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역할에 관한 유엔 가이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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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검사-스폰서 관계에 대한 언론보도로 벌집 쑤신 듯하다. ‘막장드라마보다 더 재미있었다’는 관람평(?)부터, ‘XX들’이란 원색적인 욕까지 표현들도 다양하다. 인권 침해와 후퇴에 기여한 그간 정치 검찰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계속돼왔는데 기름 부은 격이다.
이 와중에 내겐 한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 4월 15일에 돌아가신 ‘왕언니’의 얼굴이다. ‘왕언니’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오랜 기간 자원 활동을 했던 권태평 어머니가 스스로 지은 별명이다. 노인취급 하지 말고 ‘왕언니’라 불러 달라 하셨다. ‘왕언니’는 정치검찰이 조작한 대표적 사건인 소위 ‘유서대필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 씨의 어머니이다. 아들이 왜 그런 누명을 써야 했는지 알고 싶고, 아들이 한다는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고 싶다고 늦깍이 공부를 시작하고 인권단체 활동을 한 어머니셨다.
1991년 민주주의가 질식하는 속에서 한 대학생이 경찰에게 대낮에 맞아죽었다. 전국적으로 거대한 봉기가 일어났고, 많은 젊은이들의 분신이 이어졌다. 이때 궁지에 몰린 정권이 만들어낸 사건이 ‘유서대필’이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분신한 사람의 유서를 누군가 대신 써주고 그에게 죽으라고 시켰다는 사건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쓴 것은 바로 검찰이었다. 당시 검찰은 분신한 사람이 대학을 안 나왔다는 이유로, ‘대학도 안 나온 자가 이런 유서를 쓸 리 없다’는 학력차별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범인으로 지목한 강기훈 씨에 대해서도 ‘이념을 위해서라면 동료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자’라는 인신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강기훈 씨는 3년여 꼬박 옥살이를 했다.
세월이 흘러, 과거 조작된 인권침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2009년 9월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그럼, 이 사건의 시나리오를 쓰고 뛰어난 열연을 펼쳤던 그 검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관련자들은 대법관도 지내고, 고검장도 지내고 지검장도 지내며 출세의 가도를 달렸고, 현직을 떠나서도 안락하게 잘 살고들 있다고 한다.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 소식에 “문제없이 수사했다”, “옛날 재판 결과를 이제 와서 얘기하면, 불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재심을 청구해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칠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어디 유서대필 사건뿐이랴. 사형까지 당했던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이나 고문수사로 조작간첩사건의 피해자가 됐던 많은 이들이 검찰의 오욕의 역사 속에 남아있다. 그럼 지금은? 인터넷 게시판에 글 하나 썼다가, 패러디 한번 했다가, 불매운동 했다가, 집회에 나갔다가 검찰의 추궁을 받는 시민들이 많다. 교사들이 교원노조에 가입했다고 학교를 대거 압수수색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하는 검사들도 많다. 그런데 거대 기업이나 고위 공무원에 대해서 검찰이 그렇게 했다는 일은 듣지 못했다.
인권운동에서는 요즘 감옥에 있거나 법원 또는 검찰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철거민과 같이 싸웠거나, 집회․시위를 했거나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는 이유 등으로 말이다. 하나같이 검사한테 쥐새끼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삽자루로 내리쳐서 쥐를 잡는 모양새로 추궁받기 때문이다.
그런 기세로 좀 다른 걸 수사해 줬으면 좋겠다.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산재 공장을 파헤쳐보시라.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비자금 조성에 열중하는 기업구조를 파헤쳐보시라. 정경유착으로 벌집이 된 국토개발사업구조를 파헤쳐보시라. 사설학원의 돈을 받고 교육정책을 펼치는 고위 교육공무원들을 찾아보시라. 막걸리를 말로 받아주고, 소주를 궤짝 채 안기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자발적으로 대가없이 향응을 제공할 시민이 넘쳐날 것이다.
오늘 읽어볼 문헌은 ‘범죄예방과 범죄자 처우에 관한 제 8차 유엔 회의’(the Eighth United Nations Congress on the Prevention of Crime and the Treatment of Offenders)에서 채택한 ‘검사의 역할에 관한 가이드라인’이다. 별다르게 뾰족한 내용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 그간 검찰에게 요구해 온 ‘상식’과 다를 바 없다. 정의구현까지는 못되더라도 상식을 벗어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게 그간 검찰에 대한 초라한 요구사항이었다.
부패는 범죄일 뿐 아니라 곧 인권침해이다. 그런데 부패방지와 부패수사는커녕 자기 도끼 자루가 썩어 빠지고 있는 걸 무시하고 있다. 검사들이 ‘폭탄주’를 좋아한다는 취향에 대해선 내 알 바 아니다. 자기 돈 주고 마신다면 말이다. 검사들이 연애도 하고 사랑도 많이 하는 건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인간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물건처럼 사고팔고 상납 받는 게 아니라는 것, 그렇게 하는 건 성범죄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도마에 올려야 할 것은 정치적 필요를 위해 사건을 만들어내고 몰아가는 정치검찰의 행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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