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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 하락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기획] 장애등급 재심사와 까다로워진 장애판정의 문제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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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강화된 활동보조제도 지침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장애인들이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라현 기자
연초부터 시행된 장애등급 재심사가 장애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조만간 장애인연금으로 이름이 바뀌지만 현재 장애수당을 받고 있는 장애인들과 활동보조인 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은 ‘장애등급 하락 - 서비스와 연금 박탈’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공포감과 함께 생존권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정부는 현금 급여가 투여되는 서비스는 장애등급 심사를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부가 저소득 중증장애인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도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다. 장애등급 재심사 무엇이 문제인지 실상을 알아봤다.

재심사로 장애 등급 하락하는 장애인 속출

4월 초, 제주도에 사는 한 장애인의 호소문이 장애인 단체와 일부 언론에 뿌려졌다. 뇌병변 1급 장애인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여성장애인 양아무개 씨는 호소문에서 그동안 활동보조인 서비스 지원을 받아 일상생활도 하고 바깥나들이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받고 있는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 시간이 부족해서 동사무소에 시간 연장을 신청했더니 동사무소에서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았더니, 장애등급이 1급에서 2급으로 떨어져서 시간 연장은 커녕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를 아예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장애인은 ‘나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밥을 먹지도 못하고, 옷을 입지도 못하며, 이동조차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라며, 이런 나에게 장애 2급 판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며 절망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 장애인은 이어 ‘부모님도 나이가 들어 나를 돌봐주지 못하는데, 활동보조인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제 모임에도 못 나가고, 학교에도 못가고, 아예 사회생활을 못하게 되었다.’면서 ‘나 보고 어떻게 살란 말이냐.’며 대책을 호소했다.

그리고 지난 19일,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활동보조 제도 개악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날 활동보조인 제도와 관련해서 장애인들이 인권위에 진정한 내용의 핵심은, 장애 등급 재심사로 인해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던 장애인들이 더 이상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장애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가 제일 많이 필요한 장애인들이 주로 뇌성마비 장애인들인데 이들이 장애등급 재심사로 인해 장애등급 1급이었던 장애인들이 2급이나 3급으로 장애 등급이 하락했고, 이로 인해 더 이상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생존권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날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인천에 사는 한 뇌성마비 장애인의 경우 양 손을 전혀 사용하지 못해서, 밥도 다른 사람이 먹여줘야 먹고, 용변 처리도 다른 사람이 도와줘야 가능한 1급 장애인였는데,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기 위해 장애 등급 재심사를 받은 결과 걸을 수 있다는 이유로 장애 등급이 2급으로 하락했다고 한다.

또 대구시에 거주하는 1급 중증장애아동 두 명은 각각 월 6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해서 외출과 학교 공부 등에 도움을 받아왔는데, 장애등급 재심사 결과 2급으로 하락되어 활동보조 서비스가 중단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외출과 학교에 가는 게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 장애인들의 주장이다. 역시 대구에 사는 한 중복장애 1급(지체 3급, 정신2급) 장애인도 장애 등급 심사 결과 등급이 하락되어 올해부터 활동보조 서비스가 중단됐고, 그래서 사실상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게 장애인들의 주장이다.

비단 이런 사례뿐만이 아니다. 장애등급 재심사는 많은 장애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애인들 중에서도 특히 뇌성마비와 뇌병변장애인들이 더 심한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 장애등급재심사에서 희귀난치성 심장장애로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권혁선 씨는 결국 지체장애 4급만 인정받아 그동안 받아왔던 장애수당을 받지 못 하게 됐다. ⓒ김라현 기자
서울에 있는 한 자립생활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활동보조서비스 지원을 받고 있는 장애인들 중 뇌성마비를 비롯한 뇌병변 장애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대략 전체 장애인의 3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들 상당수가 뇌병변으로 분류되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이라고 한다.

정부 방침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지금 활동보조 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은 다시 장애 재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뇌병변 장애인들은 재심사를 통해 장애등급이 하락해서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정부 방침은 활동보조인 지원서비스를 받는 장애인들은 반드시 2년마다 한 번씩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활동보조서비스가 시행된 지 2년이 훨씬 지났기 때문에 이르면 7월부터 기존에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고 있던 장애인들은 다시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7월 이후 장애등급이 하락하면서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큰 폭 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장애인들의 주장이었다.

