 타려고 한다면? 초조히 시간을 확인하던 사람은, 옴짝달싹 못 하고 끼어 있던 사람은 짜증이 나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 시간에 장애인이 왜 버스를/지하철을 타?’
지난 12월 실제로 한 버스 기사가 그렇게 말했다. 버스를 타려던 건 전국장애인차별철폐 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그는 항의하며 휠체어로 버스를 가로막았다. 퇴근 시간대라 버스에는 승객이 가득했다. 출발이 지연되자 한 승객이 “차가 많이 막혀 있어요.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저희도 버스 몇 대나 보냈어요. 사람 많다고 계속 안 태워줘서요.” 활동지원인 정창조 씨가 대답했다. 교통경찰이 다가와 “다른 차가 가야 하잖아요”라고 말하자 창조 씨가 물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가요?”
당연하지만 이상적인 버스 타기
지난달 17일 오전 6시 5분, 경기도 하남시청 정거장에서 출근하는 심지용 씨(29세)를 만났다. 그는 여의도 이룸센터에 있는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버스는 곧 도착했지만 자동 경사판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 지용 씨는 다시 시도하려는 기사를 만류하고 버스를 보냈다. 집을 나서기 전 저상버스의 예상 도착 시각을 확인했지만 경사판 작동 여부까지 미리 알 수는 없었다. 다음 버스는 저상버스가 아니었고, 그다음 버스는 차고지에서 출발하지 않아 어떤 버스인지 확인이 안 됐다. 실내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움직이려는데 같은 방면으로 가는 다른 번호의 저상버스가 왔다. 이번엔 경사판이 잘 놓였고 기사는 능숙했다. 1분 남짓 만에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타다 보니 자주 만나는 기사들이 있다. 그들은 휠체어 탄 장애인을 태우는 데 익숙하다. 게다가 승객이 많은 시간에 타도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준다.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승객 중 부정적인 표현을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허둥지둥하면서 의자를 접어 공간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기사가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태우는 행동이 승객에게 ‘이것은 당연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게 아닐까 싶다”
박경석 대표가 겪은 일과는 상반된 자기 경험을 지용 씨는 “단언컨대 가장 이상적인 사례”라고 일컬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장애인이 버스 타는 건 상식적인 동시에 이상적인 일이 된다. 그 말은 모순이 아니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임태욱 간사(29세)는 과거 평택에서 대학을 다녔다. “기숙사에 살며 주말에 서울 집을 오갔다. 평택역에서 기숙사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십 분 정도 들어가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버스 기사들은 ‘설비가 고장 났다,’ ‘사용법을 모른다’부터 ‘네가 왜 타냐. 버스에 손대지 마’까지 다양한 말로 승차를 거부했다.” 그는 반복되는 승차 거부에 2016년 버스 회사와 평택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 출석한 뒤 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다시 한번 버스 기사에게 승차를 거부당했다. 소송 결과, 버스 회사에는 승소, 평택시에는 패소했다.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뒤 상고해 현재 소송은 대법원에 가 있다.
만인에 대한 투쟁, 지하철 타기
지하철에선 적어도 승차를 거부당할 걱정은 없다. 그렇다고 타는 게 녹록한 건 아니다. 출퇴근하는 비장애인과 치열히 경쟁해야 한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김영식(37세) 활동가는 “경쟁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앞에 줄 서고 못 타기도 한다. 휠체어를 입구에 바짝 붙이면 사람이 못 내리니 공간을 두고 기다린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전동휠체어를 움직이려는 찰나 뒤에 있는 사람들이 새치기해서 타버린다. 그러고는 미안하니까 멋쩍게 웃는다. 무리해서 같이 빨리 움직이면 사고가 나니 그럴 수도 없다. 부딪히기라도 하면 빨리 온다며 욕한다”라고 말했다.
