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도 노동할 권리를 줘야 하는 게 원칙”
[한 중 일 필 국제장애인교류대회 이모저모] 인터뷰 - 하나다 마사노리 일본 구마모토학원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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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라현 기자 |
“변화를 얘기하기에 앞서 비관적인 얘기를 먼저 하면, 일본 장애인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갈 것인지 굉장히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 이유는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정부 안에서도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민주당 내부의 중심적인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경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본질적인 이유는 정권은 바뀌었지만 실질적인 복지정책을 집행하는 관료들은 한 사람도 바뀌지 않았다. 관료들은 성향상 자기 기득권을 굳건히 지키려고 하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관료들의 이 막대한 힘을 어떻게 제어하고 컨트롤 할 수 있을지 그 부분이 아직 미지수다. 솔직히 말하면 정권이 바뀐 후 장애인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직 모르겠고, 큰 변화는 어렵지 않을까 판단하고 있다.”
- 하지만 일본 민주당 정권은 출범 후 내각 안에 장애인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만드는 등 장애인 복지에 변화를 가져오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 변화도 없다는 말인가
“굳이 변화를 꼽는다면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우선 복지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에게 자부담 10%를 내게 해 장애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일본 장애인자립지원법은 곧 폐지하기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자립지원법을 대신하는 법을 어떻게 만들어 갈 건지, 또 개정안은 어떤 내용으로 채울 건지에 대해서는 관료들의 벽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걱정이 앞서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정권 교체 후 내각 안에 장애인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총리가 위원장인 장애인제도개혁추진본부가 있는데, 그 산하에 있는 위원회다.
그리고 긍정적인 변화는 이 위원회가 단순 자문기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행정적인 결정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권한이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 또 위원회 위원들의 반 수 이상을 반드시 장애인으로 채우도록 하고 있고, 위원장도 장애인으로 선임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 장애인들이 이 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큰 게 사실이다.”
-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부채가 굉장히 많다고 하는데, 그래서 일본 장애인들이 누리고 있는 연금을 기본으로 하는 복지제도가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우려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지금처럼 재정적자가 크게 부풀어지기 전부터도 복지제도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적자 때문에 복지를 축소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핑계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 국가 부채 때문에 장애인 복지가 축소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 세계적인 경제 위기 또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일본 장애인들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그렇지는 않다. 분명히 할 것은 일본의 경우 장애인들은 연금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로 먼저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무수히 해고당하고 있다. 또 해고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경우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장애인이 가족으로 있는 가정의 생활형편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장애인이 가족 구성원으로 있는 가정의 경우 장애인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가장들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그런데 경제위기로 일자리가 없어 이들이 생활의 위기를 겪고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부채를 늘릴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빚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여론이기 때문에 재정적인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장애인들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방법들을 찾아내는 게 과제라고 생각한다.”
▲ ⓒ김라현 기자 |
“세계의 장애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틀이라든가 카테고리는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나라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많은 나라에서 장애인들은 배제당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많은 나라들이 장애인들을 그 사회에 짐이 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는 사회적인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게 위정자들의 속성이고, 이게 장애인들이 직면한 위기라고 생각한다.”
- 당신은 그동안 줄기차게 장애인의 노동권 확보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노동을 통한 장애인 생존의 문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 장애인들의 경우 일자리를 통한 생존권 확보가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여전히 장애인의 노동권을 강조하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사회가 뒷받침해주고 같이 해주면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장애인들은 세상이 어려울 때는 더욱 어려움을 많이 겪고 세상이 풍요로워질 때는 그 혜택에서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결국 누가 뭐래도 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본은 경제적 활동, 즉 노동이다. 노동을 통해서 부를 축적해서 인간의 삶이 윤택해진다면 장애인에게도 그 수단인 노동을 할 권리를 줘야 하는 거다. 이게 원칙이다.”
- 장애인의 노동권 확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
“우리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노동을 통하여 사회참여를 해야 하고, 노동을 통한 소득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장애인들의 노동권 확보는 장애를 가진 사람과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공동으로 일하는 곳에서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당연한 얘기지만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같은 노동기준이 적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노동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나 사회의 제도와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그리고 또 장애인의 노동권 확보를 위해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 가지지 않은 사람 누구나가 평등 대등하게 의사결정에 참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나 전문가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이 장애인을 지도하고 혹은 장애인이 지도받거나, 돌봄서비스를 받기만 하는 관계를 민주주의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런 원칙은 장애인의 노동권 확보를 위해서도,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는 현장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다.”
- 세계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아주 오래된 문제인데 결국은 풍요로움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방법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각국 정부가 장애인에게 돈이나 물질 이런 것들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장애인에게 이동의 권리를 보장하고, 일할 권리를 인정해 주고, 교육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이런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사회의 풍요로움을 나누는 거지만 많은 예산을 지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효과적인 장애인 복지 증진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게 배분의 방법이고, 이런 배분이 이뤄지도록 장애인들이 나서서 사회를 바꿔나가야 한다.”
▲ ⓒ김라현 기자 |
“지금 한국은 일본의 장애인 정책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법과 제도만을 놓고 보면 한국에서는 사회적기업육성법도 만들어졌고 차별금지법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틀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일본을 앞서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한국이 이런 제도만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본과 한국이 같이 안고 있는 문제인데, 장애인의 노동에 있어서 복지적 노동을 장애인 노동권 확보에서 대안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보호작업장 같은 장애인들만이 모여서 일하는 작업장은 결코 장애인 노동권 확보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같이 일해야 한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한 시설을 보고 온 적이 있다. 시설이 언덕에 있었는데 언덕 꼭대기에는 중증장애인 시설이 있고, 아래에는 경증장애인들이 일하고 있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렇게 장애인들을 중증과 경증으로 분리해 놓은 걸 보고 큰 아쉬움을 느꼈다.
일본에서는 지금 장애인 시설 해체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하나의 예를 들면, 북해도에 있는 다떼라는 이름의 시설이 있는데, 4백여 명의 지적장애인이 있는 시설이 산꼭대기에 있다가 시설 해체 작업으로 마을에 여러 곳의 그룹홈을 만들어 내려왔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 그룹홈들을 운영하는 중심센터를 만들었다. 거기에 들어가면 그룹홈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들의 이름표가 쭉 붙어 있는데, 그냥 이름표가 아니라 전등으로 표시된 출석과 결석 램프가 붙어 있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그러니까 결국 시설이 해체돼서 그룹홈으로 전환됐지만, 소위 전문가들이 장애인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것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한국도 일본처럼 시설 해체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애인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런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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