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역동성과 국민건강보험의 미래
본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필자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정책과 행정 측면에서 접하고 이해하게 된 것은 우리사회의 역동성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소아마비 1급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청년기까지 빈곤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나의 인생은 운 좋게도 한 번의 사법고시 합격으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만들고 장애인으로서 당사자 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이 운동을 계기로 맺어진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아주 우연하게도 기회가 주어져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의정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를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새정치국민회의의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필자는 서울의대 김용익 교수와 지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제주의대 이상이 교수를 만났고, 이들이 수행해온 오랜 보건의료운동의 경험과 성과를 공유하며, 이를 의정활동에 반영할 수 있었는데, 이는 큰 행운이었다. 당시 필자의 의정활동은 장애인 복지, 국민기초생활보장, 국민의료보장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국회의원 임기의 절반은 50년 만의 정권교체로 인해 여당 소속이었고,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보건복지에 관해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과 정책연대를 맺고 있던 ‘국민의 정부’ 정책노선과 어우러져 보건복지 정책의 대대적인 확충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당시 필자가 입법을 주도하였던 장애인직업재활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국민건강보험법, 의약분업 관련 법(약사법 개정안) 등이 그것인데, 당시 시민사회의 전문가들과 함께 온 힘을 쏟아 부었던 이들 개혁입법들은 이후 학계와 언론에 의해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인 성과로 분류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이러한 보건복지의 성과에는 필자의 노력도 가미되었으나, 기실 당시 시민사회운동의 전면적인 결합 속에 이들의 오랜 운동과 투쟁의 성과가 고스란히 녹아들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하의 글에서 필자가 기술하려는 ‘국민건강보험’ 관련 내용은 보건의료분야 시민사회운동의 걸출한 지도자들로부터 당시에 전수받았고, 그 덕택에 이후 필자가 경험으로 채득하게 된 것들이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7년 7월부터 5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에서 먼저 실시되었다. 당시의 법정의료보험은 전체 인구의 8.6%에게만 의료보장 혜택을 제공하였는데, 이로 인해 의료보험이 없는 대다수 국민들은 오히려 의료서비스의 이용에서 더욱 소외되었다.
이는 의료보험제도가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사회권 확보 투쟁에서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일반 국민의 필요가 아니라 당시 군사정권의 경제성장정책 등 다양한 필요에 의해 부담능력이 있는 집단(대기업)에 한하여 조합주의 방식으로, 국가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실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역동성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1980년대 들어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정권 하에서 단계적 확충을 이어오던 의료보험제도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87년의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제도 발전의 결정적 추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법정의료보험 도입 12년 만인 1989년에는 ‘전 국민 의료보험’이 달성되었다. 이는 세계사에 전례가 없는 것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에서 전체 국민을 법정의료보험제도로 포괄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거의 전무하였다. 우리사회의 역동성은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의 이러한 세계사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발전을 향한 운동의 관성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수백 개의 독립적 의료보험조합들로 구성된 ‘조합주의 의료보험제도’를 국가 주도의 ‘통합의료보험’으로 의료보장제도를 전환하려는 운동이 그것이다. 이 과제를 향해 시민사회는 10년에 걸친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었다. 조합주의 의료보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동, 농민, 시민사회의 통합의료보험 쟁취 투쟁은 통합의료보험 법안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를 통과하였음에도 노태우 정권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후에도 통합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문민정부 내내 사회적 쟁점을 형성하였다. 1997년 대선에서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짐으로써 노동 및 시민사회의 사회권 쟁취 투쟁으로 간단없이 전개되었던 통합의료보험을 향한 10년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다. 2000년 7월 출범한 국민건강보험이 그것이다.
우리는 1980년대 10년 동안은 전국민의료보험의 달성을 위해 역동적 발전을 진전시켜 왔으며, 1990년대 10년 동안은 통합의료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의 획득을 위해 투쟁하였고, 2000년대 10년 동안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과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해 투쟁해왔다. 국민건강보험 출범 이후 2007년까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꾸준히 높아졌는데, 이 기간에 40%후반에서 60%초반까지 약 15% 포인트에 달하는 보장성의 증가가 있었다. 이는 시민사회의 사회권 확보를 위한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였으나 복지의 제도적 확충에 온정적이었던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노력도 한 몫을 한 것이었다.
