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장애판정제도, 장애인 두 번 죽이는 사기 행각”
한뇌협, ‘뇌병변장애인 두 번 죽이는 장애판정제도 개선을 위한 기자회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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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왔는데, 장애등급 재심사에서 떨어져 활동보조서비스를 못 받을까 걱정이다. 어렵게 얻은 자유를 다시 포기해야 하는지 정부에 묻고싶다.”
▲ ⓒ김라현 기자 |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부터 일부 개정 발의한 장애판정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바뀐 장애판정제도가 장애인들에게는 큰 불편을 주게 돼 논란이 일고 있다. 활동보조서비스 등 사회복지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까다로운 평가기준을 적용한 장애 재판정을 실시해 서비스 지원이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복지부는 “그간 사회복지서비스 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논란이 됐던 장애판정제도에 객관성과 합리성을 제고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계 관계자들은 “이번 개정안 역시 비인권적이고 장애인의 사회적 직업적 특성을 배제한 채 의료적 판단으로 기능적 손상만을 강조해 온 기존의 장애판정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특히 장애인 중에서도 특히 뇌병변 장애인들에 대한 기준이 까다로워져 이에 대해 한뇌협에서 복지부에게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게 된 것이다.
▲ ⓒ김라현 기자 현행 장애등급 판정, 장애인 복지재정 줄이려는 ‘음모’ 주장
유흥주 한뇌협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복지부는 수정바델지수라는 것으로 우리의 정체성에 등급을 매기고 이러한 장애판정제도가 장애인 개개인에 맞는 맞춤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어떠한 서비스가 어떻게 바뀌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내놓지 않아 장애인의 복지 재정을 줄이려고 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최석윤 대표는 “장애인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장애 등급의 문제가 아닌 서비스 시스템의 문제를 살펴야 하는데, 복지부는 단순히 서비스 대상을 줄이면 사회서비스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고 꼬집고 “복지는 중증 경증으로 나눠 선택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모든 이에게 균등하게 제공해야 한다. 행정가들은 뭐가 어떻게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고 책상에만 앉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행정을 하면 안 된다. 또한 장애인 당사자들도 정책이 행정가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팔 못쓰며 보행 가능한 뇌병변장애인은 없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기자회견 하기 전 복지부 관계자에게 ‘두 팔을 못 쓰면서 보행이 가능한 뇌병변장애인은 몇 급이 되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런 뇌병변장애인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면서 “그런 장애인이 왜 없는가, 이것이 책상에 앉아서 장애인 복지를 논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장애인 복지를 접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지적했다.
박경석 대표는 이어 “그런 장애인들은 많고 그 사람들은 현재 판정제도에서 재심사를 받으면 2, 3급으로 떨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재심사라는 허울로 사기 치지 말고 차라리 돈이 없어서 서비스 못해주겠으니 대상자에서 떨어지라고 말하라.”며 “허울 좋은 재심사로 장애인들을 이간질시키고 자기검열하게 만드는 복지부가 가짜며 사기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임수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팀장은 “복지부에서 얼마 전 장애판정재심사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담긴 홍보책자를 의사들에게 뿌렸다고 말하지만, 현재의 제도로는 뇌병변장애인들은 ‘비가역적 혼수상태’가 아니면 1급을 받을 수 없다. 장애인은 중증·경증을 막론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가 어려운데 정부는 보편적 사회서비스는커녕 사회서비스의 총량을 줄이려고 어처구니없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수철 팀장은 이어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수정바델지수의 모순을 끝까지 밝혀내고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라현 기자 뇌병변장애인의 생존 위해 수정바델지수 모순 밝혀내고 타파해야
기자회견에서는 뇌병변 장애인당사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현재 뇌병변장애 1급인 배덕민 씨는 “6년 전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어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왔다. 얼마 전 몸이 아파서 쓰러졌는데, 활동보조인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거다. 활동보조서비스 자부담 8만원도 부담스러운데 그나마 장애등급 재심사로 인해 가뜩이나 부족한 활동보조를 받지 못하게 될까봐 하루하루 불안하다”고 말했다.
배덕민 씨는 이어 “장애심사를 받기 위해 15만원이나 들여서 병원검사를 받으라고 하는데, 그걸 누가 하겠나. 세계 어디에 이런 제도가 있단 말인가. 내후년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이렇게 불안하게 사느니 차라리 개로 태어나는 게 낫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최근 지역사회로 나온 정승배 씨는 “시설에서 나와 보장구 문제를 알아보던 중 그제야 내가 뇌병변장애가 아니라 지적장애 1급으로 등록된 것을 알았다. 그런데 판정을 다시 받고 싶어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후 한뇌협 관계자들은 복지부 관계자에게 복지부장관 면담요청서를 전달하며 “면담에 응하지 않고 공개적인 설명을 하지 않으면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장애판정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속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며 장애판정제도가 개선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김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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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라현 기자 husisara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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