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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법적 보장, 한국의 옴스테드 판결 내려질까

[초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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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2월, 평생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살던 1급 뇌성마비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을 요구했으나, 해당 지자체가 이를 거부하는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 4월 6일 제기됐다.

만약 소송에서 승소하면 1999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정신병원에서 감금치료를 받던 정신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줘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한 ‘옴스테드 판결’과 같이 우리나라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 또한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돼 많은 관계자들과 당사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장애인 복지 사상 처음으로 장애인생활시설에서 거주하던 생활인이 지역사회로의 삶을 살기위해 해당 군청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을 제기했다. ⓒ김라현 기자 장애인생활시설 거주 당사자, 지역사회로 서비스 전환 요청

현 「사회복지사업법」은 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신청권을 인정하고,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자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적절한 사회복지서비스의 제공 혹은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사업법」 제41조에는 ‘시장 군수 구청장은 보호대상자별 보호계획에 따라 보호대상자에게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시설입소에 우선해 재가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 돼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장애인 단체와 인권변호사 등 법조인으로 구성된 탈시설정책위원회(이하 탈시설정책위)는 이를 현실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지난 해 12월, 15~20년간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생활하던 황인현(김포 향유의 집, 구 석암베데스다요양원), 윤국진, 박현(꽃동네 희망의 집)씨는 탈시설정책위와 함께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설이 속한 지자체를 각각 찾아가, 자신들에 대한 지원방식을 장애인생활시설 보호가 아닌 공동생활가정이나 자립생활 등으로 변경해달라는 내용의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및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윤국진 씨는 “매일 똑같이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을 이제는 더 이상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은 나 같은 사람들이 나가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일도 하고 활동도 하는 모습을 봤다. 나도 나가서 자립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이성친구도 사귀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어려운 꿈이지만 나도 꿈을 갖고 살고 싶다.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 시설에서 나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당시 탈시설정책위 소속 장애인단체들은 서비스 변경신청에 대해 “국내 처음으로 보호당사자가 직접 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길을 연 역사적인 순간이며, 그동안 사문화 되어있던 서비스신청권 및 변경신청권을 작동시킨 독립선언의 날”이라고 평가했다.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의 법적 총괄을 맡고 있는 탈시설 정책위 임성택 변호사 역시 “법의 실질적 시행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여전히 장기적인 계획에서만 자립생활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법에서는 당장 자립생활을 추진하도록 명시돼 있다.”며 “언제 나갈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꿈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이, 큰 용기를 갖고 독립생활을 준비하는 이들을 보면서 새로운 꿈을 꾸길 바라며, 이번 변경신청을 계기로 국가정책이 바뀌어 더 많은 시설 생활인들이 꿈을 꿀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의 법적 진행을 총괄하고 있는 탈시설정책위 임성택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 ⓒ김라현 기자 관할 지자체, 사실상 변경 신청 거부…거부 처분에 대한취소 소송 진행

그러나 결론을 얘기하면 시설에서 나와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던 장애인들의 자립생활 꿈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시작 단계부터 막혀버렸다. 장애인들의 요구를 지자체에서 거부한 것이다.

다시 부연하면 현 「사회복지사업법」에는 관할 지자체가 자체에서 탈시설 지원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면, 다른 관할구역에서 제공되는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광역자치단체 또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연계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또 「사회복지사업법」은 더불어 당사자의 요구와 상황을 고려하여 개별화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세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즉 ①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자가 관할 기관에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을 신청하면, ②관할 기관은 당사자의 복지요구를 자세히 조사한 후, ③복지서비스 제공 여부와 그 유형을 결정하고, ④대상자별 복지서비스 제공계획(보호계획)을 작성하며, ⑤그 보호계획에 따라 보호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국진 씨와 박현 씨의 변경 신청을 받았던 음성군청은 지난 1월 7일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에 대해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회신이 아닌 사회복지서비스의 내용을 단순히 안내하는 수준의 공문을 보내는 데 그쳤다. 이에 탈시설정책위가 음성군청에 공문의 내용이 ‘결정의 통지’인지 ‘서비스 안내’인지 명확히 해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다시 보냈으나, 음성군청이 이에 대해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아 당사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는 게 탈시설정책위 관계자 이야기다.