정리하면 비단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장애 재심사로 인해 장애 등급이 하락해서 활동보조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할까봐, 그리고 여기에 더해 7월부터 시행되는 장애인연금도 받지 못할까봐,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두려워하고 있고,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7월 장애인연금에도 영향 미치지 않을까 걱정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새롭게 장애등급 판정 기준을 마련해서 장애등급 심사 때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중증에 해당되는 장애등급 1급에서 3급으로 장애진단서를 발급하는 경우 병원뿐만 아니라 연금관리공단 같은 심사 전문기관에서 장애등급 심사를 별도로 시행하는 제도를 신설했다.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 제도도 개선책을 마련했다며, 올해부터 신규신청자 뿐만 아니라 2년 이상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반드시 장애 등급심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해서 적용하고 있다.

결국 예전에 비해 장애 등급 심사가 까다로워졌고, 까다로워진 장애등급 심사 과정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적용되면서, 장애인이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무 사항인 장애 등급 재심사 결과 장애 등급이 하락해서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생기고 있고, 앞으로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일부 장애인계 관계자들은 장애인이 장애등급 재심사 과정에서 장애등급이 하락해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현상이 비단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7월부터 시행되는 장애인연금도 장애인이 연금을 받으려면 반드시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아야 해서 장애등급 하락으로 장애인연금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속출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었다.

왜 뇌병변 장애인들이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가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것은 앞으로 있을 장애등급 재심사 과정에서 장애인 중에서도 특히 뇌병변 장애인들의 무더기 장애 등급 하락이 예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슨 까닭이 있는 걸까,

과정을 살펴보면 지난 2003년까지는 뇌병변 장애인들의 경우 지체장애로 분류돼서 장애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러다가 2003년 이후 부터는 장애등급 심사표에 뇌병변 장애인 항목이 따로 생겼고, 이에 따라 뇌병변 장애인들은 지체장애와 따로 분류돼서 장애 판정을 받게 됐다.

따라서 올해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장애 등급 판정에도 뇌병변 장애인들은 지체장애와 별도로 분류돼서 장애판정을 받게 되어 있는데, 문제는 새로운 장애 등급 판정 기준표상 뇌병변 장애 부분이 다른 장애보다 판정 기준이 매우 까다롭고 엄격해서, 사실상 뇌졸중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1급 장애 판정을 받는 것이 굉장히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 뇌병변장애 등급판정표
새로운 장애 판정표를 보면 점수제로 장애 판정을 하게 되어 있다. 특히 뇌병변 장애의 경우 수정바델지수라는 일종의 기능평가 기준이 도입돼서 뇌병변 장애인이 100점을 기준으로 25점 이하 의 점수를 받아야만 1급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장애판정표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장애판정 뇌병변 장애 등급 기준은,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비가역적 혼수상태로 수정바델지수가 24점 이하인 사람과, 보행과 모든 일상생활동작의 수행에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수정바델지수가 24점 이하인 사람만 장애 등급 1급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뇌병변 2급 장애는 보행과 모든 일상생활동작의 수행에 대부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수정바델지수 39점 이하인 사람, 그리고 3급은 보행 및 모든 일상생활동작의 독립적 수행이 어렵고, 일상생활동작 수행에 부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수정바델지수가 54점 이하인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장애 기준표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듯이 뇌병변 장애인은 언어장애 같은 아무리 심한 장애가 있어도 혼자서 그나마 밥을 먹고 용변을 처리하면 3급 장애 판정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얘기가 나온 김에 뇌병변장애 등급 판정표를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아주 쉽게 이 기준표가 뇌성마비나 뇌병변 장애인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한 번 언급하면 뇌병변 장애인 등급 판정표의 경우 25점 이하의 점수를 받아야만 장애인이 1급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다.

뇌병변장애 등급 판정표는 기본적으로 장애인이 아무 것도 전혀 할 수 없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타인의 그것도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여야 한 문항에서 0-3점을 받아 1급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표 참조) 그리고 판정표를 보면 다른 항목도 문제지만 특히 11개의 문항 중에 3개를 용변과 관련된 문항이 차지하고 있는 게 눈길을 끈다.

판정표 점수를 꼼꼼하게 계산해 보면 뇌병변 장애인이 용변을 혼자 볼 수 있으면 10점을 받아 절대 1급 장애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다 용변과 관련해서 대변조절과 소변조절 항목이 또 따로 있다.

대소변 조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조절을 장애인이 스스로 생리현상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 즉 요의를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로 보는 시각이 일단 우세하다.

