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과 장애인연금, 그리고 보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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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소사이어티]
다가오는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와 보수를 구분 짓는 명확한 정책적 전선이 형성되었다. 바로 무상급식이다. 무상급식이 우리 사회의 핵심적 논쟁거리로 부상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회복지학도의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다.
반면, 무상급식 논쟁을 사회복지의 보편성 논쟁으로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우리의 준비 부족이 안타깝기도 하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논쟁은 사회복지학에서는 매우 오래되고 친숙한 내용이다.
보편주의가 시민권에 기반을 둔 입장이라면 선별주의는 시장 중심의 시혜적 조치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학자들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보편주의 입장이 사회복지학도들의 기본적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6.2지방선거에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쟁은 주로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지만, 큰 관심이 주어지지 않는 또 다른 작은 공간에서 보편주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장애인연금이다.
故 최옥란 열사 |
이 사건은 2002년 9월 ‘장애인 연금법 제정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의 계기가 되었으며, 대책위원회는 같은 해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로부터 무기여 장애연금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장애수당을 대폭 확대하는 방식으로 공약을 대신하였다. 17대 총선에서도 각 정당들이 앞 다투어 장애인연금의 도입을 공약했지만 무위에 거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장애인연금의 도입을 약속했고 이어진 18대 총선에서도 통합민주당,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친박연대 등 5개 정당이 총선공약으로 장애인연금의 도입을 약속했다.
통상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소득보장제도는 하나의 제도보다는 다층의 안전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1차적으로는 사회보험제도, 즉 기여에 근거한 제도(국민연금 내 장애연금), 2차적으로는 국민연금 가입 이전에 장애가 발생하거나 장애연금 수급요건이 되지 않는 경우를 포괄하는 무기여 방식의 기초장애연금 혹은 장애부조, 마지막으로 일반 공공부조제도가 그것이다.
기초장애연금은 이 중에서 장애인을 위한 2차 소득보장 안전망에 해당된다. 이는 근로능력이 없거나 장애로 인해 소득이 상실된 장애인에 대해 소득보전 급여를 제공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현재,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제도에 가입되어 있는 장애인은 추정 장애인의 37.5%에 불과하며, 국민연금제도의 장애연금을 수급하고 있는 장애인은 약 7만 2천 명으로 18세 이상 등록장애인의 3.3%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공적연금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기초장애연금을 도입함으로써 적절한 소득을 제공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장애인연금의 의의가 있다. 그런데 다가오는 7월부터 시행될 장애인연금은 기초장애연금의 이러한 의미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먼저, 급여대상자 측면에서 살펴보자. 장애계의 요구에 의해 마련된 박은수 의원의 법률안은 장애인연금의 수급대상자로 소득인정액이 하위 70% 이하에 있는 18세 이상의 장애인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향후 실시될 장애인연금은 수급대상자를 18세 이상의 1급, 2급, 3급 중복장애인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금액(단독가구 50만 원, 부부가구 80만 원 예정) 이하인 자로 규정하고 있다.
ⓒ전진호 기자 |
정부안에 따르면, 등록장애인을 224만 명(2008년 기준)이라고 할 때, 무려 192만 명(86%)의 장애인이, 즉 장애인 10명 중 8명 이상이 장애인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여기에 소득과 재산 기준을 적용하고 신규대상자는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까지 있으므로 실제 급여대상자는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노인 10명 중 7명이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노인보다 소득수준이 더 열악하며 노동시장에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대다수 장애인을 외면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연금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소득보장의 틀을 넓혀 나간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그런데 급여대상자가 너무 제한적이 됨으로써 그 의의를 제대로 살려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보편적 복지의 기본적 원칙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급여수준의 문제를 살펴보자. 장애계의 요구에 의해 발의되었던 박은수 의원의 법률안에 따르면, 장애인연금의 급여수준은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1/4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지급한다고 정했다. 법안에 첨부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중증장애인 1인당 월 25만 원 수준에서 연금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앞으로 시행될 장애인연금은 기초급여(소득보전의 성격)와 부가급여(추가지출비용 보전의 성격)로 나누고, 기초급여로 월평균소득의 5%인 9만 1천 원을 지급하고, 부가급여로 수급자에게는 6만 원을, 차상위계층에게는 5만 원을 지급한다. 기존의 장애수당과 급여의 수준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급여수준에서 본다면, 장애수당에 장애인연금이라는 색만 덧칠한 꼴이 되어 버렸다.
2008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중증장애인의 추가비용이 20만 8천 원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장애인연금의 부가급여가 추가비용에 대한 보전의 성격을 띠는 것이라면 부가급여액은 20만 8천 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부가급여액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됨으로써 장애인연금의 성격도 모호하게 만들고, 장애인들의 전면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초급여의 수준이다.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된 배경에는 국민연금의 급여율 인하를 보전하는 의미가 있었다. 2028년까지 국민연금 법정급여율을 60%에서 40%로 낮추는 대신 기초노령연금을 5%에서 10%까지 올리자는 것이었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을 내주고 기초노령연금을 받은 셈이다. 이 때 국민연금 급여율의 인하 방식은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었으나, 기초노령연금 급여율의 인상 방식은 2008년 1월부터 국회에 설치될 연금개선위원회에서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연금개선위원회는 설치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연금 급여율은 매년 인하되고 있는데 반해, 기초노령연금 급여율은 인상되지 못한 채 아직도 여전히 5%이다.
애초의 취지대로 기초노령연금이 연 0.25%포인트씩 올랐다면 2010년의 급여율은 5%가 아니라 5.75%여야 한다. 금액으로 월 9만 원이 아니라 10만 3천 원이다. 따라서 기초급여 수준의 향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토대를 하루 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연금이 기초노령연금과 함께 기초연금의 현실적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매우 크다. 그러나 장애계의 반발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항로는 매우 험난해 보인다.
그런데 사실상 그 험난함을 해쳐나갈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장애인연금의 도입 취지에 맞게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많은 수의 장애인을 급여대상으로 설정하고, 소득보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급여수준을 책정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매우 견고해 보인다. 재원부족 때문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또한, 재원부족의 이유를 4대강 사업 때문으로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답은 결국 정부의 몫이다.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풀지 않으면 장애인연금은 앞으로도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을 것인 바,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해법의 원칙은 ‘보편주의’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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