필자는 2003년 7월부터 3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이사장으로 일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시민사회와의 오랜 동지적 인연으로 인해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보장성 수준을 높이는 데 공단과 시민사회 내부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 보장성 확충에 대해서는 명분을 쥐고 의료계도 상당부분 설득할 수 있었다. 정부의 관료적 저항이 일부 있었으나, 다행히 이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의 ‘보장성 확충에 관한 대선 공약’이 있었으므로 이를 지렛대로 삼아 돌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암부터 무상의료’라는 슬로건 하에 시민사회단체들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혈맹의 관계를 구축하듯 협력하면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 노력은 지속되었고, 마침내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의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환자 본인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국민건강보험을 둘러싸고 기이한 분열적 양상이 전개되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보장성 강화를 허용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였다. 이를 두고 참여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여 의료산업화란 이름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였는데, 경제자유구역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주식회사 병원)이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으며, 보험업법을 개정하여 생명보험회사도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생명보험업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서민을 위한 희망과 눈물을 아이콘으로 해서 당선되고 출범한 참여정부가 서민과 지지자를 배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료민영화의 추진은 참여정부 후반기 들어 의료민영화 법안의 국회 제출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본격적 신자유주의 노선 하에서 주식회사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활성화하는 소위 ‘의료민영화’ 추진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참여정부 시기에 추진되던 의료민영화 시도와 성격 상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 근본은 보건의료에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줄이고, ‘자본과 시장’의 역할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이미 미국에서 실패한 것이고, 오바마 행정부가 맹렬하게 의료개혁을 추진하였으나 미미한 성과만 얻는 데 그친 문제투성이 의료제도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의 제1야당인 민주당이 의료민영화를 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민주당은 정부여당과 대척점을 형성하면서 진보성향의 야당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를 맺는 데 걸림돌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참여정부가 당시 추진했던 의료민영화를 시민사회가 결사적으로 저지하지 않고, 그래서 정부 원안대로 추진되었다면 참여정부의 주도세력과 민주당은 지금 어떻게 되었겠는가? 민생과 시민사회의 역적이 되어 있을 것이고, 현 정부의 의료민영화 동맹군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정치적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결국, 당시 필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직을 걸고 참여정부의 의료민영화에 저항하였고, 시민사회가 결사적으로 이를 저지한 데 대해, 지금 민주당과 참여정부 출신 정치인들은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인 바, 그 방법은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를 직을 걸고 온 힘을 다해 저지하는 것이다. 과거 참여정부 시기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올해는 국민건강보험이 창설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64%대에서 62%대로 축소되었다. 역사의 후퇴다. 서민가계의 의료불안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간의료보험 가입자 수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이중 부담이다. 우리네 서민가계는 국민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동시에 의료불안 해소책으로 값비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장차 노인인구의 폭발적 증가, 고가 의료기술의 발달, 국민소득 증가 등에 따른 국민의료비의 급증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닥친 심각한 위협이자 도전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서 의료재정의 공공성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지난 30년 동안 경제발전, 민주주의, 의료보장 등에서 역동성을 충분하게 보여주었다. 필자가 아는 한, 세계적으로 이렇게 단 기간 내에 경제사회, 민주주의, 의료보장을 압축적으로 발전시켜 내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다.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는 자랑스러운 국민이다.
이제 앞으로 몇 년 이내에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을 유럽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그래서 명실상부하게 모든 종류의 필수적인 병원 입원의료와 중대 질병의 외래의료 이용에서 사실상의 무상의료를 달성하자. 연간 본인부담 진료비를 모두 합쳐도 100만 원이 넘지 않도록 하자. 이럴 경우, 의료불안이 없어지게 되는데, 누가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겠는가. 이 경우, 우리는 의료분야에서 만큼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이룬 것이다.
필자는 최근에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칭)에 준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이 공동대표가 서울의대 김용익 교수도 참여한다며 함께하길 권유하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이번에 출범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과거 20년 간 추진되어온 시민사회 운동과는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기존의 운동단체 중심이 아니라 철저하게 일반시민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란다.
필자도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한 사람의 국민이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수만,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우리 주변의 보통사람들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에 참가하게 될 때, 마침내 진짜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그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쟁점이 되었던 보편적 복지의 달성이다. 그리고 이것이 보통시민의 힘으로 달성되는 나라가 바로 복지국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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