그래서 뇌성마비 장애인의 경우 혼자 용변을 볼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도 대소변과 관련해서 요의를 느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문항에서 20점을 받게 되면서 1급 장애인에서 탈락하게 되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제주도에 사는 양아무개 씨도 바로 이 대소변 조절과 관련한 문항 때문에 1급장애인에서 탈락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애판정 담당자는 이 문항과 관련해, “혼자 용변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의 경우 2-5점을 줘야 하는데 장애 판정을 하는 의사들이 자의적으로 문항을 해석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단 장애 판정표만 보면 어쨌든 혼자 용변을 볼 수 없는 중증장애인도 요의를 느끼면 1급 장애인이 될 수 없게 판정표가 만들어져 있는 게 맞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문항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지체장애 등급판정표
그리고 뇌병변 장애판정표와 관련해서 또 하나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뇌병변 장애 판정표가 다른 장애 판정표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장애판정표에 따르면 지체장애인 는 양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면 장애 1급 판정을 받게 되어 있다. 즉 지체장애인은 다리를 사용하지 못해서 휠체어를 타면 무조건 장애 1급 판정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지체장애인 판정표 참조) 하지만 뇌병변 장애인 판정표는 장애인이 다리 경직이나 마비 등으로 휠체어를 타도 1급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런 장애 판정표와 관련해서 의정부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김윤태 교수는 “장애인이 두 다리가 마비돼서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팔에 장애가 없으면 지체에서는 1급 장애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뇌병변 장애인은 양하지 마비나 두 다리 경직으로 휠체어를 타도 손사용이 가능하면 1급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없다. 지체장애인 판정표를 뇌병변 판정표와 대비해 보면 양하지 마비 지체장애인의 경우 50-60 점수가 나와 절대 1급 장애인이 될 수 없다.”라고 불균형을 지적하고 있다.

숫자와 힘의 논리가 반영된 장애 판정표

그러면 객관적으로 인정되듯이 새로운 장애판정표는 왜 유독 뇌병변 장애인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진 걸까,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장애 판정 담당자는 그 이유에 대해 “그동안 뇌병변 장애 기준이 없어서 이번에 의사들의 자문을 얻어 새로 만들었다. 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새로운 판정표 가 불리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크게 불리하지 않다. 문제는 장애판정을 하는 의사들이 문항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장애 판정을 하고 있어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뇌병변 장애 판정표가 장애 판정 기준에 맞고, 오히려 지체장애가 판정기준이 완화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복지부 담당자 말대로라면 왜 지체장애인은 판정 기준이 완화된 걸까, 혹시 지체장애인이 뇌병변 장애인보다 숫자가 훨씬 더 많아서, 지체장애인들의 반발을 의식한 숫자 논리가 장애판정표에 적용된 건 아닐까,

그런데 이런 가설을 무시할 수 없는 근거가 여기 있다. 장애인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척수장애인들의 경우 척수장애인협회를 만들면서 중점 사업 중 하나가 척수장애를 지체장애에서 분류해 따로 장애범주를 만드는 거였다. 그래서 척수장애인협회는 정부가 새로운 장애판정표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 척수장애를 지체장애에서 분류해 따로 장애 항목 판정표를 만들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작년 말 새로운 장애 판정표의 척수장애인 판정표 시안을 본 척수장애인들이 깜짝 놀랐다. 새로운 장애판정표에 따르면 척수장애인들의 장애 등급이 뇌병변 장애인들처럼 모조리 하락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척수장애인들이 이런 기준으로 척수장애인들을 독립시킬 바에는 차라리 기존 지체 등급에다 그냥 놔둬라 라고 강력하게 요구했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져 작년 장애판정 공청회 때 가안으로 들어가 있던 척수장애인 항목이 빠지고 새로운 장애판정표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뇌병변 장애인들은 손해를 보는 걸 알면서도 강력하게 반발하지 않아서, 그리고 뇌병변 장애인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국회 등에 없어서 상대적으로 엄격한 장애 판정을 적용받게 됐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서글프게도 숫자와 힘의 논리가 장애 판정표에 반영된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장애판정표를 인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이 장애인들을 가로막고 있다