결국 탈시설정책위는 4월 6일 서울혜화동 노들장애인야학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음성군청이 사실상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을 거부했다고 판단해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탈시설정책위는 “현재 음성군청은 이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들은 그룹홈도 없고 탈시설 정착금 제도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며 자립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다른 데서 개별적으로 알아보라는 민원회신 수준의 답변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참석한 진보신당 박김영희 부대표는 “지금까지 장애인들은 자립생활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면 활보나 주거 등 많은 것들을 스스로 찾아 준비해야 했지만, 이미 「사회복지사업법」 안에 우리가 원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할 지자체에서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에 대해 정보를 주거나 지원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음성군청 측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음성군청 담당자에게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담당자가 바뀐 지 얼마 안돼 업무파악을 하지 못했다.”라며 “소송이 진행 중이니 대처할 예정이나 아직 아무것도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15~20여년간 생활해오던 장애인생활시설을 떠나 지역에서의 자립생활을 위해 서비스변경신청을 제기한 (좌)윤국진, 박현 씨 ⓒ전진호 기자 자립생활 가능하도록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 필요

지난 1999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두 정신장애인 여성이 ‘주치의가 자신을 지역사회 기반의 치료 프로그램에 배치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하이오주(州)가 지역사회가 아닌 정신병원에 격리시켰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미국 장애인법(ADA)을 근거로 ‘국가는 장애인을 정신병원 등의 시설에 수용하는 것보다는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오하이오주 정부는 장애인이 ‘가능한 한 통합적인 환경’에서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실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시설 중심의 복지서비스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미국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준 역사적인 판결로 평가되는 ‘옴스테드 판결’이다.

탈시설정책위 임성택 변호사는 이번 소송의 의미를 설명하며 “미국 옴스테드 판결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불필요한 시설에의 격리수용은 그 자체가 본질적 차별이며, 제정 부족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차별이라고 선언한 데 있다.”며 “이번 행정소송을 통해 윤국진 씨와 박현 씨에 대한 음성군의 거부 처분을 취소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복지사업법」상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권의 내용이 무엇이고 이에 상응해 지자체가 이행해야 할 절차상 실체상 의무는 무엇인지에 대한 하급심 법원의 판단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자체가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보장하라는 소송은 현재 청주지방법원에 제기되어 있다. 그러나 만약 법원에서 소송에 대한 승소판결이 내려져 탈시설이 법적으로 보장받는다고 하더라도 과제는 남는다.

정부가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을 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고민을 비롯해 공적 서비스가 책임지지 못하는 부분을 결국 가족들의 몫으로 떠넘겨지는 것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종식시켜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박현 씨의 부모 역시 박현 씨가 시설을 벗어나는 것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고. 박현 씨는 “시설에서도 왜 시설에서 나가려고 하느냐고 말리고 있고, 가족들 역시 자립생활을 반대하고 있다.”며 “가족들이 ‘몸도 가누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거냐’며 반대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현경 탈시설정책위 활동가는 “가족의 입장에서는 몸이 불편한 가족이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자립생활 하는 것을 걱정할 수 있다.”라며 “자립생활을 하려는 장애인들도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박현 씨를 비롯해 자립생활을 하려는 장애인은 모두 성인이기 때문에 그 길이 험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권리를 쟁취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임성택 변호사는 “부모들이 탈시설을 걱정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은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장애인이 혼자 생활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부모들이나 당사자가 마음 놓고 자립생활을 꿈꿀 수 있도록 「장애인복지법」과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해 충분히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성자김라현 기자  husisara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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