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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장애인 자립생활권, 법원 판단 기다릴 게 아니다

국가는 장애인 자립생활권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의무가 있어

본문

[인권오름]

야구를 좋아하는 A는 하루일과를 마친 늦은 시간 야구 하이라이트를 해주는 TV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때로는 연장전에 들어간 야구가 늦은 시간까지 계속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대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기에 승리를 향한 선수들의 움직임에 몰입하게 된다.

돈가스와 카레라이스를 좋아하는 B에게 최고의 음식은 “카레돈가스”이다. 가끔 학교 앞 분식집에 가서 카레돈가스를 사먹지 않으면 뭔가 허전할 정도다. “오늘은 뭐 먹을까?” 선배의 질문에 웃으며 “카레돈가스” 라고 말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주변의 삶의 모습 중에 너무나 일상적인 두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야구를 좋아하고 카레돈가스를 좋아하는 사람의 일상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이야기 거리도 안 되는” 일상일 뿐이다. 그런데 장애의 영역에 들어오면 이러한 “이야기 거리”의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시설에서 밤늦게 자신이 보고 싶은 TV를 시청하는 것은 다른 시설생활인과의 공동생활에 지장을 주는 행위가 될 뿐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내가 골라 먹을 수 있는 것도 가끔 주어지는 “은혜로운 혜택”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곁에는 당연히 누려야 할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자립생활을 하게 해 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대나 감옥의 이야기가 아니다. 군대나 감옥에서도 인권과 법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지금, 누군가는 자신의 기본적 삶을 자기 마음대로 좀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을 권리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요구를 하고 있고 그 요구에 국가는 귀를 막는다. 대단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처럼 TV를 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먹을 자유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2010년에. 어디서? 우리 대한민국에서.

자립생활 권리를 위한 소송

2009년 12월 26일,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생활하는 박현, 윤국진 씨는 음성군에 사회복지서비스변경 신청을 제출했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데에 지원되고 있는 예산 등으로 자립생활을 지원하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음성군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사실상 지원을 거절했고 2010년 4월 이에 대해 변경신청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박현 씨와 윤국진 씨는 각각 열다섯 살, 열세 살에 꽃동네에 들어가 20년, 15년씩 시설생활을 해 왔다. 이들이 자립생활, 즉 사람으로서의 자유로운 일상을 살겠다는 것이 소송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앞으로의 시설정책과 자립생활 지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그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런데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음성군도, 우리 정부도, 그리고 우리 국회도 하염없이 법원의 판단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만일 법원이 자립생활권에 대하여 그 전 복지 관련 판결에서 늘 되풀이 하였듯이 “국가가 실현해야 할 객관적 내용의 최소한도 보장에도 이르지 못하였다거나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하였다고는 보기 어렵다. 헌법의 규범으로부터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국가의 행위의무를 도출할 수 없는 것이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한다면 “거 봐 우리는 그런 자립생활 주장하는 사람들 지원할 의무가 없다니까.”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니 지금도 이미 이런 이야기를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복지 영역에 대한 사법부의 소극성

사회적 논의의 내용이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보수화되어온 사례는 매우 많다. 특히 복지 영역에 있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지금까지 복지의 발전과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국가의 무책임성에 면죄부를 주어 온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건을 예로 들면 장애인 저상버스 사건(헌재 2002. 12. 18.)과 2002년 국민기초생활보장최저생계비 위헌확인 사건(헌재 2004.10.28, 2002헌마328)이 있다.

장애인 저상버스 사건은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공권력의 주체인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저상버스의 도입이란 행정행위를 청구하였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우리 사법부는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다른 다양한 국가과제에 대하여 최우선적인 배려를 요청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나아가 헌법의 규범으로부터는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의 도입’과 같은 구체적인 국가의 행위의무를 도출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2002년도 국민기초생활보장최저생계비 위헌확인 사건은 보건복지부장관이 2002년도 최저생계비를 고시함에 있어 장애로 인한 추가지출비용을 반영한 별도의 최저생계비를 결정하지 않은 채 가구별 인원수만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를 결정한 2002년도 최저생계비고시가 생활능력 없는 장애인가구 구성원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장애인들의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국가가 생활능력 없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국가가 실현해야 할 객관적 내용의 최소한도의 보장에도 이르지 못하였다거나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하였다고는 보기 어렵고, 또한 장애인가구와 비장애인가구에게 일률적으로 동일한 최저생계비를 적용한 것을 자의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한 사건이다.

이러한 판결들은 당시 행정부의 복지에 대한 무관심과 무대책에 대하여 “합헌적”이라는 인증을 해주었다. 국회와 정부는 그들이 만든 법이, 그들이 행한 행정이 합헌적이기에 더 이상 장애인 이동권과 최저생계를 고민해야하는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우리 복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런데 위의 판결에는 우리가 판결 결과 이외에도 주목해야 하는 판결 “내용”이 있다.(기속력이라는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국가 기관은 판결의 내용까지 존중해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 사법부는 두 판결에서 아래와 같은 판결의 내용을 남긴다.

국가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하여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등 국가재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는 사회국가를 실현하는 일차적 주체인 입법자와 행정청의 과제로서 이를 헌법재판소가 원칙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며, 국가기관간의 권력분립원칙에 비추어 볼 때 다만 헌법이 스스로 국가기관에게 특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에 한하여,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의 형태로써 국가기관이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의 위헌성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저상버스 판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생활능력 없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헌법의 규정은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하지만 그 기속의 의미는 동일하지 아니한데, 입법부나 행정부에 대하여는 국민소득, 국가의 재정능력과 정책 등을 고려하여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으로 모든 국민이 물질적인 최저생활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행위의 지침, 즉 행위규범으로서 작용하지만, 헌법재판에 있어서는 다른 국가기관, 즉 입법부나 행정부가 국민으로 하여금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하여 객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할 의무를 다하였는지를 기준으로 국가기관의 행위의 합헌성을 심사하여야 한다는 통제규범으로 작용하는 것이다.(2002년도 국민기초생활보장최저생계비 위헌확인 사건에서)

다시 말하면 우리 사법부는 권력분립에 입각해, 국회와 정부의 행위를 잘못했다라고 선언하기는 힘들지만 국회와 정부는 국민의 헌법상 권리인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위하여 최대한의, 그리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즉 면죄부를 주긴 주되 국회와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하여는 “국민을 최대한 인간답게 살게 해 달라”는 고언을 남긴 것이다.

국가의 의무?

국민의 의무에 대해 우리는 쉽게 이야기한다. 납세, 국방……. 그러나 ‘국가의 의무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너무나 명확하게 우리 헌법은 우리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의무를 배운 적도 없고 그리고 그 의무를 강조하며 국가에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도 익숙치 않다. 우리 헌법 10조는 헌법의 가장 중요한 조문으로서, 우리는 이 조항을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헌법 10조는 다음과 같은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하여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최고 가치 중의 하나로 삼는 우리 헌법질서 내에서…….” 이러한 표현으로 우리 헌법재판소는 과외교습을 금지한 법 규정이 위헌이라고 선언한바 있다. 지금 우리는 과외교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일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TV를 보고 싶을 때 보게 해달라는 것이다. 장애인의 자립생활권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을 주장하는 것이기에 그 주장이 오히려 소송까지 간다는 사실이 슬프다. 우리 헌법은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자유와 행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계이며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헌법에서 약속한 국가의 의무를 음성군과 정부와 국회가 외면하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필자의 생각이 사실은 우스꽝스러운 생각이어야 한다.

작성자김정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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