새로운 장애판정표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장애판정이 예전에 비해 엄격하고 까다로워지면서 장애인 입장에서 중증장애 판정을 받는 것이 만만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단 뇌병변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지체 장애의 경우도 중증장애 판정을 받는 것이 힘들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김윤태 교수는 “예전에는 한쪽 팔 한쪽 다리 완전 마비의 장애 상태면 2급 이상 장애 등급 판정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한쪽 팔 한쪽 다리 마비라도 판정표상 기능적인 동작이 가능하고 근력이 남아있으면, 점수가 50점 이상이 나와 4급 장애 판정이 나온다. 이제는 장애판정을 점수제로 하니까 의사가 장애 등급을 더 올려주고 싶어도 가능하지 않게 됐다.”고 실상을 전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예전, 그래봤자 멀지도 않은 작년까지 장애 판정은 의사 손에서 끝났다. 하지만 지금은 중증장애로 분류되는 1-3급 장애 판정의 경우 의사가 장애 판정을 한 후 반드시 판정 서류를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보내게 되어 있다. 연금관리공단에는 장애 판정 의사들이 따로 있고, 이들이 장애판정 서류를 검토한 다음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장애인을 직접 불러서 다시 장애 판정을 하게 되어 있다.

장애인 입장에서는 이중 삼중의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중증장애인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왜 장애등급 재심사가 시행되고 있고, 또 장애판정은 왜 이렇게 엄격하고 까다로워진 걸까,

일단 장애판정을 하고 있는 의사들은 “우리나라 장애판정 시스템 자체가 전반적인 불신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의사 개인에게만 장애 판정을 맡기다보니 너무 편차가 심해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 이 의사에게 가면 1급 판정을 받고, 저 의사에게 가면 4급 판정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이어 의사들은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장애인들의 경우 처음 다쳤을 때는 당연히 장애등급이 높게 나온다. 하지만 긴 시간 치료를 받아 장애가 회복 됐는데, 그때 다시 장애 심사를 받지 않고 있다. 즉 사고 후 처음 장애등급 판정을 받았을 때는 못 걸어서 1급 판정을 받았지만 1년 정도 지난 뒤 회복돼서 지팡이 짚고 걸어 다니는데 다시 장애 재심사를 받지 않아서 여전히 장애 1급으로 남아있다.”라며 장애인들의 도덕적 헤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장애판정이 까다롭고 엄격해진 이유의 하나를 “가짜 장애인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짜 장애인이 생기는 걸 예방하기 위해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장애심사라는 별도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이런 이유들은 하나의 사유는 될 수 있겠지만 왜 장애 판정이 까다로워지고 엄격해졌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적절한 답이 되지 못하고 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장애 판정이 까다로워지고 엄격해진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돈, 즉 정부가 장애인에게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기 위해서 장애판정을 까다롭고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다고 바라봐야 비로소 의문이 풀릴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장애인연금이나 활동보조 서비스에 예산이 투입되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예산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을 재심사와 까다로워진 장애판정으로 걸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입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는데,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을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정부가 장애인들을 향해 까다로운 장애 판정으로, 너는 절대 여기에 진입할 수 없어, 라고 선을 긋고 있고, 그래서 장애 재심사와 새로운 장애판정이 장애인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누구를 위한 장애판정인지 의문 제기돼

참고로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장애 판정 담당자는 새로운 장애판정표가 논란을 빚고 있는데 대해 “뇌병변 장애 판정표는 의사들이 문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문항과 관련해서 실 예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책자 6만부를 만들었다. 조만간 전국 장애 판정 의사들에게 이 책자를 배포할 예정이고, 그러면 뇌병변 장애인들의 장애 등급이 하락하는 사례는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이 7월 장애 등급 전면 재심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일단 활동보조 서비스와 관련된 장애 등급 재심사는 시간 연장 신청을 하는 장애인과 활동보조서비스를 처음 받는 장애인에게만 실시할 예정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담당자는 새로운 장애 판정표를 폐기할 의향은 없느냐고 묻자 “객관성을 보완할 계획은 있지만 장애판정표를 폐기하고, 다시 만들 계획은 없다는 게 복지부 입장이다.”라고 못 박았다.

이제 정리해 보자. 기자는 아주 오래 전 목발을 짚고 걸어 다니는 한 장애인이 의사의 온정적인 배려로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수당을 받는 데 필요한 장애등급 1급 판정을 받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그걸 보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기자는 솔직히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객관적인 정황상 그 장애인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않으면 생존권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장애인이 장애등급을 올려 받아 기초생활급자가 되는 게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굳이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새로운 장애판정표가 말하는 장애인 현실과 장애인들이 실제 살고 있는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서이다.
정부의 장애등급 재심사와 새로운 판정표에 문제를 제기하는 장애인들은 한목소리로 “우리나라는 장애인을 지나치게 의료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문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윤태 교수도 “우리나라는 장애등급 자체가 장애인의 육체적인 능력 또는 정신적인 능력만 보고 판단하게 되어 있다. 가령 재벌가 아들이 사지 마비가 됐다고 치자. 그 사람이 현실적인 장애를 느끼겠는가, 아마 돈의 힘으로 사는데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장애 판정은 의료적인 기준이 아니라 그 장애인이 처해 있는 사회적인 요건과 그 장애인이 갖고 있는 환경적인 요인들을 참고해서 장애판정을 내리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하고 있다.