비장애인 회사원 전보성 씨(33세)는 장애인과 부딪힌 경험을 떠올렸다. “전동휠체어를 탄장애인이 ‘비켜요’라고 신경질 내며 붐비는 전철로 들어왔다. 여러 사람이 그 휠체어에 부딪혔다. 나갈 때도 ‘휠체어 먼저예요’라고 소리쳤다. 비켜주면서도 사람들은 불쾌해했다. 왜 부딪치고 사과도 안 하고, 양해를 구하기 전에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는지 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안 했으면 이 지하철을 탈수 없었겠다.’ 그도 처음에는 좋게 말했을 거 같다. 그런데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잘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이 그의 말을 잘 듣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목소리가 크고 날카로워질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대학생 때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장애인을 조금이나마 경험했다. 장애인을 만난 적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더 어려울 거다.”
하남에서 버스를 탄 지용 씨는 천호역에서 5호선 지하철로 갈아탔다. 이른 시간이라 승강기도, 전철도 타기 수월했다. 20개의 역을 지나 여의도역에 다시 9호선으로 환승했다. 사람이 많아졌지만 한 정거장 뒤가 종착지였다. 우르르 사람들이 내렸고 몇몇은 승강기 앞에 줄 섰다. 그의 앞에 선 일곱 명이 차례로 타니 승강기 안이 가득 찼다. 지용 씨는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우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눈치 보이기도 한다. 똑같이 줄 서서 순서 맞춰 타면 된다”라고 말했다. 승강기 안 일곱 중 다섯은 이십 대로, 둘은 중년으로 보였다. 이십 대로 보이는 한 명이 문이 닫힐 때까지 유독 멀뚱히 지용 씨를 쳐다봤다. 다음 승강기로 역을 빠져나와 사무실에 도착하니 8시 2분 전. 업무 시작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막연한 기다림, 장애인 콜택시
평소 지용 씨는 오후 4시 무렵 장애인 콜택시를 부른다. 일찍이 출근한 만큼 조기에 퇴근 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다. 대기자가 늘비하기 때문이다. 콜택시는 몇 시쯤 도착한다고 약속하지 못한다. 요행히 때맞게 도착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대개는 콜택시를 타지 못한다. 퇴근길을 동행한 날 그는 오후 5시 34분 장애인 콜택시를 신청했다. 당시 총 대기 인원은 68명. 그중 8명이 그가 타는 곳 부근에 있었다. 그는 야근을 조금 한 뒤 국회의사당역으로 내려갔다. “지나갈게요” 말하며 퇴근하는 사람들을 지나 “들어갈게요” 하며 전철에 탔다. 7시 26분, 콜택시를 부른 중앙보훈병원역에 도착했다. 총 대기 인원 33명, 부근 대기자 3명이 남았다. 망설임 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휠체어를 달렸다. 지용 씨는 “자신은 버스라는 선택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아 콜택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장애인은 정말 난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8시가 넘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부근 대기자는 여전히 3명이었다.
급하다고 속옷 차림으로 나가진 않는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명숙 씨는 지난 호 <함께걸음>에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 산다는 것은 장애인에 대해 몰라도 아무 불편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장애인 편의를 위한 시설이나 조치에 대해 몰라도 부끄럽거나 미안하지 않은 일이다”라는 문장으로 칼럼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법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며 “그저 비장애인들은 세상에 비장애인만 있는 거로 알고 커왔을 것”이라고 썼다. 그래서 버스 기사는 “이 시간에 장애인이 왜 버스를 타”라고 물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엔 장애인이 존재한다. 모든 게 비장애인 기준인 사회에서 장애인도 살아간다. 출퇴근 시간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는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출퇴근하기 위해서고, 출퇴근하는 건 먹고살기 위해서다. 물론 비장애인 입장에서 장애인은 느리고,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급해도 속옷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사람은 없다. 행여 그런다면 부끄러울 것이다. 장애인과 함께 타려는 노력 없이 쉽게 지나친다면 그것 또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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