부연해서 더 얘기하면 서두에서 사례로 든 인천에 사는, 걷는다는 이유로 장애등급이 하락한 한 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두 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더해 한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상태에 놓여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서 외출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이 장애인이 한글을 깨칠 수 있을 때 까지는 1급 장애 판정을 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제대로 된 장애판정이 아닐까,

또 가족이 전혀 없어 혼자 사는 중증장애인이면 장애등급 2급이라도, 돌봐주는 가족이 없는 걸 감안해 1급 장애판정을 해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역시 제대로 된 장애판정이 아닐까,

정부의 장애 판정에 의문을 느껴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유럽의 경우는 장애 판정을 의사가 아닌 장애서비스 센터라는 곳에서 하고 있었다. 즉 유럽에서는 장애인의 장애판정을 할 때 의료적인 기준이 아닌 그 장애인이 처해 있는 객관적인 상황을 고려해 장애로 인해 어떤 사회적인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살펴보고 장애 판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에 중점을 둔 장애 판정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김윤태 교수는 “예전에 미국에 연수 갔을 때 주차를 위해 장애인 차량 마크가 필요했다. 뉴욕주에서 의사에게 얘기했더니 의사가 주차와 관련해서 한 장의 소견서를 써줬고, 소견서를 관청에 제시해 즉시 장애인 차량 마크를 받았다. 미국에는 장애인 등록제가 없다. 이런 식으로 장애인이 어떤 서비스가 필요하면 의사 소견서 하나로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경증장애인라고 해서 장애로 인한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장애판정은 장애인이 경증 장애를 가졌어도 실질적으로 장애로 인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 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걸 살펴보고 거기에 따른 지원을 장애인의 권리보장의 차원에서 해야 한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시 부연하면 우리나라도 유럽의 장애인 판정 제도를 흉내 내 장애인 등록 시범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장애인복지 인프라 개편 모의적용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범 사업은 궁극적으로 정부가 장애인의 복지욕구까지 고려해서 장애 판정을 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며 진행한 건데, 냉소적으로 얘기하면 장애판정에서 장애인의 복지나 취업 욕구를 파악했으면 그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업을 시켜줘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장애판정을 한 다음 장애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업을 시켜주는 게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실정에서, 그리고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중증 경증 가릴 것 없이 대다수 장애인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장애인들을 솎아내겠다며 장애판정 재심사와 까다로워진 장애판정이라는 칼을 뽑아들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무엇을 위한, 장애판정 재심사와 장애판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심지어 장애판정을 하고 있는 의사들조차도 새로운 장애 판정표를 보고 “황당했다.”고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그런데 복지부는 장애판정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다.

결국 이 땅에 사는 장애인들은 앞으로 상당기간 장애등급 재심사와 까다로워진 장애등록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령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하찮게 보일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장애인이 1급 장애인에서 탈락하는 것은 곧 생존권 박탈을 의미한다. 과연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누가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분명한 사실 하나는 유령에 대한 극심한 공포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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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봉광님의 댓글

이봉광 작성일

최근 활동보조인의 폭행 사건으로 활동보조인과 이용자 간 갈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는 이 같은 갈등이 실제로도 꽤 많지만, 정확한 실태조사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본지를 통해 활동보조인과의 갈등을 겪었다는 장애인 A씨가 제보를 해왔다. 2년 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계속된 절도가 문제. A씨는 활동보조인 B씨로 인해 큰 불만이 있어보였다.

이에 기자는 A씨와 B씨를 각각 직접 만나 그 간의

신명숙님의 댓글

신명숙 작성일

장애인에게너무나인색한복지정책..앉아서의사와공단이판정하는장애등급..현실에서부디치는장애인의고통과아품그리고설움은어떻하나?장애인이되고싶어된사람누가있겠나..무상급식도좋지만장애등급제철회하고장애인을위한복지가더시급한것같다..정상인들이여!장애인에게배려하고도와주세요..대통령님!,국회의원님!장애인들도살기편한세상대한민국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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